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나는 굉음을 기대했다. 영화에서처럼 쿵 하고 모든 게 흔들리고, 누군가 “터치다운!”을 외치고, 관제실에서 박수가 터지는 장면 말이다. 실제로는 다리 네 개가 차례로 땅에 닿고, 선체가 아주 살짝 기울었다가 다시 서고, 엔진이 꺼진다. 그게 끝이다. 소리는 거의 없다. 바깥에는 공기가 없으니 소리를 실어 나를 것도 없다. 진동만 좌석 등받이를 타고 척추로 올라온다.
관제실의 박수도 없다. 이곳에서는 지구와 직접 통화할 수 없다. 우리가 내린 곳은 달의 뒷면이고, 이쪽 하늘에는 지구가 한 번도 뜬 적이 없다. 우리 목소리는 달 너머 궤도에 떠 있는 중계위성을 한 번 거쳐야 집에 닿는다.
“자오선, 착륙 완료. 엔진 정지.”
리드 대장이 말한다. 감정이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다. 이 사람은 아마 자기 결혼식에서도 이렇게 말했을 거다. 신부, 입장. 음악, 정지.
“착륙 확인.” 왕징이 자기 화면을 훑는다. “선체 기울기 1.8도. 착륙 다리 네 개, 하중 모두 정상.”
“다들 살아 있죠?” 아난드가 묻는다. “의사로서 확인하는 거예요. 박 박사, 숨은 쉬고 있어요?”
숨은 쉬고 있다. 아주 조금씩. 내 옆 좌석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아기가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기가 아니라 상자다.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 높이 45센티미터의 알루미늄 상자. 지구에서는 52킬로그램이었고 여기서는 9킬로그램이 채 안 나간다. 완충 거치대에 끈 여덟 개로 묶여 있고, 나는 착륙하는 동안 두 팔로 그 상자를 감싸고 있었다. 리드 대장은 내 팔이 착륙 충격을 줄이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했다. 사람은 원래 그런다. 비행기가 흔들리면 팔걸이를 꽉 쥐지 않나. 팔걸이를 쥔다고 비행기가 덜 흔들리는 건 아니다.
상자 안에는 이터븀 원자 몇천 개와 레이저 여섯 대, 진공 챔버 하나, 자기장 차폐막 세 겹, 그리고 내 인생의 7년이 들어 있다.
이건 시계다. 정확히는 휴대용 광격자시계. 손목시계보다 아주 조금 더 정확하다. 얼마나 조금이냐면, 이 시계를 우주가 시작될 때 켜 놓았다면 지금까지 1초도 틀리지 않았을 정도다. 소수점 아래 열여덟째 자리까지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열여덟째 자리 때문에 나는 지금 지구에서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의 뒤통수에 와 있다.
나는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한국 표준시를 관리하던 연구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키게 만드는 게 내 일이었다. 은행 서버, 지하철 신호, 방송국 정시 뉴스, 주머니 속 휴대폰 시계까지. 꽤 중요한 일이다. 아무도 모를 뿐이다. 시계가 맞을 때는 아무도 시계 생각을 안 하니까.
내 운동 능력을 말하자면, 중학교 체력장에서 오래달리기를 걸어서 완주했다. 원심분리기 훈련 첫날에는 4g에서 기절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훈련 교관이 ”…벌써요?”라고 말하던 목소리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 있다. 지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보다 수천 배 빠르게. 그리고 49일 뒤면 그 속도가 다시 두 배가 된다. 그 원인이 이곳에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고, 그걸 읽을 수 있는 도구가 이 상자 하나뿐이다.
그래서 내 첫 번째 질문은 이거다. 이 시계, 살아 있나?
“착륙 후 점검 두 시간.” 리드 대장이 체크리스트를 띄운다. “선체 기밀, 전력, 열 제어, 통신 순서로. 박 박사는 대기.”
“시계부터 켜야 해요.”
“시계는 기다려도 됩니다.”
“시계는 기다리지 않아요.” 내가 말한다. “기다리면 그건 시계가 아니죠.”
왕징이 코웃음을 친다.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는 모르겠다. 왕징은 둘 사이를 정확히 반반으로 섞는 재주가 있다.
리드 대장이 나를 본다. 헬멧 바이저 너머의 눈이 회색이다. 해군 시험비행사 출신이고, 비행시간이 6천 시간이 넘고, 달에 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리고 내가 이 임무에 타는 걸 처음부터 반대했다. 대놓고, 문서로, 세 번.
“선체 기밀 확인이 끝나면 켜십시오.” 그가 말한다. “15분 드리겠습니다.”
15분이면 나쁘지 않다. 그동안 나는 상자를 바라본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찌그러진 데도 없고, 상태 표시등은 대기 모드의 주황색이다. 하지만 겉이 멀쩡한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시계에서 제일 연약한 부품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유리 원통이다.
