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5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5장

대전, 그리고 그라스의 밤
2029년 10월
약 9분

달은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멀어진다.

1년에 3.8센티미터. 과학관 안내판에 자주 나오는 숫자다. 안내판은 보통 거기서 끝난다. 달이 멀어지고 있대요, 신기하죠, 다음 전시로 가세요. 왜 멀어지는지는 잘 안 적혀 있다. 나도 그날 새벽 연구원 마당에서 하현달을 올려다보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이렇다. 달은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지구 바다는 달 쪽으로 살짝 부풀어 있다. 그런데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돌고, 달은 한 달에 한 바퀴 돈다. 지구가 훨씬 빨리 돌기 때문에 그 부푼 물을 달보다 조금 앞쪽으로 끌고 간다. 앞서가는 물의 혹이 달을 앞으로 잡아당기고, 달은 앞으로 당겨질 때마다 조금씩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간다. 대신 지구는 혹을 끌고 가느라 브레이크가 걸린다.

지구가 느려지는 만큼 달이 멀어진다. 둘은 한 장부의 왼쪽과 오른쪽이다. 지구가 잃은 회전, 정확히는 각운동량은 사라지지 않고 달의 궤도로 넘어간다. 이건 물리학에서 가장 단단한 법칙 가운데 하나다. 나는 그 법칙에 기대기로 했다.

내 곡선이 진짜라면 지구는 지금 정상보다 서른 몇 배 빨리 느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달도 정상보다 서른 몇 배 빨리 멀어지고 있어야 한다. 1년에 3.8센티미터가 아니라 1.4미터. 손톱이 아니라 사람 키만큼.

그리고 그건 잴 수 있다.


인류는 달까지의 거리를 밀리미터 단위로 잰다.

1969년 달에 내린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은 반사경 하나를 놓고 왔다. 서류 가방만 한 판에 모서리 반사경 백 개를 박은 장치다. 모서리 반사경은 어느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든 온 방향 그대로 돌려보낸다. 자전거 뒤에 붙은 반사판과 같은 원리다. 아폴로 14호와 15호도 하나씩 더 놓고 왔고, 소련의 무인 탐사차 두 대도 하나씩 싣고 갔다. 달 앞면에는 지금도 반사경 다섯 개가 놓여 있다. 60년 동안 아무도 닦지 않은 채로.

지구에서 그 반사경을 향해 레이저를 쏘면 빛이 달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왕복 2.5초 남짓. 그 시간을 재면 거리가 나온다. 문제는 돌아오는 빛의 양이다. 레이저 펄스 하나에 광자를 10경 개쯤 실어 보내면, 대기를 지나고 달까지 가서 반사경에 맞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 망원경에 들어오는 건 운이 좋으면 한 개다. 그래서 수천 번을 쏴서 돌아온 광자 몇십 개를 모은다. 그 몇십 개의 도착 시각으로 달까지의 거리를 밀리미터까지 맞춘다.

달 레이저 거리 측정. 이 일을 꾸준히 하는 곳은 세계에 몇 군데 없다. 미국 뉴멕시코의 관측소는 몇 해 전에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와 독일과 중국에 한 군데씩 있지만 달을 자주 겨냥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달까지의 거리 자료 대부분은 프랑스 남부 그라스 근처, 해발 1,270미터 석회암 고원에 있는 관측소 한 곳에서 나온다.

나는 다섯 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름 말고 내 이름으로.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달 후퇴율의 최근 변화 여부에 관한 문의.’ 본문에는 내 곡선과 예측을 적었다. 지구 자전 자료로 보면 올해 들어 달이 예상보다 빨리 멀어지고 있어야 하고, 지금 속도는 1년에 1미터를 넘을 것이며, 그 속도가 석 달마다 두 배가 되고 있을 것이다. 혹시 여러분의 거리 잔차에 그런 추세가 보이는지.

다시 읽어 보니 정신 나간 사람의 편지 같았다. 그래서 숫자를 더 넣었다. 숫자를 넣으니 더 정신 나간 사람 같았다. 숫자를 많이 넣는 미친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상태로 전송을 눌렀다. 대전 시각으로 아침 일곱 시,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답장은 이렇게 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자동 응답이 왔다. 담당자가 학회에 가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정중한 답장이 왔다. 관심 가져 줘서 고맙고, 자기들 관측은 위성 위주라 달 자료는 많지 않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답이 없었다. 뉴멕시코는 문을 닫은 지 오래라 메일이 반송됐다.

그라스에서는 40분 만에 답이 왔다. 그라스 시각으로 자정을 40분 넘긴 때였다.

본문은 한 줄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봤다. 영어였다.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 그런데 그 문장은 내가 받아 본 어떤 영어보다 반말이었다. 서명은 클레르 마르탱, 그라스 관측소 달 레이저 거리 측정 책임자.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지금 쏘고 있어. 화상으로 들어와. 링크 보낼게.


화면 속 클레르는 어두운 방에 있었다.

