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의 자국은 이틀 만에 노랗게 바랬다. 하윤은 그걸 셔츠 소매로 가리지 않았다. 도석의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면서 손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일요일 저녁에요. 간병인이 약 가지러 간 사이에.”
도석은 손목을 봤다. 오래 보지 않았다.
“뭐라고 했는데.”
“넌 우리 유진이가 아니구나.”
도석이 라이터를 집었다. 켜지 않고 엄지로 뚜껑만 열었다 닫았다. 딸깍, 딸깍.
“목소리가 달랐어요. 쉬지도 않았고. 손힘도요. 사장님, 그 손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 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래서요?”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의뢰인한테 가서 남편분 멀쩡하신 것 같다고 할 거냐.”
도석은 뚜껑을 닫고 화이트보드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치매 환자는 맞는 말도 한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하윤의 눈을 보지 않았다. 화이트보드의 이번 주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처럼 눈만 움직였다. 하윤은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강도석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볼 때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눈을 피하는 건 처음이었다.
“사장님.”
“세희 씨는.” 도석이 말을 잘랐다. “지급정지 됐단다. 보증금 절반은 돌아온대. 숙자 누나가 어제 통화했다.”
“절반이요.”
“절반이면 많이 건진 거다.”
그는 서랍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펼쳤다. 펼치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하윤은 손목을 책상에서 내렸다.
사무실로 나오자 정빈이 회전의자를 빙글 돌렸다. “누나, 회장님 댁 어땠어? 피아노 있다며. 그랜드? 집에 그랜드 있는 사람은 화장실도 두 개야?”
“세 개.”
“와.” 정빈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도 부잣집 아들 한번 해 보고 싶다. 나는 맨날 반지하 아들만 해.”
“너는 반지하 아들을 제일 잘하잖아.” 문숙자가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부잣집 아들은 아무나 해. 저 봐, 아무나 하잖아.”
정빈이 웃었다. 하윤도 웃었다. 웃고 나서 소매를 내려 손목을 덮었다.
문숙자의 책상 전화가 울렸다. 두 마디쯤 듣더니 목소리를 반 톤 낮췄다. 상갓집 목소리였다. 통화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은평구 장례요. 조문객 스무 명, 오늘 저녁부터 삼일.”
의뢰인은 염태호, 마흔일곱. 고인은 그의 아버지 염만식, 일흔넷. 오늘 아침 자택 계단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문숙자가 메모를 읽었다.
“아버지 가시는 길이 너무 쓸쓸하면 안 된대. 친척이 거의 없고, 아버지가 혼자 사셔서 지인을 모른대. 그래서 배역표를 자기가 불러 줬어. 옛 직장 동료, 동네 경로당 친구, 교회 권사님, 그리고 단골 국밥집.”
“평일 스무 명은 우리 인원으로 안 돼요.” 정빈이 말했다.
“그래서 명가에 여섯 넘겼어. 우린 열넷.”
“명가요? 조만수 선생님 오시는 거 아니에요?”
“오시겠지. 옛 직장 동료는 그 양반 전공이니까.” 문숙자가 하윤에게 볼펜 끝을 겨눴다. “넌 국밥집. 고인이 매일 가던 집 사장님 딸.”
하윤은 배역표의 주소를 받아 적었다. 응암동. 국밥집 이름은 ‘오씨네’. 사장님 따님 역. 의뢰인 메모: ‘아버지가 매일 그 집 얘기를 하셨음.’
매일 그 집 얘기를 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 그 집 사장의 이름을 몰랐다.
오씨네는 응암동 시장 골목 끝에 있었다. 테이블 여섯 개, 벽에 붙은 메뉴판 넷. 오후 세 시라 손님이 없었다. 하윤은 사실대로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사장님 딸 역할을 맡았다고. 그래서 고인 얘기를 듣고 싶다고.
오금자 사장은 일흔둘이었다. 부고 문자를 아직 못 봤다고 했다. 하윤의 말을 듣고는 앞치마를 벗지도 않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제 안 왔어.” 오금자가 말했다. “매일 저녁 일곱 시에 왔어. 십 년을. 순대국 하나에 소주 반 병. 반 병 남기면 내가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다음 날 줬지. 어제 일곱 시에 안 와서, 내가 저 양반 드디어 술 끊었나 했어.”
“그 전날은요? 일요일요.”
“왔지. 내일은 계단 난간에 노란 칠 한대. 같이 사는 양반이 눈이 어두워서, 밤에 계단 난간이 안 보인다고. 노랗게 칠하면 보인다고.” 오금자는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다. “그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네.”
“노란 칠 하고서?”
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금자는 일어나 카운터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볼펜으로 ‘부의’라고 적고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
“나는 다리가 이래서 못 가. 우리 딸은 부산 살고. 아가씨가 내 딸 해 줘. 진짜 딸처럼.”
