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22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22장

달 뒷면, 구덩이 가장자리
다음 배가까지 37일
약 10분

3시 20분, 귀가 입이 된다.

바닥 광검출기 화면에 봉우리 하나가 선다. 작다. 1나노초짜리. 그리고 하나 더. 그리고 하나 더. 봉우리들이 화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채운다. 1초에 100만 개. 셀 수 없는 속도로. 그런데 화면을 넓혀 보면 봉우리들 사이 간격이 제각각이다. 고르지 않다. 고르지 않다는 건 무언가를 싣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빛을 낸다. 시범이 아니라. 문장으로.

“기록.” 리드 대장이 말한다.

왕징이 이미 하고 있다. 왼손으로. 로버 저장 장치의 남은 자리를 전부 바닥 광검출기에 몰아준다. 다른 기록은 다 지운다. 지난 엿새치 주행 기록, 열 카메라 영상 절반. 아깝지 않다. 지금 이게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간격을 틱으로 바꾼다. 1틱, 0.704나노초. 그것의 가장 작은 글자.

간격이 틱의 정수배다. 하나도 빠짐없이.


처음 몇천 개는 안다.

3, 3, 3, 3, 3, 3, 3, 3. 문장의 시작. 숨을 들이쉬는 자리. 그리고 35. 7. 12. 사흘 전 밤 박자의 지연 속에서 읽었던 그 세 숫자. 그것은 다시 자기 단위부터 말한다. 내 박자는 2³⁵. 내 글자는 2⁷. 나는 2¹²박자 동안 듣는다.

그다음에 새 숫자 하나가 온다. 앞에 표시가 하나 더 붙어 있다. 박자 지연 속에서는 본 적 없는 표시다. 그리고 1.

나는 그 표시를 오래 본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다른 숫자 하나를 본다. 그 앞에도 같은 표시가 있고, 그 숫자는 작다. 소수점 아래로 이어지는 수.

왕징이 내 어깨 너머로 본다. “부호예요.” 왕징이 말한다. “그 표시. 마이너스.”

그러니까 −1. 2의 −1제곱. 반 틱.

0.35나노초.

“허용 오차예요.” 내가 말한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작다. “반 틱 안쪽으로 두드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뒤의 작은 수. 부호 없이, 틱 단위로.

0.09.

나는 그 숫자를 노트에 적는다. 연필로. 그리고 나노초로 바꾼다. 0.09 곱하기 0.704.

0.06나노초.

그것이 우리 노크를 쟀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너희는 반 틱 안쪽으로 두드렸다. 정확히는 0.09틱 어긋나서. 빛이 2센티미터를 가는 시간만큼.

“우리 성적표예요.” 내가 말한다.

리드 대장이 그 숫자를 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그 숫자를 체크리스트 어딘가에 옮겨 적는 걸 본다.


그다음에 열네 개의 숫자가 온다.

하나하나가 백만 단위의 틱이다. 첫 숫자. 7,921,118틱.

밀리초로 바꾼다. 5.5767밀리초.

나는 그 숫자 근처에 있는 숫자 하나를 안다. 시간 표준을 하는 사람이면 대부분 안다.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자연의 시계들. 펄서 가운데서도 1초에 수백 번씩 도는 밀리초 펄서들. 그 박자가 너무 고르고 오래 가서, 원자시계와 견줄 수 있다. 세계의 몇몇 연구소는 원자시계 옆에 펄서 시간을 따로 만든다. 그 목록의 맨 위에 늘 있는 이름 하나.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밀리초 펄서. 남쪽 하늘, 화가자리 쪽.

J0437−4715. 주기 5.7575밀리초.

5.5767과 5.7575. 0.18밀리초 차이.

펄서는 느려진다. 아주 천천히. 도는 별이 전파를 쏘면서 회전 에너지를 잃으니까. 이 펄서는 1초에 5.7×10⁻²⁰초씩 주기가 길어진다. 그 속도로 0.18밀리초가 길어지려면.

