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 17장 회장
대행 · 도해

17장 회장

서울 대학병원 VIP 병동, 2026년 11월 12일 목요일
성년후견 심문기일 D-33
약 13분

정오에 마영순이 도시락을 들고 왔다.

차성근은 복도 끝 창가에 휠체어를 세워 두고 있었다. 정숙의 병실은 등 뒤 두 번째 문이었다. 창밖으로 주차 타워와 은행나무 세 그루가 보였다. 잎이 반쯤 떨어져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그 잎을 셌다. 셀 수 없는 걸 세는 동안에는 얼굴이 저절로 멍해졌다. 2년 8개월 동안 그렇게 얼굴을 만들었다.

마영순이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흰죽, 장조림, 데친 시금치.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는 숟가락을 쥐었다가 도시락 쪽으로 천천히 밀었다. 손등으로, 힘을 주지 않고. 어머니가 밥상을 밀 때 그렇게 했다. 싫어서 미는 게 아니라, 앞에 놓인 게 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마영순은 아무 말 없이 뚜껑을 닫았다.

마흔두 번째였다. 2023년 6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일곱 번, 2024년 열두 번, 2025년 열두 번, 올해 열한 번. 그는 이 셈을 매달 다시 했다. 틀린 적은 없었다. 틀릴 리 없는 셈을 굳이 다시 하는 건 답을 맞혀 보려는 게 아니었다. 하나가 늘었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점심 한 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979년 리야드에서 그는 라마단 한 달 동안 낮에 물 한 모금 안 마시는 현지 인부들 옆에서 철근을 묶었다. 한 끼 거르는 건 벌 축에도 못 들었다. 그래서 그걸 골랐다. 큰 걸 한 번 하면 사람은 셈이 끝난 줄 안다. 작은 걸 오래 하면 끝나지 않는다.

오후 2시 10분, 마영순의 가방 안에서 휴대폰이 두 번 짧게 떨었다. 그의 휴대폰이었다. 병원에 온 뒤로 마영순이 들고 다녔다. 마영순의 눈이 가방에서 그에게로 옮겨 왔다. 그는 은행나무를 보고 있었다.

세 계좌, 각 300만 원. 김정임, 정미란, 그리고 하노이 외곽의 응우옌 집안. 성근건설과 거래가 없는 은행이었다. 2023년 6월, 그는 양복을 입고 혼자 창구에 가서 자동이체를 걸었다. 그날이 그가 혼자 은행에 간 마지막 날이었다. 김정임은 처음 세 번을 돌려보냈다. 그는 금액을 바꾸지 않았다. 네 번째 달부터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1억 2천6백만 원. 세 집을 합치면 3억 7천8백만 원. 그 숫자로 갚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도 셌다. 철근 하도급 시절부터의 버릇이었다. 숫자를 세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남의 숫자에 속는다.

이체는 혼자 걸었지만 혼자서는 지킬 수 없었다. 후견인이 서면 그의 계좌는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걸 먼저 짚은 사람이 고지석이었다. 법무법인 대해의 고지석은 스무 해를 알고 지낸 변호사였다. 회사가 쓰는 변호사가 아니라 그가 쓰는 변호사였다. 형사 사건을 맡긴 것도 그래서였다.

9월 27일 새벽, 그는 정원에서 고지석의 전화를 받았다. 고지석은 늘 그 시각에 걸었다. 그가 정원에 혼자 서는 시각이었다. 민혁이 11월 전에 후견 청구를 넣으려 한다고 했다. 오 실장이 서류 손질을 물어 왔다고.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말했다. 민혁이한테는 말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한다. 12일은 그대로 보내라. 이체가 끊기면 고지석이 대신 이어 보내라는 말이었다. 민혁에게 숨길 것은 그 송금과, 정원에 서 있는 자기였다. 고지석은 되묻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을 때 2층 창에 귀신이 있었다.