오씨네 사장 딸(부산에서 올라옴). 고인: 매일 19시, 순대국, 소주 반 병. 9/13(일) “내일 난간에 노란 칠”. 9/14(월) 안 옴. 같이 사는 사람 있음, 눈이 어두움.
장례식장은 은평구의 한 병원 지하 1층이었다. 3호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빈소였다. 입구 신발장 옆에 상주 이름이 붙어 있었다. 염태호.
태호는 키가 작고 배가 나온 남자였다. 검은 양복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상주 완장을 찬 팔을 어디 둘지 몰라서 자꾸 뒷짐을 졌다. 그는 대행 조문객이 들어올 때마다 일일이 허리를 굽혔다. 진짜 조문객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영정 옆에 휴대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낡은 폴더형 스마트폰, 금이 간 액정.
“아버지 거예요.” 태호가 하윤에게 말했다. 국밥집 딸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반가워했다. “연락처가 거기밖에 없어서 아버지 폰으로 부고를 돌렸어요. 아버지 친구분들이 혹시 전화하시면 받으려고.”
하윤은 국화를 놓고 절을 했다. 일어나는 사이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잠금 화면에 알림이 한 줄 남아 있었다.
‘부재중 전화 1통. 분례. 9월 14일 오후 9:14.’
명가에서 온 여섯 명은 저녁 여덟 시에 줄지어 들어왔다. 맨 앞이 조만수였다. 그는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윤은 속으로 셌다. 일곱. 조만수는 일어나 상주와 맞절을 하고, 접객실로 나오다 하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서 선생은 오늘 무슨 역이야.”
“국밥집 딸이요.”
“나는 철공소 동료.” 그가 넥타이를 반듯하게 당겼다. “오늘은 얌전히 있자고.”
밤 아홉 시, 접객실 벽걸이 TV에서 뉴스가 시작됐다. 하윤은 육개장을 나르던 쟁반을 내려놓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색 가림막이 화면을 채웠다. 그 위로 자막이 흘렀다. 첫 단어가 다 지나가기 전에 하윤은 탁자 끝의 리모컨을 집어 TV를 껐다.
“보던 건데.” 명가에서 온 할머니가 말했다.
“상갓집에서 뉴스는 좀 그래서요.”
할머니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윤은 리모컨을 쟁반 밑에 넣고 부엌으로 갔다.
열 시가 넘자 진짜 조문객이 서넛 다녀갔다. 태호의 회사 동료들이었다. 태호는 그들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아침 여덟 시에 들렀다가 제가 발견했어요. 바로 119 불렀는데. 의사 말로는 밤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래요. 아버지 집엔 한 달 넘게 못 갔거든요. 회사가 바빠서. 제가 좀 자주 갔으면…….”
그는 매번 그 대목에서 말을 끊었다. 매번 같은 자리였다.
이상한 사람은 열한 시가 다 되어 나타났다.
검은 치마 정장에 흰 블라우스, 검은 스타킹. 대행 조문객들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예순 후반. 대행 줄 끝에 섰다가 차례가 오자 국화를 놓았다. 절은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대행 조문객들은 대부분 영정 앞에서 한 번은 운다. 운다기보다 우는 소리를 낸다.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영정 사진을 올려다봤다. 사진 속 염만식은 짙은 감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눈이 그 넥타이에 오래 머물렀다.
하윤은 접객실을 셌다. 패밀리 열넷, 명가 여섯. 그리고 하나.
문숙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1분 만에 왔다. ‘우리 애 아님.’ 조만수는 육개장을 뜨다 말고 하윤의 눈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조금 저었다. 명가 사람도 아니었다.
하윤은 물컵 두 개를 들고 그 여자 옆에 앉았다.
“물 드세요.”
“고마워요.”
“넥타이요.” 하윤이 말했다. “저 사진 넥타이를 계속 보셔서요.”
여자는 물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대답은 늦게 왔다.
“칠순 때 내가 사 준 거예요. 저 양반이 넥타이를 저거 하나밖에 안 매요. 아들이 그 사진을 골랐네. 모르고 골랐겠지.”
최분례, 예순아홉. 염만식과 8년을 같이 살았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부터 천안 언니네 병원에 가 있었고, 오늘 낮에 돌아와 보니 대문 열쇠가 바뀌어 있었다. 태호가 문 앞에서 말했다고 했다. 아버지 집에 남이 왜 있느냐고. 장례식장에는 오지 말라고.
“그래서 이렇게 입고 왔어요. 돈 받고 우는 사람들 틈에 끼면 아무도 안 쳐다보더라고요.”
“어제 밤 아홉 시 십사 분에 전화하셨죠.”
분례의 손이 물컵 위에서 굳었다.