초안정 기준 공진기. 거울 두 장을 아주 정확한 거리에 마주 세워 놓은 장치다. 레이저 빛이 그 사이를 수십만 번 오가는 동안 딱 한 가지 색만 살아남는다. 그 색이 이 시계의 심장 박동이다. 거울 사이 거리가 원자 하나 지름의 몇백만 분의 1만큼만 변해도 심장 박동이 틀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방금 그 심장을 로켓에 실어 38만 킬로미터를 날려 보낸 뒤 달에 내리꽂았다.
15분이 지난다. 정확히는 15분 4초. 리드 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데 4초가 걸렸다.
나는 상자를 끈에서 풀어 작업대로 옮긴다. 달 중력에서 52킬로그램짜리 상자를 드는 건 묘한 경험이다. 근육은 무거운 걸 들 준비를 하는데 상자가 너무 쉽게 따라 올라온다. 하마터면 천장에 박을 뻔했다. 아난드가 옆에서 조용히 손을 받친다.
“감사해요.”
“이거 떨어뜨리면 우리 그냥 집에 가는 거죠?”
“아뇨. 이거 떨어뜨리면 여기 온 이유가 없어지는 거예요.”
아난드가 손을 거두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다.
전원을 넣는다. 화면에 시동 순서가 뜬다. 광격자시계를 켜는 건 컴퓨터 부팅과 비슷하다. 한 단계가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거기서 멈춘다. 다만 컴퓨터는 30초면 켜지고, 이건 운이 좋으면 한 시간이다.
1단계: 진공. 진공 챔버 안의 압력을 확인한다. 이온 펌프 전류로 보면 2×10⁻⁹파스칼. 통과. 사실 걱정 안 했다. 달 표면 바깥이 원래 진공에 가깝다. 이 시계가 평생 이렇게 편하게 숨 쉬어 본 적은 없을 거다.
2단계: 냉각 레이저. 원자를 붙잡으려면 먼저 식혀야 한다. 이터븀 원자는 실온에서 초속 수백 미터로 날아다닌다. 이걸 레이저로 사방에서 밀어서 거의 멈춰 세운다. 빛으로 원자를 식힌다니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빛에는 운동량이 있다. 굴러가는 공에 탁구공을 수없이 던지면 공도 언젠가는 멈춘다. 그런 원리다.
레이저 여섯 대 가운데 다섯 대가 초록불이다. 통과.
3단계: 시계 레이저. 여섯 번째가 시계 레이저다. 아까 말한 유리 원통, 기준 공진기에 주파수를 고정해야 하는 레이저. 화면에 빨간 글씨가 뜬다.
CLOCK LASER: LOCK FAILED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문제 있어요?” 왕징이 자기 체크리스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묻는다.
“시계 레이저가 공진기에 안 잡혀요.”
“쉽게 말하면요?”
“심장이 안 뛴다는 거예요.”
이번에는 왕징이 고개를 든다.
당황하지 말자. 나는 당황하면 숫자를 센다. 지금은 숫자를 볼 차례다.
레이저 고정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공진기가 망가졌다. 거울이 금 갔거나 정렬이 틀어졌다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상자를 덮고 지구에 사과 메일을 쓰는 일뿐이다. 둘째, 레이저 자체가 망가졌다. 이것도 나쁘다. 셋째, 레이저 빛이 공진기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건 고칠 수 있다.
그러니 셋째이기를 빌면서 확인한다.
공진기를 통과해 나오는 빛의 세기를 본다. 정상이라면 2.1밀리와트. 지금은 0.3밀리와트.
빛이 들어가긴 들어간다. 줄었을 뿐이다. 거울이 망가졌다면 아예 안 나오거나, 이상한 모양으로 나와야 한다. 공진기 투과 모드의 모양을 카메라로 본다. 깨끗한 동그라미 하나. 거울은 멀쩡하다.
나는 숨을 내쉰다. 언제부터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진기는 살아 있다. 레이저도 살아 있다. 그 둘을 잇는 길이 틀어졌다. 레이저에서 나온 빛은 광섬유를 타고 와서 작은 렌즈를 거쳐 공진기로 들어간다. 이 렌즈를 붙잡고 있는 부품이 광섬유 커플러다. 손톱만 한 금속 마운트에 나사 세 개가 박혀 있다. 아마 착륙 충격에 이게 미세하게 비틀어졌을 거다. 그래서 빛이 공진기 입구를 아주 살짝 빗나간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상자를 열고, 나사 세 개를 조금씩 돌려서, 빛을 다시 입구에 맞춘다.
문제도 간단하다. 여기서 ‘조금씩’은 나사 한 바퀴의 50분의 1 정도다. 그리고 나는 지금 우주복 장갑을 낀 채로, 달에서, 이걸 해야 한다.
