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 10장 도석
대행 · 도해

10장 도석

경기 평택시 포승읍, 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약 12분

가림막은 흰색이었다. 3년 동안 비를 맞아 아래쪽 30센티가 흙색으로 물들었다. 가림막 위쪽에 있던 회사 이름은 누가 회색 페인트로 덮었다. 덮은 자리가 덮지 않은 자리보다 더 눈에 띄었다.

강도석은 아침 일곱 시에 도착했다. 한글날이라 국도가 비어 있었다. 망원동에서 한 시간 십 분. 그는 차를 가림막 맞은편 갓길에 세우고 시동을 끈 채 3분쯤 앉아 있었다. 그다음 내렸다.

철망 문 옆 컨테이너에서 경비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용역 회사 조끼, 목에 건 수건.

“또 오셨네. 이번 달엔 늦으셨어.”

도석은 편의점에서 산 캔커피 두 개 중 하나를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둘이 나눈 말은 3년 동안 그게 다였다.

도석은 매달 한 번 여기 왔다.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정하면 기념일이 된다. 기념일은 유족의 것이었다.

가림막 철망에 국화 세 송이가 철사로 묶여 있었다. 말라서 갈색이 됐다. 갈아 놓는 사람은 박용수의 아내였다. 그는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왔다. 2024년 4월 그 집 거실에서 일어난 일 뒤로, 그는 박용수의 아내 앞에 설 얼굴이 없었다. 그날 그가 때린 사람이 그 집을 협박하던 사람이었다는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박용수의 아내는 낯선 남자 둘이 자기 집 거실에서 뒹구는 걸 봤다. 아이가 방문 틈으로 봤다.

도석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켰다. 껐다.


2023년 5월 12일 금요일 오후 세 시, 그는 여기 있었다. 경기남부청 강력계. 사망 셋, 붕괴 원인 미상. 사고인지 사건인지 모르는 현장에는 형사가 먼저 들어간다. 도석은 처음 들어간 형사 넷 중 하나였다.

4층 슬래브가 3층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로 철근이 머리카락처럼 삐져나왔다. 도석은 철근을 몰랐다. 대신 셀 줄은 알았다. 무너지지 않은 기둥 하나를 골라 그 둘레를 봤다. 도면을 든 감리단 직원이 옆에서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여기, 여기. 기둥 둘레에 꽂혀 있어야 할 철근의 자리. 도석은 그 손가락을 따라 셌다. 열 자리에 일곱이 있었다.

그 철근의 이름은 일주일 뒤에 배웠다. 전단보강근. 구조기술사가 화이트보드에 그려 줬다. 슬래브가 기둥에 꿰뚫리지 않게 붙잡는 철근이라고.

서기철은 마지막에 나왔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 쉰일곱, 철근공. 도석은 그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사망자 명단의 세 번째 줄이었다.

사흘 뒤 국과수 감정서와 시공 기록을 맞춰 보던 날 밤, 동료 하나가 말했다. 이건 강력 사건이 아니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숫자가 사람을 죽인 거라고. 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도 누가 쓴다.

사흘 전 그는 하윤에게 말했다. 강력계는 사고는 안 맡는다.

질문으로 돌려주지 않았다. 바로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게 거짓말이라는 걸 그는 형사 시절 피의자들에게서 배웠다. 진짜는 망설이고, 가짜는 준비돼 있다. 하윤이 그걸 알아챘는지 그는 몰랐다. 아마 알아챘을 것이다. 그 애는 남의 대사가 몇 번째 반복인지 세는 애였다.

도석은 국화 옆 철망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녹이 손바닥에 묻었다. 차로 돌아가 물티슈로 닦았다. 다 지워지지 않았다.


2023년 9월 12일 오후, 평택경찰서 민원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강도석 형사님이세요?”

서른한 살 여자였다. 회색 정장 바지에 운동화. 명함 한 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도석 자신의 명함이었다. 6월 성근건설 본사 압수수색 때 감사팀 사무실 책상마다 한 장씩 놓고 나온 것.

“차유진이에요. 성근건설 감사팀이요.”

그는 유진을 조사실이 아니라 주차장 자기 차로 데려갔다. 이름을 듣는 순간 그렇게 정했다. 회장의 막내딸이 회장 사건 수사관을 찾아왔다. 경찰서 안에는 성근건설 변호인단에 전화 한 통 걸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유진은 USB를 왼손에 쥐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USB 고리가 계속 손등을 쳤다. 말은 떨리지 않았다. 날짜와 번호로 말했다. 2023년 3월 8일 원가절감 지시. 3월 9일 이메일, 발신 부사장실, 제목 없음, 본문 한 줄. “회장님 보고 완료.” 8월 감사에서 찾았다. 9월 5일 아버지에게 물었다. 9월 6일 회사 서버에서 원본이 지워졌다. 그날부터 출퇴근길에 같은 차가 보였다.

