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매니저 봄날은 학교 앞 프랜차이즈 카페 구석 자리에 휴대폰 두 대를 나란히 놓고 앉아 있었다. 쪽지로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하교 시간 전 40분만 된다고 답했다.
“오선희예요. 봄날은 카페 닉네임이고요.” 그녀가 먼저 말했다. “기사 봤어요. 금요일 거랑, 경찰 거랑.”
“그 사진 얘기를 여쭤보고 싶어서요. 처음에 어디서 받으셨어요?”
선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개인용이라는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 하나를 보여 줬다. 금요일 오후 4시 58분.
아까 놀이터 쪽 찍던 사람이래요
사진과 함께 온 메시지였다. 보낸 사람 이름 칸에는 ‘민서맘’이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반 엄마예요. 2학년 학부모방에서 보고 저한테 따로 보내 준 거고요. 제가 카페 운영진이니까.”
“이분이 직접 보신 건 아니고요?”
“아니죠. 그분도 받은 거예요.” 선희가 휴대폰을 거둬들였다. “기자님,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확인 안 하고 올렸다는 거죠.”
소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선희가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날 4시 58분이었어요. 하율이 없어진 지 한 시간 반. 해는 두 시간 뒤면 지고요.” 선희가 말했다. “그때 제가 이 사진을 안 올렸다고 쳐요. 그런데 하율이가 진짜 그 사람이랑 있었으면요? 그 생각을 하니까 손이 먼저 갔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손이 먼저 가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 오후 5시 48분, 벤치 끝에서 기사 제목을 고르던 자기 손가락도 그랬다. 만약에. 만약에 그 남자가.
“민서 어머님 연락처를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먼저 물어볼게요. 싫다고 하면 못 드려요.” 선희가 시계를 봤다. 하교 시간이었다. 그녀는 일어서다 말고 덧붙였다. “기자님 기사 덕분에 사람들이 그 사진을 진짜로 믿었어요. 카페에 올린 건 저지만, 기사가 나오니까 다들 그게 사실인 줄 알았다고요.”
그 말에는 탓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민서 엄마는 그날 저녁 문자로만 답했다.
저도 학부모방에서 본 거예요. 3단지 동대표님이 올리셨어요. 원래 문구는 “아까도 공원에 있었대요 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선희 씨한테 보낼 때 놀이터라고 쓴 건… 공원이 그 놀이터니까요. 그렇게 이해했어요. 죄송해요.
소영은 그 문자를 두 번 읽었다. 아까도 공원에 있었대요. 아까 놀이터 쪽 찍던 사람이래요. 두 문장 사이에 무엇이 더해졌는지 소영은 메모에 적었다. ‘놀이터’, ‘찍던’. 한 사람이 그 두 단어를 보탰고,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이해한 대로 옮겼다.
3단지 관리사무소에 물어 동대표와 통화가 닿은 건 밤 9시가 넘어서였다. 예순쯤 된 남자 목소리였다. 단지 공지를 올리느라 학년별 학부모방에도 들어가 있다고 했다.
“아, 그거. 나도 받은 거요. 동대표방에 누가 올렸는데 누군지는 기억 안 나요. 단톡방이 하루에 몇 개씩 울리는데.”
“원래 받으신 문구가 뭐였는지 기억하세요?”
“공원에서 맨날 뭘 찍는다는 거였나. 애 없어졌다니까 다들 놀라서 막 돌렸지. 나는 학부모방에 ‘아까도 있었대요’ 하고 올렸고.”
“아까도 있었다는 건 누가 그러셨어요?”
동대표가 잠깐 말이 없었다. “누가 그랬겠지. 맨날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소영은 메모를 내려다봤다. 사슬은 세 번째 고리에서 끊겨 있었다.
그날 밤 카페에는 새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저도 봤어요’였다.
작년 여름에 그 사람이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우리 애 쪽을 계속 쳐다봤어요. 그때는 그냥 이상한 아저씨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름 돋아요.
