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리드 대장이 말한다.
한 단어다. 이 사람은 문장을 단어 하나로 줄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나는 문장 하나를 단락 셋으로 늘리는 데 재능이 있다. 우리는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비효율적이다.
나는 최대한 짧게 말하려고 애쓴다.
“시계 박자가 24.19초마다 아주 조금 빨라졌다 느려졌다 해요. 시계 탓은 아니에요. 다 확인했어요. 시계 박자를 바꾸는 건 그 자리의 중력이에요. 그러니까 여기 중력이 24초마다 출렁이고 있다는 뜻이에요.”
“얼마나.”
“아주 조금요. 1경 분의 1 수준.”
“그럼 문제없는 겁니까.”
“그 크기를 만들려면요.” 나는 숨을 한 번 고른다.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략 5천조 킬로그램짜리 질량이 24초마다 움직여야 해요.”
왕징이 고개를 든다. 아난드가 혈압계 커프를 감다 말고 멈춘다.
“5천조 킬로그램이 얼마나 되는 거죠?” 아난드가 묻는다.
“산 하나요. 한라산보다 큰 거. 그게 24초마다 들썩이는 거예요.”
선실이 조용해진다. 환기 팬이 방향을 바꾸는 딸깍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물론 진짜 산이 들썩이는 건 아닐 거예요.” 내가 덧붙인다. “질량 분포가 바뀌는 거니까, 아주 무거운 뭔가가 땅속에서 조금 움직이는 걸 수도 있고, 밀도가 바뀌는 걸 수도 있고. 모양은 몰라요. 크기만 알아요.”
“40킬로미터.” 리드 대장이 말한다. “열점까지 거리.”
“네.”
리드 대장이 통신 패널을 연다. “지구에 보고합니다. 박 박사가 직접 설명하십시오.”
달 뒷면에서 지구와 통화하려면 신호가 달 너머 6만 5천 킬로미터에 떠 있는 중계위성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지구로 내려가야 한다. 왕복 3초가 조금 넘는다. 3초는 짧은 것 같지만 대화에서는 길다. 말을 끝내고 대답을 기다리는 3초 동안 사람은 온갖 생각을 한다. 내 말이 제대로 들렸을까, 상대가 화가 났을까, 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했을까.
지구 쪽 과학 담당은 클레르다. 클레르 마르탱. 프랑스 그라스 관측소에서 달까지 레이저를 쏘던 사람이다. 지금은 임무 관제센터의 과학 교신 책임자로 휴스턴에 와 있다.
“하람!” 3초 뒤 클레르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가움이 반쯤, 걱정이 반쯤 섞인 목소리다. “착륙 축하해. 시계는?”
나는 리드 대장에게 한 설명을 다시 한다. 이번에는 숫자를 조금 더 넣는다. 클레르는 숫자를 좋아한다. 내가 말을 끝내고 3초. 그리고 다시 3초. 6초 동안 아무 소리도 안 난다. 그 사이 나는 클레르가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놀라면 늘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Merde.” 클레르가 말한다. 프랑스어를 몰라도 뜻은 안다. “알았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볼게. 지구 쪽 초전도 중력계 자료도 뒤져 보고. 그리고 하람.”
“응.”
“너 지금 몇 시간 잤어?”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3초 뒤 클레르가 한숨을 쉰다. 38만 킬로미터 너머에서도 한숨 소리는 또렷하다.
“아난드, 그 사람 좀 재워 줘요.”
“이미 노력 중이에요.” 아난드가 말한다.
나는 다섯 시간을 잔다. 정확히는 다섯 시간 12분. 착륙선 벽에 매달린 침낭 안에서, 아난드가 준 수면제 반 알을 먹고 잔다. 꿈에서 나는 대전 시계실에 있다. 수소 메이저들이 웅웅거리는데, 그 소리가 24초마다 한 번씩 조금 높아진다. 나는 꿈속에서도 주기를 잰다.
일어나 보니 시계가 아프다.
화면에 뜬 주파수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천천히 기울고 있다. 시간당 10⁻¹⁵쯤. 24초 출렁임보다 열 배 크다. 이대로라면 출렁임은 이 기울기에 깔려 버린다. 산 위에 놓인 조약돌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원인은 금방 찾는다. 온도다.
달의 하루는 지구 날짜로 29일 반이다. 낮이 2주쯤, 밤이 2주쯤. 우리는 이 지역의 아침에 내렸다. 해는 지평선 위로 아주 천천히, 한 시간에 반 도쯤 올라온다. 지금은 아직 낮은 해다. 그런데도 착륙선 바깥 표면 온도는 벌써 영상 40도를 넘었다. 한낮이 되면 영상 120도까지 간다. 그리고 밤이 오면 영하 170도로 떨어진다. 이 동네는 하루에 290도를 오르내린다. 사람이 살기엔 무리고, 시계가 살기엔 더 무리다.