통화 기록에는 변호인의 번호만 남았다. 오규식은 그 번호를 자기 편 번호로 여겼다. 10월 21일 밤에도 고지석이 걸었다. 오 실장이 데려온 자리에서 그 아이에게 1억을 불렀다고 했다. 대본은 민혁 쪽이 쓰고 자기는 읽기만 했다고. 그 아이는 커피에 손을 대지 않았고, 증언은 대행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날 밤 담배를 두 대 피웠다.


치매는 반복이다.

그는 그걸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어머니는 영천 사람이었다. 2009년 봄에 같은 말을 두 번 하기 시작했고, 2010년 가을에 그가 성북동 1층 안방으로 모셨다. 마지막 3년이었다.

순서가 있었다. 먼저 이름이 갔다. 손주들 이름, 며느리 이름, 그다음이 아들 이름. 얼굴은 이름보다 오래 버텼다. 그를 “성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날에도 어머니는 그를 보면 웃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는 웃음이었다. 그다음이 장소였다. 어머니는 성북동 안방에서 영천 집 장독대를 찾았다. 마지막이 자기 자신이었다. 거울 속 노인을 보고 저 할매는 누구냐고 물었다.

낮과 밤이 달랐다. 아침의 어머니는 거의 멀쩡했다. 해 질 녘이 되면 고무신을 찾아 신고 보따리를 쌌다.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그걸 일몰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름을 몰라도 시각은 알았다. 겨울에는 4시 반, 여름에는 7시. 그는 성북동 집에서 해가 지는 시각마다 휠체어 팔걸이를 두드렸다. 현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리야드 현장에.

기저귀는 처음이 어려웠다. 2024년 3월의 첫날 밤, 그는 한 시간을 누워 있다가 일을 치렀다. 몸이 거부했다. 일흔의 몸에도 수치는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밤은 40분이 걸렸다. 열흘째부터는 시간을 재지 않았다. 어머니도 처음엔 울었다. 그다음엔 울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울지 않게 된 날을 기억했다. 그게 병이 한 계단 내려간 날이었다.

의사 둘을 속였다. 이태준 교수와, 법원이 보낸 감정의. 두 사람 다 시계를 그리게 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숫자를 넣고, 11시 10분을 가리키게 하라고. 그는 1부터 11까지를 조금씩 넓게 썼다. 그러면 12를 쓸 자리가 없어진다. 그는 12를 맨 마지막에, 11 옆 구석에 구겨 넣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그렸다. 2012년 봄,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그는 그날 어머니 옆에 앉아 그 시계를 봤다. 그리고 12년 뒤에 그걸 베꼈다.

  1. 시계를 그릴 때마다 그는 그 숫자를 구석에 밀어 넣었다. 밀어 넣을수록 더 크게 보였다.

말은 되풀이하면 된다. 진짜 사람은 같은 말을 같은 순서로 두 번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리야드 이야기를 골랐다. 모래가 밀가루 같았다. 숙소 에어컨이 사흘에 한 번 꺼졌다. 영천 어무이한테 편지를 쓰면 한 달 뒤에 답장이 왔다. 다 진짜였다. 진짜 기억은 생각하지 않고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리야드의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회사도, 서명도, 아들도. 누구를 죽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어무이를 찾았고, 그는 어머니의 어무이가 되어 주었다. 이제 그는 정숙을 어무이라 불렀다. 역할을 뒤집은 것만은 베낀 게 아니었다. 왜 뒤집었는지 그는 세지 않았다.


2023년 5월 13일 밤, 민혁이 서재로 왔다.

사고 다음 날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막 돌아와 있었다. 가림막, 크레인, 잔해 아래로 삐져나온 철근의 끝. 그는 그 철근을 봤다. 마흔 해 동안 철근을 보고 산 사람이었다. 기둥 둘레에 있어야 할 전단보강근이 듬성듬성했다. 누가 셈을 했다. 셈을 한 사람이 있었다.

