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 9장 상견례
대행 · 도해

9장 상견례

서울 마포구 망원동 패밀리 사무실, 2026년 10월 6일 화요일
약 11분

연휴 끝의 화요일이었다. 떡집 셔터는 반만 올라가 있었고, 계단에서는 참기름 냄새 대신 찬 시멘트 냄새가 났다. 하윤은 2층 문을 열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확인했다. 성북동에서 온 연락은 없었다. 원래 없는 게 맞았다. 계약은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시작해서 일요일 저녁 여섯 시에 끝났다.

열 배.

사흘 동안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굴러다녔다. 회당 80의 열 배. 하윤은 계산하지 않으려 했지만, 눈이 단서를 먼저 줍듯 머리도 먼저 셈을 했다. 800만 원. 주말 한 번에. 사라진 딸을 찾아 주는 값으로.

숫자보다 오래 남은 건 문장 하나였다. 자네, 서기철 씨 딸이지. 하윤은 그 문장을 아직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적으면 배역 노트가 아니라 일기가 될 것 같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정빈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매직펜 뚜껑을 이로 물고 있었다. 목요일 칸에 ‘상견례(종로) 문 실장, 하윤, ?’라고 적혀 있었다.

“누나, 이 물음표가 아버지야.” 정빈이 펜 뚜껑을 뱉었다. “나는 안 된대. 아버지 하기엔 얼굴이 너무 효자래.”

“누가 그래?”

“숙자 쌤이.”

문숙자가 자기 책상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너는 아들 얼굴이야. 평생 아들만 해. 그게 복이야.”

하윤은 웃고 유리문을 두드렸다. 도석은 책상에 신문을 펴 놓고 떡집에서 얻어 온 절편을 먹고 있었다. 하윤이 주말 일지를 내밀자 그는 펼치지도 않고 신문 위에 올려놓았다.

“별일 없었냐.”

“귤 까고 피아노 쳤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귤을 깠고 피아노를 쳤다. 그사이에 일어난 일을 빼면. 하윤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지 않았다. 도석이 절편을 한 입 더 먹었다.

“사장님, 평택 붕괴 사고 기억하세요?”

도석의 턱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편을 다 씹고 삼킨 뒤에 말했다.

“왜?”

“그냥요.”

“강력계는 사고는 안 맡는다.”

그는 신문을 한 장 넘겼다. 하윤은 그 대답을 한 번 더 귀로 되돌려 들었다. 도석은 보통 질문을 받으면 질문으로 돌려줬다. 그래서, 뭘 봤는데. 그게 왜 궁금한데. 이번엔 바로 대답했다. 마침표까지 찍어서. 하윤은 그게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 집에서 무슨 일 있었냐.” 도석이 신문을 보며 물었다.

“아뇨.”

둘 다 더 묻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에서 문숙자가 손바닥으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목요일 손님 오셨어.”


유상철은 서른둘이었다. 성수동 카센터 정비사. 손을 아무리 씻어도 손톱 밑 기름때는 빠지지 않는 직업이었다. 그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고 있었다. 등은 의자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

도석이 방에서 나오자 상철이 일어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의자가 뒤로 밀릴 만큼 빨랐다. 도석이 앉으라고 손짓하자 그는 앉았다. 역시 빨랐다.

“상견례가 목요일 점심입니다.” 상철이 말했다. “종로 ‘목련재’요. 신부 쪽에서 잡았습니다.”

“신부분은 이 일을 아세요?” 하윤이 물었다.

“압니다. 나래가 먼저 하자고 했어요. 장인어른이, 아니, 나래 아버님이 가족 없는 사람을 싫어하신대요. 한 번만 앉아 있다 가면 된다고.”

“아버님 뭐 하시는 분이세요?”

“공무원이셨대요. 작년에 정년 하셨고. 법무부라던데, 자세히는 안 물어봤습니다.”

하윤은 볼펜을 쥔 채 그 단어를 기다리게 뒀다. 법무부. 상철은 그 단어를 말할 때 눈을 한 번 내리깔았다.

“본가 식구분들과는 왜 연락을 안 하세요?”

“그냥, 안 보고 산 지 오래됐습니다.”

그는 ‘그냥’이라는 말 뒤로 문을 닫았다. 하윤은 그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조금 전 자기가 도석에게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공통 기억을 받아 적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상철은 기억을 꺼낼 때마다 숨을 한 번 골랐다. 지어내는 사람의 머뭇거림이 아니었다. 오래 열지 않은 서랍을 여는 사람의 머뭇거림이었다.