착륙선 선실 온도는 생명유지 장치가 22도로 맞춘다. 그런데 정확도가 플러스마이너스 2도다. 사람한테는 충분하다. 아무도 22도와 24도의 차이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는다. 하지만 시계에게는 지진이다.
이 시계의 심장, 기준 공진기는 아주 특별한 유리로 만들었다. 특정 온도에서 열팽창이 0이 되는 유리. 그 온도 근처에서는 온도가 조금 변해도 거울 사이 거리가 거의 안 변한다. 이 시계는 그 온도가 정확히 24.6도다. 시계 상자 안의 온도 조절기가 공진기를 24.6도에 묶어 두려고 애쓴다. 문제는 바깥이다. 바깥이 계속 따뜻해진다. 선실 온도가 22도에서 23.5도로 오르는 동안 온도 조절기는 점점 더 세게 열을 빼야 했고, 이제는 한계에 닿았다. 출력 100퍼센트. 숨이 턱에 찬 상태다. 더는 못 버틴다.
그런데 해는 이제 막 뜨기 시작했다. 한낮까지는 아직 일주일 가까이 남았다.
선택지를 정리한다. 나는 화이트보드가 없어서 선실 벽의 비닐 덮개에 매직으로 쓴다. 왕징이 그걸 보고 눈썹을 올리지만 말리지는 않는다.
1. 선실 온도를 더 정밀하게 맞춘다. 생명유지 장치를 건드려야 한다. 리드 대장이 허락할 리 없다. 나라도 허락 안 한다.
2. 시계 상자에 냉각을 더 단다. 여분의 열전 소자가 있긴 하다. 하지만 냉각기는 열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옮기는 장치다. 상자에서 뺀 열은 선실로 나가고, 선실은 더 더워지고, 생명유지 장치가 그 열을 다시 밖으로 버려야 한다. 전력은 두 번 든다. 그리고 한낮에는 착륙선 방열기도 겨우 버틴다.
3. 밤까지 기다린다. 2주. 다음 배가까지 48일인데 2주를 버리자고? 안 된다.
4. 시계를 온도가 안 변하는 곳으로 옮긴다.
나는 4번 앞에서 매직을 멈춘다.
온도가 안 변하는 곳. 대전의 시계실이 그렇다. 지하 깊은 곳, 두꺼운 문 두 개 너머. 1년 내내 0.1도. 땅은 훌륭한 단열재다. 땅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깥이 덥든 춥든 온도가 거의 안 바뀐다. 그래서 동굴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달도 그렇다. 아니, 달은 더 그렇다.
아폴로 15호와 17호 우주인들이 달 표면에 구멍을 뚫고 온도계를 묻었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열을 재려던 실험이었다. 그 결과가 놀라웠다. 달의 흙, 레골리스는 지구의 어떤 흙보다도 열을 못 전한다. 가루가 진공 속에 쌓여 있어서,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에 열을 실어 나를 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면이 낮에 120도, 밤에 영하 170도로 미쳐 날뛰어도, 50센티미터만 내려가면 그 출렁임이 거의 다 사라진다. 1미터쯤 내려가면 온도가 영하 20도 언저리에서 꼼짝도 안 한다. 낮이고 밤이고.
달의 땅속은 이 근방에서 가장 조용한 방이다.
시계를 묻으면 된다.
“안 됩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아직 설명 안 했는데요.”
“벽에 다 써 놨잖습니까.”
그건 그렇다.
“첫 선외 활동은 내일입니다. 거주 모듈 전개, 로버 하역, 태양전지판 설치. 시간표가 꽉 찼습니다. 구덩이 팔 시간 없습니다.”
“한 시간이면 돼요.”
“레골리스는 위의 30센티미터만 푸석하고 그 아래는 다져져 있습니다. 1미터 파려면 한 시간 아니라 세 시간입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두 번째 달 방문이라서 압니다.”
나는 계산을 다시 한다. 그는 옳다. 아폴로 우주인들도 드릴로 땅에 구멍을 뚫느라 고생했다. 데이비드 스콧은 아폴로 15호 때 구멍 하나 뚫느라 예정보다 몇 배의 시간과 체력을 썼다.
“그리고 그 상자, 진공에선 못 돌아가잖아요?” 왕징이 끼어든다. 늘 정확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전자부품 열은 공기로 식히잖아요. 땅속은 진공이에요. 거기다 묻으면 시계가 자기 열에 익어요.”
좋은 질문이다.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다.
