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시간 반은 길다.
하루보다 3시간 반 길다. 그 3시간 반 때문에 하루를 한 번 자고 일어나도 아직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번갈아 잔다. 한 사람은 늘 사슬을 본다. 시계, 광섬유, 중계위성, 루비듐, 방아쇠, 상자. 한 시간에 한 번 상자를 잰다. 137.81미터.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
해는 서쪽으로 더 내려왔다. 40도. 바퀴살 위로 로버 그림자가 길게 눕는다. 창밖의 땅이 조금씩 입체가 된다. 낮은 햇빛은 굴곡을 드러낸다. 착륙한 날 아침처럼.
천장의 레몬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젯밤 11시 30분부터.
선실은 29도다. 땀이 마르지 않는다. 왕징이 물 파우치를 하나씩 나눠 준다. 왼손으로. 이제는 고개를 돌려서 건넨다.
오후 세 시, 리드 대장이 자는 동안 왕징이 말한다.
“뒷면 기지에 넉 달 있었다고 했죠.”
“네.”
“거기서 중계위성이 두 번 기침했다고도 했고요.”
“한 번은 위성 쪽, 한 번은 우리 쪽.” 나는 그 말을 기억한다. 로버로 처음 떠나던 날 왕징이 한 말이다. 어느 쪽이 더 무서웠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 쪽이 더 무서웠어요.” 왕징이 말한다. 침상에 기대어 앉아, 부목 낀 팔을 무릎에 얹고. “제가 고친 안테나였어요. 제가 고쳐 놓고 제가 망가뜨렸어요. 각도 하나를 잘못 넣었어요. 1도. 시험 안 하고 넣었어요.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뒤로 고개를 안 돌렸어요.” 왕징이 말한다. “기계를 볼 때 옆을 보면 틀려요. 사람 얼굴을 보면 기계를 놓쳐요. 그래서 기계만 봤어요. 6년 동안.”
창밖을 본다. 300미터 앞, 삼각대 하나.
“그날 하람 씨가 24초 전에 불렀을 때요.” 왕징이 말한다. “저는 기계를 보고 있었어요. 테이프가 안 붙어서. 기계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사람이 했어요.”
“제 기계가 했어요. 바닥 중력계가.”
“하람 씨가 그 기계를 거기 뒀잖아요. 그리고 하람 씨가 봤잖아요.” 왕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정면으로. 이제 이 사람은 그렇게 나를 본다. “그러니까 사람이 한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지 않는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왕징이 말한다.
“네.”
“이제 ‘하람 씨’라고 안 해도 돼요?”
나는 웃는다. 소리 내서. 29도 선실에서, 초인종이 숨을 참는 동안.
“돼요.”
“하람.” 왕징이 말해 본다. 그리고 아주 조금 얼굴을 찡그린다. “이상해요. 한국 이름은 받침이 어려워요.”
“받침 없어요. 하, 람.”
“람에 있잖아요.”
그건 그렇다.
저녁 여섯 시, 리드 대장이 깬다. 왕징이 잔다. 나는 사슬을 본다.
리드 대장은 운전석에서 체크리스트를 쓴다. 그리고 한참 뒤에 펜을 내려놓는다. 그가 먼저 말을 거는 건 드문 일이다.
“딸이 물었습니다. 발사 전날 밤에.”
나는 그날 밤 바닷가 베란다를 떠올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한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뭘요.”
“그 애가 여덟 살 때 제가 한 말을 기억하냐고.” 그가 앞창을 본다. “그 애가 여덟 살 때 물었습니다. 아빠 일이 뭐냐고. 저는 네 명 데려가서 네 명 데려오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시험비행 팀이 넷이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안다. 구덩이를 함께 파던 날 그가 숨을 고르며 한 말. 제 일은 네 명 데려와서 네 명 데려가는 겁니다.
“그 애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1년 동안.” 그가 말한다. “그리고 발사 전날 밤에 그걸 다시 말했습니다. 아빠 일이 그거라고. 그러니까 하라고.”
“그래서 반대하셨어요? 제가 타는 거.”
“그래서 반대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리고 그래서 데려왔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팬 소리. 레몬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 여쭤봐도 돼요?” 내가 말한다.
“하십시오.”
“결혼식 때 정말로 ‘신부, 입장’이라고 하셨어요?”
그가 나를 돌아본다. 회색 눈. 그리고 입꼬리가 움직인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밝으니까.
“그건 사회자가 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저는 ‘네’라고만 했습니다. 두 번.”
“두 번이요?”
“한 번은 못 들었다고 해서.”
나는 웃는다. 그는 웃지 않는다. 대신 다시 체크리스트를 집는다. 그런데 펜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밤 9시 40분, 경보가 온다.
“하람.” 아난드의 목소리. 3초 늦게.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인데 말이 조금 빠르다. “시계 온도 경보 떴어요. 절차서 한계보다 0.03도 높아요.”
