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말은 월요일 저녁 곽 사장이 뒤집어 놓은 그대로였다. 정우는 화요일 아침에도, 수요일 아침에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았다. 밤새 ‘영업 중’이었던 셈이다.
“밤에도 하세요?”
옆집 태권도장 관장이 노란 띠 아이 셋을 데리고 계단을 오르다 물었다. 오전반이었다.
“아뇨.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관장은 웃고 지나갔다. 아이 하나가 팻말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거래처는 셋이 되어 있었다. 화요일 오후에 곽 사장이 1층 반찬가게 사장을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올라왔고, 저녁에는 시장길 정육점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떡볶이집 사장한테서 2층 회계사가 꼼꼼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우는 그 말의 출처가 어디인지 대충 알았다.
복도 건너편 203호 유리문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정우가 이사 오던 날부터 있던 종이였다.
손목 치료로 잠시 쉽니다. 7월 12일부터. 예약 손님께는 따로 연락드릴게요. — 유니
종이 귀퉁이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테이프를 두 번 다시 붙인 자국이 있었다.
정우는 사흘 동안 그 종이 앞을 여섯 번 지나갔다. 날짜를 읽었고, 석 달이 넘었다는 걸 셌고, 월세가 그동안 어떻게 나갔을지도 잠깐 생각했다. 문을 두드려 보지는 않았다. 회계법인에서는 고객이 부르기 전에 남의 장부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열 시쯤 곽 사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글씨를 크게 해 둔 사람의 문자답게 짧았다.
방앗간 사장 생각해본대 일주일
정우는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곧바로 답이 왔다.
감사는 무슨
열한 시 십 분에 그 유리문이 열렸다. 정우는 처음으로 203호에 불이 켜진 걸 보았다.
삼십 대 중반쯤 된 여자가 복도를 건너와 정우의 문을 두드렸다. 오른손 손목에 검은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왼손에 고지서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203호에서 네일숍 하는 은유니예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1층 떡볶이집 사장님께서 2층에 회계사님 오셨다고 하셔서요.”
“들어오세요.”
은유니는 소파의 꺼지지 않은 쪽에 앉았다. 들고 온 고지서를 두 손으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보호대 찬 오른손이 조금 늦게 따라왔다. 부가가치세 예정고지서. 123만 원. 납부 기한 10월 26일.
“이게 지난주에 왔는데요. 제가 잘 몰라서요. 이걸 또 내야 하는 건가 해서요.”
정우는 고지서를 보았다. 곽 사장이 월요일에 들고 온 것과 같은 종이였다. 숫자만 달랐다.
“7월에 1월부터 6월 치를 내셨죠. 이건 그때 낸 세금의 절반을 미리 내는 거예요.”
“아, 그건 떡볶이집 사장님께 들었어요.” 은유니가 보호대 찬 손목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런데 제가 7월 12일부터 어제까지 석 달을 쉬었거든요. 손목 때문에요. 번 게 거의 없는데 미리 낸다는 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정우는 대답하기 전에 노트북을 열었다. 홈택스 수임 동의를 받고 은유니의 카드 매출을 띄웠다. 1월부터 6월까지는 한 달에 900만 원 안팎으로 고르게 찍혀 있었다. 7월은 열하루 치였다. 8월과 9월은 비어 있었다.
정우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1월부터 6월까지 공급가액 5,400만 원. 7월부터 9월까지 270만 원.
“사장님, 이건 안 내셔도 될 것 같아요.”
은유니가 정우를 쳐다보았다.
“고지서는 지난 반년 실적으로 정한 거예요. 근데 이번 석 달 매출이 지난 반년의 3분의 1이 안 되면, 고지서대로 안 내고 실제로 번 만큼만 신고할 수 있어요. 예정신고라고 해요.”
“3분의 1이요?”
“지난 반년 5,400만 원의 3분의 1이면 1,800만 원이에요. 이번 석 달은 270만 원이고요. 한참 밑이에요.”
“그럼 저는 얼마를 내면 될까요?”
정우는 화면을 넘겼다. 7월 열하루 동안의 매출에 붙은 부가세가 27만 원이었다. 그런데 쉬는 석 달 동안에도 월세는 나갔다. 건물주가 달마다 끊어 준 세금계산서가 홈택스에 그대로 있었다. 정우는 그 세금계산서를 한 장씩 더했다. 월세에 붙은 부가세만 석 달에 33만 원이었다. 재료 몇 가지를 산 것까지 합치면 낸 부가세가 받은 부가세보다 많았다.
“이번 달에 내실 건 없어요. 오히려 9만 원쯤 돌려받을 게 생겨요. 그건 1월에 정산하고요.”
은유니는 한동안 고지서만 보았다.
“123만 원이 0원이 되는 거예요?”
