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맡기는 건 처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기는 15미터 밖 땅속에 묻혀 있고, 내가 맡기는 건 그 아기의 이불이다. 방열판. 시계 상자의 열을 구리 띠로 받아 하늘에 버리는 0.4제곱미터짜리 판. 해가 움직이면 그늘도 움직이고, 그늘이 움직이면 방열판도 따라 옮겨야 한다. 하루에 두 번. 나흘 전에 그 일을 누가 하느냐고 왕징이 물었을 때 나는 “제가요”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걱정 마요.” 아난드가 말한다. “저 의사예요. 매일 사람 몸에 붙은 걸 옮기고 떼고 다시 붙이는 사람이에요.”
“사람 몸은 영하 20도에서 0.1도 차이로 안 죽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나는 선실 벽 비닐 덮개에 매직으로 절차를 쓴다. 나흘 전 시계를 묻자고 썼던 자리 바로 옆이다. 방열판을 옮기는 시각 두 개. 그늘 경계에서 몇 센티미터 안쪽에 세울지. 구리 띠가 꺾이면 안 되는 각도. 시계 온도가 어느 숫자를 넘으면 나를 부를지.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쓴다.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아난드가 묻는다.
“시계한테는요. 시계는 가만히 두는 게 제일 좋아요.”
아난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보관함을 연다. 그리고 상자 두 개를 꺼낸다. 하나는 나도 아는 상자다. 휴대용 중력계. 30미터 밖에 심어 둔 것과 같은 기종의 예비 한 대로, 기울기계도 함께 들어 있다. 아난드가 사용법을 다시 짚어 준다. 수평을 맞추고, 5분 기다리고, 기록 버튼.
다른 하나는 손바닥만 한 비닐 봉지다. 안에 플라스틱 레몬 하나와 플라스틱 초록 고추 일곱 개가 실에 꿰어 있다.
“이건 뭐예요?”
“인도에서는 차에 이걸 매달아요. 레몬 하나, 고추 일곱 개. 나쁜 기운을 막아 준대요.” 아난드가 웃는다. “진짜 레몬이면 우주 기관 검역에서 걸리니까 플라스틱으로요. 출발 전에 뭄바이 시장에서 샀어요. 로버에 달아요.”
“과학적 근거는요?”
“없어요. 하람이 시계 상자 끌어안고 착륙한 거랑 같은 거예요.”
나는 반박할 말을 찾는다. 찾지 못한다. 봉지를 받는다.
계획은 이렇다. 셋이 가고 하나가 남는다.
리드 대장의 규칙은 분명하다. 착륙선은 절대 비워 두지 않는다. 남는 사람은 착륙선과 지구, 그리고 로버 사이의 교신을 지키고, 생명유지 장치를 돌보고,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를 데리러 올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 아기의 이불을 하루 두 번 옮겨야 한다. 리드 대장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난드를 적어 놓았다. 의사를 남겨 두고 위험한 곳에 가는 게 이상하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친 사람은 데리고 돌아옵니다. 의사가 다치면 아무도 못 고칩니다.”
그건 계산이다. 나는 계산에는 반박하지 않는다.
로버는 착륙선 동쪽에 서 있다. 바퀴 여섯 개 위에 지름 2미터 남짓한 원통 하나가 누워 있는 모양이다. 원통 안에는 공기가 차 있어서 우주복 없이 탈 수 있다. 앞쪽에 창과 좌석 두 개, 그 뒤에 접이식 보조석 하나와 벽에 붙은 침상 두 개. 꽁무니에는 에어록 대신 슈트포트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선외 활동복 두 벌이 바깥벽에 등을 대고 붙어 있어서, 안에서 등판을 열고 기어 들어가 입으면 곧바로 밖이다. 한 번에 밖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둘이다. 원래 두 사람이 타는 차다. 세 사람이 타면 누군가는 무릎을 접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토론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보조석에 앉아 무릎을 접는다. 그리고 천장 손잡이에 아난드의 레몬과 고추를 묶는다. 리드 대장이 그걸 본다. 아무 말도 안 한다. 왕징은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출발합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달에서 차를 모는 건 눈 위를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리드 대장이 출발 전에 말했다. 실제로는 다르다. 눈은 바퀴 밑에서 다져진다. 레골리스는 다져지지 않는다. 위쪽 몇 센티미터가 밀가루처럼 고와서, 바퀴가 지나가면 그 가루가 뒤로 솟구친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아름답다. 지구에서 흙먼지는 구름처럼 피어올라 공중에 한참 떠 있다가 흩어진다. 공기가 붙잡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기가 없다. 바퀴가 차올린 가루는 한 알 한 알이 던진 공처럼 날아가서,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고, 정확히 떨어진다. 바퀴 여섯 개 뒤로 회색 부채 여섯 개가 펼쳐졌다 접히기를 끝없이 되풀이한다. 그 부채에는 흐릿한 가장자리가 없다.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다.
