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간 · 1장 여섯 시간
여섯 시간 · 도해

1장 여섯 시간

남진구 남진공원, 9월 18일 금요일
약 12분

오후 4시 50분, 백소영은 구의회 상임위원회 기사의 조회수를 세 번째로 새로 고쳤다. 312. 한 시간 전에도 312였다.

“주차장 조례 그거, 제목을 바꿔.” 마현철 편집장이 모니터 너머로 말했다. “‘주차 요금 오른다’로. 사람들은 조례는 안 읽어도 요금은 읽어.”

“요금 안 올라요, 국장님. 감면 대상이 바뀌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면받던 사람한텐 오르는 거잖아.”

소영이 대꾸할 말을 고르는 사이 책상 위 휴대폰이 떨었다. 「남진투데이」가 운영하는 동네 제보 단톡방이었다. 하루 종일 주차 시비와 길고양이 사진이 올라오는 방이었다.

남진공원 놀이터에서 2학년 여자애 없어졌대요 엄마 울고 난리났어요

소영은 메시지를 한 번 더 읽고 일어섰다. 남진공원이면 걸어서 7분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둔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쳤다.

“어디 가?”

“공원이요. 애가 없어졌대요. 2학년.”

현철이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가는 길에 사진부터 찍어 보내.”


오후 5시 15분, 공원 입구의 물놀이장은 물이 빠져 바닥의 파란 칠이 드러나 있었다. 둘레에 공사용 펜스가 쳐져 있었고, 말라 버린 느티나무 잎이 배수구에 몰려 있었다. 소영은 그 옆을 뛰어 지나갔다.

놀이터 미끄럼틀 앞에 경찰 둘이 서 있었다. 그 사이에서 여자 하나가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쥐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학원 버스가 3시 20분에 내려 줘요. 제가 40분에 와요. 늘 그래요. 늘 여기서 기다려요.”

경찰이 아이의 옷차림을 물었다. 노란 머리핀, 분홍 반바지.

“가방은요? 뭐 들고 있었어요?”

“분홍 책가방이요. 안에 그림이 하나 있어요.” 여자가 대답하다 말고 숨을 들이켰다. “오늘 저녁에 같이 할머니 병원 가기로 했거든요. 할머니 드린다고 아침에 그려서 넣어 갔어요.”

경찰은 책가방 색만 받아 적었다. 소영은 휴대폰 메모를 열고 시각부터 적었다. 17:16. 엄마. 머리핀 노랑. 할머니 병원. 그림.

그때 손안에서 휴대폰이 다시 떨었다. 이번에는 단톡방이 아니었다. 회원 3만 2천 명인 동네 맘카페 「남진맘톡」의 새 공지 알림이었다.

[긴급] 남진공원 실종 아동 관련, 이 사람 보신 분 연락 주세요 작성자: 부매니저 봄날 · 17:10 2학년 하율이가 3시 반쯤부터 안 보입니다. 아래 사진 속 남성이 “아까 놀이터 쪽 찍던 사람이래요”라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보신 분은 댓글 말고 쪽지 주세요. 하율이 꼭 찾아요.

사진 속 남자는 마르고 등이 굽었다. 갈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두 손으로 작은 카메라를 눈높이에 들고 있었다. 왼쪽 뒤로 놀이터 펜스가 보였다. 사진 귀퉁이에는 파란 천 같은 것이 잘려 걸려 있었다.

소영은 사진을 키웠다. 카메라 렌즈가 펜스보다 조금 위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어딜 보는 거지. 그 생각은 다음 알림이 뜨자 밀려났다. 공지에 댓글이 1분 만에 마흔 개가 달렸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 둘에게 사진을 보였다.

“아, 이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말했다. “맨날 있어. 맨날 저기서 뭘 찍어.”

“오늘도 있었어요? 몇 시쯤요?”

두 할머니가 서로를 봤다. 다른 한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맨날 있는 사람인데, 오늘이라고 없었겠어?”

미끄럼틀 쪽에서도 누군가 같은 사진을 내밀고 있었다. 젊은 경찰이 휴대폰 화면을 하율 엄마 앞에 들었다.

“어머님, 이 사진 보셨어요? 동네 카페에 돌고 있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하율 엄마는 화면을 오래 봤다. 소영이 서 있는 곳에서도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입술이 한 번 열렸다.