댓글이 이어졌다. 저도요. 저도 몇 번 봤어요. 애들 하원 시간마다 있었던 것 같아요. 카메라를 애들 쪽으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한 사람은 2년 전 겨울 이야기를 했다. 눈 오는 날 그 사람이 놀이터 앞에 한참 서 있었는데, 그때 놀이터에는 자기 딸밖에 없었다고.
소영은 그 댓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들 진짜로 기억해 내고 있었다. 다만 그 기억들은 금요일 이전에는 아무도 꺼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사진 한 장이 오래된 장면들을 불러냈고, 불려 나온 장면들은 사진에 맞춰 새로 칠해져 있었다.
수요일 오전, 소영은 사진을 들고 놀이터로 갔다.
사진 속 남자가 서 있던 자리는 금방 찾았다. 놀이터 펜스 서쪽 끝, 벤치 옆의 보도블록 한 칸이 깨진 곳이었다. 소영은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을 사진 속 카메라와 같은 높이로 들었다. 펜스가 화면 아래쪽 4분의 1을 채웠다. 렌즈를 사진과 같은 각도로 맞추자 화면 가운데에 들어온 건 미끄럼틀이 아니라 그 뒤의 느티나무였다. 굵은 가지 두 개가 갈라지는 자리.
소영은 그 가지를 한참 올려다봤다. 잿빛 새 한 마리가 가지 사이에서 날아올랐다.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났다.
사진 귀퉁이에 걸려 있던 파란 천은 지금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아무리 키워도 뭉개진 파란 덩어리일 뿐이라,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소영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사진 세 장을 찍었다. 금요일의 사진과 나란히 놓으니 렌즈가 향한 곳이 분명했다. 기사는 짧게 썼다. 감정을 섞지 않았다. 사진 속 카메라의 방향은 놀이터가 아니라 그 뒤 나무 쪽이다. 촬영 시점과 촬영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 속 남성이 실종 아동과 관련 있다는 근거는 지금까지 없다.
‘카메라 든 남성’ 사진, 렌즈는 놀이터 아닌 나무 향해 백소영 기자 · 9월 23일 11:40
저녁까지 조회수는 4,100이었다. 금요일 기사의 마흔네 분의 일.
댓글은 서른 개가 달렸다. 각도가 무슨 상관이에요. 나무 찍는 척하면서 애들 찍는 거지. 기자님 그 사람 가족이에요? 한 댓글에는 금요일 기사의 캡처가 붙어 있었다. 모자이크를 씌운 사진, 그리고 ‘카메라 든 남성’이라는 제목.
현철은 퇴근하면서 소영의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봐. 안 읽잖아.” 그는 비꼬는 투가 아니었다. 그냥 날씨를 말하듯 했다. “사람들은 사진을 봤어. 각도는 안 봐.”
그날 저녁 소영은 남진중앙병원에 갔다. 하율이 그날 밤 찾아갔던 병원이었다. 하율의 외할머니는 7층에 있었고, 강태모는 5층 정형외과 병동에 있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쓰는 두 층이었다.
간호사실 앞에서 소영은 명함을 내밀었다. 젊은 간호사가 명함과 소영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보호자분이세요?”
“아니요. 기자예요. 잠깐 인사만이라도…”
“환자분이 면회를 원하지 않으세요.” 간호사는 명함을 돌려주지 않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어제도 누가 찾아와서 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갔어요. 그 뒤로는 커튼도 안 여세요.”
소영은 더 묻지 않았다. 돌아서다가 복도 끝 병실 문이 반쯤 열린 것을 봤다. 커튼 사이로 침대 하나가 보였다. 깁스를 한 손목이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침대 옆 식판 위에 작은 카메라 하나가 있었다. 끈 대신 회색 신발끈이 달려 있었다. 카메라 화면이 켜져 있었는데, 거기 무엇이 떠 있는지는 그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가 소영의 시선을 따라와 병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추석 전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이번에도 못 와?”