유상희. 신랑 여동생, 스물아홉. 오빠에게 반말 반, 존댓말 반. 공통 기억: ① 오빠 중2 때 자전거로 내리막 타다 왼팔 부러짐. 깁스에 내가 매직으로 강아지 그림. ② 강아지 두부(말티즈). ③ 속초 콘도, 오빠가 수박 들고 계단에서 넘어짐. 수박은 살았음. 금지: 군대. 이유는 “그냥요.” 기억이 전부 열여덟 전에서 멈춘다.

하윤은 마지막 줄 끝에 점을 찍었다가, 그 점을 볼펜으로 한 번 더 눌렀다.


10월 7일 수요일 저녁, 패밀리 의상실

문숙자는 리허설을 ‘런’이라고 불렀다. 라디오 시절 버릇이었다. 의상실 화장대 두 개를 붙이고 보자기를 덮으니 한정식 상이 됐다. 그 위에 종이컵 여섯 개와 떡집에서 얻어 온 송편 한 접시.

정빈이 사돈 역이었다. 문숙자의 돋보기를 코에 걸고, 행거에서 꺼낸 회색 카디건을 입고, 헛기침을 했다. 상철은 구석 의자에 앉아 지켜봤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린 채로.

도석은 의상실에서 고른 감색 양복을 입었다. 소매가 손목뼈 위로 2센티쯤 올라갔다. 그는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자, 사돈 첫마디부터.” 문숙자가 손뼉을 쳤다.

정빈이 돋보기를 콧등으로 밀어 올렸다.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건 왜 묻는데?”

“컷.” 문숙자가 말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아버지는 대답을 해.”

도석이 목을 한 번 돌렸다. “공무원 했습니다.”

“어느 부처요?” 정빈이 물었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컷.”

하윤은 웃음을 참느라 송편을 입에 넣었다. 도석의 눈길이 하윤에게 꽂혔다. 웃음기는 없었다.

“신부 쪽으로 가 보자.” 문숙자가 하윤을 가리켰다. “하윤아, 너 신부 좀 해 봐.”

하윤이 자리를 옮겨 도석의 정면에 앉았다. 도석은 두 손을 상 위에 깍지 끼고,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서, 우리 아들 어디가 좋은데?”

의상실이 조용해졌다가 터졌다. 정빈이 돋보기를 떨어뜨렸다. 문숙자가 보자기를 손바닥으로 쳤다.

“취조실이야? 며느리 될 사람한테 ‘그래서’로 시작하지 마!”

“뭐가 어때서.”

“사장님, 그 자세면 신부가 자백해요.” 정빈이 말했다. “아버님, 저 사실 오빠 별로 안 좋아해요, 하고.”

“웃어 봐.” 문숙자가 말했다. “아버지는 웃어. 아들 장가가는데.”

도석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은 그대로였다. 정빈이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그 얼굴이면 사돈이 자수해요.”

“너 일어나.” 도석이 정빈에게 말했다. 정빈이 엉거주춤 일어나 돋보기를 줍는 동안 도석이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정빈이 앉았다. 그리고 구석에서, 상철도 앉았다. 원래 앉아 있던 사람이 한 번 더 앉으려는 것처럼 등이 펴지고 무릎이 붙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상철은 자기가 뭘 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도석의 눈이 그쪽으로 갔다. 오래 머물지 않았다. 형사가 무언가를 장부에 적을 때처럼 한 번, 짧게. 하윤은 상철을 본 도석을 봤다.

런은 아홉 시까지 이어졌다. 도석은 끝내 ‘그래서’를 빼지 못했다. 대신 문숙자가 정했다. 아버지는 말이 적은 사람이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질문은 하지 않는다. 웃지 않아도 된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상견례에서 흔하다.

모두 돌아간 뒤 하윤은 화장대 앞에 앉아 노트를 폈다. 그리고 2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이름을 썼다.

강도석. 아버지 역.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 웃을 때 입만 웃는다. 손이 계속 주머니 라이터를 찾는다. 남이 연기하는 건 한 번에 알아본다.

