여섯 시간 · 2장 같은 얼굴
여섯 시간 · 도해

2장 같은 얼굴

남진구 남진공원, 9월 19일 토요일
약 10분

토요일 아침의 「남진맘톡」은 고맙다는 말로 가득했다.

어제 함께해 주신 450분께 작성자: 부매니저 봄날 · 07:12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하율이는 아침에 엄마랑 같이 죽 먹었다고 해요. 손전등 들고 개천 따라 걸어 주신 분들, 상가 뒷골목 하나하나 열어 봐 주신 사장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동네 이런 동네였어요.

댓글이 6백 개를 넘었다. 우리 동네 최고예요. 눈물 나요. 어제 3조였는데 처음 본 분들이랑 손잡고 걸었어요. 소영은 사무실 책상에서 그 글들을 한참 내려 읽었다. 어젯밤 개천을 따라 움직이던 불빛 줄이 다시 떠올랐다. 거기서 느꼈던 이상한 뜨거움도.

10시가 조금 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누군가 정의구현 남진의 생중계에서 30초를 잘라 올렸다. 철문이 열리고, 남자가 올라오고, 회사 점퍼가 팔을 뻗고, 몸이 뒤로 넘어가는 장면. 제목은 ‘시민이 도주 막는 순간’이었다. 그 아래 처음 달린 댓글은 이랬다.

이거 그냥 사람 민 거 아닌가요? 계단인데…

좋아요가 순식간에 스물셋이 됐다. 다른 댓글이 이어졌다. 저러다 죽으면 어쩔 뻔했어요. 미는 사람 얼굴 다 나왔네. 저분도 애 아빠라던데. 한 시간쯤, 카페의 화살은 회사 점퍼를 향했다.

그러다 정오 무렵 글 하나가 올라왔다.

근데 경찰은 왜 아무 말이 없나요? 그 남자가 왜 놀이터 쪽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지, 그날 어디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을 안 해 주잖아요. 아이 찾았다고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애들도 매일 그 놀이터에서 놀아요.

좋아요 1,200. 회사 점퍼 이야기는 그 글 밑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소영은 남진경찰서 홍보 담당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 당직이라는 경위가 받았다.

“실종 건은 단순 귀가로 종결됐습니다.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탄 거고요.”

“카페에 사진이 돌고 있는 남성은요? 용의자였던 적이 있나요?”

“특정 개인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이해해 주세요.”

“아니라는 것도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단순 귀가로 종결됐다는 것까지예요.”

소영은 그 문장을 그대로 기사에 넣었다. 기사가 올라가고 20분 만에 카페에 캡처가 올라왔다. 제목은 ‘경찰, 그 남자에 대해 말 못 한다고’였다.

현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인데도 그는 집에서 조회수를 보고 있었다.

“제목 바꿔. ‘경찰, 카메라 남성 관련 답변 거부’.”

“거부한 게 아니에요. 개인 얘기는 못 한다는 거예요. 용의자였다는 말도 없었고요.”

“아니라는 말도 없었잖아.” 현철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 기사 18만이야. 우리 회사 생기고 처음이야. 사람들이 지금 뭘 궁금해하는지 알잖아.”

“그걸 우리가 키우면 안 되잖아요.”

“키우는 게 아니라 따라가는 거지.” 현철이 잠깐 말을 멈췄다. “알았어. 제목은 그대로 둬. 대신 월요일에 후속 하나 가져와.”

전화를 끊고 나서 소영은 자기가 이긴 건지 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제목은 지켰다. 카페의 캡처 제목은 이미 현철이 말한 것과 거의 같았다.


오후 2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진서 형사과 윤재곤 경사입니다. 백소영 기자님 맞으시죠? 어제 해솔빌라 앞에서 영상 찍으셨다고 들었는데요.”

만석이 말한 대로였다. 소영은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찍은 사람이 몇 없다는 것도 그가 말한 대로일 것이었다.

“원본 그대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네. 편집하지 마시고요. 계단에서 다치신 분 상해 사건으로 수사하고 있어서요.”

다치신 분. 소영은 그 말을 메모에 옮겨 적었다. 어젯밤부터 그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파일을 보내기 전에 소영은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2분 41초. 담장을 두드리는 손바닥, 박자를 얻은 목소리, 철문, 흰 빛, 넘어가는 몸. 이어폰을 꽂고 한 번 더 틀었다. 휴대폰 바로 뒤에서 나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른 목소리들보다 크고 가까웠다. 문 열어요. 문 열어요.

소영은 영상을 멈췄다. 화면에는 계단 위에 선 사람들의 뒤통수만 찍혀 있었다. 그중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 얼굴도.


일요일 새벽에 해솔빌라 반지하 철문에 붉은 글씨가 생겼다.

애들 근처에 오지 마

스프레이 페인트가 흘러내려 ‘마’ 자 아래로 붉은 줄이 세 가닥 늘어져 있었다. 소영이 도착했을 때 집주인이 계단 위에서 그 글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손에 신나 통과 걸레를 들고 있었다.