“연휴에 당직이에요. 기자 넷인 회사라.”
“그래, 알았어.” 엄마가 잠깐 망설였다. “근데 고모가 가족방에 뭘 올렸던데. 너네 동네 아니니? 카메라 든 남자, 애들 찍는다는.”
소영은 가족 단톡방을 열었다. 고모가 오후에 올린 사진이 있었다. 금요일의 그 사진이었다. 모자이크는 없었고, 위에 누군가 빨간 글씨로 ‘이 사람 조심’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 아래 큰아버지가 ‘세상이 무섭다’고 썼고, 사촌 언니가 우는 얼굴 이모티콘을 달았다.
“엄마, 그거 아니에요. 아직 아무것도 확인 안 됐어요. 그분 그날 계단에서 떠밀려서 다치기까지 했어요.”
“그래? 고모는 뉴스에 나온 거라던데.”
뉴스. 소영은 그 말을 고칠 수가 없었다. 그 뉴스를 쓴 사람이 자기였다.
추석 당일 저녁, 소영은 3단지 만석의 집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오전에 만석에게 전화를 건 건 기사 때문이었다. 왜 아무도 안 읽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만석이 그건 자기가 아니라 딸이 할 대답이라고 했다. 딸이 대학 연구소에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걸 연구한다고 했다. 딸이 추석이라 집에 와 있으니 저녁에 송편이나 먹으러 오라고.
문을 연 건 안경을 쓴 여자였다. 서른 중반쯤. 만석처럼 키가 컸다.
“백 기자님이죠? 고은채예요. 아빠가 기자님 얘기를 저녁 내내 했어요.”
“내가 언제.” 거실에서 만석의 목소리가 났다.
식탁에는 송편과 전, 그리고 반쯤 먹은 갈비찜이 있었다. 은채가 접시를 하나 더 놓았다. 만석은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끄고 식탁으로 왔다. 집에서 보는 그는 점퍼를 입었을 때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기사 봤어요. 각도 기사.” 은채가 송편을 집으며 말했다. “잘 쓰셨던데. 안 읽혔죠?”
“4,100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은채가 웃지 않고 말했다. “기자님은 사람들한테 생각을 하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진으로 생각해요. 사진이 이미 결론이에요. 거기에 각도를 붙이면 그건 결론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그냥 다른 이야기예요.”
“르 봉이 다 쓴 얘기야.” 만석이 말했다.
“아빠는 또.”
“군중은 그림으로 생각한다.” 만석이 젓가락으로 허공에 줄을 긋듯 했다. “논리로 안 움직이고 그림으로 움직인다고. 비슷하게 생긴 걸 그냥 이어 버리고. 카메라, 놀이터, 애들. 셋이 한 장에 있으면 그게 곧 이야기가 되는 거야.”
“맞는 말이긴 해.” 은채가 순순히 인정했다. “근데 아빠, 르 봉은 그게 군중이라서 그렇다고 했잖아. 사람이 모이면 원시인처럼 된다고. 그건 아니야. 혼자 집에서 휴대폰 보는 사람도 똑같이 그래. 사람 머리가 원래 그렇게 생긴 거야.”
“그러니까 혼자 보는 게 아니라니까. 다들 같이 보잖아.”
“같이 보면 더 그렇지. 그건 인정.”
소영은 두 사람의 말이 오가는 걸 들으며 갈비찜을 먹었다. 둘은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같은 곳을 짚었다. 말투가 닮아 있었다.
거실 책장에 낡은 문고판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표지가 떨어져 나가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은 책이었다. 소영의 시선을 따라간 은채가 일어나 그 책을 빼 왔다.
“아빠 성경이에요.” 은채가 책을 소영 앞에 내밀었다. “펴 보세요. 밑줄 없는 쪽이 없어요.”