해는 등 뒤 동쪽 하늘 50도쯤에 떠 있다. 우리는 남서쪽, 방위각 221도로 간다. 아난드의 기울기계가 가리킨 방향, 궤도선 적외선 지도가 가리킨 방향. 그림자가 차 앞으로 짧게 눕는다.
나는 무릎 위에 태블릿을 펴고 시계를 본다.
등 뒤, 착륙선 옆 땅속에서 시계가 돌고 있다. 시계의 신호는 광섬유로 착륙선까지 가고, 착륙선은 그 숫자를 전파로 하늘에 쏜다. 하늘 동북동쪽, 지평선에서 35도쯤 올라간 곳에 중계위성이 떠 있다. 정확히는 달 너머 6만 5천 킬로미터 지점, 지구와 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자리 근처를 크게 맴돌고 있다. 그 위성이 착륙선의 신호를 받아서 로버로 내려보내고, 지구로도 보낸다. 로버 지붕 위의 작은 접시 안테나는 바퀴가 덜컹거릴 때마다 모터를 움직여 그 위성을 다시 겨냥한다. 우리가 남서쪽으로 가는 동안 안테나는 꽁무니 쪽 하늘을 올려다본다.
태블릿 화면 속 시계는 조용하다. 10⁻¹⁷. 24.19초 출렁임이 숨 쉬듯이 지나간다. 아난드가 방금 방열판을 옮겼다는 기록이 뜬다. 예정보다 2분 일찍. 그는 의사다. 늦는 것보다 이른 걸 좋아한다.
“뒷면 교신은 처음이에요?” 왕징이 묻는다. 앞을 본 채로.
“착륙선에서는 해 봤어요. 움직이면서는 처음이에요.”
“전에 뒷면 기지에서 넉 달 있었어요. 그때도 중계위성 하나로 살았어요.” 왕징이 말한다. “중계위성이 기침하면 기지 전체가 감기 걸려요.”
“기침한 적 있어요?”
“두 번. 한 번은 위성 쪽 문제, 한 번은 우리 쪽 문제.” 거기서 말을 멈춘다. 어느 쪽이 더 무서웠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뒷면은 조용해요.” 잠시 뒤 왕징이 덧붙인다. “전파가요. 지구에서 나오는 온갖 잡음, 방송, 레이더, 휴대폰. 그게 달 몸통에 다 가려져요. 태양계 안쪽에서 전파가 제일 조용한 데가 여기예요. 전파천문학자들이 망원경 세우고 싶어서 줄을 서요.”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한다. 태양계 안쪽에서 가장 조용한 곳. 지구에서 영원히 보이지 않는 곳. 누군가 무엇을 숨겨 두려고 했다면, 아니면 아무도 엿듣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려 했다면,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
나는 그 생각을 태블릿 메모장에 적지 않는다.
정차는 네 번이다. 열점까지 30, 20, 10, 5킬로미터가 남은 지점에서 한 번에 15분씩. 그게 리드 대장이 준 시간이다.
“15분 드리겠습니다.” 출발 전에 그가 말했다. 착륙 첫날과 같은 숫자다. 그때는 4초를 더 썼다. 나는 협상하지 않았다. 수평을 맞추고 5분을 기다린 뒤에도 24초 주기를 스무 번 넘게 잴 시간이 남는다.
로버가 멈추면 나는 보조석 바닥에 중력계를 내려놓고 수평을 맞춘다. 차 안에서 재는 건 이상적이지 않다. 바퀴 서스펜션이 출렁이고, 사람 셋이 숨을 쉰다. 그래도 바닥 아래로 바퀴 여섯 개가 땅을 딛고 있으니 땅이 끌어당기는 힘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찾는 건 24초짜리 출렁임이고, 사람의 숨은 4초짜리다. 주기가 다르면 갈라낼 수 있다. 끌어당기는 힘의 수직 성분은 중력계가, 수평 성분은 함께 든 기울기계가 잰다. 화면에 뜨는 진폭은 둘을 합친 크기다.