모니터 불빛이 얼굴 아래쪽만 비췄다. 곱슬머리를 연필 한 자루로 대충 틀어 올렸고,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등 뒤 창밖으로 망원경 돔이 보였다. 돔 틈으로 초록색 빛줄기 하나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통화도 영어였다. 클레르의 영어는 목소리로 들어도 반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같은 말투로 받았다. 초면에 그래 본 건 처음이었다.

“저게 레이저야?” 내가 물었다.

“응. 지금 아폴로 15호 반사경 겨냥 중이야. 1초에 열 번 쏴. 너 대전이지? 거기 지금 몇 시야?”

“아침 여덟 시.”

“잘됐다. 나는 밤새는 중이고 너는 하루 시작이네. 둘이 합치면 한 사람은 늘 깨어 있는 거야.” 클레르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어?”

나는 설명했다. 지구 자전, 잔차, 지수 곡선, 석 달마다 두 배, 브레너 교수, 세 기관의 대기 자료. 그리고 각운동량 장부. 지구가 느려지면 달이 멀어져야 한다는 것. 내가 말하는 동안 클레르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클레르가 남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건 1년에 몇 번 없는 일이다.

내가 말을 마치자 클레르가 화면을 공유했다.

그래프 하나. 가로축은 날짜, 세로축은 거리 잔차. 실제로 잰 달까지의 거리에서 궤도 예측값을 뺀 것. 올해 1월부터 점들이 찍혀 있었다. 처음 몇 달은 0 근처에서 흩어져 있다가, 봄부터 조금씩 위로 올라가더니, 여름을 지나면서 확실하게 휘어져 올라갔다.

내 곡선과 같은 모양이었다.

“올해 3월부터 이랬어.” 클레르가 말했다. “처음엔 1센티미터. 그다음엔 3센티미터. 지금은 40센티미터가 넘어. 우리 측정 정밀도가 몇 밀리미터야. 이건 정밀도의 백 배가 넘는 오차야. 그런데 아무도 몰라.”

“왜?”

“왜냐하면.” 클레르가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달 궤도 예측은 1년에 한 번 새로 맞춰. 새로 맞추면 그동안 쌓인 오차는 궤도 숫자 속으로 흡수돼서 다시 0이 돼. 작년 것도 그렇게 지워졌을 수 있어. 둘.” 손가락 하나 더. “달을 꾸준히 쏘는 데가 사실상 여기 하나야. 다른 데서 교차 확인을 못 해. 셋.” 손가락 셋. “이 크기의 오차는 거리로 보면 40센티미터지만, 시간으로 보면 왕복 3나노초야. 레이저 거리 측정을 10년 하면 알게 돼. 3나노초가 틀렸으면 그건 달이 아니라 우리 시계가 틀린 거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3나노초. 그건 내 단위였다.

“그래서 일곱 달 동안 시계를 뜯었어.” 클레르가 말했다. “이벤트 타이머 교체했고, 케이블 길이 다시 쟀고, 수소 메이저 두 대를 서로 맞대 봤고, 기상 보정 코드를 세 번 다시 짰어. 궤도 예측 팀에 메일도 보냈어. 답장이 뭐였는지 알아? ‘관측소 장비 문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클레르가 종이컵을 다시 들었다. 비어 있었다. 빈 컵을 그대로 마셨다.

“그런데 오늘 밤 대전에서 모르는 사람이 메일을 보냈어. 내 그래프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지구 자전 자료만 보고 내 그래프를 예언했어. 그러니까 내가 할 질문은 하나야.” 클레르가 화면에 얼굴을 바짝 댔다. “내 시계가 틀린 거야, 아니면 달이 진짜로 도망가고 있는 거야?”


시계가 틀렸는지 확인하는 건 내 일이다. 한국 표준시를 만드는 사람이 매달 하는 일이 바로 그거다.

그라스 관측소의 시계는 세계 표준시와 연결돼 있다. 위성 항법 신호를 이용해서다. 같은 위성을 지구 두 곳에서 동시에 보면, 위성 시계의 오차는 양쪽에 똑같이 들어가니까 빼면 지워진다. 남는 건 두 지상 시계의 차이다. 공통 시야 비교라는 방법이다. 이걸로 대전의 시계와 그라스의 시계를 1나노초보다 훨씬 작은 오차로 맞대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대륙의 시계 두 대가 같은 위성을 동시에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서로의 박자를 확인하는 셈이다.

클레르가 관측소 시계 기록 아홉 달치를 보내 줬다. 나는 우리 쪽 기록을 꺼냈다. 대전이 점심시간을 넘기고, 그라스에 해가 뜨고, 클레르가 잠들 때까지 맞춰 봤다.

그라스의 시계는 아홉 달 동안 세계 표준시에서 0.4나노초 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다.

3나노초짜리 오차를 만들 수 없는 시계였다. 나는 그 결과를 그래프로 그려서 보냈다. 평평한 선 하나. 그 아래 한 줄을 적었다.

네 시계는 정상이야.

답장은 1분 만에 왔다.

그럼 달이네.


