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20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20장

달 뒷면, 구덩이 가장자리
다음 배가까지 39일
약 11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상자를 잰다.

138미터 아래 바닥에 놓아 둔 흰 중력계 상자. 라이다로 펄스를 쏘면 그 상자에서만 빛이 돌아온다. 그것은 듣는 동안 들어오는 빛을 세지 않는다. 그러니까 몇 번이고 재도 된다. 나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잰다. 펄스 천 발. 돌아온 빛의 시간을 평균 낸다.

상자 윗면까지 137.81미터. 상자 높이 0.31미터를 더하면 바닥까지 138.12미터.

돌을 떨어뜨려 잰 138미터보다 12센티미터 길다. 빛으로 0.4나노초. 고칠 것은 없다. 어젯밤 듣기 시작한 빛에도 0.4나노초가 더해졌고, 오늘 밤 노크할 빛에도 똑같이 더해진다. 둘은 서로 지워진다. 내가 보는 건 길이가 아니라 길이가 바뀌는지다. 137.81미터. 한 시간 전에도, 두 시간 전에도.

그 일이 끝나면 다른 고리를 확인한다. 시계, 광섬유, 중계위성, 루비듐, 방아쇠. 그리고 다시 상자. 그렇게 하루가 간다.


D+10은 조용하다.

해는 서쪽 하늘 50도쯤으로 내려왔다.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어졌다. 로버는 갈래길 따라 300미터 물러난 자리에 서 있다. 창밖 멀리 가장자리의 삼각대가 작게 보인다. 천장의 레몬은 어제 저녁 7시 29분 이후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왕징은 침상에서 계산을 돕는다. 왼손으로. 리드 대장은 두 시간마다 로버 상태를 점검한다. 배터리 잔량, 선실 온도, 이산화탄소. 선실은 29도다. 전력을 아끼느라 냉방을 줄였다. 다들 땀을 흘린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난드는 착륙선에서 방열판을 옮긴다. 오전 한 번, 오후 한 번. 옮길 때마다 시계 온도를 읽어 준다.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까지. 그 숫자는 절차서의 한계 안에 있다. 시계는 땅속에서 10⁻¹⁷로 세고 있다.

오후에 클레르가 숫자 하나를 보내온다. ‘시계 사람들’의 공개서한 서명이 1,140곳이 됐다. 그리고 그 서명들 옆에 실시간 화면이 하나 열려 있다고 했다. 우리 사슬의 숫자가 고리마다 그대로 흘러나가는 화면. 시계, 중계위성, 루비듐, 상자까지의 거리. 세계 곳곳의 시간 연구소에서 그 숫자를 보고 있다고.

“대전에서도 봐.” 클레르가 말한다. “센터장님이 시계실에 모니터를 하나 더 들여놨대. 수소 메이저 옆에.”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한다. 두꺼운 문 두 개 너머, 1년 내내 0.1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방. 웅웅 소리. 그 방 한구석에 모니터 하나. 그리고 그 앞에 스포이트를 든 사람 하나.

위원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금지하지도, 허락하지도 않는다. 데이나 콜은 정해진 시각마다 정해진 교신만 한다. 나는 그 침묵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리드 대장은 안다는 얼굴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까.


밤 열 시. 마지막 점검.

시계: 10⁻¹⁷, 박자 놓침 없음. 광섬유: 이상 없음. 중계위성 양방향 시간 전달: 0.04나노초. 루비듐: 1분마다 당기는 중, 0.05나노초. 라이다 방아쇠: 대기. 출구 광검출기 정상. 상자까지 거리: 137.81미터, 마지막 측정 9시 40분. 바닥 광검출기: 깜깜함. 바닥 중력계: 평평함.

한 가지를 더 맞춰 둔다. 응답의 빛은 상자 바로 옆 맨바닥을 겨눈다. 그것의 표면에 닿아야 하니까. 그런데 빛줄기는 퍼진다. 138미터를 내려가면 지름 30센티미터쯤 된다. 그 가장자리가 상자 모서리를 아주 조금 스친다. 상자 옆에 바닥을 향해 놓아 둔 광검출기는 옆에서 들어오는 빛도 조금은 받는다. 상자에서 튕겨 나온 우리 빛을 아주 조금 받아 적을 수 있다. 다만 상자 모서리는 바닥보다 31센티미터 높다. 우리 빛은 바닥에 닿기 1.03나노초 전에 그 모서리를 스친다. 그리고 모서리에서 검출기까지, 바닥에서 검출기까지 빛이 가는 길도 다르다. 그 둘은 상자와 받침대의 치수로 계산해 둔다. 그러면 우리 빛이 바닥에 닿은 순간이 그 자리에서 찍힌다. 사슬을 거치지 않고.