30킬로미터 지점. 진폭 3.9×10⁻⁴.
20킬로미터 지점. 8.8×10⁻⁴.
“두 배 가까워졌는데 네 배가 됐네요.” 왕징이 말한다. 내 화면을 보지 않고도 내 숫자를 다 듣고 있다.
“중력은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니까요. 반으로 가면 네 배.”
10킬로미터 지점. 3.5×10⁻³. 다시 네 배.
리드 대장이 처음으로 내 화면을 돌아본다. “계속 이렇게 커집니까.”
“가까워질수록요. 1킬로미터까지 가면 지금의 백 배쯤.”
“그러면 위험합니까.”
나는 잠깐 계산한다. 1킬로미터에서 진폭이 0.3미터 매 초 제곱 정도. 달 중력의 5분의 1쯤 되는 힘이 24초마다 생겼다 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크기다. 그런데 그게 위험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땅에 서 본 사람이 없으니까.
“모르겠어요.” 내가 말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게요.”
리드 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을 본다. 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다. 이 사람은 ‘아마도’를 싫어한다. ‘모릅니다’는 싫어하지 않는다.
세 번째 정차를 마치고 얼마 안 가 오른쪽 앞바퀴 쪽에서 딱 소리가 난다.
바위다. 주먹만 한 바위 하나가 바퀴 사이에 끼었다가 튕겨 나가면서 바퀴 덮개, 펜더의 가장자리를 쳐서 부러뜨렸다. 그다음부터 오른쪽 앞바퀴가 차올린 가루가 부채를 그리지 않고 곧장 위로 솟는다. 그리고 로버 지붕 위로 쏟아진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루는 가루니까. 30분쯤 지나서 왕징이 계기판 숫자 하나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선실 온도 26도.”
출발할 때는 22도였다.
로버 지붕에는 방열판이 있다. 내 시계의 방열판과 같은 원리다. 하늘을 향해 열을 버린다. 방열판에는 하얀 특수 도료를 칠해서 햇빛은 튕겨 내고 적외선은 잘 내보내게 했다. 그런데 그 위에 회색 가루가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레골리스는 어둡다. 햇빛의 90퍼센트 가까이를 빨아들인다. 하얀 판이 회색이 되는 순간, 열을 버리던 판이 열을 받아들이는 판이 된다.
거기다 이 가루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햇빛에 들어 있는 자외선이 레골리스 알갱이에서 전자를 떼어 내서, 알갱이마다 정전기를 띤다. 겨울에 스웨터에 붙는 먼지처럼 판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알갱이 모서리가 날카로워서 털어 내면 판을 긁는다.
“아폴로 17호.” 왕징이 말한다. 이번에는 아주 조금 고개를 돌린다. 옆얼굴만. “서넌이 망치를 휘두르다 실수로 펜더를 부러뜨렸어요. 먼지 때문에 장비가 다 과열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도 네 장을 테이프로 붙여서 펜더를 만들고 조명등 집게로 고정했어요.”
“지도가 있어요?”
“없어요.” 왕징이 좌석 아래에서 뭔가를 꺼낸다. 코팅된 비상 절차서 묶음이다. “이거 있어요. 2031년에도 우주선에 종이를 싣는 이유가 이거예요.”
리드 대장이 차를 세운다. 왕징이 꽁무니의 슈트포트로 기어 들어가 우주복에 몸을 넣고 밖으로 나간다. 그 22분 동안 리드 대장은 창밖의 왕징을 보고, 나는 선실 온도를 본다. 27도. 27.5도. 왕징은 비상 절차서 다섯 장을 테이프로 이어 붙여 펜더 자리에 대고 공구 집게 두 개로 물린다. 그리고 지붕에 올라가 붓으로 방열판의 가루를 쓸어 낸다. 아주 천천히. 세게 쓸면 도료가 긁히니까.
슈트포트에서 빠져나온 왕징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숨을 고르고 나서 계기판 하나를 더 연다.
“별 추적기 렌즈에도 가루 앉았어요. 반쯤 가려졌어요.”
별 추적기는 로버 지붕에 달린 작은 카메라다. 별의 위치를 보고 로버가 어느 쪽을 향해 어떻게 기울어 있는지 계산한다. 안테나는 그 계산을 받아서 중계위성을 겨냥한다.
