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우물의 깊이를 재는 방법은 지구와 다르다.
지구에서는 돌을 떨어뜨리고 소리를 기다린다. 퐁당, 혹은 탁.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을 재면 깊이가 나온다. 여기서는 소리가 없다. 공기가 없으니까. 돌이 바닥에 닿아도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빛을 쓴다. 왕징의 라이다. 레이저 펄스를 쏘고, 바닥에 맞고 돌아오는 빛이 걸린 시간을 잰다. 로버 지붕 기둥에 달린 장비인데, 머리 부분만 떼어서 삼각대에 올릴 수 있다. 원래는 로버가 지나갈 길의 바위를 미리 보는 눈이다.
오전 아홉 시, 리드 대장과 내가 슈트포트로 나간다. 로버 꽁무니에 두 개가 나란히 있다. 한 번에 둘. 왕징은 안에 남아 라이다와 윈치를 맡는다. 나는 등판 해치를 열고 우주복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몸이 들어가면 등판이 닫히고, 우주복이 로버 벽에서 떨어진다. 그다음은 그냥 밖이다. 문을 연 기억도 없이 달 위에 서 있다.
현지 정오가 가깝다. 해는 72도, 이 위도에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그림자가 발밑에 웅크린다. 땅은 하얗게 바랜 회색이다. 우리는 북동쪽 바퀴살 위에 있다. 발밑 땅은 100도 남짓, 햇빛이 데운 보통의 달 땅이다. 그런데 15미터 오른쪽, 15미터 왼쪽은 400도다. 눈으로는 똑같은 땅이다. 우주복 다리 바깥쪽 온도계가 그 차이를 안다. 오른쪽 종아리가 왼쪽보다 4도 높다. 오른쪽 부채꼴이 더 뜨겁다.
몸무게가 24초마다 늘었다 준다. 바로 위에서는 22퍼센트. 걸을 때 그게 박자가 된다. 발을 내딛는 순간 무거워지면 발이 땅에 박히고, 가벼워지는 순간 디디면 몸이 너무 멀리 뜬다. 나는 박자를 세면서 걷는다. 하나, 둘, 셋. 스물넷에서 발을 멈추고 기다린다. 무거워졌다 가벼워지면 다시 걷는다. 리드 대장은 박자를 세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그런데 넘어지지 않는다.
구덩이 가장자리 3미터 앞에 삼각대를 세운다. 그 위에 라이다 머리를 얹고, 그 옆에 도르래 달린 철제 A자 틀을 박는다. 로버 앞쪽 윈치에서 나온 줄이 땅을 기어 와 그 도르래에 걸린다. 리드 대장이 틀의 다리 넷을 레골리스에 하나씩 박는다. 30센티미터 아래부터 단단하다는 걸 그는 안다. 착륙 사흘 뒤 나와 함께 시계 구덩이를 팔 때 배웠으니까. 아니, 그는 그 전에 알았다. 나한테 가르쳐 줬을 뿐이다.
가장자리에 선다. 그리고 아래를 본다.
어제 로버 창에서는 가장자리에 가려 안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보인다. 맞은편 벽에 초승달 모양의 햇빛이 아주 깊이 내려가 있다. 120미터 넘게. 해가 이 위도에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그 아래 마지막 십몇 미터와 바닥만 새까맣다. 햇빛이 닿은 벽 바로 아래가 칼로 끊은 듯 검다. 우리 쪽 벽은 그늘이다. 벽은 곧다. 칼로 자른 단면 같다. 층이 보인다. 회색, 조금 더 짙은 회색, 다시 회색. 수십억 년 동안 운석이 쌓아 올린 땅을 누군가 동그랗게 도려냈다. 그 단면이 손을 뻗으면 닿을 데 있다.
“쏩니다.” 왕징이 무전으로 말한다.
라이다는 1초에 천 번 쏜다. 빛이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펄스마다 잰다. 왕징은 그 숫자를 화면에 띄워서 읽어 줄 것이다.
”…”
무전이 조용하다. 3초. 5초.
“돌아오는 게 없어요.”
리드 대장이 삼각대를 본다. 라이다 머리의 표시등은 초록색이다. 쏘고 있다.
“벽은요?” 내가 묻는다.
“벽은 와요. 비스듬히 쏘면 벽에서 돌아와요. 23미터, 31미터, 48미터.” 왕징이 숫자를 읽는다. “바로 아래로 쏘면 아무것도 안 와요. 바닥이 없는 것처럼.”
“바닥이 없을 수는 없어요.”
“알아요. 그러니까 바닥이 빛을 안 돌려보내는 거예요.”
나는 그 문장을 생각한다. 빛을 안 돌려보내는 바닥. 달 땅은 어둡지만 햇빛을 몇 퍼센트는 돌려보낸다. 라이다는 그 몇 퍼센트로 충분하다. 바위든 흙이든 얼음이든, 레이저 펄스를 받으면 뭔가는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으려면 그 바닥이 빛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른 걸 느낀다.
