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 전날 밤에는 할 일이 없다.
할 일은 그 전에 다 끝난다. 짐은 사흘 전에 실렸다. 시계는 일주일 전에 실렸다. 나는 그 상자를 완충 거치대에 묶는 걸 직접 봤다. 끈 여덟 개. 마지막 끈을 조인 기술자가 나를 돌아보며 엄지를 들었다. 나는 그 끈 여덟 개의 장력을 하나씩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해 줬다. 웃지 않고.
승무원은 발사 2주 전부터 격리된다. 바이러스 하나라도 우주선에 실려 가면 안 되니까. 우리가 지내는 곳은 우주센터 바닷가의 낡은 2층집이다. 60년 넘게 우주비행사들이 발사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집이라고 했다. 거실에는 오래된 소파와 오래된 탁자가 있고, 벽에는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서명이 액자로 걸려 있다. 나는 그 서명들을 하나씩 읽었다. 몇몇은 달에 갔고,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 집에 손님이 올 수 있는 건 마지막 날 저녁 한 번뿐이다. 검사를 다 받은 가족 한두 명. 리드 대장의 딸이 왔다. 열아홉 살쯤 돼 보였다. 아버지를 닮아 말이 없었다. 둘은 바닷가 쪽 베란다에서 한 시간 동안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거의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왕징의 남편은 화상으로 왔다. 아난드의 가족은 일곱 명이 화면 하나에 끼어 앉아 동시에 말했다.
저녁은 아난드가 했다. 격리 숙소의 부엌은 작았고, 식재료는 검역을 통과한 것뿐이었다. 그는 그걸로 렌틸콩 수프를 끓였다. 어머니의 수프라고 했다. 향신료가 모자라서 어머니가 보면 화를 낼 거라고 했다.
“내일부터 3주 동안 우리는 봉지에 든 걸 먹어요.” 아난드가 냄비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냄비에 든 걸 먹는 거예요. 의사로서 처방하는 거예요.”
왕징은 수프를 두 그릇 먹었다. 그리고 빈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고추가 모자라요.”
“달에 가면 고추 많이 줄게요.” 아난드가 말했다. 왕징은 그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나도 몰랐다. 그 뜻은 열하루 뒤 로버 천장에서 알게 됐다.
리드 대장은 한 그릇을 먹었다. 일정한 속도로. 다 먹고 나서 아난드에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아난드가 그 말을 듣고 냄비 앞에서 한참 웃었다. 다섯 달 동안 리드 대장이 밥을 두고 한 말 가운데 가장 긴 말이었다고.
나한테는 센터장님이 왔다.
그는 태평양을 건너 열네 시간을 날아왔다. 그리고 격리 검사 두 번을 받았다. 코를 두 번 찔린 얼굴로 현관에 서 있었다. 정장이 아니라 연구원 작업복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 KRISS라고 적힌.
“들어오세요.”
“바닷가로 가자.” 그가 말했다. “실내는 갑갑해.”
우리는 집 뒤쪽 모래밭으로 내려갔다. 해는 이미 졌다. 대서양이 어두웠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가 물러났다. 플로리다의 7월 밤은 덥고 끈적했다. 대전의 여름 밤과 비슷했다. 매미 대신 파도 소리가 날 뿐이었다.
우리는 물가에서 2미터 떨어져 나란히 걸었다. 격리 규칙이었다. 2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 그는 그 규칙을 아주 정확하게 지켰다. 2미터 10센티미터쯤. 나는 그게 그 사람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10분쯤 걸었다. 정확히는 9분 40초. 나는 쟀다. 그가 내가 잴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선배한테서 문자가 왔어.” 그가 말했다.
“선배요?”
“1997년. 냉각기.”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도 멈췄다. 2미터 10센티미터를 유지한 채로.
“보험회사 다닌다고 하셨잖아요.”
“지금은 은퇴했어. 제주도에서 귤 농사 지어.” 그가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여 줬다. 2미터 밖에서는 글씨가 안 보였다. 그가 대신 읽었다. “‘진만아. 뉴스 봤다. 이번엔 냉각기 아니지?’”
“뭐라고 답하셨어요.”
“‘아닙니다, 선배님. 이번엔 달입니다.’” 그가 휴대폰을 넣었다. “그랬더니 이모티콘이 왔어. 귤 그림.”
나는 웃었다. 소리 내서. 바닷가에서, 발사 전날 밤에.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봤다.