“그분은…”

경찰의 어깨에 달린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버스 회사 쪽 CCTV를 확인하겠다는 목소리였다. 경찰이 고개를 돌렸고, 하율 엄마는 나머지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쥐고 놀이터 입구 쪽을 봤다. 아이가 거기서 걸어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오후 5시 48분, 소영은 벤치 끝에 앉아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실종 시각, 옷차림, 신고 시각. 거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손가락이 멈춘 건 사진 앞에서였다.

전화가 왔다. 현철이었다.

“카페에 사진 돈다며. 카메라 든 남자.”

“국장님, 그거 확인 안 된 거예요. 오늘 봤다는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니까 ‘목격담’이라고 쓰는 거야. 우리가 봤다는 게 아니잖아. 얼굴은 가리고.” 현철이 잠깐 말을 끊었다. “올려. 다른 데서 먼저 올리기 전에.”

소영은 남자의 얼굴에 모자이크를 씌웠다. 갈색 조끼와 카메라는 그대로 두었다. 그게 남자를 알아보게 하는 전부라는 걸,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진공원서 8세 여아 실종… ‘카메라 든 남성’ 목격담 백소영 기자 · 18:02

올리고 3분 뒤 조회수가 4천을 넘었다. 주차장 조례 기사가 석 달 동안 모은 숫자의 열 배였다.


오후 6시 40분, 해가 졌다. 카페 공지 아래에 부매니저 봄날이 표를 올렸다. 1조 놀이터와 주차장, 2조 개천 산책로 북쪽, 3조 산책로 남쪽, 4조 상가 뒷골목. 조마다 조장의 휴대폰 뒷자리가 붙어 있었다.

공원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퇴근길 양복, 슬리퍼, 유모차, 강아지 목줄. 수십 명이 금세 수백 명이 됐다.

공원 관리사무소 앞 계단에 여자 하나가 서서 휴대폰 두 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봄날 님이세요?” 하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 번호를 불러 줬다. “2조는 저쪽 다리부터요. 진짜 너무 감사해요. 진짜로.” 감사하다는 말이 명령보다 길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흩어졌다.

소영은 3조를 따라갔다. 등산 조끼를 입은 키 작은 남자가 소영에게 손전등 하나를 내밀었다.

“여분 있어요. 저쪽 덤불 좀 비춰 주세요.”

이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저 다리 밑은 제가 볼게요” 하면 다른 누가 “그럼 전 건너편이요” 했다. 손전등 불빛이 개천을 따라 줄지어 움직였다. 누군가 “하율아!” 하고 부르면 뒤에서 열 사람이 따라 불렀다. 목소리가 겹치자 하나의 긴 소리가 됐다.

소영은 자기도 따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웠다. 이 동네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나. 3년 동안 이 동네 기사를 썼는데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쉬지 않고 떨었다. 조회수는 5만을 넘어 있었다.


오후 7시 5분, 공지 아래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이 사람 공원 옆 해솔빌라 반지하 사는 사람 맞죠? B01

댓글은 4분 뒤에 지워졌다. 그 4분 사이에 캡처가 3조 단톡방에 올라왔다. 산책로 남쪽 끝에서 손전등 불빛 몇 개가 멈췄다.

“그 집도 한번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가 처음 말했는지 소영은 보지 못했다.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3조의 절반이 산책로를 벗어나 서쪽 골목으로 향했다. 소영은 기자니까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오후 8시, 해솔빌라 앞 골목에 60명쯤이 모여 있었다. 반지하 현관으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계단이 일곱 칸이었다. 맨 아래 철문은 닫혀 있었고, 현관 옆 작은 창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검은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셀카봉을 높이 들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빨간 LIVE 표시와 ‘정의구현 남진’이라는 채널 이름이 보였다. 동시 접속자 1,200명.

“여러분,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이 제보된 그 사람 집입니다. 불은 꺼져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아이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창문에 불이 잠깐 켜졌다 꺼졌다. 앞줄에서 누가 말했다.

“있네.”

처음에는 한 사람이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그다음은 몇 사람이었다. “문 열어요.” 그리고 소리는 박자를 얻었다. 문 열어요. 문 열어요. 소영은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었다.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담장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유모차를 민 여자도, 강아지를 안은 남자도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중에 그 영상을 다시 틀었을 때, 소영은 휴대폰 바로 뒤에서 나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른 목소리들보다 크고 가까웠다. 문 열어요. 자기 목소리였다.