쓰고 나서 하윤은 그 장을 넘기지 못했다. 사장님은 배역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10월 8일 목요일, 종로 한정식집 목련재

방은 미닫이문이 달린 좌식 대신 낮은 의자를 놓은 방이었다. 이강수는 문을 마주 보는 자리에 먼저 앉아 있었다. 예순셋. 짧게 깎은 흰머리, 마른 몸, 다림질 자국이 선 와이셔츠. 그 옆에 아내 배명희가 작은 핸드백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나래는 아버지와 상철 사이에서 웃었다. 웃음이 너무 일찍 시작해서 너무 늦게 끝났다.

문숙자는 완벽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철의 어머니였다.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고, 말끝에 대전 억양이 살짝 묻었다. 상철의 고향이 대전이라는 걸 한 번 듣고 입에 붙인 것이다.

“우리 상철이가 말주변이 없어서요. 그래도 손재주는 있어요. 어릴 때부터 자전거 고치는 걸 좋아했어요.”

도석은 문숙자가 정한 대로 말이 적었다. 묻는 말에 짧게 답했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상견례 자리의 무뚝뚝한 아버지로는 충분했다. 하윤은 상희가 되어 오빠의 깁스 이야기를 했다. 강아지를 그려 줬는데 오빠가 고양이 같다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 나래가 웃었다. 배명희도 웃었다.

이강수는 웃지 않았다. 그는 밥을 천천히 먹었고, 숟가락을 놓을 때마다 맞은편으로 눈을 들었다.

하윤은 그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갔다. 상철의 왼팔. 상철은 밥을 빨리 먹었다. 왼팔을 밥그릇 둘레에 둥글게 감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누가 그릇을 가져갈까 봐 지키는 사람처럼. 리허설 때 하윤은 그 자세를 보지 못했다. 송편에는 그릇이 없었다.

“자네.” 이강수가 처음으로 상철에게 직접 말했다. “군대는 어디 다녀왔나.”

상철의 숟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허리가 안 좋아서 못 갔습니다.” 도석이 말했다. 문숙자가 정한 규칙이 그 자리에서 깨졌다. 묻지 않은 말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허리.” 이강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숙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머님은 아드님을 참 많이 보십니다.”

“자식이니까요.” 문숙자가 웃었다. 성우의 웃음이었다. 숨을 반 박자 먼저 들이마시는.

“제가 서른 해 동안 일한 데가 면회실 옆이었습니다.” 이강수가 말했다. “진짜 가족은 서로를 잘 안 봅니다.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처음 오는 가족이 제일 많이 봅니다. 맞는지 확인하느라고.”

문숙자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다만 젓가락을 쥔 손이 반찬 접시 위에서 1초쯤 머물렀다. 문숙자의 연기가 멈추는 걸, 하윤은 이 일을 하면서 처음 봤다.

상철이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1분 뒤 이강수가 일어났다. 배명희가 남편을 올려다봤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하윤은 30초를 셌다. 그리고 상희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잠깐만요.”


복도는 좁았다. 화장실 앞 세면대 옆, 상철이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이강수는 그 앞에 섰다. 키는 상철보다 작았는데 상철이 더 작아 보였다.

“너, 의정부에 있었지.” 이강수가 낮게 말했다. “2015년.”

상철의 등이 벽에 더 붙었다.

“밥 먹을 때 팔로 그릇 감싸는 거. 그거 안에서 배우는 거다. 점호 때마다 제일 먼저 일어서던 놈. 스무 살, 그쯤. 맞지.”

”……네.”

이강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하윤 옆을 지날 때 그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말했다.

“아가씨도 수고가 많네.”

하윤이 입을 떼기 전에 이강수는 방으로 들어갔다. 미닫이문이 닫혔다. 상철이 세면대를 짚었다. 손톱 밑의 검은 기름때가 하얀 도기 위에서 더 검었다.

“열아홉 겨울에요.” 상철이 말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알바 공고였어요. 통장 들고 은행 가서 돈 찾아서 전해 주는 거. 하루 15만 원. 세 번째 날 잡혔어요. 1년 6개월. 2015년 봄에 나왔어요. 면회는 한 번도 안 왔어요. 나오는 날 집에 갔는데 이사 가고 없었어요.”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도석이었다. 그는 둘을 보고 상황을 한 번에 읽었다. 형사의 눈이었다.

“자리로 돌아가.” 도석이 상철에게 말했다. “원래대로 하고 끝내. 날은 다시 잡힌다.”

“사장님.”

“우리는 객석이다.” 도석이 하윤을 보지 않고 말했다. “역할 밖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책임 못 진다.”