느끼지 못한다는 걸 느낀다.
몸무게가 늘지 않는다. 24초를 센다. 하나, 둘, 셋. 스물넷. 무거워져야 할 순간이 지나간다. 다시 센다. 스물넷. 아무 일도 없다. 1.62. 달의 중력. 착륙한 날 이후 처음으로, 내 몸이 그냥 달 위에 서 있다.
“왕징.”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높다. “중력계 봐 줘요.”
3초. “평평해요. 2분 전부터.”
2분 전. 라이다가 쏘기 시작한 때.
“레몬은요?”
무전 너머로 잠깐 침묵. 왕징이 천장을 올려다보는 시간.
“안 움직여요.”
리드 대장이 나를 본다. 금빛 바이저 너머로 그의 눈은 안 보인다. 그래도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설명.”
“빛을 먹었어요.” 내가 말한다. “그리고 조용해졌어요.”
“인과입니까. 우연입니까.”
“몰라요.” 나는 숨을 고른다. 산소 소모량이 지금 기준치의 1.4배를 넘고 있을 거다. “그런데 2분 차이로 우연이면, 그건 아주 운 나쁜 우연이에요.”
왕징이 라이다 기록을 거꾸로 훑는다. 첫 펄스가 나간 시각. 임무 시각 10시 0분 14초. 지구에서 쓰는 세계 표준시와 같다. 빛이 바닥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모른다. 바닥까지의 거리를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온 박자는 10시 0분 0초 무렵이었다. 그다음 박자가 와야 할 10시 0분 24초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첫 펄스와 첫 침묵 사이가 10초다. 24초 가운데 10초.
누군가 문 앞에서 불을 켰다. 그리고 안에서 울리던 소리가 멈췄다.
나는 그 생각을 무전으로 말하지 않는다. 추측이니까. 대신 숫자를 하나 부탁한다.
“깊이부터 알아야 해요.”
“빛이 안 돌아오는데요.” 왕징이 말한다.
“돌로요.”
리드 대장이 발밑에서 주먹만 한 돌 하나를 집는다. 아무 말 없이. 나는 가장자리에서 2미터 물러난 자리에 예비 중력계를 내려놓는다. 출발하던 날 아난드가 나한테 맡긴 그 상자. 그 안에는 땅의 떨림을 재는 지진 채널이 같이 들어 있다. 소리가 없는 곳에서는 땅에 귀를 대야 한다.
“떨어뜨립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셋, 둘, 하나.”
돌이 손을 떠난다. 천천히. 꿈속에서처럼. 그리고 벽의 햇빛 걸린 자리를 지나 새까만 아래로 사라진다. 나는 세지 않는다. 세는 건 중력계의 일이다. 리드 대장은 센다. 입술이 움직이는 게 바이저 너머로 비친다.
13초가 지난다. 14초.
“왔어요.” 왕징이 말한다. “13.5초. 지진 채널에 쿵 하나.”
나는 계산한다.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과, 바닥에서 생긴 떨림이 땅속으로 내 중력계까지 올라오는 시간을 합친 게 13.5초다. 땅속 떨림의 속도를 넣고 풀면 떨어진 시간은 13.05초. 달 중력에서 13.05초 동안 떨어지면.
“138미터.”
“138미터.” 리드 대장이 따라 말한다. “줄은 200미터입니다.”
벽은 뜨겁다. 그건 미리 알았다. 열 카메라로 내려다보면 벽 위쪽 20미터가 150도쯤이고,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식는다. 바닥은 모른다. 열 카메라도 바닥을 못 본다. 빛을 다 먹는 바닥은 자기 빛도 안 내는 걸까. 아니면 그냥 너무 깊어서일까.
150도의 벽에 둘러싸이면, 벽이 내는 열이 사방에서 온다. 햇빛을 사방에서 받는 것과 비슷하다. 우주복은 한쪽에서 오는 햇빛을 견디도록 만들었다. 사방에서 오는 건 아니다.
왕징이 로버 안에서 방법을 낸다. 로버 짐칸 단열 담요. 은빛 얇은 막을 수십 겹 겹친 담요다. 원래는 로버가 밤을 날 때 배터리를 덮는 용도다. 왕징이 그걸 두 장 잘라 시료 통과구로 내보내고, 우리는 서로의 몸에 망토처럼 두른다. 은빛 면이 바깥이다. 벽이 내는 열을 튕겨 내도록.
“망토 입은 우주비행사는 처음 봐요.” 3초 뒤에 아난드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40킬로미터 뒤에서 그는 우리 헬멧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다. “망토 입은 시계 박사는 더 처음이고.”