길 건너 편의점 앞에 키 큰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회색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은 그 골목에서 그 남자뿐이었다.


오후 8시 40분, 철문이 열렸다.

마른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갈색 조끼였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고, 거기서 흰 빛이 흔들렸다. 앞줄에서 누가 소리쳤다.

“나온다! 도망간다!”

계단 맨 위에 회사 이름이 박힌 점퍼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두 팔을 뻗었다. 미는 동작은 짧았다. 조끼를 입은 남자의 몸이 뒤로 기울었고, 일곱 칸을 한꺼번에 내려갔다. 쥐고 있던 흰 빛이 계단을 따라 굴러 철문 앞에서 멈췄다. 소영은 그게 휴대폰 불빛이라고 생각했다.

3초쯤, 골목이 조용했다.

“도망치려고 했잖아.” 누군가 말했다.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셀카봉을 든 남자가 화면에 대고 말했다. “방금 그 사람이 도주를 시도했습니다. 시민 한 분이 막았습니다.” 동시 접속자가 3천을 넘었다.

계단 아래 남자는 일어나지 못했다. 한쪽 손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회사 점퍼를 입은 남자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우리 큰딸’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그는 한참 받지 않다가 뒤로 돌아서서 받았다. “응, 아빠 곧 가. 아니, 아무 일 없어.” 오후 8시 48분에 순찰차가 왔고, 8시 55분에 구급차가 왔다. 구급대원 하나가 계단 아래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 들것 위 남자의 가슴께에 올려놓았다. 흰 빛은 그때 꺼졌다.


오후 9시 30분, 골목의 휴대폰 수십 대가 거의 동시에 떨었다.

찾았습니다!!! 하율이 외할머니 병원에 있어요. 무사해요. 다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 작성자: 부매니저 봄날 · 21:31

아이는 버스 세 정거장 떨어진 남진중앙병원 7층, 외할머니의 병실에 있었다. 혼자 버스를 탔다고 했다.

누군가 박수를 쳤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10분 만에 골목이 비었다. 유모차도, 강아지도, 셀카봉도. 남은 건 계단 위의 발자국과 담장에 기대 놓은 손전등 두어 개였다.

소영 옆을 지나가던 여자가 일행에게 말했다.

“근데 그 사람은 왜 애들을 찍었대?”


오후 10시 10분, 소영은 공원 앞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있었다. 기사에 ‘아동 무사 귀가’를 덧붙여야 했는데,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탁자 위에 캔커피 하나가 놓였다. 고개를 드니 회색 점퍼였다. 해솔빌라 건너편에서 혼자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였다.

“아까 그 골목에서 영상 찍었죠.”

소영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누구신데요?”

“고만석이요. 저 앞 3단지 살아요.” 남자는 선 채로 말했다. “남진서에서 경비 일 하다 나왔고. 그 영상, 지우지 말고 둬요. 내일이든 모레든 경찰이 달라고 할 거니까.”

”…밀친 거 때문에요?”

“계단 아래 그 사람, 손목 나갔어요. 머리도 박았고.” 만석이 그제야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앞에서 찍은 사람이 몇 없어요. 다들 자기 얼굴 나올까 봐 뒤에서 찍었지.”

소영은 커피를 따지 않았다. 만석은 자기 캔을 땄다. 왼손 손등에 오래된 흉터가 하얗게 당겨져 있었다.

“길 건너에 계속 계셨잖아요. 왜 안 말리셨어요?”

“나 혼자요?” 만석이 짧게 웃었다. “예순하나였어요. 앞줄만 열둘.”

“그걸 세고 계셨어요?”

“버릇이에요. 삼십 년을 그것만 했으니까.”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공원 쪽을 봤다. 산책로 입구 가로등 아래, 누가 두고 간 손전등이 아직 켜진 채 굴러 있었다.

“산책로 남쪽 조에 손전등 나눠 주던 사람 있었죠. 키 작고, 등산 조끼 입은.”

소영은 기억했다. 여분 있어요, 저쪽 덤불 좀 비춰 주세요.

“그 사람이 맨 앞줄 가운데 있었어요. 처음 문 열라고 한 것도 그 사람이고.”

“설마요. 그분은 애 찾으러—”

“애 찾으러 나왔죠. 그 집 앞에도 애 찾으러 간 거고.” 만석이 캔을 내려놓았다. “본인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소영은 반박할 말을 찾다가 그만뒀다. 손전등을 건네던 손은 친절했다. 그 손이 담장을 두드리던 손과 같은 손인지 소영은 알 수 없었다. 그때 자기는 담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르 봉이라고 알아요?” 만석이 물었다.

