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장부는 각운동량 장부보다 쓰기 쉽다. 숫자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방향도 없고 축도 없다. 얼마나 있었고, 얼마나 남았고, 차이는 어디로 갔나. 가계부와 같다.
다만 단위가 크다.
지구가 돌면서 품고 있는 회전 에너지는 2×10²⁹줄쯤 된다. 이 숫자는 너무 커서 아무 느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바꿔서 생각한다. 인류가 지금 1년 동안 쓰는 에너지를 전부 모아도 이것의 3억 분의 1밖에 안 된다. 지구는 인류 문명 수억 년치 에너지를 품고 돌고 있는 팽이다.
그 팽이는 원래 아주 천천히 에너지를 잃는다. 1초에 3.6조 줄. 3.6테라와트다. 원인은 달이 멀어지는 이유와 같다. 바다의 혹이다. 지구가 달 쪽으로 부푼 바닷물을 끌고 돌 때, 그 물은 대륙붕에 부딪히고 해협을 빠져나가고 바다 밑바닥을 긁는다. 그 마찰이 회전 에너지를 열로 바꾼다. 브레이크 패드가 뜨거워지는 것과 같다.
그 3.6테라와트 가운데 달 궤도로 가는 건 아주 조금이다. 0.12테라와트, 겨우 3퍼센트. 나머지 97퍼센트는 바다에서 열이 되어 흩어진다. 각운동량은 달이 거의 다 가져가는데, 에너지는 거의 다 바다가 태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원래 그렇다. 무거운 팽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세우면, 팽이가 잃은 회전은 손바닥을 통해 내 몸으로 넘어오지만 그 에너지는 대부분 손바닥의 열이 된다.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것만큼 몸이 돌지는 않는다.
장부 쓰는 법은 간단하다. 왼쪽에 지구가 잃은 것. 오른쪽에 간 곳. 정상일 때는 이렇다.
지구가 잃은 것: 3.6TW 달 궤도: 0.12TW / 바다 마찰열: 3.5TW
맞는다. 수십 년 동안의 위성 관측으로 확인된 장부다.
이제 이걸 정상의 51배로 바꾼다. 11월 셋째 주, 내 곡선이 가리키는 배수였다.
왼쪽은 쉬웠다. 3.6 곱하기 51. 184테라와트. 지구는 지금 1초마다 184조 줄의 회전 에너지를 잃고 있다.
오른쪽 첫 줄도 쉬웠다. 클레르의 숫자가 있었다. 달이 51배 빨리 멀어지고 있으니 달 궤도가 받는 에너지도 51배. 6테라와트.
둘째 줄이 문제였다. 바다.
바다가 51배 더 많은 에너지를 태우려면 바다의 혹이 달라져야 한다. 혹이 훨씬 커지거나, 훨씬 앞으로 쏠리거나, 바닷물이 훨씬 세게 대륙붕을 긁어야 한다. 그런데 바다의 혹은 우주에서 매일 잰다. 위성 고도계가 바다 위를 지나가며 레이더로 해수면 높이를 센티미터 단위로 잰다. 30년 넘게 쌓인 자료로 조석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에서 바다가 얼마나 에너지를 태우는지 계산한다. 그 숫자는 몇 퍼센트 오차로 알려져 있다.
나는 올해 위성 고도계 자료로 만든 조석 모델을 받아서 작년 것과 비교했다. 혹의 크기가 같았다. 쏠린 각도도 같았다. 바다는 작년과 똑같이 3.5테라와트를 태우고 있었다.
장부를 다시 썼다.
지구가 잃은 것: 184TW 달 궤도: 6TW / 바다 마찰열: 3.5TW 행방불명: 174TW
나는 그 마지막 줄을 한참 봤다. 그리고 연필로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를 친 다음에는 늘 하던 일을 했다. 내가 틀릴 수 있는 방법의 목록. 여름에는 서른한 가지였다. 이번에는 열네 가지가 나왔다. 지구 관성 모멘트를 잘못 넣었을 가능성. 조석 모델의 해상도 문제. 바다뿐 아니라 땅덩어리에도 조석이 있다는 걸 잊었을 가능성. 태양이 일으키는 조석을 빼먹었을 가능성. 하나씩 지웠다. 땅의 조석은 0.1테라와트 안팎이었다. 태양 조석은 바다 마찰열 3.5 안에 이미 들어 있었다. 관성 모멘트는 교과서 값과 세 자리까지 같았다.
열네 개를 다 지우는 데 나흘이 걸렸다. 동그라미 안의 숫자는 174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174테라와트가 얼마나 큰지 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류가 지금 쓰는 에너지 전부, 모든 발전소와 자동차와 비행기와 공장과 보일러를 다 합쳐도 20테라와트 남짓이다. 174테라와트는 그 여덟 배가 넘는다. 인류 문명 여덟 개 반이 1초도 쉬지 않고 쓰는 에너지가, 매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다른 방법도 있다. 1초 동안 사라지는 에너지를 폭탄으로 바꾸면 TNT 40킬로톤쯤 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세 배 가까이. 1초마다. 하루 종일. 그리고 석 달 뒤에는 그 두 배.