정말 그랬다. 연필 밑줄, 볼펜 밑줄, 형광펜. 여백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03. 4. 2003. 5. 2009. 2017. 어떤 날짜 옆에는 짧은 단어가 있었는데 연필이 번져 읽을 수 없었다.
만석이 손을 뻗어 책을 가져갔다. 거칠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책을 덮어 자기 쪽에 놓았다.
“밥 먹어요. 식어.”
은채는 아버지를 한 번 보고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소영에게 휴대폰을 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 사진 좀 볼 수 있어요? 원래 사진이요.”
소영은 모자이크가 없는 사진을 열어 건넸다. 은채는 한참 사진을 확대했다 줄였다 했다. 남자의 얼굴, 카메라, 펜스, 귀퉁이의 파란 천.
“이거 언제 찍은 거예요?”
“금요일이요. 그날…” 소영은 말을 멈췄다.
“그날 찍었다는 건 누가 그래요?”
소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까도 공원에 있었대요. 아까 놀이터 쪽 찍던 사람이래요. 문구는 바뀌었지만, 어느 문구도 그 사진이 금요일에 찍혔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이해했을 뿐이었다. 자기도.
“사진에는 날짜가 없잖아요.” 은채가 휴대폰을 돌려줬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면 지금 찍은 걸로 봐요. 그게 제일 빠르니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영은 사진 파일의 정보를 열어 봤다. 촬영 날짜, 기기, 위치. 모든 칸이 비어 있었다. 단톡방 몇 곳을 거치는 동안 사진은 날짜를 잃었다. 카메라를 든 남자와 펜스와 파란 천만 남았다.
소영은 메모에 적었다.
9.25 21:40. 이 사진, 언제 찍었나.
르 봉 노트 3. 사진으로 생각하기
원전: 1부 3장
르 봉의 주장: 르 봉은 군중이 관념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따로 있다고 했다. 군중은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한 이미지로 바꾼 뒤에야 받아들인다. 추론도 한다. 다만 겉으로 비슷한 것들을 곧장 잇고, 하나의 경우를 바로 일반화한다. 상상력은 오히려 아주 강하다. 생생한 장면, 극적인 사건, 기적처럼 보이는 일에 크게 흔들린다. 르 봉의 예는 이렇다. 독감으로 파리에서 수천 명이 죽어도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펠탑이 무너졌다는 소식 하나는 온 나라를 뒤흔든다. 그래서 그는 군중의 상상력을 움직이는 기술이 곧 통치술이라고 결론지었다.
소설 속에서: 카메라, 펜스, 아이들. 한 장의 사진에 셋이 같이 있자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됐다. 사진은 오래된 기억까지 불러내 자기에게 맞게 다시 칠했다. 렌즈 각도를 따진 소영의 기사는 반박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 읽혔다. 단톡방을 지날 때마다 사진에는 단어가 붙었고, 날짜는 떨어져 나갔다.
지금 보면: 르 봉은 이것을 군중의 성질로 봤고, 군중을 원시인과 아이에 빗댔다. 이 비유는 폐기됐다. 혼자 있는 사람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 이후의 연구다. 사람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례로 그 일이 얼마나 흔한지 판단한다(가용성 휴리스틱, Tversky & Kahneman, 1973). 이름과 얼굴이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숫자로 된 통계보다 훨씬 강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기부 실험에서 사람들은 굶주린 아이 한 명의 사진과 이름에는 지갑을 열었지만, 수백만 명이 굶는다는 통계에는 덜 열었다(Small, Loewenstein & Slovic, 2007). 다만 이 효과는 최근 재현 실험에서 약하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기도 해서, 크기는 아직 논쟁 중이다. 르 봉이 맞힌 것은 현상이고, 틀린 것은 그 현상을 군중만의 결함으로 본 점이다. 모여 있을 때 더 심해질 뿐, 이미지로 생각하는 건 우리 모두의 기본값이다.
한 줄: 사진은 증거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사진을 따지지 않는다. 사진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