“선실 압력 다 찼어요. 장갑 벗어도 돼요.” 아난드가 말한다.
아, 맞다.
장갑을 벗는다. 맨손이 선실 공기에 닿는다. 차갑고 건조하고, 화약 냄새 비슷한 게 난다. 달 먼지 냄새라고 들었다. 우리가 입고 들어온 건 아직 없을 텐데. 착륙할 때 엔진 바람에 날린 먼지가 어딘가 틈으로 들어온 걸까. 나중에 생각하자. 그것도 문제 목록에 적어 둔다.
상자 윗판을 연다. 나사 여덟 개. 육각 렌치로 하나씩 푼다. 다섯 번째 나사가 렌치 끝에서 빠져나와 떨어진다.
여기서 달 중력의 기묘함을 처음으로 실감한다. 나사가 떨어진다. 그런데 천천히 떨어진다. 꿈속에서처럼, 녹화 영상을 느리게 돌린 것처럼, 은빛 나사가 작업대 모서리를 향해 둥실 내려간다. 지구에서라면 쨍 하고 바닥에 닿아 굴러가 영원히 사라졌을 나사다. 여기서는 아난드가 손을 뻗어 공중에서 낚아챌 시간이 있다.
“이 동네 마음에 드네요.” 아난드가 나사를 건넨다.
“나사 떨어뜨리기엔 최고죠.”
리드 대장이 처음으로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다. 회색 눈은 그대로다.
커플러를 찾는다. 공진기를 감싼 열 차폐 상자 옆, 광섬유가 들어오는 자리. 나사 세 개가 삼각형으로 박혀 있다. 하나를 돌리면 빛이 위아래로, 하나를 돌리면 좌우로, 마지막 하나는 앞뒤 초점을 움직인다.
투과광 세기를 화면에 크게 띄운다. 0.3밀리와트.
첫 번째 나사를 시계 방향으로 아주 조금 돌린다. 0.28. 반대다. 반시계 방향. 0.31. 0.35. 0.42. 좋다. 계속. 0.61. 0.80. 1.1.
손이 떨린다. 1.0. 떨리지 말자. 숨을 멈춘다. 1.2.
이런 작업에는 리듬이 있다. 대학원 시절 지하 실험실에서 밤새 이 짓을 했다. 정렬은 기술이 아니라 인내라고 지도교수님이 말했다. 빛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들어 주라고.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나사를 돌리면 숫자가 대답하고, 그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빛이 제자리를 찾는다.
두 번째 나사. 1.5. 1.7. 세 번째 나사. 1.8. 1.9. 다시 첫 번째. 2.0.
2.04밀리와트.
착륙 전 값의 97퍼센트. 이 정도면 됐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상자에게 완벽을 요구할 상황이 아니다. 이 상자는 방금 달에 내렸다. 나도 지금 완벽하지 않다.
윗판을 덮고 나사 여덟 개를 조인다. 다섯 번째 나사는 아난드가 들고 있다가 건넨다. 다시 시동 순서를 돌린다.
CLOCK LASER: LOCKED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신 작업대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린다. 아난드가 박수를 친다. 왕징이 “잘했어요” 한마디만 한다. 왕징에게서 처음 들은 칭찬이다. 받아 적어 두고 싶다.
리드 대장은 아무 말도 안 한다. 체크리스트의 한 줄에 표시를 할 뿐이다. 그 줄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나는 안다. PAYLOAD STATUS: NOMINAL. 짐 상태: 정상. 나는 그에게 여전히 짐이다. 괜찮다. 짐도 할 일은 해야 한다.
4단계: 원자 포획. 냉각 레이저 여섯 줄기가 교차하는 한가운데, 작은 빛 구름이 생긴다. 모니터 카메라로 보면 초록색 반딧불이 한 덩어리 같다. 이터븀 원자 몇천 개가 빛에 갇혀 거의 멈춰 서 있다. 온도는 절대영도보다 수십 마이크로켈빈 높은 정도. 지금 이 선실 안에서 가장 차가운 곳은 저 반딧불 구름이다. 달 뒷면의 그늘보다도, 크레이터 바닥 영구음영지역보다도 차갑다.
5단계: 격자. 원자를 빛으로 만든 달걀판 위에 올린다. 서로 마주 보는 레이저 두 줄기가 만드는 정상파의 골마다 원자가 하나씩, 혹은 몇 개씩 들어앉는다. 그러면 원자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 측정하기 좋은 상태다.
6단계: 시계. 시계 레이저의 빛을 원자에 쏜다. 이터븀 원자에는 아주 특별한 에너지 계단이 하나 있다. 그 계단을 오르려면 딱 정해진 진동수의 빛이 필요하다. 1초에 518조 2,958억 3,659만 번 남짓 진동하는 빛. 진동수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원자는 계단을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원자가 계단을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 보면서 레이저 진동수를 맞추면, 레이저가 자연이 정해 놓은 박자에 묶인다.