나는 계산한다. 그리고 숫자를 다시 계산한다.

1억 년.

이 숫자가 정말 그 펄서라면, 이 숫자를 적은 누군가는 그 펄서를 1억 년 전에 봤다. 지금보다 0.18밀리초 빨리 돌던 때.

나는 열네 개의 숫자를 다시 본다. 전부 밀리초다. 전부 밀리초 펄서다. 보통의 펄서는 수천만 년이면 꺼진다. 밀리초 펄서는 수십억 년을 간다. 그들은 오래 가는 시계만 골랐다. 오래 기다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열넷.

1972년 파이어니어 10호의 금속판. 왼쪽 위의 수소 원자 두 개. 그리고 그 아래, 한 점에서 사방으로 뻗은 선들. 선마다 이진수로 펄서 하나의 주기가 새겨져 있었다. 수소의 틱을 단위로. 그 선들이 모이는 한 점이 우리 해였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지도. 펄서를 가리키는 선은 열네 개였다.

우리도 그랬다. 그들도 그랬다. 수소로 시간을 재고, 펄서를 적었다. 서로 한 번도 만나지 않고, 같은 생각을. 다만 그들의 펄서는 자리가 아니라 때를 적는다. 1억 년이면 펄서들도 은하 속에서 수만 광년씩 움직인다. 1억 년 전의 하늘로 지금의 자리를 짚을 수는 없다. 대신 펄서는 저마다 늙는 속도가 정해져 있는 시계다. 열네 개가 한꺼번에 가리킬 수 있는 시각은 하나뿐이다.


나는 데이터의 앞부분을 잘라서 지구로 보낸다. 중계위성의 대역폭으로는 전부를 보낼 수 없다. 머리말, 열네 개의 숫자, 그리고 그 뒤의 첫 블록.

3초. 그리고 침묵. 지구 쪽에서 누군가 그 숫자를 받아 들고 있는 시간.

4시 10분, 클레르가 들어온다.

“펄서 팀이 붙었어. ‘시계 사람들’에 전파 관측소가 서른 곳 넘게 있잖아. 다들 지금 열네 개를 목록에 대 보고 있어.” 3초. “첫 줄은 너 말대로 J0437 같대. 1억 년 전의. 나머지 열세 개도 하나씩 짝이 나오고 있어. 다 느려진 만큼 짧아. 같은 시간만큼.”

“같은 시간.”

3초. “응. 열네 개가 다 같은 시간을 가리켜. 9,800만 년 전, 오차 300만 년.” 클레르가 숨을 쉰다. “그리고 하람. 자리는 펄서로는 안 나와. 1억 년 동안 펄서들도 다 움직였으니까. 그건 데이터 어딘가에 따로 있을 거야. 첫 블록 끝까지 다 보내 줘. 한 시간만 줘.”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첫 블록을 읽는다.

긴 숫자의 줄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숫자. 그다음 숫자는 조금 더 크다. 그다음은 더. 숫자 하나가 박자 몇천 개에 하나씩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이 커지는 비율이 일정하다.

나는 그 줄에 지수 함수를 맞춘다. 2년 전 대전에서, 석 달치 잔차에 맞췄던 그 함수.

배가 시간, 90일. 오차 없이.

손이 멈춘다. 지구에서 내가 잰 건 89일, 오차 2일이었다. 그것은 자기 장부에 참값을 적었다.

이건 그것의 장부다. 그것이 지구에서 빼낸 것의 장부. 숫자의 단위를 찾는다. 틱도 아니고 박자도 아니다. 다른 단위. 그 단위로 적힌 첫 숫자들을 지구 자전이 2029년 초에 잃기 시작한 에너지에 맞춰 본다. 비율이 하나로 떨어진다.

수소가 한 번 뒤집힐 때 내는 에너지. 그 21센티미터짜리 빛 알갱이 하나의 에너지. 그것은 에너지도 수소로 셌다.