민혁이 종이 한 장을 책상에 놓았다. 모서리를 책상 모서리에 맞췄다. 성근-기획-2303-017. 작성 부사장 차민혁. 서명 차민혁. 회장 결재란은 비어 있었다.

민혁은 울지 않았다. 그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민혁은 어릴 때도 잘 울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키웠다. 사내가 우는 건 셈이 끝난 다음이라고 가르쳤다.

“아버지,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마흔한 살의 아들은 아버지를 문장의 주어 자리에 앉혔다. 그 자리에 앉히는 법을 가르친 것도 그였다. 회사의 모든 문서는 결국 회장이 책임진다고. 그러니 걱정 말고 셈을 하라고.

민혁이 돌아간 뒤 그는 서재에 혼자 앉아 있었다. 자정이 넘었다. 그래서 날짜가 14일이 되었다. 그는 파란 잉크가 든 만년필을 열었다. 결재란 옆 여백에 썼다.

이 건은 내가 지시한 것으로 한다. 2023. 5. 14. 차성근

내가 지시했다고 쓰지 못했다. 손이 그렇게 써지지 않았다. 그는 그 어미를 고치지 않았다. 고치면 거짓말이 되었다. 고치지 않으면, 언젠가 누군가는 읽을 것이었다.

그는 아들을 지킨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을 그렇게 키운 자기에게 형을 매긴 것이었다. 징역 몇 년이든 그건 그의 몫이었다. 그런데 법정은 형만 매기는 곳이 아니었다. 묻는 곳이었다. 검사가 물을 질문은 세 개였다. 피고인은 철근공 출신이지요. 전단보강근을 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습니까. 그리고 결재란은 왜 비어 있습니까. 첫 질문에 그는 예라고 해야 했다. 둘째 질문에서 그는 철근 마흔 해를 부정하든지, 사람이 죽을 줄 알고 시켰다고 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셋째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거짓말은 질문 세 개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질문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유진이 그해 9월 5일 서재로 왔을 때, 그는 금고를 등지고 서 있었다.

유진은 날짜를 말했다. 2023년 3월 9일. 부사장실 이메일. 회장님 보고 완료. 유진은 감사팀이었다. 숫자로 따지는 걸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딸의 눈에서 자기를 봤다. 그리고 말했다. 덮어라.

민혁을 지키려고 한 말이었다. 유진은 아버지가 한 짓을 덮으라는 말로 들었다. 그는 바로잡지 않았다. 딸이 오빠를 미워하며 사는 것보다 아버지를 미워하며 사는 게 낫다고 셈했다. 아버지는 곧 죽는다. 오빠는 오래 산다.

보름 뒤 유진이 사라졌다. 휴대폰은 한강공원 벤치에 있었다. 셈이 틀렸다. 딸은 아버지를 미워하는 대신 아버지 곁을 떠났다.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매년 9월 20일에 정숙은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뚜껑을 닫는 손은 슬퍼하는 손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는 손이었다. 그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도 대답해야 했다.


첫날, 그 아이는 남색 카디건을 입고 대문을 들어섰다.

그는 울었다. 계산한 울음이었다. 반은. 딸 잃은 늙은 치매 환자가 딸을 닮은 얼굴을 보면 울어야 했다. 나머지 반은 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도 울었다.

손은 맞았다. 왼손으로 귤을 깠고, 한 줄로 깠고, 끝을 올려 물었다. 정숙이 잘 가르쳤다. 틀린 건 울음이었다. 유진은 그 앞에서 운 적이 없었다. 다섯 살 때 계단에서 굴러 무릎이 깨졌을 때도 그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부지 앞에서는 안 운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키웠다. 이튿날 저녁, 그 아이가 돌아가기 전에 그는 손목을 잡고 말했다. 넌 우리 유진이가 아니구나.

열흘 뒤 오규식이 보고서를 가져왔다. 서하윤. 1997년생. 대전. 부친 서기철, 2023년 5월 12일 사망.

