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만 센터장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센터장실 창가에는 화분이 열한 개 있었다. 다 다육식물이었다. 다육식물은 물을 자주 주면 죽는다. 센터장은 그걸 알면서도 매일 아침 스포이트로 아주 조금씩 물을 줬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는데, 센터장은 “조금씩 자주 주는 게 한꺼번에 많이 주는 것보다 오차가 작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간표준센터장다운 대답이다.
“앉아.” 그가 스포이트를 내려놓지 않고 말했다. “아침 여섯 시에 출근한 거 봤어. 보안 기록에 다 남아.”
나는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그래프를 띄웠다. 석 달 반치 잔차, 그 위에 그은 지수 곡선, 그리고 노트에 연필로 적은 숫자.
센터장은 화분 열한 개를 다 돌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화면을 봤다. 오래 봤다. 그는 원래 말보다 침묵이 긴 사람이다. 회의에서 누가 질문을 하면 10초쯤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대답하는데, 신입 시절 나는 그 10초가 너무 무서웠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10초 동안 그는 정말로 생각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생각하는 척하면서 할 말을 고른다.
이번에는 40초였다.
“부호 버그는 고쳤고.” 그가 말했다.
“네.”
“VLBI 원시 자료로도 다시 돌렸고.”
“네. 세종 관측소 자료요.”
“선우진이 줬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센터장은 대학원 시절 우리 둘의 지도교수와 친구다. 그는 다 안다.
“대기 각운동량 자료는 어디 거 썼어?”
“유럽 중기예보센터 분석 자료요. 다들 쓰는 거.”
센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침묵. 20초.
“하람아. 1997년에 우리 센터에 있던 선배 하나가 세슘 시계에서 이상한 주파수 변동을 봤어. 확신했지. 새로운 물리 현상이라고. 국제 학회에서 발표했어. 석 달 뒤에 원인이 밝혀졌는데, 시계실 옆방 냉각기가 돌 때마다 전원 전압이 미세하게 흔들린 거였어.”
“그분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보험회사 다녀. 잘 살아.” 센터장이 안경을 벗었다. “그 사람이 틀린 건 문제가 아니었어. 다들 틀려. 문제는 기관 이름을 걸고 틀렸다는 거야. 그 뒤로 10년 동안 우리 센터 자료를 아무도 안 믿었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이야기의 교훈은 분명했다. 확실해질 때까지 말하지 마라. 선우진과 같은 말이었다. 다만 센터장은 10년짜리 대가를 덧붙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다음 주에 IERS 지구 방향 매개변수 실무그룹 화상회의가 있어. 정기 회의야. 기자도 없고, 기록은 내부용이고, 오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 제일 까다로운 사람들이야.”
나는 그를 쳐다봤다.
“15분 줄게. 기관 이름 말고 네 이름으로. 제목에 ‘예비’라고 넣고. 그 사람들이 네 그래프를 찢어 놓을 거야. 찢고 나서도 남는 게 있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고마워할 일 아니야. 하나도 안 즐거울 거야.”
그 말은 정확했다. 그는 늘 정확하다.
일주일 동안 준비했다.
나는 내가 틀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서른한 가지가 나왔다. 그중 스물여섯 개는 확인해서 지웠다. 남은 다섯 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 다섯 개를 발표 자료 마지막 장에 그대로 적었다. ‘내가 아직 배제하지 못한 것들.’ 지도교수님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남이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약점을 보여 주면, 적어도 숨겼다는 말은 안 듣는다.
통계도 다시 했다. 석 달 반치 자료에 직선과 이차 곡선과 지수 곡선을 각각 맞추고,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정보 기준으로 비교했다. 지수 곡선이 이겼다.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그다음에는 자료를 무작위로 섞어서 같은 분석을 1만 번 돌렸다. 무늬 없는 잡음에서 이만큼 깨끗한 지수 곡선이 우연히 나올 확률. 0.3퍼센트였다.
0.3퍼센트. 300번에 한 번. 드물어 보이지만, 이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새 입자를 발견했다고 말하려면 350만 번에 한 번 수준을 요구한다. 지구물리학은 그보다 느슨하지만, 300번에 한 번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나도 안다. 그래서 발표 자료에 그렇게 썼다. “통계적으로 시사적이나 결정적이지 않음.”