“아부지가 덮으래요.” 유진이 말했다. “아부지는 덮으라는 말만 했어요. 아니라고는 안 했어요.”

도석은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아니라고는 안 했다.

8일 뒤 9월 20일 수요일, 유진은 사라졌다. 도석이 그렇게 만들었다. 휴대폰은 한강공원 벤치에 두게 했다. 들고 가면 위치가 남고, 버리면 버린 장소가 남는다. 두고 가면 사람들은 강을 본다. 실제로 그랬다. 경찰은 한강 수색을 사흘 하고 성인 단순 가출로 닫았다. 도석은 그 결정을 전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릉행 고속버스는 현금으로 끊었다. 요양원 원장은 도석의 어머니가 마지막 2년을 보낸 곳의 원장이었다. 원장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유진은 그날부터 ‘유미진’이 됐다.

왜 정식으로 하지 않았냐고, 나중에 권세라가 물은 적이 있다. 도석은 사본이라서라고 답했다. 원본은 사라졌고, 사본을 만든 사람은 미행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더 큰 사실은 유진이 주차장 차 안에서 한 말이었다.

“아부지가 했으면, 제가 아부지를 감옥에 보내는 거잖아요. 그건 못 하겠어요. 그런데 덮지도 못하겠어요.”

그래서 유진은 둘 다 하지 않기로 했다. 사라지는 쪽을 골랐다. 도석은 그걸 도왔다. 그때는 그게 제일 덜 나쁜 선택으로 보였다.


도석이 서하윤을 처음 본 건 그보다 넉 달 앞서였다.

2023년 5월 15일, 평택의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TF는 유족 진술을 받으러 빈소를 하나씩 돌았다. 서기철의 빈소는 복도 맨 끝이었다. 조문객이 적었다. 철근공 동료 몇, 하청 회사 사람 둘.

계단 맨 아래 칸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원피스에 흰 운동화. 빈소 입구에서 다섯 걸음쯤 떨어진 자리였다. 들어가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았다. 영정 사진이 보이는 각도에 서서, 사진을 보고 있었다.

도석은 진술을 받고 나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40분이 지났다. 여자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발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자 옆 계단에 섰다. 담뱃갑을 내밀었다.

“피울래요?”

“안 피워요.”

여자는 그를 보지 않았다. 눈은 영정에만 가 있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무는 사람의 턱이었다.

빈소에서 나온 철근공 하나가 담배를 빌리며 말해 줬다. 기철이 딸이야. 열 살 때 보고 처음이래. 십육 년 만이지. 그 사이 여자는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빈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도석은 그날 장례식장 주차 정산을 하고 받은 영수증을 지갑에 넣었다. 왜 버리지 않았는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정확히는 몰랐다.

2024년 9월, 패밀리 간판을 단 그달에 그는 그 여자를 찾았다. 이름 하나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학로 소극장 「빈집」, 2021년 4월, 주연 서하윤. 공연 첫날 막이 중간에 내려갔다는 짧은 기록. 그는 극단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받았다. 하윤은 지금도 그가 그 공연 이야기를 듣고 연락한 줄 안다. 그는 고쳐 주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개였다. 하나는 턱이었다. 유진과 같은 턱. 다른 하나는 계단이었다. 들어가지도 떠나지도 못하던 다섯 걸음.

그 애는 그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도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핑계라는 것도 알았다. 핑계가 사실일 때도 있다. 그는 그 둘을 구별하는 일을 오래전에 그만뒀다.


권세라는 공휴일인데도 정장을 입고 있었다.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길 건너 카페. 오전 열한 시. 세라는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컵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서른아홉. 2023년 TF 때 지휘 검사였고, 지금은 붕괴 사건 공판 담당이었다. 도석이 아는 검사 중 가장 원칙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라를 찾아왔다.

“공휴일에 검사 불러내는 사람은 형사님밖에 없어요.”

“어차피 나와 있었잖아.”

“그러니까 더 얄밉죠.”

도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만 났다.

“원본이 나오면.”

“나오면요?”

“다시 보나. 회장 공판 정지. 부사장 불기소.”

세라는 대답하기 전에 컵을 테이블 가운데로 1센티 밀었다. 생각할 때의 버릇이었다.