“이번 달에는요. 기한이 26일이니까 오늘 신고해 두시면 돼요. 신고하면 이 고지서는 없던 걸로 쳐요.”
”…석 달 동안 이거 어떻게 내나, 그 생각만 했는데.”
은유니는 웃는 것 같았다. 정우는 그걸 다 끝난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럼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네.”
“솔직히… 지금 정리하는 게 나을까요?”
정우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이번에는 바로 계산기를 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일은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하루에 세 분 넘게 받으면 다시 도질 수 있대요. 전에는 여섯 분씩 받았거든요.” 은유니가 보호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세 분이면 월세 드리고 나서 뭐가 남을지 모르겠어요. 남는 게 없으면 지금 정리하고 다시 취직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기 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3년 됐어요. 그 전에는 시내 큰 숍에서 7년 일했고요. 독립하면서 대출 2천 받아서 인테리어를 했는데, 아직 700 남았어요.”
정우는 빈 종이를 한 장 꺼냈다. 회계법인에서 인수할 회사의 매출이 반으로 줄면 어떻게 되는지 볼 때 쓰던 표를 손으로 줄여 그렸다. 칸이 여섯 개뿐인 표였다.
맨 아래에는 대출 700만 원을 먼저 적었다. 접는다고 그 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가게를 비울 때 원래대로 돌려놓는 공사비도 따로 들 것이었다. 정우는 그 옆에 ‘원상복구’라고 적어 두고, 지금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접을지 말지는 그 위의 칸들이 먼저 말해 줄 일이었다.
“한 분에 얼마 받으세요?”
“평균 7만 원 정도예요. 젤에 아트가 조금 들어가면요.”
“한 달에 며칠 여세요?”
“스물두 날 정도요.”
정우는 칸을 채웠다. 하루 세 명이면 한 달 예순여섯 명, 매출 462만 원. 월세와 관리비 136만 원. 재료비, 카드 수수료, 부가세를 빼고 나니 250만 원 남짓이 남았다. 옆 칸에는 하루 여섯 명일 때를 적었다. 600만 원이 넘었다.
“반도 안 되네요.” 은유니가 말했다.
“반이 조금 안 돼요. 그래도 0은 아니에요.”
정우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하나를 덧붙였다.
“월세는 손님이 셋이든 여섯이든 똑같이 나가요. 그러니까 셋에서 넷이 되면, 늘어난 한 명 몫은 재료비랑 세금 조금 빼고 대부분 남아요. 손목이 좋아지는 만큼 바로 남는 돈이 늘어나는 구조예요.”
은유니는 종이를 끌어당겨 칸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세 명, 네 명, 다섯 명. 손가락이 다섯 명 칸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흔들렸다.
정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숫자는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방금 말했다. 정우는 손에 잡히는 걸 내밀었다. 계산기였다.
은유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갰다. 계산기를 보더니 웃음이 터졌다.
“회계사님, 그거 말고 휴지요.”
정우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개업한 지 사흘 된 사무실에는 휴지가 없었다. 정우는 서랍에서 석 사장이 준 열쇠를 꺼내 복도 끝 화장실로 갔다.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통째로 들고 돌아왔다.
은유니는 휴지를 길게 풀어 코를 풀었다.
“돈 때문이 아니에요.”
”…네.”
“손이요. 다시 하면 예전처럼 될까 봐, 아니 안 될까 봐.” 은유니가 보호대 위로 손목을 쥐었다. “석 달 동안 손님들이 문자를 보냈어요. 언제 여냐고. 결혼식 날짜 잡혔는데 그 전에 열 거냐고. 답장을 못 했어요. 언제 연다고 하면 그날 꼭 열어야 하잖아요.”
정우는 그 말에 붙일 숫자를 찾지 못했다. 찾지 않기로 했다.
“하루 세 분부터 받으시면 돼요.”
은유니는 휴지를 한 번 더 뜯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정우 쪽으로 돌렸다. 8월 말에 온 문자였다.
원장님 저 11월 14일 결혼해요ㅠㅠ 그 전에 여시면 꼭 연락 주세요. 다른 데는 못 가겠어요
“이분께 먼저 답장 드려야겠어요.”
은유니는 종이 위 세 명 칸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 옆에 작은 글씨로 ‘11/14 전’이라고 적었다.
예정신고는 그 자리에서 했다. 정우가 화면을 넘기면 은유니가 휴대폰으로 인증했다. 7월 열하루 치 매출, 석 달 치 월세 세금계산서, 재료 영수증 몇 장. 접수번호가 떴다.
“이제 끝난 거예요?”
“끝났어요. 이 고지서는 버리셔도 돼요.”
은유니는 고지서를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수수료는 얼마 드리면 될까요?”