“30년 동안 그 사람한테 연락 안 했어.” 그가 말했다. “내가 그 사람 오류를 찾았으니까. 찾은 건 맞는 일이었는데, 그 뒤로 내가 무슨 낯으로 연락을 해. 그래서 안 했어. 30년 동안.” 침묵.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했어. 이번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그게 이 사람에게 필요한 말인지 몰랐다.
“서명을 1년 사이에 두 번 했어.” 그가 말했다. “30년 동안 아낀 걸. 아껴 둔 게 쓸 데가 있더라.”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한참 동안 파도를 봤다. “그런데 하람아.”
“네.”
“나는 네가 틀릴까 봐 무서웠던 적은 없어. 이번에는.” 그가 말했다. “네가 맞을까 봐 무서워.”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동쪽 수평선은 깜깜했다.
달은 아직 없었다. 보름에서 엿새 지난 달은 자정을 한참 넘겨야 뜬다. 왼쪽이 눈에 띄게 남은, 기울어 가는 달. 그 달이 몇 시간 뒤 저 수평선 위로 올라올 것이다. 지금은 별뿐이었다. 대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만큼 많은 별.
그 수평선 아래 어딘가에 45억 년 동안 같은 얼굴이 있다. 그 뒤통수는 지금 깜깜한 밤이다. 보름 무렵 해를 등지고 있던 뒷면에는 아직 해가 들지 않았다. 치올코프스키 크레이터 북동쪽 비탈도 지금 밤이다. 그 비탈 위에서, 영하 180도로 얼어붙은 땅 한가운데, 지름 1킬로미터 남짓한 자리가 400도 넘게 데워져 있을 거다. 지구에서 이 시각 그 자리를 보는 눈은 궤도선 두 대뿐이다.
엿새 뒤 거기에 해가 뜬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다.
“저 아래 어디쯤 있지.” 센터장님이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뒤통수.”
“네.”
“40킬로미터.”
“38킬로미터까지 차로 가요. 나머지는 걸어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이 뜰 자리를 오래 봤다. 그는 원래 하늘을 잘 안 보는 사람이다. 나처럼. 시계를 보면 하늘이 언제 밝아질지 다 나와 있으니까.
파도가 발밑까지 밀려왔다가 물러났다. 밀물이었다. 아까보다 물가가 몇 미터 올라와 있었다.
“저게 브레이크야.” 내가 말했다.
“알아.”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겨서 혹을 만들고, 지구가 그 혹을 끌고 돌면서 브레이크가 걸려요. 45억 년 동안 그렇게 하루가 길어졌어요. 처음에는 하루가 몇 시간밖에 안 됐대요.”
“알아.” 그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계속해.”
나는 계속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이 파도가 지구 전체에서 쉬지 않고 3.6테라와트를 태운다. 그 열로 바다가 아주 조금 따뜻해진다. 그게 정상의 하루가 길어지는 방식이다. 100년에 2.3밀리초. 아무도 모르게, 파도 소리처럼.
그런데 지금 지구가 잃는 에너지는 1만 8천 테라와트다. 오늘 하루는 원래보다 41밀리초 길었다. 그리고 그건 이 파도 때문이 아니다. 파도는 작년과 똑같이 부서진다. 똑같은 소리로.
“그러니까 저 파도는 이제 아무 잘못이 없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센터장님이 처음으로 웃었다. 아주 작게. 소리 없이. 어둠 속이었지만 그게 웃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점퍼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비닐 지퍼 봉지. 그 안에 스포이트 하나. 투명한 플라스틱 몸통에 고무 머리. 센터장실 창가에서 매일 아침 열두 개의 화분을 돌던 그 스포이트와 똑같은 거였다.
“화분 하나 새로 들였어.” 그가 말했다. “열세 개야. 열세 번째가 네 거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물 줄 거야. 한 방울 적게.”
“그럼 이건요.”
“예비.” 그가 봉지를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2미터 규칙 때문에 손으로 건넬 수가 없었다. 그는 봉지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한 걸음 다가가서 그걸 주웠다. “가져가.”
“달에는 물 줄 데가 없어요.”
“그러니까 가져가. 빈손으로 가는 것보단 나아.” 그가 말했다. 그리고 3초쯤 있다가, 아주 오래된 말을 다시 했다. “조금씩 자주 주는 게 한꺼번에 많이 주는 것보다 오차가 작아.”
나는 봉지를 들여다봤다. 스포이트의 눈금은 0.1밀리리터 단위였다. 그는 30년 동안 이걸로 물을 줬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자주. 그게 그 사람이 아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었다.
“감사해요.”