나는 화면을 띄운다. 맞다. 상자 온도가 한계선을 아주 조금 넘었다. 원인은 금방 보인다. 해가 낮아졌다. 그늘이 길어지면서 모양이 바뀌었다. 아난드는 오늘 오후에 예정대로 방열판을 옮겼다. 그런데 해가 낮아지는 속도가 착륙 첫 주와 다르다. 방열판이 그늘 가장자리에 너무 가깝다. 햇빛이 방열판 모서리를 핥고 있다.
“옮길까요?” 아난드가 묻는다. 3초. “지금 나가면 20분이면 옮겨요.”
나는 숫자를 본다. 노크까지 5시간 21분. 방열판을 옮기려면 구리 띠를 들어 올려야 한다. 구리 띠는 땅속 시계 상자에 붙어 있다. 들어 올리는 손이 아무리 조심해도 상자가 아주 조금 흔들린다. 흔들리면 공진기의 거울 사이 거리가 원자 하나 지름의 몇백만 분의 1만큼 변할 수 있다. 그러면 시계 레이저가 공진기에서 미끄러진다. 착륙한 날 선실에서처럼. 시계가 박자를 한 번 놓친다.
27시간 반 동안 쌓은 박자가 그 순간 사라진다.
그리고 0.03도. 시계 상자 안의 온도 조절기는 그 정도를 버틴다. 절차서 한계는 내가 넉넉하게 잡은 숫자다. 진짜 한계는 그보다 0.2도 위다. 시계 화면을 본다. 10⁻¹⁷. 아무 변화가 없다.
“아난드.” 내가 말한다. “절차서 맨 아래 줄 읽어 줘요.”
3초. 그리고 아난드가 웃는다. 숨을 내쉬는 웃음.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 것.” 그가 읽는다. “지금 저 모르겠어요.”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마요.”
3초. “그게 맞는 거예요?”
“그게 맞는 거예요. 제가 알아요.” 내가 말한다. “해가 더 낮아지면 그늘이 다시 방열판을 덮어요. 두 시간이면 돼요. 시계는 버텨요.”
“알았어요.” 아난드가 말한다. “그럼 저는 여기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할게요. 아주 열심히.”
11시 50분, 온도가 한계선 아래로 내려온다. 시계는 한 번도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아난드가 선실 벽 비닐 덮개에 매직으로 한 줄을 더 썼다고 알려 온다. 맨 아래 줄 밑에.
아무것도 안 하는 동안 할 일: 기다리기.
새벽 두 시. 클레르가 들어온다.
“여기 다 보고 있어.” 클레르가 말한다. 3초. 목소리가 쉬었다. 사흘째 거의 안 잔 목소리다. “시계 사람들 화면. 지금 접속한 데가 2천 곳이 넘어. 대전, 뮌헨, 파리, 워싱턴, 도쿄, 베이징, 벵갈루루. 다들 너희 사슬 숫자를 보고 있어. 루비듐 0.05, 중계위성 0.04. 화면 한구석에 바닥 광검출기 창이 있어. 깜깜해. 다들 그 깜깜한 창을 보고 있어.”
“대전은 지금 몇 시야.”
3초. “오전 열한 시. 센터장님이 시계실에 있대. 선우진이라는 사람이 세종에서 왔대. 둘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 센터장님이 화분 하나를 들고 내려갔대. 시계실에. 사진 보내 줄게.”
사진이 온다. 시계실. 수소 메이저 여섯 대. 그 옆에 모니터 하나, 의자 두 개. 한 의자에 센터장님. 다른 의자에 선우진. 선우진은 김밥을 들고 있다. 센터장님은 무릎 위에 작은 화분 하나를 얹고 있다. 이름표가 붙어 있다. 사진이 작아서 글씨는 안 보인다.
열세 번째 화분이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본다. 그리고 화면을 닫는다. 지금 보면 안 될 것 같다.
두 시 반, 리드 대장과 왕징이 화면을 보는 동안 나는 잠깐 눈을 감는다. 잠은 오지 않는다. 대신 대전 시계실의 웅웅 소리를 떠올린다.
수소 메이저 여섯 대. 그 안에서 수소 원자들이 1초에 14억 2천만 번 남짓 뒤집힌다. 양성자와 전자가 같은 쪽을 봤다가 반대쪽을 봤다가. 나는 8년 동안 그 박자 옆에서 일했다. 그 박자가 우주 어디서나 똑같다는 걸 알았다. 교과서에서 배웠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진짜로 믿은 건 사흘 전 밤이었다. 계산기에 2³⁵가 뜬 순간.
어딘가에 누군가 있다. 혹은 있었다. 그들도 수소를 셌다. 우리가 세는 것과 똑같은 박자를. 그들의 시계실에도 웅웅 소리가 났을까. 그 소리 옆에서 누군가 숫자를 노트에 적었을까. 연필로.
그들은 그 박자로 문장을 썼다. 35, 7, 12. 우리는 그 문장을 읽었다. 이제 한 줄로 대답할 차례다. 같은 박자로.
2시 50분. 마지막 점검.