발표 연습을 거울 앞에서 여섯 번 했다. 여섯 번 다 12분 안에 끝났다. 나는 긴장하면 말이 빨라진다. 15분을 받았으니 3분이 남는다. 그 3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회의는 한국 시간으로 밤 열한 시에 시작했다. 유럽 오후 네 시, 미국 동부 오전 열 시. 세계가 동시에 깨어 있는 시간은 늘 누군가에게 한밤중이다.
화상회의 창은 마흔세 개였다. 대부분 카메라를 끄고 이름만 띄워 놓았다. 파리 천문대, 미국 해군관측소, 독일 연방지도측지청, 일본 국립천문대. 이름 옆에 붙은 기관명이 하나같이 내가 논문에서만 보던 곳들이었다. 나는 마흔세 개 창 가운데 맨 끝에 있었다. KRISS, Park H.
내 차례는 다섯 번째였다. 앞의 네 발표는 극운동 예측 알고리즘 개선, 새 VLBI 관측소 가동 보고, 자료 형식 표준 개정안, 그리고 엘니뇨가 하루 길이에 미친 영향 분석이었다. 마지막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발표자는 올봄 IERS 예측이 자꾸 틀린 걸 엘니뇨로 설명했다. 그래프가 깔끔했다. 질문도 칭찬 일색이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11분 40초 만에 발표를 끝냈다. 거울 앞에서보다 20초 빨랐다. 마지막 장, ‘내가 아직 배제하지 못한 것들’을 띄워 놓고 질문을 기다렸다.
침묵이 3초쯤 흘렀다. 센터장의 10초에 비하면 짧은데, 체감으로는 30초 같았다.
그리고 카메라 하나가 켜졌다.
하르트무트 브레너 교수. 뮌헨의 측지학자이고, 대기 각운동량이 지구 자전에 미치는 효과로 지난 30년 동안 누구보다 많은 논문을 쓴 사람이다. 대학원 시절 내 책상에 그의 논문이 쌓여 있었다. 화면 속의 그는 하얀 수염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고, 뒤쪽 책장에는 책이 가로세로로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흥미로운 발표 감사합니다, 박 박사.” 그가 말했다. 영어였고, 독일어 억양이 단단했다. “질문이 몇 개 있습니다.”
몇 개라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였다. 나머지는 그 하나를 여러 각도에서 찌른 것뿐이었다.
“대기 각운동량 자료로 유럽 중기예보센터 분석값을 쓰셨지요.”
“네.”
“그 센터가 올해 3월에 예보 모델 버전을 바꾼 건 알고 계십니까?”
나는 몰랐다.
“새 버전에서 성층권 상부의 바람장 처리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그룹은 그 변경이 대기 각운동량 계열에 계통 오차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크기는 하루 길이로 환산해서 수십 마이크로초. 방향은 박 박사가 본 것과 같습니다.”
화면 속 창 마흔세 개가 조용했다. 나는 내 목록을 떠올렸다. 서른한 가지. 그 안에 이건 없었다.
“그리고 박 박사가 본 ‘곡선’은 3월 이후에 휘기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시점이 겹칩니다.”
“겹칩니다.” 내가 말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석 달 반의 자료로 지수 함수와 다른 함수를 구분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박 박사도 슬라이드에 그렇게 쓰셨더군요. 정직해서 좋습니다.” 그는 정말로 칭찬하는 말투였다. 그게 더 아팠다. “제 제안은 이렇습니다. 다른 기관의 대기 자료로 다시 분석해 보시고, 1년쯤 자료를 더 쌓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지구자전을 전공하는 공동 연구자와 함께.”
마지막 문장은 친절했다. 내가 이 분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주 친절하게 말해 줬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는 내가 놓친 걸 정확하게 짚었다. 과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다만 그 선물을 마흔세 명 앞에서 받았을 뿐이다.
그걸로 끝났으면 괜찮았을 거다.
카메라가 하나 더 켜졌다. 미국 어느 대학의 박사후연구원이었다. 젊고, 머리가 부스스하고,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재밌네요.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석 달마다 두 배면, 이대로 가면 10년 뒤엔 하루가 몇 시간이 되는 거죠? 48시간?”
몇몇 창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음소거를 깜빡한 사람들이었다. 악의 있는 웃음은 아니었다. 회의가 길었고, 다들 피곤했고, 그 질문은 웃겼다.
여기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은 같이 웃는 거였다. “하하, 그럼 주말이 더 길어지겠네요” 같은 말을 하고 넘어가는 거였다. 다들 그렇게 한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가 숫자를 틀리게 말하면 나는 고쳐야 한다. 재채기처럼 참을 수가 없다.