“이번 건 기장 맡기시면 그 안에 들어가요. 안 맡기셔도 이번엔 괜찮고요.”
“그럼 기장도 맡길게요. 다시 열 거니까요.” 은유니가 일어나다 말고 정우의 손을 보았다. 탁자 위 계산기 옆에 놓인 손이었다. “회계사님, 혹시 손톱 물어뜯으세요? 죄송해요, 직업병이라 손부터 보게 돼서요.”
정우는 손을 탁자 밑으로 내렸다. 8년 동안 마감 때마다 생긴 버릇이었다. 그걸 알아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다시 열면 한번 오세요. 정리해 드릴게요.”
“그런 건 원칙상—”
“돈 받고 해 드릴게요. 정가로요.”
정우는 잠깐 생각했다. 돈을 내고 받는 건 받는 게 아니었다.
”…예약하겠습니다.”
은유니가 웃었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은유니가 돌아간 뒤 정우는 책상에 남은 종이를 한참 보았다. 칸이 여섯 개인 표. 세 명 칸에 동그라미, 맨 아래에 대출 700만 원과 원상복구.
정우는 새 종이를 꺼내 같은 표를 그렸다. 이번에는 자기 칸을 채웠다. 월세 66만 원, 관리비, 전화와 프로그램 사용료, 4대 보험. 한 달에 나가는 돈이 150만 원을 넘었다. 들어오는 쪽에는 거래처 넷에 월 7만 원씩, 28만 원을 적었다.
정우는 ‘버틸 선’ 칸을 비워 둔 채 펜을 내려놓았다. 그 칸에 들어갈 숫자는 계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래처 스물두 곳. 지금의 다섯 배가 넘었다.
종이는 맨 아래 서랍에 넣었다. 서랍이 뻑뻑해서 두 번 밀어야 닫혔다.
저녁 여섯 시, 정우가 퇴근하려고 문을 잠그는데 복도 건너편에서 은유니가 203호 유리문에 새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왼손으로 테이프를 뜯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정우가 테이프 끝을 잡아 주었다.
10월 27일 화요일부터 다시 엽니다. 하루 세 분만 모십니다.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유니
은유니가 옛 종이를 떼어 냈다. 석 달 동안 말려 올라간 귀퉁이가 손안에서 부서졌다.
정우는 자기 문의 팻말을 보았다.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이번에도 건드리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 책상 위에 남은 두루마리 휴지를 소파 옆 탁자로 옮겨 놓았다.
사장님 노트 2. 장사를 쉬었다면, 고지서대로 내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문제가 된 것: 10월 예정고지서는 지난 6개월 실적으로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번 석 달은 다쳐서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번 게 없는데 고지서는 123만 원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할 일 (일반과세자 기준)
- 3분의 1 셈: 이번 예정신고기간(7
9월)의 공급가액(부가세를 뺀 매출)이나 납부세액이 직전 과세기간(16월)의 3분의 1에 못 미치면 고지서 대신 직접 예정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휴업이나 사업 부진이 이유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16월 공급가액이 5,400만 원이면 3분의 1은 1,800만 원입니다. 79월이 270만 원이면 예정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카드·현금영수증 매출은 홈택스에서 조회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가세가 들어 있으니 110분의 100을 곱하면 공급가액입니다. - 기한: 올해는 **10월 26일(월)**까지 홈택스에서 예정신고를 하고, 신고한 세액만 냅니다. 신고하면 고지서는 없던 것으로 봅니다.
- 아무것도 안 하면 고지서 금액을 그대로 내야 합니다. 그 돈은 1월 확정신고 때 정산되니 손해는 아니지만, 당장 현금이 묶입니다.
- 쉬는 동안의 월세: 문을 닫아도 월세는 나갑니다. 월세 세금계산서에 붙은 부가세는 공제받을 수 있으니 빠뜨리지 마세요.
- 환급이 나오면: 낸 부가세가 받은 부가세보다 많아 환급세액이 생겨도, 예정신고 때 바로 돌려주지는 않습니다(시설 투자 같은 조기환급 대상이 아니라면). 1월 확정신고 뒤에 정산됩니다.
- 다시 열지 고민된다면: 월세처럼 손님 수와 상관없이 나가는 돈을 먼저 적고, 손님 한 명당 남는 돈으로 나눠 보세요. 하루 몇 명부터 버틸 수 있는지가 보입니다. 접는 쪽을 계산할 때는 남은 대출과 가게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비용도 함께 적으세요. 문을 닫아도 그 돈은 남습니다.
문의: 국세청 126
근거: 부가가치세법 제48조 제3항·제4항, 제59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90조 제1항·제6항, 부가가치세법 집행기준 48-90-3, 국세기본법 제5조. 기준일 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