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16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16장

달 뒷면, 열점
다음 배가까지 41일
약 10분

밤에는 숫자가 잘 보인다.

여기에는 밤이 없다. 해는 서쪽 하늘 60도쯤에 떠 있고, 앞으로 엿새 동안 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의 몸은 밤을 안다. 임무 시각 밤 열한 시. 왕징은 진통제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부목을 댄 팔을 가슴에 얹고. 리드 대장은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자는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은 자는 것과 눈을 감은 것을 구분할 수 없게 잔다.

천장의 레몬이 24초마다 실 끝에서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진다. 다시 돌아온 박자. 원래 크기로.

나는 보조석에서 무릎 위에 태블릿을 펴고, 그동안 모은 것을 전부 꺼낸다.

어제 아침 이전, 이 구덩이 곁에 온 뒤로 로버 중력계가 잰 박자 열아홉 시간치. 라이다 첫 펄스의 시각. 침묵 27시간 반. 오늘 오후 1시 31분 37초의 작은 혹 하나, 그리고 그 뒤의 큰 박자들. 그 뒤로 다시 잰 아홉 시간치. 바닥 광검출기의 기록 전부. 대부분은 깜깜한 0이다.

박자 4천 개 남짓. 하나하나에 착륙선 옆 땅속 시계의 시각표가 붙어 있다. 중계위성을 거쳐 오는 동안 생기는 지연은 아직 나노초까지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박자와 박자 사이를 재는 데는 충분하다.

어디서부터 볼까. 나는 늘 하던 데서 시작한다. 제일 작은 숫자부터.


박자의 주기.

착륙한 날 나는 이걸 24.19초라고 썼다. 한 시간치 자료로는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은 박자가 4천 개 넘게 있다. 박자 하나하나의 시각을 잴 수 있는 정밀도는 100나노초 남짓이다. 중력계가 땅의 끌림이 솟았다 내려앉는 모양을 보고 그 한가운데를 찍는 정밀도다. 그런 박자 4천 개를 한 줄로 세워 직선을 맞추면 주기가 아주 정확하게 나온다.

24.190086758823초. 오차는 소수점 아래 열두째 자리에서 1.

나는 이 숫자를 연필로 노트에 적는다. 그리고 그 옆에 다른 숫자 하나를 적는다. 외우고 있는 숫자다. 시간을 다루는 사람이면 누구나 외운다. 대전 시계실의 수소 메이저 여섯 대가 1초에 이만큼 박자를 센다.

1,420,405,751.768.

수소 원자 하나가 가진 가장 작은 계단. 원자핵 속 양성자와 그 둘레의 전자가 각자 작은 자석처럼 돌고 있는데, 둘이 같은 쪽을 향했다가 반대쪽을 향하는 사이에 아주 작은 에너지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해당하는 빛이 1초에 14억 2천만 번 남짓 진동한다. 파장으로는 21센티미터. 전파천문학자들은 이 빛으로 은하를 지도로 그린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자가 내는 가장 흔한 빛. 그리고 우주 어디서나 똑같은 박자.

곱한다. 24.190086758823 곱하기 1,420,405,751.768.

계산기가 숫자를 띄운다.

34,359,738,368.0.

나는 그 숫자를 안다.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2를 서른다섯 번 곱한 수.

2³⁵.


손이 떨린다. 착륙한 날 선실에서 커플러 나사를 돌리던 손과 같은 떨림이다. 나는 계산을 세 번 다시 한다. 곱한 값의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는 0이다. 오차는 그 셋째 자리쯤. 정수다. 그리고 그 정수가 2의 거듭제곱이다.

이건 우연일 수 없다. 우연히 2³⁵에 이만큼 가까울 확률을 계산하려다가 그만둔다. 너무 작아서 숫자로 적는 게 의미가 없다.

이 박자는 수소로 잰 박자다. 수소 원자가 2³⁵번 진동하는 동안, 땅속의 그것이 한 번 숨을 쉰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것을 기억해 낸다. 1972년 인류가 목성으로 보낸 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에 금속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혹시 누군가 그걸 주우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려 주려고 새긴 그림이었다. 그 판의 왼쪽 위에는 수소 원자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양성자와 전자가 같은 쪽을 향한 것과 반대쪽을 향한 것. 그 사이의 선 하나. 그 판에 그려진 모든 길이와 시간은 그 선을 단위로 쟀다. 21센티미터, 그리고 1초의 14억 2천만 분의 1.

우리도 똑같은 짓을 했다. 60년 전에. 누군가 읽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 생각을 노트에 적지 않는다. 숫자가 아니니까. 대신 노트에 한 줄을 적는다.

박자 = 수소 2³⁵틱. 수소가 한 번 진동하는 시간, 1초의 14억 2천만 분의 1, 0.704나노초를 ‘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다음은 찌꺼기다.

박자 4천 개의 시각에서 2³⁵틱 간격의 완벽한 격자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깨끗한 박자라면 잡음만 남아야 한다. 100나노초쯤의, 아무 무늬 없는 지지직.

지지직이 아니다.