혹시 그것이 다시 빛을 낸다면, 같은 검출기에 그것의 빛도 찍힌다.

나는 그 생각을 한 번 하고, 그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10시 50분. 리드 대장이 휴스턴을 연다.

“휴스턴, 자오선. 1차 응답 10분 전.”

3초. “자오선, 휴스턴. 확인.” 그리고 3초쯤 뒤에 한 마디가 더 온다. “관제실 전원이 듣고 있습니다.”

10시 55분. 왕징이 침상에서 일어나 보조석 옆에 쪼그려 앉는다. 부목 낀 팔을 가슴에 붙이고. 화면이 보이는 자리다.

10시 59분. 리드 대장이 운전석에서 몸을 돌린다. 그도 화면을 본다.

나는 손등을 본다. 23:00:48.6


23시 0분 40초.

45초.

48초.

라이다 출구 광검출기에 봉우리 하나가 선다. 예정 시각에서 0.02나노초. 빛이 나갔다.

460.7나노초 뒤.

바닥 광검출기에 아주 작은 봉우리 하나. 상자를 스친 우리 빛. 광자 몇십 개. 우리가 두드렸다.

그리고.

2.11나노초 뒤. 같은 검출기에, 두 번째 봉우리. 모서리 높이 1.03나노초를 더하고 검출기까지의 길 차이 0.50나노초를 빼면, 우리 빛이 바닥에 닿은 순간으로부터 1.58나노초 뒤.

크다. 광자 수천 개. 3나노초짜리. 이틀 전 광검출기 기록에서 본 그 모양.

그것이 빛을 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다. 화면 속 두 봉우리를 본다. 작은 것, 그리고 큰 것. 바닥에서 잰 둘 사이의 틈 1.58나노초는 빛이 47센티미터를 가는 시간이다. 사람 팔 하나 길이.

이건 시범이다. 이 순간에, 이렇게. 우리 빛은 그 순간보다 먼저 왔다.

틀렸다.

“하람 씨.” 왕징이 말한다. 아주 낮게. 왕징도 봤다.

바닥 중력계 화면에 작은 혹 하나가 선다. 원래 박자의 100분의 1.

“24초.” 내가 말한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하다. “큰 거 와요.”

리드 대장이 운전대를 잡는다. 왕징이 침상 손잡이를 잡는다. 나는 보조석 손잡이를 잡는다. 손잡이를 쥔다고 로버가 덜 흔들리는 건 아니다. 그래도 쥔다.

24초.

로버가 아래로 짓눌린다. 그리고 옆으로도 끌려간다. ‘아래’가 갑자기 남서쪽으로 6도 넘게 기운다. 몸이 좌석에서 한쪽으로 쏠린다. 천장의 레몬이 실 끝에서 날아오를 듯이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고추 일곱 개가 서로 부딪힌다.

그리고 놓인다. 로버가 튄다. 바퀴 여섯 개가 땅을 다시 찾는다.

두 배. 한 배 반. 원래대로.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피해.” 리드 대장이 말한다.

왕징이 왼손으로 계기판을 훑는다. “로버 이상 없어요. 배터리 그대로. 선실 기밀 정상.”

“삼각대.”

나는 라이다를 깨운다. 상자를 향해 펄스 백 발. 돌아온다. 137.81미터. 겨냥이 살아 있다. 삼각대는 버텼다. 가장자리에서 5미터 물러나 세운 덕분에.

“삼각대 살았어요.”

“휴스턴에 보고합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그리고 나를 본다. “몇 분 필요합니까.”

나는 화면의 두 봉우리를 본다. 1.58나노초.

“모르겠어요.” 내가 말한다. “찾을 때까지요.”

“30분 드리겠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는 30분이라고 했다. 15분이 아니라. 나는 그 차이를 알아챈다. 그리고 알아챌 시간이 없다.


1.58나노초. 오차 0.05.

우리 빛이 1.58나노초 일찍 닿았다. 그것이 숨을 쉬기로 한 순간보다.

사슬을 거꾸로 짚는다. 고리마다.

라이다 방아쇠: 출구 광검출기가 잰 발사 시각, 예정에서 0.02나노초. 아니다.