그는 보고서를 두 번 읽지 않았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서기철, 철근공, 경력 31년. 아는 이력이었다. 하도급 명단에서 본 이름이었다. 서기철이 31년 동안 묶은 철근 가운데 30퍼센트를 빼라는 종이가 있었다. 거기에 이름을 쓴 사람이 있었고, 그 옆에 다른 이름을 쓴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아이를 내보내지 못했다. 오규식이 내보낼까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둬라, 라고만 했다. 이유는 세지 않았다. 12일 송금은 계속됐다. 그 아이 어머니의 계좌로.


오후 4시, 정숙이 잠든 사이 그는 보호자 소파 위의 서류철을 열었다.

오규식이 아침에 두고 간 것이었다. 오규식은 서류를 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25년 동안 한 번도 흘린 적이 없었다. 그는 그걸 생각하면서 서류철을 열었다.

성년후견개시 심판청구서 사본. 사건번호는 2026느단으로 시작했다. 청구인 차민혁. 사건본인 차성근. 첨부 서류 목록. 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이태준 교수의 소견서 두 장. 그리고 청구인 측 계획서. 사건본인을 경기도 가평의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시킬 예정. 병원 이름이 길었다. 재활과 요양과 의료가 다 들어 있었다. 폐쇄 병동, 1인실. 면회는 보호자 동의 하에 월 2회. 성북동 주택은 관리가 어려워 매각 예정.

계획서 뒤에 가평 병원의 안내서가 끼워져 있었다. 9월에 오규식이 정숙에게 건넨 봉투에 들어 있던 것과 같은 표지였다. 정숙은 그 봉투를 열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서랍을 열었다. 민혁은 9월부터 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 오규식이 붙여 둔 메모 한 장. 서재 금고 원격 알림 수신 기기 변경 내역. 2024년 3월 28일. 수신 기기 추가, 비서실장 휴대폰. 요청자 차민혁.

3월 21일이 진단일이었다. 이레 뒤였다.

그는 서류철을 덮었다. 민혁은 아버지를 지킨 게 아니었다. 보관했다. 금고째로, 입째로. 그는 지난 3년 동안 아들의 죄를 자기 이름 밑에 넣어 두었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그 아버지를 통째로 어딘가에 넣어 두려 하고 있었다.

정숙이 눈을 떴다.

수술 나흘째였다. 머리에 붕대를 감았고, 말은 아직 한 마디씩 끊겨 나왔다. 그는 휠체어를 침대 옆에 붙였다. 마영순은 복도에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내다.”

정숙의 눈이 그에게 왔다. 그가 연기 없이 말하는 걸 정숙이 들은 건 2년 8개월 만이었다. 정숙은 놀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니 지킬라고 한 거 아이다.”

정숙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민혁이다. 그 종이는 민혁이가 썼다.”

정숙은 오래 그를 봤다. 그리고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피아노를 50년 친 손이었다. 손가락이 느렸다. 그 손이 그의 손바닥을 펴고, 검지로 천천히 썼다. 한 획, 한 획. 그는 손바닥에 남는 글자를 읽었다.

유진.

그는 정숙의 손을 쥐지 않았다. 쥐면 그 손이 떨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손바닥을 편 채로 오래 두었다.

정숙의 핸드백은 침대 옆 수납장에 있었다. 그 안의 수첩 맨 뒷장에, 이름 없이 번호 하나와 ‘강릉’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그걸 나흘 전에 이미 봤다. 정숙이 수술실에 들어가 있던 여섯 시간 동안.


밤 11시, 그는 혼자 휠체어를 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영순은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혹은 자는 척했다.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담요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 열두 개가 있었다. 낮에 마영순에게 받았다. 유진이 과자를 사 줘야 한다고 했더니 마영순이 지갑을 털어 주었다.

공중전화는 응급실 쪽 복도 끝, 자판기 옆에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다리는 멀쩡했다. 밤마다 정원을 걸은 다리였다.