시계: 10⁻¹⁷, 박자 놓침 없음. 광섬유: 이상 없음. 중계위성: 0.04나노초. 루비듐: 0.05나노초. 라이다 방아쇠: 대기. 상자까지 거리: 137.81미터. 바닥 광검출기: 깜깜함. 바닥 중력계: 평평함. 노크 시각: D+12 03:01:22.6 (심장 기준)
리드 대장이 휴스턴을 연다.
“휴스턴, 자오선. 2차 응답 10분 전.”
3초. “자오선, 휴스턴. 확인.” 데이나 콜. 그리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덧붙일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덧붙이지 않기로 한 목소리다.
왕징이 보조석 옆에 쪼그려 앉는다. 리드 대장이 운전석에서 몸을 돌린다. 첫 노크 때와 같은 자리. 나는 손등을 본다. 줄 그은 숫자 하나, 그 옆의 숫자 하나.
줄 그은 23:00:48.6, 그 옆에 03:01:22.6.
착륙한 날 나는 이 상자를 끌어안고 달에 내렸다. 내 팔이 착륙 충격을 줄이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사람은 원래 그런다. 팔걸이를 쥔다고 비행기가 덜 흔들리는 건 아니다.
나는 보조석 손잡이를 쥔다.
3시 1분 15초.
20초.
22초.
라이다 출구 광검출기에 봉우리 하나. 예정에서 0.01나노초.
460.7나노초 뒤. 바닥 광검출기에 작은 봉우리 하나. 상자를 스친 우리 빛.
그리고.
나는 화면을 본다. 작은 봉우리 오른쪽. 1나노초, 2나노초, 10나노초, 100나노초. 화면을 넓힌다. 1마이크로초. 1밀리초. 1초.
아무것도 없다.
두 번째 봉우리가 없다.
바닥 중력계를 본다. 평평하다. 작은 혹이 없다. 그것이 숨을 들이쉬는 자리, 원래 박자의 100분의 1이 와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나는 센다. 하나, 둘, 셋.
스물넷.
천장의 레몬을 본다. 실 끝에 가만히 매달려 있다.
다시 센다. 스물넷.
레몬이 기울지 않는다.
또 스물넷.
선실이 아주 조용하다. 팬 소리. 그리고 세 사람의 숨소리.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리드 대장은 화면을 보고, 왕징은 레몬을 보고, 나는 손등을 본다.
다섯 번째 스물넷.
그것은 숨을 쉬지 않는다. 숨을 참는 게 아니다. 이건 다르다. 지난 두 번의 침묵 끝에는 늘 빛이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 낸 빛. 이 순간에, 이렇게. 그리고 숨. 지금은 그 빛이 없다. 그것은 정답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답을 냈으니까.
“설명.” 리드 대장이 말한다. 아주 낮게.
나는 그를 본다. 착륙한 날 이 사람은 시계 상태를 보고하라고 했다. 나는 시계는 정상이라고 했다. 속으로는 정상보다 더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흔들리는 건 시간이에요.
나는 레몬을 본다. 실 끝에 가만히, 똑바로 아래를 가리키는 플라스틱 레몬 하나와 고추 일곱 개. 달 중력이 가리키는 아래. 늘 그래야 했던 아래.
“이제 흔들리지 않아요.” 내가 말한다.
리드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체크리스트를 띄운다. 맨 아래 줄. PAYLOAD STATUS: NOMINAL. 그는 그 줄을 지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 입력한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읽는다.
SCIENCE: COMPLETE. — PARK H.
왕징이 내 어깨를 잡는다. 왼손으로. 아주 세게.
3시 9분, 클레르가 들어온다.
“하람.” 3초. 클레르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다. 울고 있다. “봉우리가 하나야. 두 번째가 없어. 여기 다 봤어. 2천 곳이 다 봤어. 아무도 말을 안 해. 관제실이 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야.”
3초. 숨을 들이켜는 소리.
“대전에서 센터장님이 메시지 보냈어. 너한테 전해 달래. 한 줄이야.” 클레르가 읽는다. “‘잘했다.’”
나는 그 세 글자를 생각한다. 30년 동안 서명을 아낀 사람. 말보다 침묵이 긴 사람. 그 사람이 세 글자를 보냈다.
그리고 선우진이 보낸 것도 있다고 했다. 사진 한 장. 반쯤 먹은 김밥. 아래에 한 줄.
확실해졌네.
나는 웃으려고 한다. 그런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게 나온다. 안경 안쪽이 뿌옇게 된다. 헬멧 바이저에 김이 서리던 그날처럼. 구덩이를 함께 파던 날, 숨이 차서. 오늘은 숨이 차지 않는다.
3초. “너 울어?” 클레르가 묻는다.
“안 울어.”
3초. “거짓말. 3초 늦게 들려도 다 들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클레르도 더 묻지 않는다. 대신 클레르가 운다. 38만 킬로미터 너머에서, 3초 늦게. 그 울음소리가 중계위성을 거쳐 로버 선실에 닿는다. 리드 대장은 앞창을 본다. 왕징은 내 어깨를 놓지 않는다.
천장의 레몬은 똑바로 아래를 가리킨다.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