가장자리에서 바닥까지: 그 몫은 듣기 시작한 빛과 노크한 빛에서 서로 지워진다. 그리고 사슬 밖에서도 이미 잡혔다. 우리 빛이 바닥에 닿은 순간이 바닥 검출기에 직접 찍혔으니까. 그리고 그것의 빛도 같은 검출기에 찍혔다. 1.58나노초는 바닥에서 바닥까지의 거리다. 빛이 내려간 시간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사슬이 틀린 게 아니다. 사슬은 내가 정한 순간에 정확하게 빛을 보냈다. 틀린 건 내가 정한 순간이다.

루비듐: 그래도 짚는다. 0.05나노초. 아니다. 중계위성: 0.04. 아니다. 시계: 10⁻¹⁷. 아니다.

남는 건 계산이다. 내 계산.

4,096 곱하기 2³⁵틱. 정의값. 틀릴 수 없는 숫자.

그것을 바닥의 시간으로 셌다. 그리고 바닥과 내 시계의 높이 차 762미터를 넣어 내 시계의 시간으로 바꿨다. 1.36나노초.

762미터. 1.36나노초.

나는 그 줄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그 아래 줄을 읽는다. 내가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쓴 두 글자가 있는 줄.

박자 = 2³⁵틱 (정의). 잰 주기와의 차 +1.6×10⁻¹⁴, 오차 안. 버린다.

1.6×10⁻¹⁴.

곱한다. 27시간 반. 9만 9천 83초.

1.59나노초.


손이 차가워진다.

내가 버린 숫자다. 이틀 동안 잰 박자의 주기가 정의값보다 1.6×10⁻¹⁴만큼 길었다. 오차가 그 두 배 반이라서 버렸다. 오차 안. 지난 8년 동안 수천 번 그랬던 것처럼. 잡음은 버린다. 그게 측정이다.

그런데 그 잡음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밤 바닥의 두 봉우리와 같은 방향, 같은 크기로.

너는 큰 걸 찾는 사람이 아니야. 남이 다 빼고 남은 찌꺼기에서 이상한 걸 찾는 사람이지.

클레르가 그라스의 주방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며 한 말이다. 오늘 밤 나는 남이 아니라 내가 뺀 찌꺼기를 들여다본다.

박자가 길다. 그것의 시계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늦게 간다. 시계가 늦게 가는 이유는 하나다. 더 낮은 곳에 있다.

얼마나 낮은가. 1.58나노초를 27시간 반으로 나누면 1.6×10⁻¹⁴. 그걸 달 중력으로 나누고 빛의 속도 제곱을 곱한다.

880미터 남짓. 오차를 넣으면 850에서 910 사이.

바닥보다 900미터쯤 아래.

나는 노트를 거꾸로 넘긴다. 닷새 전 로버 안에서 쓴 쪽. 30, 20, 10, 5킬로미터 정차 지점의 숫자들. 수직 성분과 수평 성분의 비. 1 대 30, 1 대 20, 1 대 10, 1 대 5.

깊이 1킬로미터 남짓.

그것이 숨을 쉬는 근원. 산 하나만 한 무엇이 24초마다 움직이는 자리. 땅 표면에서 1킬로미터 아래. 바닥에서는 862미터 아래.

그것이 박자를 세는 곳은 바닥이 아니다.

바닥은 귀다. 빛을 듣는 귀. 우리가 손바닥을 댄 그것의 표면. 하지만 그것의 시계는 거기 있지 않다. 그것의 심장에 있다. 1킬로미터 아래, 내가 닷새 전에 깊이를 잰 바로 그 자리. 그 심장의 시계는 바닥의 시계보다 862미터만큼 늦게 간다. 그것은 자기 심장의 시간으로 2¹²박자를 셌다. 나는 그것의 귀의 시간으로 셌다.

1.62 곱하기 862, 나누기 빛의 속도 제곱. 1.554×10⁻¹⁴. 곱하기 9만 9천 83초.

1.54나노초.

잰 값은 1.58. 오차 0.05. 차이 0.04. 오차 안.

이번에는 버리지 않는다. 노트에 적는다. 남은 0.04ns: 오차 안. 그것 자신의 무게일 수도. 그것이 품은 질량이 만드는 중력 우물. 그만큼 시간이 조금 더 늦게 갈 테니까. 시계로 그것의 무게를 단다. 박자를 만드는 만큼의 질량이 심장에 가만히 앉아 있다면 그 우물만으로 0.45나노초는 더 늦었어야 한다. 0.04라면, 그것은 생각보다 가볍거나 넓게 퍼져 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고개를 든다. 리드 대장과 왕징이 나를 보고 있다. 30분에서 11분이 남았다.