“닦을 수 있습니까.” 리드 대장이 묻는다.
“닦으면 긁혀요. 렌즈는 방열판보다 약해요.” 왕징이 화면을 넘긴다. “예비 모드로 바꿀게요. 기울기계랑 바퀴 기록으로 자세 계산.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안테나 겨냥에는 충분해요.”
“승인.”
왕징이 설정을 바꾼다. 나는 그 화면을 본다. ATTITUDE SOURCE: INCLINOMETER. 기울기계. 내 중력계에도 하나 들어 있는 센서다. 중력이 가리키는 아래쪽을 기준으로 로버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잰다. 중력은 늘 아래를 가리키니까.
나는 그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합리적인 결정이다.
로버가 다시 출발한다. 선실 온도가 천천히 내려간다. 25도. 24도. 비상 절차서 다섯 장으로 만든 펜더가 회색 부채를 다시 부채 모양으로 돌려놓는다.
“하람, 들려?”
클레르다. 중계위성을 거쳐 지구에서 오는 목소리. 말이 끝나고 내 대답이 닿기까지 3초, 다음 말이 돌아오기까지 다시 3초.
“들려.”
“10킬로미터 지점 숫자 봤어. 거리 제곱 법칙에 딱 맞더라. 여기 사람들이 박수 쳤어. 진짜로. 관제센터에서 중력 법칙 맞았다고 박수 치는 거 처음 봤어.”
“뉴턴이 들으면 기뻐하겠네.”
3초. “뉴턴은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 아무튼. 하나 부탁하자. 5킬로미터 지점 숫자는 바로 보내 줘. 지구 쪽에서 그걸로 깊이를 계산하겠대.”
“내가 계산할게.”
3초. 그리고 클레르의 한숨. “그럴 줄 알았어.”
5킬로미터 지점에서 리드 대장이 다시 차를 세운다. 이번에는 15분을 1초도 남기지 않는다. 주기 스물두 번. 15분 안에 들어가는 최대치다.
진폭 1.35×10⁻².
거리 제곱 법칙대로라면 1.41×10⁻²여야 한다. 4퍼센트 모자란다.
이게 내가 기다리던 숫자다. 출렁임의 근원이 땅 표면에 있다면 거리 제곱 법칙이 끝까지 맞는다. 하지만 땅속에 있다면, 나와 근원 사이의 진짜 거리는 수평 거리보다 조금 길다. 수평으로 5킬로미터, 아래로 얼마, 그 대각선만큼. 가까이 갈수록 그 차이가 커진다.
다만 4퍼센트만으로 깊이를 풀려면 수평 거리를 수십 미터 단위로 알아야 한다. 열점은 지름이 1킬로미터다. 어디가 한가운데인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진폭을 둘로 쪼갠다. 중력계가 잰 수직 성분과 기울기계가 잰 수평 성분. 근원이 땅속에 있으면 끌어당기는 힘은 옆이 아니라 비스듬히 아래를 향한다. 수직과 수평의 비가 곧 깊이와 수평 거리의 비다. 이 방법이면 수평 거리를 500미터 틀려도 깊이는 10퍼센트만 틀린다.
수직 2.7×10⁻³. 수평 1.33×10⁻². 1 대 5.
5킬로미터의 5분의 1. 깊이 1킬로미터 남짓.
지나온 정차 지점의 숫자도 다시 꺼낸다. 30킬로미터에서 1 대 30, 20킬로미터에서 1 대 20, 10킬로미터에서 1 대 10. 분모가 거리를 그대로 따라온다. 어디서 재도 깊이가 같다는 뜻이다.
“클레르. 깊이 1킬로미터. 점 하나라고 치면.”
3초. “점 하나가 아니면?”
“모양은 몰라. 거리만 알아.”
3초. 4초. 5초.
“하람. 1킬로미터면 그렇게 깊은 게 아니야.”
“응.”
나는 창밖을 본다. 앞쪽 땅이 완만하게 솟아오른다. 치올코프스키 크레이터의 바깥 비탈, 테두리를 향해 올라가는 길이다. 그 비탈 어딘가, 1킬로미터 아래에 산 하나만 한 무엇이 숨을 쉬고 있다.