나는 이런 비유를 싫어한다. 숫자가 아니라 감정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비유 없이 보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174라는 숫자는 너무 깔끔하고 너무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비유를 했다. 히로시마 세 개. 1초마다. 그제야 손끝이 차가워졌다.
“어디서 열이 나고 있는 거 아냐?”
선우진이 말했다. 화상회의 창 속의 그는 귤을 까고 있었다. 11월의 세종은 귤의 계절이었다.
“지구 어딘가에서.” 그가 귤 한 쪽을 입에 넣었다. “바다 말고. 땅속이라든가.”
“지구 안에서 올라오는 열이 전부 합쳐서 47테라와트야.” 내가 말했다. “지구가 만들어질 때 남은 열이랑 방사성 원소가 내는 열. 화산이고 온천이고 판 구조고 다 그걸로 움직여. 그런데 그 네 배 가까운 열이 올해 갑자기 새로 생겼다고 생각해 봐.”
“화산이 터지겠네.”
“화산이든 바다든 빙하든, 뭔가는 반응해야지. 바다 수온은 수천 개 부표가 깊이별로 재고 있어. 올해 바다에 쌓인 열은 작년이랑 같은 추세야. 땅속 온도 시추공 자료도 그대로고.”
선우진이 귤을 씹다가 멈췄다.
“그럼 대기.”
“대기는 더 빨리 반응해. 일주일이면 기상 위성에 다 보여.”
“그럼.” 그가 귤껍질을 접었다 폈다 했다. “그럼 열이 안 됐다는 거네. 지구 안에서는.”
“응.”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잖아.”
“응.”
“그럼 지구 밖으로 나간 거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우진은 늘 이렇다. 느긋하게 먹으면서, 한 단계씩,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간다. 대학원 시절 시험 기간에 나는 밤을 새우고 그는 열한 시에 잤다. 성적은 비슷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억울하다.
“근데 지구 밖으로 어떻게 나가.” 그가 말했다. “우주로 열을 쏘면 인공위성들이 다 봤을 거 아냐. 지구가 적외선으로 반짝반짝하고.”
“그렇지.”
나는 실제로 그것도 확인했다. 지구가 우주로 내보내는 열은 위성들이 늘 재고 있다. 지구는 햇빛을 12만 테라와트쯤 흡수하고, 거의 같은 양을 적외선으로 우주에 돌려보낸다.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의 차이가 기후 변화다. 174테라와트를 지구 표면 전체에 고르게 펴면 1제곱미터에 0.34와트. 위성이 몇 년치를 모아야 겨우 가려낼 수 있는 크기다. 올해 위성 자료에는 그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겨우 가려낼 수 있는 크기라서,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 없다는 증거로는 약했다. 나는 더 단단한 게 필요했다.
“그럼 진짜 어디로 간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답하려고 1주일을 썼다.
답은 장부 안에 있었다. 나는 장부를 너무 단순하게 읽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지구가 느려지려면 누군가 지구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브레이크는 힘이다. 회전을 늦추는 힘, 정확히는 돌림힘. 지구와 달 사이에서 돌림힘을 거는 방법은 하나다. 중력이 지구의 찌그러진 부분을 비스듬히 잡아당기는 것. 정상일 때 그 찌그러진 부분이 바다의 혹이다. 달의 중력이 혹을 잡아당기고, 혹이 지구를 붙잡아 늦춘다.
그런데 지금 바다의 혹은 작년과 똑같다. 혹의 크기도, 쏠린 각도도. 그렇다면 혹이 지구를 51배 세게 붙잡을 수가 없다.
혹이 같은데 브레이크가 51배 세졌다면, 달라진 건 혹이 아니다. 혹을 잡아당기는 손이다.
나는 연필을 내려놓고 그 문장을 다시 생각했다. 혹을 잡아당기는 손. 달의 중력. 달의 중력이 지구를 다르게 잡아당기고 있다. 달의 질량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달 안에서 질량이 놓인 모양이, 그 배치가 바뀌고 있다. 혹은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몰랐다. 브레이크를 51배로 세게 걸려면 달 안에서 무엇이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대충 따져 봐도 말이 안 되는 숫자가 나왔다. 나는 그 물음을 장부 바깥 여백에 적어 두었다. 장부가 묻는 건 ‘어떻게’가 아니라 ‘어디로’였다.
그리고 여기가 중요하다. 마찰열은 미끄러지는 곳에서 난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뜨거워지는 건 브레이크 패드다. 바퀴가 아니다. 지구 쪽 혹이 그대로라면 지구 쪽에서는 아무것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지구 바다가 더 뜨거워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미끄러지는 곳, 회전을 붙잡아 에너지로 바꾸는 곳이 지구가 아니라 반대편에 있으니까.