“휴대폰에 남아 있어요. 영정 옆에.”
“안 받더라고요. 텔레비전 보다 잠들었나 했어요.” 분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네 시에 전화가 왔었어요. 다 칠했다고. 노랗게. 이제 니 눈에도 보일 기라고. 그 양반은 칠할 때마다 꼭 흘려요. 계단에 신문지 깔라 해도 안 깔아. 그러고는 칠한 날 저녁엔 아무도 계단 못 다니게 해요. 밤 지나야 마른다고.”
“상주분한테는 말씀하셨어요?”
“그 애가 내 말을 들어요?” 분례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빠지는 소리였다. “그 애는 나를 아버지 돈 노리고 들어온 여자로 알아요. 틀린 말도 아니지. 나도 갈 데가 없어서 들어갔으니까. 근데 8년이에요. 8년이면 돈 때문만으로는 못 살아요.”
자정이 되자 분례는 일어났다. 내일 또 오겠다고 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줄 끝에 서겠다고. 하윤은 지하 주차장 출구까지 배웅했다. 분례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윤은 계단참에서 노트를 폈다.
최분례(69). 사실혼 8년. 칠순 넥타이. 9/14 16시 “다 칠했다”. 21:14 전화, 안 받음. 칠한 날 저녁엔 계단 금지. “밤 지나야 마른다.” 상주: “한 달 넘게 못 갔다.” 같은 자리에서 매번 끊음.
마지막 줄 밑에 줄을 두 번 그었다. 외운 문장은 같은 자리에서 끊긴다. 진짜 기억은 끊기는 자리가 매번 다르다.
이튿날 낮, 태호는 비상계단 앞에서 오래 통화했다. 하윤은 육개장 솥을 옮기다 그 앞을 지났다. 등기, 라는 말이 들렸다. 명의, 라는 말도. 태호는 하윤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가, 국밥집 딸이라는 걸 알아보고 다시 높였다. 대행은 들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객석이니까.
“아직 혼인신고 안 했으니까 그 여자는 아무 권리 없어요. 열쇠는 바꿨고요. 네, 발인 끝나면 바로 갈게요.”
그날 밤, 열두 시가 넘었다. 대행 조문객들은 열 시에 대부분 돌아갔다. 하윤은 남았다. 국밥집 딸은 부산에서 올라왔으니 갈 데가 없었다. 문숙자에게는 그렇게 말해 두었다.
태호는 빈소 안쪽 상주 휴게실에서 졸고 있었다. 하윤은 빈소 입구에 흩어진 신발들을 정리했다. 대행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남의 장례식에서 손이 놀면 신발을 맞췄다. 코를 바깥으로, 짝을 맞춰서.
태호의 검은 구두는 맨 앞에 있었다. 하윤은 한 짝을 들어 돌려놓다가 멈췄다.
밑창 가장자리, 굽과 앞창 사이 오목한 자리에 노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손톱으로 긁자 얇게 일어났다. 진흙이 아니었다. 기름 냄새가 났다. 다른 한 짝에도 있었다. 앞코 쪽 밑창 테두리에 점 세 개.
하윤은 구두를 제자리에 놓았다. 코를 바깥으로.
페인트는 월요일 오후에 칠했다. 네 시에 다 칠했다는 전화가 갔다. 칠한 날 저녁엔 아무도 계단을 못 다녔다. 밤이 지나야 마른다. 마른 페인트는 신발에 묻지 않는다. 태호는 화요일 아침 여덟 시에 갔다고 했다. 그 전에는 한 달 넘게 안 갔다고 했다.
그 구두는 월요일 저녁, 아직 마르지 않은 계단을 밟았다.
아홉 시 십사 분, 전화가 울렸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의사는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라고 했다.
하윤은 휴게실 문 앞에 섰다. 문을 두 번 두드렸다.
태호는 처음에 화를 내지 않았다. 국밥집 딸이 왜 구두 얘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하윤은 배역을 내려놓았다. 대행 회사에서 왔다고, 국밥집 사장님은 진짜로 오씨 성을 쓰는 일흔두 살 할머니고, 부의금은 진짜로 그분이 보냈다고. 그리고 구두 얘기를 했다. 분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태호는 상주 완장을 만졌다. 안전핀이 헐거워 자꾸 흘러내렸다.
“일곱 시 반쯤 갔어요.”
목소리가 작았다.
“아버지가 전화를 했어요. 그 여자랑 혼인신고를 하겠대요. 집도 그 여자 앞으로 해 놓겠대요. 8년 같이 산 사람한테 그 정도는 해 줘야 한다고. 그래서 갔어요. 계단에 신문지도 안 깔고 칠을 해 놨더라고. 밟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내가 그걸 밟고 올라갔어요.”
“그리고요.”