“고마워할 일 아니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 뒷말은 하지 않았다. 하나도 안 즐거울 거라는 말. 이번에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을 돌려 집 쪽으로 걸었다. 2미터 10센티미터를 유지한 채로.
현관 앞에서 그를 배웅했다. 그는 차에 타기 전에 한 번 돌아봤다.
“하람아.”
“네.”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차 문을 열었다.
“왜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가 차 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열네 시간이나.”
그는 차 문에 손을 얹은 채로 생각했다. 10초.
“보고서에 서명한 사람이 끝까지 봐야지.” 그가 말했다. “내 이름이 첫 장에 있어.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 장까지 봐야 돼. 그게 서명이야.”
“그럼 끝까지 보세요.”
“그럴 거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했다.
“내일 아침은 먹고 타.”
나는 웃었다. 그는 그 말을 리드 대장에게서 들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했다. 시간을 다루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말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차가 떠났다.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을 켰다. 한국은 다음 날 점심때였다. 선우진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화면 속의 그는 관측소 마당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다. 뒤로 22미터 전파망원경 접시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내일이지.”
“응. 거기 시각으로는 오늘 밤 아홉 시.”
“우리 망원경 내일 밤에 국제 공동 관측 들어가. 지구 도는 거 재는 거.” 그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네가 떠나는 동안에도 지구는 돌고, 우리는 그거 잴 거야. 네가 달에 있는 동안 하루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돌아오면 다 알려 줄게.”
“고마워.”
“고마울 거 없어. 원래 하는 일이야.” 그는 김밥을 씹었다.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선우진이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는 걸 나는 대학원 시절 이후 처음 봤다.
“하람아.”
“응.”
“돌아와. 김밥 사 놓을게.”
그 말만 하고 그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화면을 끄고 한참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아난드의 가족 통화는 끝나 있었다. 왕징은 방에 들어갔다. 바닷가 쪽 베란다를 내다보니 리드 대장이 혼자 서 있었다. 딸은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는 난간에 두 손을 얹고 동쪽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달이 뜰 자리를.
나는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가 돌아봤다.
“주무시지 않으세요.”
“곧 잡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수평선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두 번째입니다. 저기.”
“처음에는 어떠셨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10초쯤. 센터장님의 침묵과는 종류가 달랐다. 센터장님은 침묵하는 동안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침묵하는 동안 무언가를 접어서 넣는다. 꺼낼 필요가 없는 곳에.
“조용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생각보다.”
엿새 뒤 착륙선이 달에 닿았을 때 내가 맨 처음 한 생각이 그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따님이 아버님을 닮았네요.”
그가 아주 잠깐 나를 봤다. 회색 눈. 그리고 처음으로,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가 움직였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두웠으니까.
“말 안 하는 거 말입니까.”
“네.”
“그 애 엄마를 닮았으면 지금쯤 박 박사한테 질문을 스무 개 했을 겁니다.” 그가 난간에서 손을 뗐다. “잘 주무십시오, 박 박사.”
“대장님도요.”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란다에 남아 수평선을 조금 더 봤다. 달은 몇 시간 더 있어야 뜬다. 나는 그걸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엿새 뒤면 그 위에 서 있을 테니까.
방에 돌아와서 나는 개인 소지품 가방을 열었다. 한 사람당 1.5킬로그램. 그 안에 든 것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이 준 육각 렌치 한 자루. 클레르가 보낸 그라스 관측소 배지. 선우진이 보낸 김 한 봉지. 아직 안 뜯었다. 노트 한 권, 연필 세 자루.
나는 저울에 스포이트 봉지를 올렸다. 4그램.
개인 소지품 목록에 한 줄을 더 적어야 했다. 목록은 리드 대장이 관리한다. 나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내가 봉지를 내밀자 그가 받아서 봤다.
“이건 뭡니까.”
“스포이트요. 4그램.”
“용도.”
나는 잠깐 생각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시계 정비용이라고. 그는 믿었을 거다. 아니, 믿지 않았을 거다.
“없어요.” 내가 말했다. “선물이에요.”
그는 봉지를 다시 봤다. 그리고 목록 맨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그 줄을 읽었다.
박하람 — 스포이트 1개, 4g. 용도: 없음.
그는 그걸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봉지를 나에게 돌려줬다.
“승인.” 그가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여섯 시간을 잤다. 정확히는 여섯 시간 12분. 착륙선에 묶일 그 상자를 생각하지 않고, 달의 뒤통수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숫자도 세지 않고. 파도 소리가 창문을 넘어왔다. 아무 잘못이 없는 파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