”…아뇨.”

“프랑스 사람인데, 백삼십 년 전에 군중에 대해서 책을 하나 썼어요. 사람이 모여서 한쪽을 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예순한 명이 아니라 한 사람이래요. 이름이 없으니 책임질 사람이 없고, 하품처럼 옮고, 누가 먼저 한마디 하면 나머지는 그냥 받는다고.” 그가 탁자 위 소영의 휴대폰을 턱으로 가리켰다. 화면에 카페 알림이 쌓여 가고 있었다. “그 사람 말로는, 꼭 한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대요.”

소영은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영상 다시 볼 때, 소리도 잘 들어 봐요.” 만석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기자 양반 목소리도 들어 있을 테니까.”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는 취재하러 간 거예요.”

“알아요. 다들 뭘 하러 간 거였지.” 만석이 일어나 빈 캔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경찰은요? 이런 일 생기면 경찰은 어떻게 해요?”

“한번 그렇게 뭉치면 말로는 안 돼요. 막는 수밖에 없어.” 만석이 점퍼 지퍼를 올렸다. “늦었어요. 들어가요.”


오후 11시 50분, 소영은 원룸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첫 기사의 조회수는 18만이었다. 「남진투데이」가 생긴 뒤로 가장 많이 읽힌 기사였다.

소영은 사진을 다시 열었다. 갈색 조끼, 카메라, 펜스. 귀퉁이의 파란 천. 모자이크를 씌운 건 자기였다. 그 아래 얼굴을 소영은 아직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제보 단톡방에 알림이 떴다.

범인 얼굴 ㅋ 이거 퍼가세요

같은 사진이었다. 모자이크가 없었다. 마른 얼굴이 카메라 뒤에서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보는 얼굴이었다.

소영은 휴대폰 메모를 열었다. 늘 그랬듯 시각부터 적었다.

23:52. 이 사진, 누가 찍었나.


르 봉 노트 1. 군중이 되는 순간

원전: 서론, 1부 1장

르 봉의 주장: 르 봉은 자기 시대를 ‘군중의 시대’라고 불렀다. 옛 신념이 무너지는 동안 커지는 힘은 군중의 힘 하나뿐이니, 다스리려는 사람은 군중의 심리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모인다고 다 군중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감정과 생각이 한 방향으로 쏠린 무리만이 ‘심리적 군중’이 된다. 이때 개인의 의식은 사라지고 하나의 집단 정신이 나타난다. 원인으로는 셋을 꼽았다. 숫자에서 오는 무적의 느낌과 익명성 때문에 책임감이 사라진다. 감정과 행동이 병처럼 옮는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암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면 개인은 문명의 사다리를 몇 계단 내려간다고 했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같은 일에 같은 감정을 품은 수천 명은 군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서: 개천을 따라 손전등을 비추던 3조, 해솔빌라 앞의 60명, 그날 밤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카페 회원 3만 2천 명. 그리고 “문 열어요”를 외친 소영.

지금 보면: 군중 속에서 사람이 달라진다는 관찰은 맞다. 다만 설명이 바뀌었다. 최면에 빗댄 설명은 폐기됐다. 익명성처럼 개인을 지우는 조건을 다룬 실험 60편을 한데 묶어 다시 분석한 결과(Postmes & Spears, 1998)를 보면, 그런 조건은 사람을 규범 없는 상태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 집단의 규범을 더 강하게 따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같은 사람들이 같은 날 밤 산책로에서는 아이를 찾고 골목에서는 남의 집 문을 두드렸다. 어느 규범이 그 자리를 차지했느냐의 차이였다. 사람이 짐승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바뀐 것이다.

원전이 쓰인 때: 1895년. 르 봉(1841~1931)은 의학을 공부한 뒤 인류학과 사회 문제로 옮겨 간 저술가였고, 파리 코뮌(1871)을 지켜본 세대였다. 그는 군중을 이해하려 한 만큼 두려워했다. 이 책의 날카로운 관찰과 거친 일반화는 모두 그 두려움에서 나왔다.

한 줄: 르 봉은 군중이 생각을 잃는다고 했다. 지금의 연구는 군중이 ‘우리’의 생각을 따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