“48시간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지수 함수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10년 뒤엔 배가가 마흔 번 일어나요. 2의 40제곱은 약 1조예요. 그러니까 지구 자전의 감속률이 지금의 1조 배가 되는데,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지구의 자전 에너지 전체를 몇 시간 만에 다 써 버리는 크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추세가 진짜라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멈춰야 하고, 멈추지 않는다면 하루가 몇 시간이 되느냐가 아니라 하루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어지는…”
나는 말을 멈췄다. 너무 늦었다.
창 마흔세 개가 아주 조용했다. 아까의 조용함과는 종류가 달랐다. 아까는 듣는 조용함이었다. 지금은 민망함을 나누는 조용함이었다. 박사후연구원은 커피잔을 든 채 굳어 있었다. 농담을 던졌는데 상대가 지구 종말을 진지하게 계산해서 돌려준 셈이다.
“아.” 그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서둘러 다음 발표자를 불렀다. 나는 카메라를 껐다. 마이크도 껐다. 그리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천장을 봤다.
음소거를 깜빡한 누군가의 작은 웃음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나를 보고 웃은 건지, 다른 걸 보고 웃은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였을 거다.
회의가 끝난 건 새벽 한 시 반이었다. 나는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시간 7분. 나는 그런 것도 잰다.
그다음에는 할 일을 했다. 브레너 교수가 말한 것.
유럽 중기예보센터 대신 쓸 수 있는 대기 자료는 몇 개 있다.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의 재분석 자료, 일본 기상청의 재분석 자료, 독일 지구과학연구소가 따로 계산한 각운동량 계열. 모델 버전 변경이 문제라면, 다른 기관의 자료에는 그 문제가 없어야 한다. 세 개를 다 내려받았다. 새벽 세 시에 첫 번째 결과가 나왔다.
무늬가 있었다.
크기가 조금 줄었다. 수십 마이크로초쯤. 브레너 교수가 말한 계통 오차의 크기와 비슷했다. 그는 옳았다. 유럽 자료에는 정말로 오차가 섞여 있었다. 그걸 걷어 내자 곡선이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휘어지는 모양은 그대로였다.
새벽 네 시에 두 번째 결과가 나왔다. 일본 자료. 같은 무늬. 다섯 시에 세 번째. 독일 자료. 같은 무늬. 세 기관이 서로 다른 모델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대기 자료가 모두 같은 걸 말하고 있었다. 대기는 범인이 아니다. 범인이 대기를 핑계로 숨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결과를 브레너 교수에게 이메일로 보낼까 생각했다. 그리고 보내지 않았다. 석 달 반치 자료다. 그는 1년을 말했다. 지금 보내면 나는 또 저 화면 속 마흔세 명 앞에서 숫자를 쏟아 내던 사람이 될 뿐이다. 내가 가진 건 여전히 300번에 한 번의 우연일 수도 있는 곡선이었다. 조금 더 단단해졌을 뿐이다.
그날 새벽 내가 깨달은 건 다른 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이’ 지구를 느리게 하는지만 찾고 있었다. 대기, 바다, 얼음, 지진. 지구를 느리게 할 수 있는 범인 목록을 놓고 하나씩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다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는 끝이 안 난다. 범인 후보는 끝없이 나온다. 브레너 교수 같은 사람이 나올 때마다 내가 모르는 범인을 하나씩 더 알려 줄 거다.
다른 방향에서 물어야 했다.
지구가 느려졌다면, 지구가 잃은 회전은 어디로 갔을까.
물리학에서 사라지는 건 없다. 회전하는 물체가 느려지면 그 회전, 정확히는 각운동량은 반드시 어딘가로 넘어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팔을 벌려서 느려진다. 선수의 각운동량은 그대로인데 팔로 퍼졌을 뿐이다. 지구가 느려진다면 지구의 각운동량은 지구 바깥의 무언가로 넘어가야 한다. 대기나 바다로 넘어갔다면 내가 이미 봤을 거다. 그건 다 빼고 남은 거니까.
그렇다면 바깥이다. 지구의 바깥에서, 지구와 회전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크고 가까운 것.
후보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연구원 건물 밖으로 나갔다. 대덕연구단지의 새벽은 조용하다. 매미도 아직 깨지 않았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고, 남쪽 하늘에 하현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평생 시계를 봤다. 하늘은 거의 안 봤다. 시계를 보면 하늘이 언제 밝아질지 다 나와 있으니까, 굳이 올려다볼 필요가 없었다.
그날 새벽, 나는 서른세 해 만에 처음으로 달을 의심하며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