이게 시계다. 우리가 만든 박자가 아니라, 우주 어디서나 똑같은 원자의 박자. 그걸 세는 장치.
화면에 숫자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제 할 일은 비교다.
시계 하나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계는 자기가 맞는지 틀리는지 모른다. 시계는 다른 시계와 견줘 봐야 의미가 생긴다. 내 시계는 지금 중계위성을 거쳐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계와 신호를 주고받고 있다. 그리고 그쪽 시계는 다시 파리와 워싱턴과 도쿄의 시계들과 이어져 있다. 지구 위의 원자시계 수백 대가 같이 맞춰 놓은 시각, 그게 세계 표준시다.
그런데 달의 시계는 지구의 시계와 같은 빠르기로 가지 않는다.
이건 고장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빨리 흐른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이고, 지구 중력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달의 시계는 지구의 시계보다 하루에 약 56마이크로초 빨리 간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지구에 있을 때보다 아주 조금 빨리 늙고 있다. 80년을 여기서 살면 1.6초쯤 더 늙는다. 화장품 광고에 써먹기는 어려운 숫자다.
내가 기대하는 건 그 56마이크로초다. 정확히는 내가 계산해 온 이 착륙 지점의 기대값, 하루에 56.02마이크로초. 시계가 그 값을 내놓으면 이 시계는 정상이고, 대전과의 연결도 정상이고, 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데이터를 모은다. 리드 대장과 왕징은 선실 점검을 마치고 첫 선외 활동 계획을 짠다. 아난드는 우리 넷의 혈압을 잰다. 내 혈압이 제일 높다. 놀랄 일은 아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평균을 낸다.
하루 56.02마이크로초.
딱 맞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맞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다. 됐다. 시계는 살아 있다. 연결도 살아 있다. 이제부터는.
이제부터는 습관이다. 평균만 보고 끝내지 않는다. 평균은 거짓말을 잘한다. 평균이 맞는다고 데이터가 깨끗한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던 대로, 평균을 빼고 남은 찌꺼기를 본다. 잔차. 신호에서 기대값을 빼고 남은 것. 깨끗한 시계라면 잔차는 아무 무늬 없는 잡음이어야 한다. 텔레비전 화면의 지지직처럼.
잔차를 그래프로 띄운다.
지지직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 장비 탓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이상한 게 보이면 제일 먼저 의심할 건 나 자신이다. 이건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다.
잔차가 아주 작게 출렁인다. 크기는 10⁻¹⁶ 수준. 시계의 박자가 1경 분의 1만큼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되풀이한다. 혼자 보면 잡음과 구분하기 어려운 크기다. 하지만 한 시간치를 주기별로 쪼개서 겹쳐 보면 무늬가 선다. 규칙적인 무늬다.
주기를 잰다. 24.19초.
내 장비 목록을 연다. 24초 주기로 움직이는 게 있나? 이온 펌프는 아니다. 펌프는 연속으로 돈다. 열 제어 회로는 0.5초 간격이다. 냉각 레이저 순환은 1.2초. 측정 주기는 0.8초. 선체 환기 팬은 1분에 한 번 방향을 바꾼다. 아난드의 혈압계? 웃기지만 확인한다. 아니다.
24.19초짜리는 없다.
선체가 흔들리는 걸까? 착륙선 다리가 땅에 자리 잡으면서 미세하게 진동할 수도 있다. 왕징에게 선체 진동 센서 자료를 부탁한다. 왕징이 이유를 묻지 않고 보내 준다. 이 사람과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진동 센서에도 24초 무늬는 없다.
그렇다면 내 시계가 아니다. 선체도 아니다.
시계의 박자를 바꿀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온도, 자기장, 진동, 레이저 세기.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하나가 남는다. 아까 말한 것. 아인슈타인. 시계의 빠르기는 그 자리의 중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시계의 빠르기가 24초마다 출렁인다면, 이 자리의 중력이 24초마다 출렁인다는 뜻이다.
달의 중력이. 24초마다.
나는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크기의 출렁임을 만들려면 땅 밑에서 얼마나 큰 질량이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그 숫자를 보면 오늘 밤 잠을 못 잘 것 같다. 그래도 손가락이 먼저 계산기를 연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숫자가 나온다. 나는 화면을 끈다.
“박 박사.” 리드 대장이 부른다. “시계 상태 보고하십시오.”
나는 잠깐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시계는 정상이다. 정상보다 더 정상이다.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잘 돌아가고 있다.
문제는 시계가 아니다.
“시계는 정상이에요.” 내가 말한다. “흔들리는 건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