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2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2장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2029년 6월
약 9분

모든 건 1초를 빼는 문제에서 시작됐다.

1초를 더하는 건 인류가 잘 안다. 1972년부터 스물일곱 번 해 봤다. 지구 자전은 원자시계만큼 꼬박꼬박하지 않아서, 원자시계로 잰 시각과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 조금씩 어긋난다. 그 차이가 0.9초에 가까워지면 세계는 어느 1분에 1초를 더 끼워 넣는다. 23시 59분 59초 다음에 23시 59분 60초. 그게 윤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2012년 윤초 때는 레딧이 멈췄고,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사의 예약 시스템이 몇 시간 동안 뻗어서 공항마다 승객들이 줄을 섰다. 2016년 마지막 윤초 때는 인터넷 기반 시설 회사 하나가 일부 서비스를 내렸다. 프로그래머들이 ‘60초’라는 시각은 있을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믿음을 이해한다. 나도 시계를 다루기 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지구가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빨라졌다. 수십 년 동안 천천히 느려지던 지구 자전이 방향을 틀어, 하루가 86,400초보다 1밀리초 넘게 짧은 날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지구 핵의 움직임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분명했다. 이대로 가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초를 빼야 한다.

음의 윤초. 23시 59분 58초 다음이 바로 0시 0분 0초인 날. 59초가 없는 분.

1초를 더하는 데도 서버가 쓰러지는 세상에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1초 빼기를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무도 몰랐다. 국제적으로는 2035년까지 윤초 자체를 없애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지만, 그 전에 음의 윤초가 먼저 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시간표준센터에 보고서를 요청했다. 국가 기반 시설의 음의 윤초 대응 방안.

그리고 센터는 그 일을 나에게 맡겼다. 아무도 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간표준센터의 아침은 소리로 시작된다.

시계실은 지하에 있다. 두꺼운 문을 두 번 열고 들어가면 1년 내내 온도가 0.1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방이 나온다. 거기서 수소 메이저 여섯 대와 세슘 원자시계 몇 대가 낮게 웅웅거린다. 냉장고 소리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고르다. 대한민국의 표준시, UTC(KRIS)가 이 방에서 만들어진다. 이 방의 시계들이 서로 합의한 시각을 국제도량형국에 보내고, 파리에서 세계 수백 대의 시계와 견준 결과를 받아서, 우리 시계가 세계 표준시에서 몇 나노초 벗어났는지 확인한다. 보통은 수 나노초 이내다. 나는 그 숫자를 매달 봤다. 남들이 가계부를 보듯이.

나는 아침 일곱 시에 출근했다. 일곱 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피를 내리고, 시계실 상태 화면을 확인하고, 그다음에 국제지구자전국(IERS)이 매주 내는 회보를 열었다. 지구가 지난주에 얼마나 빨리 돌았는지 적힌 표다. 하루 길이, 극의 위치, 그리고 UT1. 지구 자전으로 잰 시각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세상에는 시계가 두 종류 있다. 원자로 재는 시계와, 지구로 재는 시계. 원자시계는 정확하다. 지구는 정확하지 않다. 지구는 바람이 불면 느려지고, 바닷물이 쏠리면 빨라지고, 큰 지진이 나면 몇 마이크로초 튄다. 그 둘의 차이, UT1에서 UTC를 뺀 값이 윤초를 결정한다. 나는 그 차이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음의 윤초가 언제 필요해질지 알아야 대응 계획을 짤 수 있으니까.

모델은 간단한 원리로 돌아간다. 지구의 자전 속도를 바꾸는 요인은 크게 넷이다. 첫째, 달과 태양이 일으키는 조석. 이건 계산이 된다. 수백 년치 관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둘째, 대기. 바람이 동쪽으로 세게 불면 대기가 각운동량을 가져가고, 그만큼 땅덩어리가 느려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벌리면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건 기상 모델 자료로 계산한다. 셋째, 바다. 해류와 해수면 높이도 같은 효과를 낸다. 넷째, 육지의 물. 눈과 빙하와 지하수. 이 넷을 다 더해서 예측값을 만들고, IERS가 실제로 측정한 하루 길이와 비교한다. 그 차이가 잔차다.

잔차는 작아야 한다. 무늬가 없어야 한다. 텔레비전의 지지직처럼.

석 달째, 내 잔차에는 무늬가 있었다.


처음엔 내 코드를 의심했다. 당연한 일이다. 연구원 생활 8년 동안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 이상한 결과의 99퍼센트는 내 실수다. 나머지 1퍼센트도 대개는 아직 못 찾은 내 실수다.