상철은 도석을 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자기 아버지였던 남자를.

“지금 말하는 게 나아요.” 하윤이 말했다. 상희의 말투가 아니었다. “저분은 이미 알아요. 상철 씨가 말하길 기다리는 거예요. 진짜 가족이 될 사람들이잖아요.”

“서하윤.”

도석이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다. 그는 화가 나면 그렇게 불렀다. 하윤은 그 목소리를 피하지 않았다.

“사장님 지금 아버지 역이잖아요. 아버지면 이럴 때 뭐라고 하실 건데요?”

도석의 손이 양복 주머니로 들어갔다. 라이터를 쥐는 소리가 났다. 켜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상철이 세면대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지나 방으로 걸어갔다. 등이 꼿꼿했다. 점호 때처럼.


상철은 앉지 않았다. 상 앞에 서서 이강수와 배명희를 차례로 보고, 마지막으로 나래와 눈을 맞췄다.

“이분들 저희 부모님 아닙니다. 대행 회사 분들입니다. 나래도 압니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배명희의 손이 핸드백을 쥐었다.

“그리고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의정부에 있었습니다. 열아홉에 들어가서 1년 6개월 살았습니다. 보이스피싱 인출책이었습니다.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알았다고 하면 그것도 반은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있었다고만 말씀드립니다.”

나래가 상철을 올려다봤다. 이 얘기는 처음 듣는 눈치였다. 손에서 숟가락이 국그릇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무도 그걸 건지지 않았다.

이강수는 오래 말이 없었다. 방 밖에서 다른 방 손님들이 웃는 소리가 났다. 문숙자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엄마의 손이 아니라 문숙자의 손이었다. 도석은 상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면회 오는 가족이 없는 놈들이,” 이강수가 말했다. “제일 오래 버티더라. 버티거나, 못 버티거나. 중간이 없어.”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자네는 버텼네.”

나래가 울었다. 소리 없이. 이강수는 딸을 보지 않고 상철에게 말했다.

“날은 다시 잡자. 다음엔 혼자 와. 대본 없이.”

그는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상철이 계산하겠다고 했지만 이강수는 손바닥을 한 번 들어 보이는 것으로 끝냈다. 방을 나서다 그는 도석 앞에서 멈췄다.

“아버님은 어느 서에 계셨습니까. 앉는 자세가 그쪽이던데.”

“옛날 일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죠.” 이강수가 말했다. 처음으로 웃는 것 같았다.


문숙자는 오후에 병원 동행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차에 오르기 전 하윤의 어깨를 한 번 쥐었을 뿐, 말은 없었다. 그게 문숙자가 오늘 진 연기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도석의 쏘나타는 종로에서 서강대교 쪽으로 천천히 빠졌다. 퇴근길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1년 6개월이면 군대 안 간다.” 그가 말했다. “그 양반은 처음부터 알고 물은 거다.”

“알아요.”

“알긴 뭘 알아.”

창밖으로 강물이 오후의 빛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다리 중간쯤에서 하윤이 물었다.

“사장님은 진짜를 말하는 게 무서운 적 있어요?”

라이터가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도석은 앞만 봤다. 신호가 바뀌었고 차가 섰다.

“넌?”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석도 다시 묻지 않았다. 신호가 다시 바뀌었다. 차는 망원동까지 그 질문 두 개를 싣고 갔다. 아무도 내려놓지 않았다.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어 휴대폰이 진동했다. 하윤은 원룸 바닥에 앉아 상견례 정산서를 쓰고 있었다. 화면에 ‘엄마’가 떴다.

어머니는 카톡을 잘 보내지 않았다. 매달 하윤이 50만 원을 보내면 그다음 날 ‘받았다’ 세 글자가 오는 게 전부였다. 이번 달 송금은 아직 보름도 더 남아 있었다.

요즘 무슨 일 하니? 그 회사 사람이 또 연락 왔더라.

하윤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답장 칸을 눌렀다. ‘무슨 회사’까지 썼다가 지웠다. ‘나 요즘’까지 썼다가 그것도 지웠다.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어머니에게 말할 수 있는 문장이 없었다. 남의 집 딸을 해. 아빠 죽인 회사 회장님 딸을.

하윤은 화면을 껐다. 검은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턱선이 먼저 보였다.

또, 라고 어머니는 썼다. 하윤은 그 한 글자를 오래 생각했다. 처음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