“설명.” 리드 대장이 말한다.

“그것의 시계는 바닥에 있지 않아요. 1킬로미터 아래, 근원에 있어요. 우리가 정차하면서 깊이를 잰 데요.” 내가 말한다. “거기는 바닥보다 862미터 낮아요. 낮은 데 있는 시계는 늦게 가요. 27시간 반이면 1.54나노초. 저는 바닥의 시간으로 셌어요. 그래서 1.54나노초 일찍 두드렸어요.”

“고칠 수 있습니까.”

“높이만 바꾸면 돼요. 바닥 말고 심장으로.”

왕징이 노트를 들여다본다. 고개를 돌려서.

“하람 씨.” 왕징이 말한다. “만약에 높이 보정을 아예 안 했으면요.”

나는 그 질문을 이미 계산했다.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시계는 착륙 지점 땅속에 있다. 심장은 표면에서 1킬로미터 아래, 표면은 착륙 지점보다 900미터 높으니까, 심장은 착륙 지점보다 100미터쯤 낮다.

“0.18나노초 틀렸을 거예요.”

“그럼 맞았겠네요. 1틱 안쪽이니까.”

“아마도요.”

왕징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리드 대장도. 선실에 팬 소리만 들린다.

계산을 하나도 안 했으면 맞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생각한다. 그리고 노트에서 지운다. 0.18나노초는 운이다. 1.54나노초는 이유다. 시범의 빛이 보여 준 1.58을 그대로 더해도 됐을 거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숫자는 쓰지 않는다. 운으로 맞힌 대답은 다음 질문에서 틀린다. 이유를 알고 맞힌 대답은 다음에도 맞는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를 생각한다. 착륙한 날 리드 대장이 시계는 기다려도 된다고 했을 때, 나는 시계는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다리면 그건 시계가 아니라고.

오늘 밤 나는 1.54나노초를 기다려야 했다.


“다시 합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질문이 아니다.

“듣기 시작 펄스를 지금 쏘면.” 나는 숫자를 센다. “두 번째 노크는 D+12 새벽 3시 1분. 떠나야 하는 시한이 8시니까 다섯 시간 남아요.”

“휴스턴.”

3초. “자오선, 휴스턴. 1차 응답 결과 수신했습니다. 위원회가.” 데이나 콜이 말을 멈춘다. 3초. “위원회는 2차 시도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신했습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현장 판단으로 2차 듣기 시작 펄스를 쏩니다. 23시 30분 0초. 이상.”

그는 송신 버튼에서 손을 뗀다. 휴스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방아쇠 화면을 연다. 23시 30분 0초 0. 그리고 새 노크 시각을 계산한다. 4,096 곱하기 2³⁵틱, 이번에는 심장의 시간으로. 심장은 내 시계보다 100미터 낮다. 그만큼 늦게 간다. 0.18나노초를 더한다. 바닥까지 빛이 내려가는 460.7나노초를 뺀다.

D+12 03:01:22.6

손등의 숫자 옆에 새 숫자를 적는다. 매직으로. 첫 숫자에는 줄을 긋는다. 지우지 않는다. 틀린 숫자는 지우지 않고 줄을 긋는다. 그게 내가 아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23시 29분 55초.

리드 대장이 나를 본다. 손등의 두 숫자를 본다. 줄 그은 숫자와 새 숫자.

“하람.” 그가 말한다.

나는 그를 본다. 회색 눈. 착륙한 날 헬멧 바이저 너머로 봤던 그 눈. 문서로 세 번 반대한 사람. 4g에서 30초를 버틴 기록을 반대 문서 맨 아래에 그대로 적은 사람. 스포이트 봉지에 용도 없음이라고 쓰고 승인한 사람.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 박 박사. 탑재물. PAYLOAD.

“한 번 더 합니다.” 그가 말한다.

23시 30분 0초.

라이다 출구에 봉우리 하나. 460.7나노초 뒤, 우리 빛이 그것의 귀에 닿는다.

천장의 레몬이 실 끝에서 흔들리다가, 다음 박자 자리에서 멈춘다.

초인종이 다시 숨을 참는다. 듣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심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