오규식의 보고서 맨 아래에 그 아이의 번호가 있었다. 그는 한 번 보고 외웠다. 신호가 네 번 갔다.

“여보세요.”

“내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는 그 침묵의 길이를 셌다. 넷.

“내일모레, 토요일에 집으로 와라. 이제 안 한다.”

“뭘요.”

“연기.”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동전 하나가 반환구로 떨어졌다. 그는 그걸 줍지 않았다.


11월 13일 금요일 아침

7시, 마영순이 휠체어를 밀고 병실을 나섰다. 엑스레이 검사가 있다고 간호사가 알려 왔다. 회장 본인이 아니라 정숙의 검사였다. 침대가 먼저 내려가고, 마영순이 그의 휠체어를 밀고 뒤따랐다. 혼자 병실에 둘 수 없는 환자였다. 마영순이 복도 끝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는 휠체어 발판에서 발을 내렸다. 바닥을 밟았다. 팔걸이를 잡지 않고 일어섰다.

마영순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3, 4, 5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영순은 버튼에서 손을 떼고 그를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언제부터.”

“재작년 10월이요. 새벽에 화단 흙이 신발에 묻어 있었어요.” 마영순이 말했다. 충청도 말끝이 느렸다. “회장님이 따로 주신 돈은 손 안 댔어요. 통장째 있어요.”

“그 돈은 니 거다.”

“제 거면 제가 정하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아무도 타지 않았다.

“고소장.” 그가 말했다.

마영순의 손이 가방 끈을 쥐었다.

“오 실장님이 써 오셨어요. 그날 밤에 본 거 그대로 썼으니 이름만 쓰라고. 돋보기를 집에 두고 와서요. 읽지는 못했어요.” 마영순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아가씨가 금고에서 뭘 훔쳤다고 써 있는 줄 알았으면 안 썼어요. 저는 문 닫아 준 사람이에요.”

“안다.”

“아가씨한테 그 말 좀 해 주세요.”

“니가 해라. 토요일에.”

그는 손을 내밀었다. 마영순이 가방에서 그의 휴대폰을 꺼내 손바닥에 놓았다. 닷새 만에, 그리고 2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남의 눈앞에서, 그는 자기 휴대폰을 자기 손으로 쥐었다. 화면에 어제 오후의 알림이 그대로 있었다. 출금 3건.

그는 오규식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 오규식은 늘 한 번에 받았다.

“회장님.”

오규식의 목소리가 거기서 멈췄다. 그다음 말을 고르지 못했다. 25년 동안 처음이었다.

“민혁이 불러라. 토요일 저녁, 집으로.”

“회장님, 그건……”

“니도 오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마영순에게 돌려주지 않고 환자복 주머니에 넣었다.


1층 공중전화 앞에 섰을 때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았다. 마영순이 빈 휠체어를 밀고 세 걸음 뒤에 있었다. 외래 환자 몇이 그 장면을 이상하게 보았다.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동전은 열한 개가 남아 있었다. 그는 두 개를 넣었다.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 닷새 전 수첩에서 한 번 봤다. 그는 그 번호를 휴대폰으로 걸 수 없었다. 오규식이 그의 통화 기록을 보고 있었다. 번호가 기록에 남으면, 다음 주에 그 번호 끝에 누가 찾아갈지도 뻔했다. 2023년 가을에 그는 그걸 막지 못했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일곱 번째에 신호가 끊기고 소리가 바뀌었다. 누군가 받았다. 말은 없었다.

그는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정숙이 쓴 글자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유진아.”

대답이 없었다.

“아부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숟가락 같았다. 강릉은 아침 식사 시간일 것이었다.

“토요일에 와라.”

그는 기다렸다. 3년 1개월 24일. 그는 그 숫자를 오늘 아침에도 셌다. 오늘은 그다음 숫자를 세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들이쉬고, 오래 내쉬는 숨. 다섯 살 때 계단에서 굴러 무릎이 깨졌을 때, 아부지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참던 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