“싸웠죠. 계단 위에서. 아버지가 내 팔을 잡았는데 내가 뿌리쳤어요. 민 거 아니에요. 진짜로. 뿌리쳤는데 아버지가 뒤로…….”
그는 말을 멈췄다. 매번 멈추던 그 자리였다.
“숨은 쉬셨어요. 눈도 뜨고 계셨어. 날 보고 계셨어요. 근데 나는 그냥 나왔어요. 119를 부르면 왜 떨어졌냐고 물을 거잖아요. 내일 아침에 오면 일어나 계실 줄 알았어요. 그런 사람이거든요. 술 먹고 계단에서 몇 번을 굴렀어도 다음 날 국밥집에 가는 사람.”
“아침에 가셨을 때는요.”
“차가웠어요.”
태호가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이 짧게. 그는 완장으로 눈을 닦았다.
하윤은 문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위로할 대사가 몇 개 떠올랐다. 장례식 대행을 하면 상주에게 건네는 말이 정해져 있었다. 하윤은 그중 어느 것도 고르지 않았다.
“경찰에 연락할 거예요.”
태호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안 하면, 상주분이 몇 시간 뒤 화장장에서 아버님을 한 번 더 두고 나오시게 돼요.”
태호는 한참 하윤을 봤다. 그리고 다시 완장을 만졌다. 이번에는 핀을 빼서 똑바로 다시 꽂았다.
“발인은 하게 해 주세요.”
하윤은 비상계단으로 나가 도석에게 전화했다. 새벽 한 시 십 분이었다. 신호가 두 번 가기 전에 받았다.
“어디냐.”
“은평이요. 장례식장.”
하윤은 짧게 말했다. 페인트, 구두, 아홉 시 십사 분, 일곱 시 반. 도석은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물었다.
“상주가 너한테 직접 말했냐.”
“네.”
“녹음은.”
“안 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라이터 뚜껑 소리가 났다. 딸깍.
“은평서 형사과에 아는 놈이 있다. 그놈한테 전화 넣을 테니까 상주 붙잡아 둬. 도망갈 사람은 아니지?”
“아니에요.”
“그래.”
하윤은 기다렸다. 다음 말이 올 자리였다. 역할 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 말이 와야 할 자리에 숨소리만 있었다.
“사장님.”
“왜.”
“아니에요.”
전화가 끊겼다.
9월 17일 목요일, 발인
아침 일곱 시. 영구차가 지하 주차장 출구에 서 있었다. 대행 조문객 열넷과 여섯이 두 줄로 섰다. 하윤은 문숙자가 정한 대로 맨 앞이었다. 국밥집 딸은 고인과 매일 얼굴을 본 사람이었으니까.
은평서 형사 하나가 로비 기둥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태호에게 다가가 짧게 말했고,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이 끝나면 서로 오라고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경찰은 유기치사 혐의를 검토한다고 했다.
분례는 대행 줄 맨 끝에 있었다. 어제와 같은 검은 정장. 하윤은 줄에서 나와 끝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가세요.”
“내가 왜요.”
“거기가 제 자리인데요. 오늘은 제가 대행 안 하려고요.”
분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윤이 팔꿈치를 잡고 맨 앞까지 데려갔다. 조만수가 줄에서 반 걸음 비켜 주었다. 문숙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하윤의 빈자리를 메웠다.
관이 나왔다. 태호가 영정을 들고 앞장섰다. 맨 앞에 선 분례 앞에서 그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정을 고쳐 들고 지나갔다. 사진 속 감색 넥타이가 분례 앞을 지나갔다.
분례가 그제야 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하윤은 그 등 뒤에 섰다. 손을 얹지는 않았다. 등이 다 울고 나서 저절로 펴질 때까지 그냥 서 있었다.
영구차가 떠나고, 대행 조문객들은 셋씩 넷씩 흩어졌다. 조만수는 하윤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서 선생은 얌전히가 안 되는구먼.” 나무라는 말투가 아니었다.
주차장 구석에 검은 쏘나타가 서 있었다. 운전석 창문이 반쯤 내려가 있었다. 하윤이 조수석에 탔다. 도석의 턱에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도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형사가 뭐라던.”
“유기치사 검토한대요.”
“그래.”
도석은 시동을 걸지 않았다. 앞유리 너머로 장례식장 출구 쪽을 보고 있었다. 영구차가 빠져나간 경사로를. 그는 라이터를 켰다 껐다. 한참 그러다 혼잣말처럼 말했다.
“가짜로만 들어갈 수 있는 집도 있다.”
하윤은 그의 옆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도석의 눈은 경사로에서 떠나지 않았다. 경사로 위로 아침 해가 들어와 시멘트 바닥이 하얗게 빛났다.
“사장님, 그 집 얘기예요?”
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터를 점퍼 주머니에 넣고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