상자 안의 레이저와 전자부품은 합쳐서 120와트쯤 열을 낸다. 선실에서는 그 열이 공기로 빠져나간다. 땅속에서는 갈 곳이 없다. 레골리스는 단열재라서 열을 받아 주지 않는다. 바깥 온도를 막아 주는 바로 그 성질이 안쪽 열도 가둬 버린다. 보온병에 전기난로를 넣는 꼴이다.
“방열기가 필요해요.” 내가 말한다. “상자 열을 구리 띠로 땅 위까지 끌어올려서, 그늘에 둔 방열판으로 하늘에 버리는 거예요.”
“하늘에 버린다고요?” 아난드가 묻는다.
“달 하늘은 영하 270도예요. 공기가 없으니까 위를 보면 바로 우주예요. 햇빛만 안 받으면 판 하나로 열을 꽤 많이 버릴 수 있어요. 착륙선 방열기도 그렇게 하잖아요.”
왕징이 벽에 쓴 내 글씨를 한참 본다. 그리고 착륙선 예비 부품 목록을 연다.
“여분 방열판 있어요. 0.4제곱미터짜리. 원래 로버 배터리용. 착륙선 그늘에 세우면 영하 몇십 도에서 120와트는 충분히 버려요. 구리 띠는 열 제어 정비 키트에 있고요. 문제는 그늘이 해 따라 움직인다는 거예요.”
“해는 한 시간에 반 도밖에 안 움직여요. 하루에 두 번 옮기면 돼요.”
“누가 옮기죠?”
“제가요.”
왕징이 리드 대장을 본다. 리드 대장은 아무도 안 본다. 그는 시간표를 본다. 오래 본다. 그리고 한 줄을 지우고 한 줄을 쓴다.
“선외 활동 2일차로 미룬 로버 점검을 3일차로. 2일차 오후에 두 시간. 구덩이는 제가 같이 팝니다.”
“대장님이 직접요?”
“박 박사 혼자 1미터 파다가 쓰러지면 나머지 일정이 다 날아갑니다.” 그가 말한다. “효율 문제입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고맙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걸 싫어할 것 같다.
이틀 뒤, 나는 처음으로 달을 걷는다.
달 걷기를 연습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연습은 아무 소용이 없다. 훈련 때는 사람을 줄에 매달아 몸무게의 6분의 5를 덜어 주는 장치에서 걸었다. 하지만 줄은 달이 아니다. 줄은 위에서 당긴다. 달은 아무것도 당기지 않는다. 당기는 게 너무 약해서, 발을 내디디면 몸이 한참 공중에 떠 있다가 내려온다. 그동안 나는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 너무 오래 고민한다. 그리고 넘어진다.
천천히 넘어진다. 달에서 넘어질 때 가장 이상한 점은 넘어지는 동안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거다. 아, 넘어지는구나. 손을 짚어야겠다. 왼손이 나을까 오른손이 나을까. 그리고 철퍼덕. 흙먼지가 포물선을 그리며 피어올랐다가 그대로 떨어진다. 공기가 없어서 먼지가 구름처럼 떠 있지 않는다. 던진 모래처럼 깔끔하게 떨어진다.
“괜찮습니까.” 리드 대장이 무전으로 묻는다.
“네.”
“아폴로 우주인들은 토끼처럼 뛰었습니다. 두 발로 같이.”
해 본다. 된다. 우스꽝스럽지만 된다. 나는 착륙선 그늘 가장자리까지 토끼처럼 뛰어간다. 대전 연구원 체력 측정에서 꼴찌 했던 사람이 달에서 토끼 뜀을 한다. 이 장면을 연구원 동료들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아니다. 다행이다.
구덩이 자리는 착륙선에서 15미터 떨어진 곳으로 잡는다. 착륙선 엔진이 흙을 날려 버린 자리를 피하고, 착륙선이 진동할 때 흔들림이 덜 전해지도록. 리드 대장이 삽을 든다. 나도 삽을 든다.
위의 30센티미터는 정말로 푸석하다. 삽이 쑥쑥 들어간다. 그런데 30센티미터 아래부터는 다른 세상이다. 레골리스 알갱이는 지구 모래처럼 둥글지 않다. 운석 충돌로 깨진 유리와 돌 부스러기라서 모서리가 날카롭다. 그 날카로운 알갱이들이 수십억 년 동안 다져지면서 서로 맞물렸다. 삽 끝이 튕겨 나온다. 콘크리트를 숟가락으로 파는 기분이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말없이 판다. 숨소리만 무전으로 들린다. 내 숨소리가 리드 대장 숨소리보다 세 배는 크다.
“대장님은 왜 반대하셨어요?” 나는 묻는다. 숨이 차서 문장이 끊긴다. “제가 타는 거.”
삽질 소리. 그리고 그의 목소리.