“기자요? 찍으려면 빨리 찍어요. 지울 거니까.”

소영은 사진을 두 장 찍었다. “세입자분은요?”

“병원이지. 손목에 철심 박았대요. 머리도 몇 바늘 꿰매고.” 집주인은 신나 통 뚜껑을 돌렸다. “강태모 씨. 여기서 십일 년 살았어요. 월세 한 번 안 밀리고. 인사하면 고개만 꾸벅하고, 말이 좀 느려서 그렇지.”

강태모. 소영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틀 동안 카페에서는 그를 ‘그 남자’, ‘카메라 남’, ‘반지하’라고만 불렀다.

“누가 그랬는지 아세요?”

집주인은 대답 대신 1층 현관 위를 턱으로 가리켰다. 작은 CCTV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재작년에 택배 도둑 때문에 달았어요. 보고 싶으면 와 봐요.”

1층 관리실 모니터 앞에서 집주인이 새벽 3시 12분으로 화면을 돌렸다. 골목 끝에서 남자 하나가 걸어왔다. 키가 작았고, 등산 조끼를 입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잠깐 두리번거리더니 반지하로 내려갔다. 1분 40초 뒤에 다시 올라왔다. 손에 든 깡통을 조끼 주머니에 넣으며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여분 있어요. 저쪽 덤불 좀 비춰 주세요.

“아는 사람이에요?” 집주인이 물었다.

”…아니요.” 소영은 대답하고 나서야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았다. “신고하실 거예요?”

“해야지. 근데 동네 사람이잖아.” 집주인이 모니터를 껐다. “이 동네서 사십 년 살았어요. 그저께 밤에 저 골목에 서 있던 사람들, 반은 내가 얼굴 아는 사람들이야. 내가 세 놓은 집 사람도 있었고.”

그는 신나 통을 들고 다시 계단으로 갔다. 소영은 따라 내려가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의 놀이터는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에 줄을 섰고, 부모들은 벤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네 기둥에 노란 리본 하나가 묶여 있는 것만 달랐다.

소영은 벤치 끝에 앉아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금요일 밤 골목에서 본 얼굴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를 찾았다.

등산 조끼였다. 오늘은 조끼 대신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소영은 알아봤다. 다섯 살쯤 된 남자아이를 그네에 태우고 등을 밀어 주고 있었다. 아이가 높이 올라갈 때마다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웃었다.

유모차를 민 여자가 그에게 다가갔다.

“금요일에 3조 조장님이셨죠? 그날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에이, 뭘요. 다들 같이 한 건데.” 남자가 그네를 한 번 더 밀었다. “애 찾았으니 됐죠. 우리 애도 이 놀이터에서 놀잖아요.”

“그러니까요. 그 사람 퇴원하면 어떡해요, 다시 저기 살면.”

남자의 웃음이 조금 줄었다. “그러니까 다들 눈 뜨고 있어야죠. 저도 밤에 한 번씩 돌아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이 한 번 더 오갔다. 그네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소영은 휴대폰을 꺼내 메모를 열었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고 닫았다. 저 사람은 그날 밤 아이를 찾았고, 오늘 새벽 문에 글씨를 썼고, 지금은 아들의 그네를 민다. 어느 장면에서도 그는 같은 얼굴이었다.


일요일 저녁, 소영은 공원 물놀이장 펜스 앞에서 만석을 찾았다. 편의점 직원이 저녁 여섯 시면 그가 공원을 한 바퀴 돈다고 알려 줬다. 회색 점퍼는 펜스에 손을 얹고 물 빠진 수조를 보고 있었다.

“영상, 경찰한테 보냈어요.”

“잘했어요.”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소영은 그의 옆에 섰다. “스프레이 뿌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빌라 CCTV에 나왔어요.”

만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등산 조끼.”

”…어떻게 아세요?”

“짐작이에요. 그 사람이 앞줄 가운데였으니까.” 그가 펜스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뭘 물어보려고 했는데요.”

“이걸 기사로 써야 하는지요. 금요일 밤엔 그분이 애 찾는다고 개천을 걸었어요. 저한테 손전등도 빌려주고요. 그런 사람이 오늘 새벽에 남의 집 문에 페인트를 뿌렸어요. 오후엔 아들 그네를 밀어 주고 있었고요. 어느 쪽이 그 사람이에요?”

만석은 한참 수조 바닥을 봤다. 마른 잎이 배수구 쪽으로 몰려 있었다.

“둘 다요.” 그가 말했다. “르 봉이 그랬어요. 군중은 범죄도 저지르고 영웅 노릇도 한다고. 둘이 다른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같은 데서 나온다고. 그 사람, 페인트 뿌리면서도 애들 지킨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문에 쓴 글씨 봤죠.”

애들 근처에 오지 마. 소영은 그 글씨를 떠올렸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처럼 쓰여 있었다.

“그럼 써야 해요, 말아야 해요?”

“그건 기자 양반이 정할 일이고.” 만석이 처음으로 소영을 봤다. “근데 쓰면 그 사람한테도 똑같이 될 거예요. 하루 만에.”