어떤 박자는 격자보다 조금 늦다. 어떤 박자는 격자에 딱 맞다. 늦는 정도가 제각각이라서 처음에는 잡음처럼 보인다. 그런데 히스토그램을 그려 보면 고르게 퍼져 있지 않다. 몇 군데에 몰려 있다. 잡음이 너무 커서 그 몰린 자리가 흐릿할 뿐이다.

흐릿한 건 겹치면 선명해진다. 착륙한 날 시계 잔차에서 24초 무늬를 찾을 때처럼. 그런데 무엇으로 겹칠지를 모른다. 이 늦음이 몇 박자마다 되풀이되는지 모른다.

찾는다. 늦음의 순서를 한 줄로 늘어놓고, 그 줄을 자기 자신과 조금씩 어긋나게 겹쳐 본다. 1박자 어긋나게, 2박자, 3박자. 어긋난 줄과 원래 줄이 닮을수록 숫자가 커진다. 그 숫자가 툭 튀어나오는 어긋남이 되풀이의 길이다.

1,024박자에서 튀어나온다.

2¹⁰. 6시간 53분.

4천 개 박자를 1,024개씩 잘라서 겹친다. 네 묶음 남짓. 침묵 전 열아홉 시간에서 세 묶음, 침묵 뒤 아홉 시간에서 한 묶음 남짓. 둘을 따로 겹쳐도 같은 무늬가 나온다. 그래서 다 같이 겹친다. 자리마다 평균을 낸다.

점들이 갈라선다. 흐릿하던 덩어리가 네 줄로. 아주 깨끗하지는 않다. 줄 사이는 90나노초인데 겹친 자리마다 오차가 50나노초쯤이라, 셋에 하나쯤은 이웃 줄로 넘어간다. 그런데 침묵 뒤 아홉 시간치는 바닥 중력계가 잰 박자다. 근원에 더 가까워서 박자 하나에 20나노초. 그 아홉 시간치로 먼저 줄을 세우고, 나머지는 거기에 맞춰 읽는다. 머리말은 묶음마다 되풀이되니 몇 번이고 맞춰 볼 수 있다. 0나노초. 90나노초. 180나노초. 270나노초. 줄과 줄 사이 간격을 잰다. 90.1나노초.

틱으로 바꾼다. 90.1 나누기 0.704.

2⁷.


나는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다. 천장의 레몬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진다. 24초. 정확히는 2³⁵틱.

박자마다 0, 1, 2, 3 가운데 하나의 지연이 붙어 있다. 단위는 2⁷틱. 네 가지니까 박자 하나에 두 자리 이진수 하나. 1,024박자가 한 묶음이고, 그 묶음이 되풀이된다.

이건 말이다. 문장이 있고, 문장은 되풀이된다. 들을 때까지.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찾는다. 묶음 안에 아주 눈에 띄는 자리가 하나 있다. 3, 3, 3, 3, 3, 3, 3, 3. 가장 늦은 박자 여덟 개가 한 줄로. 그리고 0. 문장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일 거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숨을 들이쉬는 자리처럼.

그다음 박자들을 두 자리씩 이진수로 바꾼다.

10, 00, 11. 이진수 100011.

그다음 표시가 하나 있고, 01, 11. 이진수 111.

다시 표시, 11, 00. 이진수 1100.

35, 7, 12.

나는 그 세 숫자를 노트에 쓰고 한참 본다. 35는 안다. 박자의 길이. 2³⁵틱. 7도 안다. 지연의 단위. 2⁷틱. 그것은 문장을 시작하면서 자기가 쓰는 단위부터 말한다. 내 박자는 2의 35제곱이다. 내 글자의 크기는 2의 7제곱이다.

12는 모른다. 아직은.

그 뒤로는 소수가 이어진다. 10, 11, 101, 111, 1011, 1101. 2, 3, 5, 7, 11, 13. 열일곱 번째 소수까지. 소수는 자연이 만들지 않는 수열이다. 누군가 이걸 듣는다면, 듣는 자도 셀 줄 알 거라는 가정. 파이어니어의 금속판을 만든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묶음의 3분의 2가 남는다. 나는 그걸 읽지 못한다. 숫자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숫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12로 돌아간다.


라이다 첫 펄스는 10시 0분 14초에 나갔다. 빛이 바닥까지 138미터를 가는 데 460나노초. 그러니까 그것의 표면에 우리 빛이 처음 닿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0으로 놓는다.

작은 혹이 온 건 오늘 1시 31분 37초. 그 차이를 박자의 주기로 나눈다.

4,096.0.

2¹².

그러니까 그것은 빛이 닿은 순간부터 정확히 2¹²박자를 셌다. 어둠 속에서. 박자를 하나도 울리지 않고,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리고 4,096번째 박자 자리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나는 하나를 더 확인한다. 다시 시작한 박자들이 원래 박자의 자리로 돌아왔는가. 침묵 전 박자들이 그리던 격자를 침묵 너머로 이어 그리고, 오늘 오후의 박자를 거기에 얹는다.