“원본에 누구 서명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그리고 원본만으로는 안 돼요. 누가 썼는지, 누가 시켰는지, 그게 왜 거기 있는지 말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 종이는 증언을 안 하니까요.”

“사본은.”

“이메일 사본이요? 누가 언제 어디서 복사했는지 설명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 사람은 3년째 실종이고.” 세라가 도석을 봤다. “형사님이 그 사람 어디 있는지 알면 얘기가 달라지고요.”

도석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증거를 가져오세요. 형사님 직감 말고.” 세라가 말했다. “직감으로 사람 잡던 시절은 형사님 해임되면서 같이 끝났어요.”

“알아.”

“그리고 형사님.” 세라가 처음으로 컵을 들었다. 마시지는 않았다. “지금 민간인을 그 집에 넣어 둔 거 알아요.”

도석은 컵을 내려놓았다.

“공판 정지 유지하려고 변호인 측이 넉 달마다 피고인 상태 자료를 내요. 이번 자료에 주치의 소견이 붙어 있더라고요. 대리 가족 방문 치료 중이라고. 업체 등록 주소가 망원동이고요.” 세라가 말했다. “제가 그것도 못 볼 줄 알았어요?”

“그 애는 그냥 일하는 거다.”

“그 사람 다치면 형사님 책임이에요.”

“형사 아니다.”

“그러니까요.” 세라가 일어났다. 커피값은 세라가 냈다. “형사면 제가 막을 수라도 있죠.”


밤 아홉 시, 망원시장 입구 옆 공중전화 부스. 망원동에 남은 몇 개 중 하나였다. 유리에 불법 대출 스티커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도석은 백 원짜리 동전을 열두 개 쌓아 전화기 위에 올려놓았다. 강릉까지 시외 통화였다. 번호는 적어 두지 않았다. 외웠다.

엿새 전 개천절 오후에도 그는 이 부스 앞에 서 있었다. 정숙이 안에서 딸과 22분을 통화하는 동안 그는 부스에 등을 돌리고 시장 입구를 봤다. 정숙은 나와서 그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손수건으로 수화기를 닦고 나왔다. 그에게는 그게 고맙다는 말보다 나았다.

신호가 두 번 갔다.

“네.”

“나다.”

“형사님.” 유진의 목소리는 3년 전보다 낮았다. 요양원 야간 근무를 마친 목소리였다. “오늘 수요일 아닌데요.”

“잘 들어갔다. 한 달째다.”

“알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귤을 한 줄로 깐대요. 끊기면 버리고.” 유진이 짧게 웃었다. “그 애 왼손으로 까요?”

“왼손으로.”

동전이 하나 떨어졌다.

“아버지가 알아본 것 같다.” 도석이 말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아부지가 그 애한테 뭐라고 했어요?”

도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화요일 아침을 떠올렸다. 절편, 신문, 그리고 하윤의 질문. 평택 붕괴 사고 기억하세요. 그냥요. 그 애가 ‘그냥’이라고 한 건 처음이었다. 하윤은 이유 없이 묻지 않았다. 이유를 숨길 때도 이유가 있다는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그날은 그 표정도 없었다.

그 애가 그에게 숨기는 게 있었다. 형사였으면 사흘 전에 알아챘을 것이다.

“모른다.” 도석이 말했다.

“형사님이 모르는 것도 있어요?”

“있다.”

동전이 또 떨어졌다. 유진이 숨을 한 번 길게 쉬었다.

“원본은 서재 금고에 있어요.” 유진이 말했다. 3년 동안 몇 번 한 말이었다. 유진은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말했다. “2023년 9월 5일에 아부지가 금고 앞에서 덮으라고 했어요. 금고를 등지고요. 사람은 지키는 걸 등 뒤에 둬요.”

“비밀번호.”

“여섯 자리예요. 그날 밤에 세 번 눌러 봤어요. 제 생일, 엄마 생일, 창립 기념일. 다 아니었어요. 아부지는 숫자를 날짜로 기억하는 사람인데.”

“알았다.”

“형사님.” 유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문장 끝이 올라갔다. 묻는 말투였다. “그 애한테 말했어요? 왜 그 애인지.”

“아니.”

“말할 거예요?”

전화기에서 짧은 경고음이 났다. 남은 동전이 한 개라는 소리였다. 도석의 손에는 동전 다섯 개가 더 있었다. 그는 그걸 넣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동전이 체온만큼 데워졌다.

통화가 끊겼다.