월요일 오전 10시, 남진구의회 임시회가 열렸다. 소영의 원래 담당은 구의회였다. 지난주까지 이 자리 기자석에는 소영 말고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방송사 카메라가 하나 와 있었다.

5분 자유발언 순서에 문정수 의원이 일어났다. 3선, 쉰여덟. 발언대에서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구에서 여덟 살 아이가 여섯 시간 동안 실종됐다가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수백 명의 주민이 아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원고를 한 장 넘겼다. “그리고 같은 날 밤, 확인되지 않은 사진 한 장 때문에 한 주민이 자기 집 계단에서 떠밀려 크게 다쳤습니다. 저는 이 일도 우리가 똑같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진으로 이웃을 몰아세우지 맙시다.”

의원 몇이 고개를 숙였다. 방청석의 누군가가 휴대폰을 들어 발언 장면을 찍었다.

정회 시간에 소영은 복도에서 문정수를 붙잡았다. 그의 휴대폰은 주머니 안에서 계속 떨고 있었다.

“의원님, 발언 전에 카페 분위기 보셨어요? 이렇게 되면 표적이 되실 수도 있는데요.”

“봤어요.” 문정수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엎어 쥐었다. “그래서 했어요. 오늘 안 하면 다음 주엔 더 못 하니까.”

“계단에서 다친 분, 아세요?”

“몰라요. 이름도 오늘 아침에 들었어요.” 그는 안경을 벗어 닦았다. “백 기자, 그 사람이 뭘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근데 아무도 모른다는 건 알아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요?”

뒤에서 비서관이 그를 불렀다. 의원실로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회선이 막혔다고 했다. 문정수는 안경을 다시 쓰고 소영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걸어갔다. 걸음이 아까보다 조금 빨랐다.

소영이 정오에 기사를 올렸을 때, 그 영상은 이미 카페에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구의원이 그 남자 편’이었다. 오후 1시에는 좋아요가 9백, 오후 3시에는 2천을 넘었다. 의원실 전화번호가 댓글에 붙었다. 누군가 ‘우리 아이보다 그 사람이 중요하냐’고 썼고, 그 문장이 다른 글에서 똑같이 되풀이됐다.

오후 5시, 새 글이 올라왔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구의원입니다 (캡처) “청소년 범죄자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 문정수 의원

소영은 그 캡처의 글씨체를 알아봤다. 「남진투데이」 기사 본문의 글씨체였다. 소영은 검색창에 그 문장을 넣었다. 3년 전, 소영이 입사하고 처음 쓴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학교 밖 청소년 쉼터 예산을 지키겠다는 인터뷰였다. 잘린 문장 바로 뒤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래야 두 번째 피해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캡처에는 그 문장이 없었다. 소영은 자기가 쓴 기사를 오래 봤다. 앞뒤를 잘라 낸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 그 캡처를 몇 번이나 퍼 날랐는지는 알 수 있었다. 화면 아래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르 봉 노트 2. 영웅과 폭도는 같은 얼굴

원전: 1부 2장

르 봉의 주장: 르 봉은 군중의 감정에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먼저 충동적이고 변덕스럽다. 받은 자극에 곧바로 움직이고, 자극이 바뀌면 방향도 금방 바뀐다. 다음으로 암시를 쉽게 믿는다. 그는 한 프랑스 군함의 선원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나뭇가지 더미를 조난자의 뗏목으로 다 함께 ‘본’ 일을 예로 들었다. 감정은 단순하고 과장된다. 의심은 곧 확신이 되고, 반감은 곧 증오가 된다. 군중은 다른 의견을 견디지 못하고 권위에 기댄다. 마지막으로 도덕성에 대해 그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군중은 개인보다 훨씬 잔인할 수 있지만, 개인이 결코 하지 못할 헌신과 희생도 할 수 있다. 둘 다 개인의 이해를 잊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고맙다는 글이 6백 개 달린 지 세 시간 만에 화살이 회사 점퍼에게 갔다가 다시 태모에게 돌아왔다. 밤새 손전등을 들고 아이를 찾던 등산 조끼 남자는 이틀 뒤 새벽 남의 집 문에 페인트를 뿌렸다. 문에 남은 글씨는 협박이 아니라 경고의 꼴이었다.

지금 보면: 감정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는 ‘정서 전염’은 표정, 목소리, 자세를 따라 하는 수준에서 실제로 측정된다(Hatfield 외, 1994). 반면 군중이 잘 겁에 질리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그림은 재난 연구에서 크게 수정됐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의 생존자 증언을 분석한 연구(Drury 외, 2009)를 보면,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함께 대피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군중이 같은 날 영웅도 되고 폭도도 된다는 르 봉의 관찰은 맞다. 다만 그 원인은 개인이 이해를 잊어서가 아닐 수 있다. ‘우리’를 지킨다는 같은 감각이 수색에서는 헌신으로, 해솔빌라 앞에서는 폭력으로 나왔다.

한 줄: 영웅과 폭도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이유로 다른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