그날부터 2주 동안 나는 하루에 네 시간을 잤다. 클레르는 세 시간을 잤다고 주장했다. 아마 거짓말이었을 거다. 사람은 피곤하면 자기가 더 피곤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한 일은 장부 맞추기였다. 왼쪽 칸에는 내 숫자를 적었다. 지구 자전이 지금까지 얼마나 더 느려졌는지. 지구의 관성 모멘트를 곱하면 지구가 잃은 각운동량이 나온다. 오른쪽 칸에는 클레르의 숫자를 적었다. 달이 예상보다 얼마나 더 멀어졌는지. 달의 질량과 궤도를 넣으면 달 궤도가 얻은 각운동량이 나온다.

두 숫자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방법으로 쟀다. 하나는 수십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의 전파로 지구가 도는 속도를 쟀다. 다른 하나는 60년 전에 달에 두고 온 반사경에 레이저를 쏴서 달까지의 거리를 쟀다. 측정하는 사람도, 장비도, 대륙도 달랐다. 공통점은 단 하나, 같은 물리 법칙 아래 있다는 것뿐이었다.

맞았다.

지구가 잃은 만큼 달이 얻었다. 오차 범위 안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똑같았다.

그리고 클레르의 거리 잔차에 지수 곡선을 맞추자 배가 시간이 나왔다. 88일, 오차 9일. 내 숫자는 90일, 오차 20일이었다. 클레르의 오차 범위가 더 좁았다. 레이저 쪽 자료가 더 깨끗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질투가 났다. 아주 조금.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화면 너머에서 클레르가 말했다. 그라스는 밤이었고 대전은 아침이었다. 우리는 그 2주 동안 늘 서로 반대편 시간에 있었다. “브레너 교수가 말한 계통 오차 있지. 유럽 기상 모델 바뀐 거. 그건 대기 자료를 틀리게 만들 수 있어. 근데 달은 못 움직여.”

“응.”

“기상 모델 버전이 바뀌었다고 달이 40센티미터 도망가진 않아.”

“응.”

“너 ‘응’ 말고 다른 말도 할 줄 알아?”

“지금은 말보다 숫자가 더 정확해.”

클레르가 웃었다. 소리를 내서 웃었다. 화상회의 창 마흔세 개 앞에서 들었던 웃음과는 종류가 달랐다. 나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단위가 다르다고밖에.


그 주 금요일, 클레르는 원래 일정에 없던 관측을 잡았다. 구름이 걷히는 대로 아폴로 11호, 14호, 15호 반사경을 차례로 겨냥하고, 소련 탐사차 반사경 두 개까지 쏘겠다고 했다. 반사경 하나가 이상한 거라면 다섯 개가 같은 말을 할 리 없다. 다섯 개가 같은 말을 하면, 달 전체가 멀어지고 있는 거다.

나는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계산을 하나 더 했다. 지금 이 속도라면 달은 1년에 1.4미터씩 멀어진다. 석 달 뒤에는 2.8미터, 반년 뒤에는 5.6미터. 그래도 여전히 작은 숫자다. 달까지의 거리는 38만 킬로미터고, 1.4미터는 그 2억 7천만 분의 1이다. 밤하늘의 달이 작아 보이려면 아직 멀었다. 바닷물이 달라지려면 더 멀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었다. 맞물림이었다.

지구가 느려지고 달이 멀어진다. 둘이 한 장부 위에서 정확히 맞물려 있다. 그렇다면 이건 지구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구 핵이 꿈틀대거나 바닷물이 쏠리는 일이 아니다. 지구와 달 사이에서 무언가가 회전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고 있다. 자연이 45억 년 동안 바다의 혹으로 천천히 해 온 일을, 지금은 서른몇 배 빠르게, 그리고 석 달마다 두 배씩 더 빠르게.

그 ‘무언가’를 생각하면 등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숫자를 봤다.


금요일 밤, 그라스에서 마지막 결과가 왔다. 다섯 반사경, 같은 추세. 클레르는 결과 파일과 함께 짧은 영상을 보냈다. 관측소 돔 바깥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것이었다. 초록 레이저가 밤하늘을 가르고, 그 끝에 반쯤 넘게 차오른 달이 떠 있었다.

화면 밖에서 클레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랑스어였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른다. 하지만 한 단어는 알아들었다.

“Merde.”

영상이 끝나고 메시지가 왔다.

이제 뭐 해?

나는 연필을 들었다. 노트를 폈다. 각운동량 장부는 맞았다. 법칙이 지켜졌다. 지구가 잃은 회전은 정확히 달에게 갔다. 아름다운 결과였다. 물리학이 여전히 물리학이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장부는 하나가 아니다. 물리학에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게 둘 있다. 각운동량과 에너지.

나는 답장을 썼다.

장부 하나 더 맞춰야 돼.

그리고 새 쪽에 줄을 그었다. 왼쪽 칸 위에 ‘지구가 잃은 에너지’라고 적었다. 오른쪽 칸 위에 ‘간 곳’이라고 적었다.

그날 밤, 그 장부의 오른쪽 칸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