그래서 찾았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 찾았다. 바다 각운동량 자료를 불러오는 부분에서 부호 하나가 뒤집혀 있었다. 해류가 지구를 빠르게 하는 방향을 느리게 하는 방향으로 넣고 있었다. 나는 그걸 발견한 순간 진심으로 기뻤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운 버그가 있을까. 부호를 고치고 모델을 다시 돌렸다.

잔차가 줄었다. 무늬는 남았다.

부호 버그는 잔차를 들쑥날쑥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걸 걷어 내자 오히려 무늬가 더 깨끗하게 드러났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무늬. 지구가 내 예측보다 꾸준히 느리게 돌고 있었다. 하루에 0.1밀리초 남짓.

0.1밀리초. 1만 분의 1초.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의 3천 분의 1쯤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숫자다. 나만 빼고.


“엘니뇨 아니에요?”

선우진이 말했다. 대학원 동기이고, 지금은 세종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 우주측지관측센터에서 일한다. 거기에는 지름 22미터짜리 전파망원경이 있다. 별을 보는 망원경이 아니라 지구를 재는 망원경이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의 전파를 세계 곳곳의 망원경이 동시에 받으면, 그 전파가 각 망원경에 도착한 시각의 차이로 지구가 얼마나 돌았는지를 잴 수 있다. 우주 끝에 박힌 못을 기준점 삼아 지구의 회전을 재는 셈이다. 인류가 만든 측정법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법이다.

“엘니뇨는 넣었어.” 내가 말했다. “엘니뇨 때 바람이 바뀌는 건 대기 각운동량 자료에 다 들어가 있어. 그거 빼고 남은 거야.”

“그럼 기후 변화. 빙하 녹으면 하루 길어진다며. 그 논문 있잖아.”

있다.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그 물이 적도 쪽 바다로 퍼진다. 질량이 회전축에서 멀어지니까 지구가 느려진다. 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벌리는 것과 같다. 실제로 지금 기후 변화가 하루를 100년에 1밀리초 남짓 늘리고 있다는 연구가 있다.

“계산해 봤어. 크기가 안 맞아. 내가 보는 건 그거보다 열 배 이상 커.”

“그럼 지진.”

“올해 규모 8 넘는 지진 없었어. 있었어도 지진은 계단처럼 한 번 튀지, 이렇게 꾸준히 기울지는 않아.”

선우진이 화면 너머로 나를 빤히 봤다. 화상 회의 창 속의 그는 반쯤 먹은 김밥을 들고 있었다. 세종의 점심시간이었다. 대전도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점심을 거르고 있었다.

“하람아.” 그가 말했다. “IERS 예측도 요즘 자꾸 틀리는 거 알아?”

“알아.”

“다들 엘니뇨 탓 해.”

“알아.”

“그러니까 네 말은, 전 세계 지구자전 연구자들이 다 엘니뇨 탓을 하고 있는데, 대전의 원자시계 담당이 혼자 그게 아니라고 하는 거잖아.”

“원자시계 담당이 아니라 표준시 담당이야.”

“그게 더 나쁜 것 같은데.”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지구자전 전문가가 아니다. 지구물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나는 시계를 맞추는 사람이다. 시계를 맞추는 사람이 지구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시계방 주인이 해가 늦게 뜬다고 항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원시 자료 좀 줄 수 있어?” 내가 물었다. “IERS가 처리한 거 말고, 너희 관측소의 원래 관측값.”

“왜?”

“IERS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무늬일 수도 있으니까. 그것부터 지워야 돼.”

선우진은 김밥을 마저 먹고 나서 대답했다. “주말까지 보내 줄게. 근데 너 이거 센터장님한테 말했어?”

“아직.”

“말하지 마. 확실해질 때까지.”

좋은 충고였다. 나는 그 충고를 6일 동안 지켰다.


선우진의 자료는 금요일 밤에 왔다. 세종 관측소가 참여한 국제 공동 관측 세션 여든 몇 개의 원시 지연 시간 자료였다. 이걸 처리하려면 오픈소스 측지 분석 프로그램을 내 컴퓨터에 깔고, 설명서 400쪽을 읽고, 대학원 시절 이후 써 본 적 없는 포트란 오류 메시지와 싸워야 했다.

주말 내내 했다. 토요일 새벽 세 시에 첫 결과가 나왔다. 지구가 하루에 2시간씩 느려지고 있었다. 단위를 잘못 넣었다. 어느 칸에 무엇을 넣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남의 단위를 정정하는 게 버릇인 사람에게도 새벽 세 시는 온다. 일요일 오후에 다시 돌렸다. 이번에는 합리적인 숫자가 나왔다.