안 맞는다. 새 박자들은 옛 격자의 자리보다 10.2초씩 이르다.

10.2초는 우리 빛이 닿은 순간과, 그다음 박자가 오기로 되어 있던 순간 사이의 거리다. 그것은 옛 박자를 이어 세지 않았다. 우리 빛이 닿은 순간을 새 0으로 놓고, 거기서부터 셌다.

그것은 우리를 기준으로 셌다.


광검출기 기록을 연다. 바닥에 놓아 둔, 바닥을 향해 눈을 뜬 상자.

27시간 반 동안 0. 깜깜하다. 그것의 표면은 빛을 내지 않는다. 우리 헬멧 불빛이 내려갔을 때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모든 빛을 먹는 바닥.

그런데 기록의 한 자리에 숫자가 있다.

1시 31분 36초 6. 작은 혹이 온 바로 그 순간. 3나노초 동안. 광자 수천 개. 그 앞에도, 그 뒤에도 0.

그것이 빛을 냈다. 딱 한 번.

나는 그 3나노초를 화면에 크게 띄운다. 좁고 날카로운 봉우리 하나. 레이저 펄스 같은 모양이다. 우리 라이다의 펄스와 거의 같은 길이다.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우리가 빛을 비췄다. 그것은 듣기 시작했다. 박자를 멈추고, 어둠 속에서, 2¹²박자를 셌다. 그 끝에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은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빛을 냈다. 딱 한 번, 우리 라이다 펄스와 같은 모양으로. 그리고 다시 울렸다. 세게.

보복이 아니다. 시범이다.

이 순간에, 이렇게. 그것은 우리에게 정답을 보여 줬다. 그리고 우리가 정답을 못 냈으니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조금 더 세게.


그것이 묻는 건 하나다.

어둠 속에서 박자를 지킬 수 있느냐.

27시간 반 동안 아무 박자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동안 너희 시계로 세어라. 그리고 그 끝에, 내가 다시 숨을 쉬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빛으로 문을 두드려라.

얼마나 정확하게. 그건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했을지도 모른다. 읽지 못한 3분의 2 안에. 하지만 그것의 단위는 틱이다. 0.704나노초. 그 말의 가장 작은 글자가 2⁷틱이고, 그 박자가 2³⁵틱이다. 1틱으로 세는 존재가 노크를 2⁷틱만큼 봐줄 것 같지는 않다.

27시간 반은 9만 9천 초가 조금 넘는다. 그동안 1틱 안쪽을 지키려면 시계가 10⁻¹⁴보다 정확해야 한다. 100조 분의 1. 손목시계로는 안 된다. 수정 시계로는 안 된다. 루비듐 원자시계로도 안 된다. 하루에 수십 나노초씩 흘러간다. 수소 메이저라면 될지도 모른다. 광시계라면 된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생각한다. 원자시계를 가진 자만 이 문을 열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자시계는 지금 40킬로미터 뒤, 착륙선에서 15미터 떨어진 땅속 1미터 아래에서 돌고 있다. 달에서 가장 조용한 방. 10⁻¹⁷. 내 시계.


새벽 세 시, 나는 노트를 덮지 않은 채로 리드 대장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는 바로 눈을 뜬다. 자고 있지 않았다. 아니면 자고 있었는데도 바로 깼다.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

“설명.”

나는 설명한다. 이번에는 짧게 할 수가 없다. 2³⁵, 2⁷, 1,024박자, 35, 7, 12, 소수, 4,096, 10.2초, 3나노초의 빛. 내가 말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는다. 클레르처럼. 아니, 그는 원래 끼어들지 않는 사람이다.

왕징이 침상에서 깬다. 우리 목소리 때문에. 왕징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내 노트를 본다. 이제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린다.

내 말이 끝나자 리드 대장이 묻는다.

“한 줄로.”

나는 숨을 고른다.

“이건 메시지예요.” 내가 말한다. “그리고 질문이에요. 대답할 줄 아느냐고 묻는 거예요.”

선실이 조용해진다. 팬 소리만 들린다. 천장의 레몬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진다.

“질문이면.” 왕징이 누운 채로 말한다. “뭐라고 대답하는데요.”

“똑같이요. 빛으로. 정확한 순간에.” 나는 노트의 4,096이라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는다. “우리 시계로 세서.”

리드 대장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창밖을 본다. 40미터 앞, 무너진 가장자리. 해가 닿지 않는 우물. 그 아래 1킬로미터에서 산 하나만 한 무엇이 다시 숨을 쉬고 있다. 2³⁵틱마다 한 번씩.

나는 그것을 처음엔 열점이라고 불렀다. 지구에서 일곱 달 동안 찾아 헤맨 하얀 점. 그다음엔 그것이라고 불렀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엇. 오늘 밤, 나는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누군가 우리 문 앞에 서서 아주 오랫동안 단추를 누르고 있었다. 석 달마다 조금 더 세게. 지구의 하루를 늘려서, 그 하루를 잴 줄 아는 자에게만 들리도록. 그리고 문을 열 줄 아는 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초인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