도석은 수화기를 걸고 부스 유리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찼다. 시장 셔터 내리는 소리가 골목 끝에서 끝까지 이어졌다.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도석은 의상실 불만 켜고 유리문 안 자기 책상으로 갔다. 서랍 맨 아래 칸.

고속버스 영수증이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동서울에서 강릉. 매달 한 장. 그는 지갑에서 지난달 영수증을 꺼내 묶음 맨 위에 끼웠다. 고무줄이 낡아서 한 번 끊어질 뻔했다.

묶음 아래 감열지 한 장이 있었다. 2023년 5월 15일, 평택의 병원 장례식장 주차 정산. 글씨가 거의 날아가 날짜만 겨우 보였다. 그는 그걸 꺼내지 않았다. 보기만 했다.

가짜로만 들어갈 수 있는 집도 있다. 3주 전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그는 하윤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윤은 그 집 얘기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시동을 걸었다.

그 말은 하윤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자기한테 한 말이었다. 그 애를 그 집에 넣은 이유를 그는 그렇게 불렀다. 유진이 돌아갈 수 없는 집에, 유진과 턱이 닮은 애를. 아버지의 빈소에 들어가지 못한 애를, 아버지를 죽게 한 회사 회장의 식탁에.

그 애가 들어가고 싶어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의뢰서에서 ‘차성근’을 보고 손이 멈췄을 때, 그는 거절을 예상했다. 그 애는 할게요, 라고 했다. 그는 그 대답을 허락으로 들었다. 그 애가 무엇을 허락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담배를 끊은 지 2년이었다. 도석은 라이터를 켜서 책상 위에 세웠다. 불꽃이 서랍 손잡이에 비쳤다. 그는 엄지를 떼지 않았다. 손톱 끝이 뜨거워질 때까지.


10월 10일 토요일 오전, 패밀리 사무실

정빈은 아침 일찍 돌잔치 하객으로 나갔다. 하윤은 두 시까지 성북동에 가야 해서 사무실에 들르지 않는 날이었다. 문숙자가 장부를 펴 놓고 다음 주 예약을 맞추고 있었다.

열 시 40분에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떡집 손님의 운동화 소리가 아니었다.

문이 열렸다. 진회색 정장, 흰 셔츠, 넥타이 없이 단추 하나를 푼 목. 손에 과일 바구니. 배와 샤인머스캣이 투명 비닐 안에서 반짝였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문숙자가 일어났다. 손님 목소리였다.

“성근건설 비서실 오규식입니다.” 그는 바구니를 문숙자의 책상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회장님 사모님 일로 인사차 들렀습니다. 대표님 계십니까?”

문숙자는 방문객 장부를 끌어당겨 적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택배 기사까지 적는 사람이었다. 10월 10일 10:40, 오규식, 성근건설.

도석은 유리문 안에서 그걸 다 봤다. 일어나기 전에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오규식이 그를 봤다. 1초.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 얼굴을 준비해 온 사람이었다.

콧등이 왼쪽으로 아주 조금 휘어 있었다. 도석이 기억하는 것보다 덜 휘었다. 좋은 병원에 다닌 모양이었다.

“강도석 사장님.” 오규식이 말했다. 웃었다. “이제는 사장님이라고 불러 드려야지요.”

“무슨 일인데.”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사모님께서 많이 좋아하십니다. 회장님도 요즘 표정이 좋으시고요.” 오규식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도석의 책상이 아니라 문숙자의 장부 위에 올려놓았다. “서하윤 씨 덕분이지요. 성실한 분이시더군요. 주말마다 빠짐없이.”

문숙자가 명함과 도석을 번갈아 봤다. 문숙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공기가 바뀐 건 아는 눈치였다.

“인사 받았다.” 도석이 말했다. “가.”

“네, 가야지요.” 오규식은 서두르지 않았다. 의상실 행거를 천천히 훑었다. 상복, 정장, 한복, 교복. 그는 상복 소매를 손가락 끝으로 한 번 들췄다가 놓았다. “좋은 직업입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 일.”

그는 도석 앞으로 한 걸음 왔다. 2024년 4월, 박용수의 집 거실에서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거리였다.

“강 형사님.” 오규식이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았다. “이번엔 배우를 쓰시네.”

도석의 주머니 안에서, 라이터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그 손을 꺼내지 않았다.

오규식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문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반쯤 열고, 거기서 돌아섰다. 계단 아래에서 떡 찌는 김이 올라왔다.

“서하윤 씨한테 안부 전해 주세요.” 오규식이 말했다. “아버님 일은 늘 마음이 아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