지구가 잃은 174테라와트는 지구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달로 갔다.
나는 그 결론을 클레르에게 먼저 말했다. 클레르는 그라스의 밤 열한 시에 관측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전은 아침 일곱 시였다.
“달이 그 에너지를 먹고 있다는 거야?” 3초쯤 지나서 클레르가 말했다. 그라스와 대전 사이에 3초 지연이 있을 리 없다. 그냥 3초 동안 말을 잃었을 뿐이다.
“먹는지는 몰라. 받는 건 확실해.”
“174테라와트를?”
“지금은. 석 달 뒤면 350.”
“그런 열이 달에서 나면.” 클레르가 계산하는 표정을 지었다. 입술이 숫자를 따라 움직였다. 나도 그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달 전체가 받는 햇빛이 1만 3천 테라와트쯤이지? 174면 그 1퍼센트 넘게. 그게 한 군데에 모이면.”
“달에서 제일 밝은 곳이 되겠지. 적외선으로 보면.”
“앞면이었으면 우리가 벌써 봤을 거야. 지구 망원경으로 밤마다 보는데.”
“그러니까.”
“뒷면이구나.”
우리는 동시에 말을 멈췄다. 화면 너머로 클레르가 등 뒤의 창을 돌아봤다. 돔 틈으로 둥근 달이 보였다. 앞면. 늘 같은 얼굴. 45억 년 동안 지구에 한 번도 뒤통수를 보여 준 적 없는 얼굴.
달은 한 번 자전하는 동안 지구를 정확히 한 바퀴 돈다. 그래서 늘 같은 면만 지구를 향한다. 이것도 조석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지구가 일으킨 조석이 달의 자전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달은 결국 지구 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그래서 뒷면은 1959년 소련 탐사선이 사진을 찍어 오기 전까지 인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땅이었다. 지금도 지구에서는 볼 수 없다. 무언가를 숨겨 두기에 그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
“Merde.” 클레르가 작게 말했다. 이번에는 영상 속 목소리가 아니었다.
센터장실 다육식물은 열한 개에서 열두 개로 늘어 있었다. 누가 선물한 모양이었다. 새 화분은 아직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센터장은 그 화분에 스포이트로 물을 주고 있었다. 다른 화분보다 한 방울 적게.
“새 애는 아직 적응 중이야.” 그가 말했다.
나는 장부를 내밀었다. 노트를 찢은 종이 한 장. 연필로 쓴 숫자 다섯 줄. 마지막 줄에 동그라미.
센터장은 그 종이를 오래 봤다. 이번에는 시간을 재지 않았다. 재고 싶지 않았다.
“클레르 마르탱이 그라스 사람이지.” 그가 말했다.
“네.”
“레이저 거리 측정 자료는 공개 안 했고.”
“아직요. 같이 논문으로 낼 거예요. 다음 달에.”
“브레너한테는.”
“어제 보냈어요. 대기 자료 세 개로 다시 한 거, 그리고 그라스 자료.”
센터장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표정을 안다. 지난여름 그는 1997년의 선배 이야기를 했고, 발표 기회를 주면서 ‘하나도 안 즐거울 거야’라고 했다. 나는 그 뒤로 넉 달 동안 말을 아꼈다. 그리고 어젯밤, 내 발표를 찢어 놓았던 사람에게 먼저 메일을 보냈다.
“답장 왔어?” 그가 물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보여 줬다. 뮌헨 시각으로 새벽 다섯 시에 온 메일이었다. 세 줄.
박 박사, 흥미롭습니다. 원자료를 보내 주시겠습니까. 제 그룹에서 독립적으로 다시 계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난여름 제 지적이 결론을 너무 일찍 닫았다면, 그 점은 제 실수입니다.
센터장이 휴대폰을 돌려줬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열두 번째 화분 앞에 섰다.
“그래서.” 그가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그 174테라와트가 달 뒷면에 있다는 거지.”
“있어야 해요.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찾을 건데.”
“궤도선이요. 미국 궤도선이 20년 동안 달 전체 열 지도를 찍어 놨어요. 공개 자료예요. 다른 나라 궤도선 자료도 있고요.”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174테라와트짜리 난로는 숨길 데가 없어요. 그 정도면 달 뒷면 어딘가가 대낮처럼 빛나고 있을 거예요. 적외선으로 보면 달에서 제일 찾기 쉬운 물건일 거예요.”
센터장은 스포이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그럼 찾아 와.”
그는 그 말만 했다. 나는 그 말을 들고 센터장실을 나왔다. 복도 끝 계단으로 내려가면 시계실이다. 웅웅 소리가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수소 메이저 여섯 대가 원자의 박자를 세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는 일주일이면 찾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