줄의 끝까지 더한다. 2.3×10⁴⁷개. 줄로 바꾼다.

2.2×10²³줄.

지구가 지난 2년 반 동안 잃은 자전 에너지에서 달 궤도로 간 몫과, 열로 새어 나온 100만 분의 1을 뺀 값. 내가 대전에서, 그라스에서, 이 로버 안에서 수없이 계산한 그 숫자.

사라진 99만 9,999.

블록의 끝에 숫자 세 개가 더 붙어 있다. 둘은 각도처럼 보인다. 하나는 아주 큰 수다. 단위가 수소의 21센티미터라면 거리다. 그것이 그 에너지를 보낸 쪽, 그리고 그곳까지의 거리.


5시 20분. 클레르.

“나왔어.” 3초. 클레르의 목소리가 아주 조용하다. 클레르가 조용하면 무서운 일이거나 아주 아름다운 일이다. “블록 끝의 세 숫자. 각도 둘은 은하 원반이랑 은하 중심을 기준으로 잰 방향이었어. 거리는 21센티미터로 센 거고. 백조자리 방향, 1,240광년. 그 자리에 태양이랑 비슷한 노란 별 하나가 있어. 이름은 없어. 목록 번호뿐이야.”

“거기가 만든 쪽이야?”

3초. “몰라. 그런데 에너지를 그쪽으로 보냈어. 2년 반 동안.” 클레르가 숨을 쉰다. “1억 년 전에 시계를 맞춰 놓고 간 누군가가, 돌아갈 주소를 남긴 거야. 하람. 그거 집으로 보낸 거야.”

나는 창밖을 본다. 해는 서쪽 하늘 30도에 낮게 떠 있다. 바퀴살 위로 로버 그림자가 길다. 열 카메라를 켠다. 부채꼴 여섯 개. 아직 따뜻하다. 300도 남짓. 식고 있다. 이번에는 다시 데워지지 않을 거다.

에너지는 열이 되지 않았다. 재작년 가을 나는 에너지 장부의 빈칸을 보면서 그게 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레이크 패드는 뜨거워지니까. 일곱 달 동안 달 뒷면에서 거대한 난로를 찾았다. 없었다. 에너지는 열이 아니라 빔이 됐다. 빛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블록 안에 그게 무엇으로 된 빔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아니면 우리가 아직 못 읽었거나. 다만 그것은 지구를 향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백조자리의 노란 별 하나를 향해, 좁게, 곧게.

초인종은 두 곳에서 울렸다.

지구에서는 길어지는 하루로. 원자시계를 가진 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그리고 1,240광년 저쪽에서는 그 빔으로. 이 초인종을 만든 누군가의 집 앞에서. 여기서 누가 문 앞에 왔다고, 아직 아무도 열지 않았다고.

그 빔이 그 별에 닿는 건 1,240년 뒤다. 서기 3269년. 그해 그 별의 누군가는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을 듣는다. 그리고 2년 반 뒤, 3271년 7월 어느 날, 초인종이 멈춘 것을 듣는다. 그 마지막 빛줄기에 무엇이 실려 있을지 나는 안다. 반 틱 안쪽. 0.09틱. 우리 노크.

1억 년 전에 이 시계를 맞춰 놓은 누군가가, 1,240년 뒤에 그 노크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들이 아직 거기 있을지. 그래도 문은 열렸다. 그건 기록에 남는다. 빛의 속도로.


남은 게 하나 있다. 데이터의 첫 줄. 머리말 바로 앞에 붙어 있던 숫자 하나.

틱이 아니라 박자로 적힌, 아주 큰 수. 지금으로부터 거꾸로 센 박자의 수다. 무엇이 일어난 때까지. 나는 그 수에 24.19초를 곱한다. 그리고 지금 시각에서 뺀다.

2028년 11월 19일 무렵.