리드 대장이 내 망토 끈을 다시 묶는다. 내가 묶은 매듭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말없이 풀고 다시 묶는다. 그리고 우리 둘의 허리 고리를 윈치 줄에 건다. 하나의 줄에 두 사람. 그가 위, 내가 아래.
“하강 속도 초속 0.5미터.” 그가 말한다. “4분 반. 바닥 위 5미터에서 멈춥니다. 바닥을 먼저 봅니다.”
“네.”
“박 박사.”
“네.”
“지금이 제일 조용합니다.” 그가 말한다. “24초짜리가 멈춘 동안이.”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어제였다면 줄 끝에 매달린 우리 둘의 무게가 24초마다 늘었다 줄었을 거다. 위에서는 22퍼센트,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29퍼센트까지. 줄이 늘어났다 줄어들고, 우리는 고무줄 끝의 추처럼 튀었을 거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그것이 숨을 참고 있는 동안이, 그 품 안으로 내려가기에 가장 안전한 때다.
“내립니다.”
가장자리를 넘는다. 발이 허공에 뜬다. 줄이 팽팽해진다. 그리고 천천히, 벽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처음 60미터는 햇빛 속이다. 맞은편 벽에 해가 비스듬히 걸려 있고, 그 빛이 우리가 매달린 한가운데까지 들어온다. 우리 쪽 벽은 그늘이다. 60미터를 지나자 우리 몸이 그늘로 들어간다. 맞은편 벽의 햇빛은 그 뒤로도 한참 더 내려간다. 헬멧 불빛을 켠다. 리드 대장도 켠다. 두 줄기 하얀 빛이 벽을 훑는다. 벽의 층이 지나간다. 회색, 짙은 회색, 회색. 그리고 어떤 깊이에서 층이 끝난다. 그 아래는 매끈하다. 녹았다 굳은 것처럼.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것처럼.
망토 안이 덥다. 우주복 냉각수가 바쁘게 돈다. 손목 화면 숫자를 본다. 산소 소모량, 기준치의 1.5배. 리드 대장이 무전으로 그 숫자를 읽는다. 내 화면이 그의 화면에도 뜬다.
“1.5입니다.”
“알아요.”
“숨을 세십시오. 박자 말고 숨을.”
나는 숨을 센다. 넷 들이쉬고, 넷 내쉰다. 대전 시계실의 웅웅 소리를 떠올린다. 1초에 14억 2천만 번. 숨이 조금 느려진다. 1.4.
60미터. 80미터. 벽이 식는다. 망토 안이 조금 시원해진다. 100미터. 헬멧 불빛이 아래를 향한다. 빛줄기가 어둠 속으로 곧게 뻗는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빛은 바닥에 닿고 있다. 그래야 한다. 이제 바닥까지 40미터도 안 남았으니까. 그런데 빛이 닿은 자리가 안 보인다. 하얀 동그라미가 생겨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빛줄기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그냥 사라진다.
“정지.” 리드 대장이 말한다. 줄이 멈춘다. 133미터. 바닥 위 5미터.
우리는 줄 끝에 매달려 아래를 본다. 헬멧 불빛 두 줄기가 바닥을 겨눈다. 바닥은 검다. 검은 게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벽은 불빛을 받아 회색으로 빛나는데, 벽이 끝나는 자리부터 아래로는 빛이 다 사라진다. 마치 우리가 우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별이 없는 우주.
“바닥이 보입니까.” 리드 대장이 묻는다.
“안 보여요. 그런데 있어요.” 내가 말한다. “벽이 거기서 끝나요.”
그는 3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왕징에게 말한다.
“1미터씩.”
바닥은 단단하다.
부츠가 닿는 순간 알았다. 레골리스가 아니다. 가루가 일지 않는다. 미끄럽지도 않다. 아스팔트처럼, 아니 그보다 더 고르게 단단하다. 나는 무릎을 굽혀 장갑 낀 손바닥을 바닥에 댄다.
손목 화면의 장갑 온도계가 숫자를 띄운다. 41도. 따뜻하다. 사람 몸보다 조금 따뜻하다.
헬멧 불빛을 바로 아래로 비춘다. 내 장갑이 보인다. 흰 장갑, 회색 먼지, 은빛 망토 끝. 장갑 아래는 아무것도 없다. 장갑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손바닥에는 단단한 바닥이 닿아 있다. 눈은 없다고 하는데 손은 있다고 한다.
먼지가 없다. 그걸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달에는 어디나 먼지가 있다. 45억 년 동안 운석이 바위를 부숴 만든 가루가 모든 것을 덮고 있다. 우리 착륙선 다리에도, 로버 방열판에도, 내 우주복 무릎에도. 그런데 이 바닥에는 없다. 내 장갑에서 떨어진 몇 알을 빼면. 그 몇 알이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검은 허공 위에 떠 있는 은빛 점들처럼.