IERS 자료와 같은 무늬였다. 처리 과정에서 생긴 잡티가 아니었다. 퀘이사가 보기에도 지구는 느려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한 가지를 더 했다. 그동안 잔차를 직선으로만 맞춰 보고 있었다. 지구가 일정하게 느려진다고 가정한 셈이다. 그런데 석 달치 그래프를 오래 들여다보니 직선이 아니었다. 아주 살짝 위로 휘어 있었다. 처음 한 달은 거의 평평하다가, 둘째 달에 조금 기울고, 셋째 달에 더 기울었다.

곡선을 맞춰 봤다. 이차 함수. 맞긴 맞는데 시원찮았다. 지수 함수로 바꿨다. 잘 맞았다. 기분 나쁠 만큼 잘 맞았다.

지구가 느려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것도 일정한 비율로. 지수 함수의 시간 상수를 배가 시간으로 바꿨다.

약 90일.

석 달마다 두 배.


나는 그 숫자를 노트에 적었다. 연필로. 나는 중요한 숫자는 연필로 노트에 적는다. 컴퓨터 화면의 숫자는 너무 쉽게 바뀐다. 손으로 쓴 숫자는 그 자리에 남아서 나를 노려본다.

배가 시간 ≈ 90일 (±20)

오차 범위가 넓었다. 석 달치 자료로 배가 시간을 재는 건 무리였다. 사실 이게 지수 함수라는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석 달치 자료로는 많은 곡선이 그럴듯하게 맞는다. 통계학 수업 첫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다. 자료가 적으면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다. 구름에서 토끼를 보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게 진짜라면 무슨 뜻인지 계산했다. 그냥 연습 삼아서. 토끼 모양 구름이 정말 토끼라면 몇 킬로그램일까, 같은 계산이었다.

지금 지구는 정상보다 열 몇 배쯤 빨리 느려지고 있다. 이건 아직 아무 문제가 아니다. 하루가 1년에 1밀리초도 안 되게 길어지는 수준이다. 인간은 물론 어떤 기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만 신경 쓴다.

석 달 뒤면 정상의 30배. 반년 뒤면 60배. 1년 뒤면 250배. 그때쯤이면 IERS도 엘니뇨 탓만은 못 할 거다. 1년 반 뒤면 1,000배. 하루가 1년에 23밀리초씩 길어진다. 윤초를 몇 달마다 넣어야 한다. 음의 윤초 대응 보고서는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우리는 1초를 빼는 게 아니라 정신없이 더하게 된다.

2년 뒤면 4,000배. 2년 반 뒤면.

나는 연필을 내려놨다.

지수 함수는 이렇다.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 아무것도 아닌 게 갑자기 모든 것이 된다. 바둑판 첫 칸에 쌀 한 톨, 둘째 칸에 두 톨을 놓는 옛날이야기처럼. 다들 그 이야기를 안다. 그리고 다들 그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지수 함수가 아닐 수도 있었다. 다음 달에 곡선이 평평해질 수도 있었다. 지구는 원래 이상한 짓을 하고, 대부분은 몇 달 뒤에 저절로 돌아온다. 확률로 따지면 그쪽이 훨씬 높았다. 나는 지금 석 달치 잡음에서 토끼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자연은 이렇게 깔끔하게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자연의 그래프는 지저분하다. 바람이 불고, 바다가 출렁이고, 얼음이 녹고, 그 모든 게 겹쳐서 울퉁불퉁한 선을 만든다. 그런데 이 곡선은 너무 매끈했다. 누가 자로 그은 것처럼.


월요일 아침, 나는 일곱 시에 출근하지 않았다. 여섯 시에 출근했다. 커피를 내리고, 시계실 상태 화면을 확인하고, IERS의 이번 주 회보를 열었다.

새 자료가 일주일치 붙어 있었다. 내 곡선 위에 그 일주일을 얹었다.

곡선 위에 정확히 얹혔다. 점 일곱 개가 하나도 빠짐없이 오차 막대 안에 들어왔다. 지난 석 달을 보고 그은 선이 아직 오지 않았던 일주일을 맞혔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지하 시계실에서 올라오는 웅웅 소리가 바닥을 타고 발바닥에 닿았다. 수소 메이저 여섯 대가 원자의 박자를 세고 있었다. 1초에 14억 2천만 번. 우주 어디서나 똑같은 박자. 그 시계들은 틀리지 않았다. 30년 동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 시계가 틀릴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 그게 내 직업이었다. 시계가 맞으면 세상이 굴러가고, 시계가 틀리면 내가 고친다.

그날 아침 처음으로, 틀린 게 시계가 아니라 지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선우진의 충고를 깨고 센터장실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