그 날짜를 나는 안다. 이상 현상이 시작된 때를 역산한 날짜보다 두 달 앞이다. 그런데 그 날짜를 나는 다른 데서도 안다. 시간 표준을 하는 사람이라면.

2028년 11월. 유럽의 첫 달 항법위성이 달 궤도에서 원자시계 신호를 쏘기 시작한 주.

나는 그 문장을 노트에 적다가 연필을 멈춘다.

그것은 지구 쪽을 보지 않는 뒷면에 있다. 지구에서 나오는 온갖 전파, 방송, 레이더, 휴대폰. 그 모든 소음이 달 몸통에 가려지는 곳. 태양계 안쪽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 로버로 처음 떠나던 날 왕징이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 아무도 엿듣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려 했다면,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거기서 1억 년 동안 기다렸다. 지구의 소음을 듣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그리고 누군가 시계를 들고 달까지 오기를. 달 궤도를 도는 위성 하나가 그 뒷면 위를 지나가며 원자의 박자를 방송한 날. 그것은 그 박자를 들었다. 두 달 동안 들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두드렸다. 우리는 그걸 몰랐다.

나는 그 이야기를 선실의 두 사람과 40킬로미터 뒤의 한 사람에게 한다. 숫자 몇 개와 날짜 하나. 말이 끝나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3초. 아난드가 먼저 말한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손님은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발소리를 낸다고. 발소리를 들으면 문 앞에 나가 있으라고.” 아난드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 있다. “우리가 발소리를 낸 거네요. 시계 소리로.”

왕징은 침상에 앉아 창밖을 본다. 고개를 돌려, 300미터 앞 가장자리 쪽을.

“1억 년이요.” 왕징이 말한다. “기계가 1억 년을 버텼어요. 고장 안 나고.”

“엔지니어로서 감탄하는 거예요?” 내가 묻는다.

“엔지니어로서 질투하는 거예요.” 왕징이 말한다.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인다. “그리고 조금 슬퍼요. 만든 사람이 그동안 한 번도 고치러 안 왔다는 거잖아요.”

리드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운전석에서 앞창 너머를 본다. 오래. 그리고 체크리스트의 빈 줄 하나에 무언가를 적는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적는 것 가운데 몇몇은 그 사람만 봐야 한다.


6시, 클레르가 마지막으로 들어온다.

“하루가 늘어나는 게 멈췄어.” 3초. “이번에는 진짜로. 위성 항법 자료 세 시간치. 0이야. 오차 범위 안에서 0.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도 그게 다시 켜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 성적표 때문에.”

“위원회는.”

3초. “관통탄 계획을 보류했어. 한 시간 전에. 공식 문장은 ‘상황 변화에 따른 재검토’래.” 클레르가 웃는다. 쉰 목소리로. “독일 사람들처럼 말하네.”

나는 웃지 않는다. 대신 노트를 편다.

재작년 가을 대전에서, 나는 노트 한 쪽에 줄을 그었다. 왼쪽 칸 위에 ‘지구가 잃은 에너지’라고 적었다. 오른쪽 칸 위에 ‘간 곳’이라고 적었다. 그날 밤 오른쪽 칸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 칸에 숫자를 몇 개 적었다. 달 궤도. 바다 마찰열. 열점, 100만 분의 1. 그리고 맨 아래 줄은 늘 비어 있었다. 행방불명.

나는 그 쪽을 펴서 맨 아래 줄 오른쪽 칸에 연필로 적는다.

빔. 백조자리, 1,240광년. 2.2×10²³J.

장부가 맞는다.

리드 대장이 운전석에서 몸을 돌린다. 시계를 본다. 6시 2분.

“출발 준비.” 그가 말한다. “8시 전에 떠납니다.”

창밖, 300미터 앞. 가장자리의 삼각대. 그 아래 138미터의 바닥. 그 아래 1킬로미터. 그것은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 다 말했으니까. 그리고 대답을 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