“제 일은 네 명 데려와서 네 명 데려가는 겁니다.” 그가 말한다. “박 박사는 훈련이 제일 부족했습니다. 원심분리기 4g에서 기절했고, 수중 훈련에서 두 번 패닉이 왔고, 선외 활동 모의시험에서 산소 소모량이 기준치의 1.4배였습니다. 지금도 1.4배입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구의 하루가 길어지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박 박사뿐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계속 판다. “그러니까 당신을 데려가는 게 제 일입니다. 반대한 건 반대한 거고.”
그는 그 말을 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1시간 50분 만에 1미터 깊이의 구덩이를 판다. 숨이 차서 헬멧 안쪽에 김이 서린다. 그래도 그 안에서 나는 조금 웃는다. 이 사람은 결혼식에서 정말로 ‘신부, 입장’이라고 했을 거다. 그리고 그 말을 아주 진심으로 했을 거다.
시계를 묻는 일은 왕징이 맡는다. 나보다 잘하기 때문이다. 내 시계를 남이 만지는 걸 보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왕징의 손은 정확하다. 상자를 단열 덮개로 싸고, 상자 윗면에 구리 띠를 붙이고, 띠를 땅 위로 끌어올려 착륙선 그늘 속 방열판에 잇는다. 전원선과 광섬유는 착륙선까지 15미터를 기어간다. 그리고 레골리스를 다시 덮는다. 삽으로 한 줌씩.
선실로 돌아와 화면을 연다. 처음 몇 시간은 엉망이다. 상자가 땅속에 자리 잡으면서 온도가 요동친다. 열 시간쯤 지나자 가라앉기 시작한다. 스무 시간이 지나자 조용해진다.
시간당 10⁻¹⁵이던 기울기가 10⁻¹⁷로 떨어진다. 백 배 좋아졌다.
대전 시계실보다 낫다. 나는 그걸 몇 번이나 확인한다. 달의 흙 1미터가 대한민국 표준시를 지키는 지하실보다 조용하다. 센터장님께 이 결과를 보여 드리고 싶다. 그분은 아마 40초 동안 아무 말도 안 하실 거다.
그리고 기울기가 걷히자, 그 아래에서 24초 출렁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몇 시간씩 겹칠 필요도 없다. 몇 분이면 보인다. 24.19초마다, 규칙적으로, 숨 쉬듯이.
그날 저녁, 아난드가 자기 장비를 꺼낸다.
아난드는 의사이면서 지질학자다. 그의 짐에는 청진기와 함께 월진계가 있다. 땅의 떨림을 재는 장치다. 착륙 첫날 선실에 들어와서 아난드가 제일 먼저 꺼낸 게 그 상자였고, 어제 선외 활동 때 그는 착륙선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 그걸 심었다. 월진계 안에는 아주 민감한 중력계와 기울기계도 들어 있다. 원래는 달의 내부 구조를 재려고 가져온 장비다. 땅이 어떻게 떨리는지 보면 땅 밑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의사가 청진기로 몸속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하람.” 아난드가 부른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박 박사’라고 불렀다. 이름으로 부른 건 처음이다. “이거 좀 봐 줄래요?”
화면에 그래프가 떠 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중력 가속도의 미세한 변화. 중력계가 잰 수직 성분과 기울기계가 잰 수평 성분을 합친 크기다. 선이 물결친다. 아주 규칙적으로. 마루와 마루 사이를 손가락으로 잰다.
24초 남짓.
“크기는요?” 내가 묻는다.
“합쳐서 0.0002미터 매 초 제곱. 달 중력의 7천 분의 1쯤이요.”
내가 시계로 계산한 것과 같은 크기다.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완전히 다른 장비로, 같은 걸 보고 있다. 시계는 시간이 흔들린다고 말했고, 중력계는 땅이 끌어당기는 힘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둘은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건.” 아난드가 화면을 넘긴다. 기울기계 자료다. 중력이 가리키는 ‘아래’를 기준으로 땅의 기울기를 재는 장치. 출렁임이 올 때마다 그 ‘아래’가 아주 조금, 한쪽으로 끌려간다. “방향이에요.”
화면에 나침반 같은 그림이 뜬다. 화살표 하나가 한쪽을 가리킨다.
남서쪽. 방위각 221도.
나는 착륙 전에 그 숫자를 수백 번 봤다. 궤도선 적외선 자료에서, 지도에서, 출발 전 브리핑 자료에서. 우리 착륙 지점에서 열점까지의 방위.
221도.
아난드가 나를 본다. 나는 화면을 본다. 화살표는 움직이지 않는다. 24초마다 아주 조금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할 뿐, 방향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땅이 숨을 쉬고 있다. 40킬로미터 저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