열 카메라를 켠다.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다. 회색 비탈, 회색 바위, 검은 하늘. 이 근방 어느 곳과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열 카메라 화면에서는 남서쪽 비탈 위에 둥근 얼룩 하나가 하얗게 떠 있다. 지름 1킬로미터 남짓. 가운데 온도는 섭씨 400도가 넘는다. 주변은 햇빛을 받아 100도쯤. 그 사이로 온도가 계단처럼 내려간다.
400도. 납이 녹는 온도를 넘는다. 하지만 돌이 녹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붉게 빛나지도 않고, 연기도 없고, 아지랑이도 없다. 아지랑이는 공기가 있어야 생긴다. 이곳의 열은 소리도 빛도 없이 그냥 거기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야영 지점은 열점 한가운데에서 2킬로미터.” 리드 대장이 말한다. “더 가까이는 내일.”
로버가 멈춘다. 경사가 조금 있는 자리다. 왕징이 바퀴를 고정하고 로버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확인한다. 3.1도. 리드 대장이 끄덕인다.
나는 중력계를 다시 내려놓는다. 시간이 남으니까. 15분 제한은 이제 없다.
진폭 0.07미터 매 초 제곱. 달 중력의 23분의 1.
그 숫자를 보는데 뭔가 걸린다. 무엇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깐 아무것도 안 하고 숫자를 본다. 0.07. 그 가운데 수평 성분이 0.063, 수직 성분은 그 절반이다. 우리는 근원 바로 위가 아니라 비스듬히 옆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24초마다, 남서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겼다 사라진다. 아래로 당기는 달 중력에 옆으로 당기는 힘이 더해지면, ‘아래’가 기운다.
얼마나.
0.063을 1.62로 나눈다. 아크탄젠트. 2.2도.
“하람, 시계 온도 말인데요.”
아난드다. 38킬로미터 뒤에서, 중계위성을 거쳐서.
“지금 숫자가 절차서에 쓴 거랑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가 다른데, 이게 부를 일인지 아닌지…”
목소리가 끊긴다.
그리고 돌아온다. ”…만약에 부를 일이면 지금 부르는…”
또 끊긴다.
나는 태블릿을 본다. 시계 화면. 38킬로미터 뒤 땅속에서 오는 숫자가 멈췄다가 흐르고, 다시 멈췄다가 흐른다. 멈추는 간격을 손가락으로 센다.
24초.
천장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고개를 든다.
아난드의 레몬과 고추가 천천히 기운다. 남서쪽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바퀴는 고정되어 있다. 모터도 꺼져 있다. 그런데 플라스틱 레몬과 고추 일곱 개가 실 끝에서, 아주 천천히, 남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기운다.
“설명.” 리드 대장이 말한다. 그도 보고 있다.
나는 설명한다. 짧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짧게.
“아래가 기울어요. 24초마다 2도씩.”
왕징이 고개를 든다. 천장의 레몬을 보고, 계기판의 ATTITUDE SOURCE: INCLINOMETER를 본다. 그리고 나보다 1초 먼저 이해한다.
로버의 기울기계는 중력이 가리키는 쪽을 아래라고 믿는다. 중력이 24초마다 2도씩 남서쪽으로 기울면, 기울기계는 로버가 2도씩 기울었다고 믿는다. 안테나는 그 믿음을 바로잡으려고 2도씩 반대로 움직인다. 로버는 사실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저 위성을 겨냥하는 안테나의 빔은 아주 좁다. 2도만 빗나가도 신호가 끊긴다.
중력은 늘 아래를 가리킨다. 그 문장은 지구에서 산 모든 사람의 상식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 저녁 아난드의 기울기계 화면에서, 그 상식이 여기서는 틀렸다는 걸 내 눈으로 봤다. 왕징이 설정을 바꾸는 걸 봤다. 끄덕였다.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 않았다.
“별 추적기로 돌려요.” 내가 말한다.
“렌즈가 반쯤 가려졌어요.” 왕징이 이미 손을 움직이고 있다. “별을 못 찾으면…”
태블릿 화면이 바뀐다. 빨간 글씨.
RELAY LINK: LOST
시계 숫자가 마지막 값에서 멈춘다. 아난드의 목소리도, 클레르의 3초도 없다. 38킬로미터 뒤 땅속의 시계도, 38만 킬로미터 너머 대전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선실 안에는 생명유지 장치의 팬 소리뿐이다. 그리고 천장에서는 레몬 하나와 고추 일곱 개가, 아무도 세지 않는 박자를 혼자 세고 있다.
남서쪽으로. 그리고 돌아온다. 2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