착륙한 날 선실에서 나는 계산을 하나 하고 화면을 껐다. 이 출렁임을 만들려면 땅속에서 얼마나 큰 질량이 움직여야 하는가. 5천조 킬로그램. 산 하나. 다음 날 나는 그 숫자를 선실 사람들에게 말했고, 다들 조용해졌다.
지금 나는 그 산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 우주복 장갑 한 장 너머로.
그것이 얼마나 큰지 나는 모른다. 이 40미터 동그라미는 그것의 아주 작은 창이다. 바닥은 벽 아래로도 이어진다. 장갑으로 벽과 바닥이 만나는 자리를 더듬어 보면, 벽이 바닥 위에 얹혀 있는 게 아니라 바닥이 벽 밑으로 계속 들어간다. 그것의 표면 위에 달의 땅이 138미터 쌓여 있고, 누군가 그 땅을 동그랗게 도려내 이 창을 냈다.
빛을 먹는 창.
시간이 없다. 리드 대장이 손목을 두 번 두드린다. 20분.
나는 허리에 매단 가방을 연다. 대전에서 시계 예비 부품으로 챙겨 온 고속 광검출기 하나. 원래는 레이저 두 대의 빛을 겹쳐서 박자를 재는 부품이다. 나노초보다 짧은 빛의 깜빡임도 받아 적는다. 그걸 작은 받침대에 올려 바닥을 향하게 놓는다. 빛을 먹는 바닥이 만약 빛을 낸다면, 이게 받아 적을 거다.
그 옆에 예비 중력계를 내려놓는다. 아까 가장자리에서 돌의 쿵을 들었던 그 상자. 리드 대장이 줄에 매달아 같이 내려 보냈다. 이 바닥은 그것에 가장 가까운 자리다. 박자가 다시 오면, 여기서 재는 박자가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할 거다. 수평을 맞춘다. 거품이 한가운데 온다. 이 바닥은 완벽하게 평평하다.
케이블 두 가닥은 우리가 내려오면서 위에서부터 풀어 온 것이다. 138미터. 위쪽 끝은 가장자리의 A자 틀을 지나 로버까지 이어져 있다. 아래쪽 끝을 두 상자에 꽂는다.
“신호 들어와요.” 로버 안에서 왕징이 말한다. “광검출기, 아무것도 안 와요. 깜깜해요. 중력계는 평평해요.”
리드 대장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나처럼 손바닥을 댄다. 3초쯤. 그리고 일어선다. 그가 왜 그랬는지 나는 묻지 않는다. 그도 말하지 않는다.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길은 4분 반이다. 벽이 아래로 내려간다. 매끈한 벽, 그다음 층이 있는 벽. 헬멧 불빛을 위로 돌리자 구멍 입구가 보인다. 하얀 동그라미. 그 너머 검은 하늘.
햇빛 속으로 머리가 올라온다. 바이저가 금빛으로 변한다. 리드 대장이 먼저 가장자리를 넘고, 내 손을 잡아 끌어올린다. 장갑과 장갑. 그의 손이 내 손보다 두 배는 크다.
“산소.” 그가 말한다.
손목을 본다. “34퍼센트 남았어요.”
“슈트포트까지 40미터. 충분합니다.” 그가 내 망토 끈을 풀어 준다. “잘 세셨습니다. 숨.”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숨이 차서. 그리고 그 말이 이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서.
슈트포트에서 빠져나와 로버 선실에 앉자 땀이 식는다. 왕징이 물 파우치를 건넨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팔만 뻗어서. 나는 받는다. 천장의 레몬이 실 끝에 가만히 매달려 있다. 아침부터 한 번도 기울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지구에서 클레르가 들어온다.
“하람.” 3초. 목소리가 떨린다. 클레르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나는 처음 듣는다. “하루가 늘어나는 게 멈췄어.”
나는 화면을 본다.
“오늘 하루치 지구 자전 자료가 나왔어. 위성 항법 자료로 몇 시간 단위로 끊어서 봤는데, 너희 시각으로 10시 무렵부터 하루 길이가 더 안 늘어나. 늘어나던 게 딱 멈췄어. 그 전까지 하루에 0.36밀리초씩 늘었거든. 지금은 0이야. 오차 범위 안에서 0.” 3초. “여기 관제센터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 쳤어. 어떤 사람은 울었어. 국장님이 위원회에 전화하러 나갔어. 하람, 너희가 껐어.”
리드 대장이 통신 패널을 본다. 왕징이 고개를 든다. 무전 너머 40킬로미터 뒤에서 아난드가 무어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기쁜 소리다.
나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
열 카메라 화면을 띄운다. 바퀴살 여섯 개, 부채꼴 여섯 개. 부채꼴은 아직 뜨겁다. 450도. 아침보다 20도쯤 식었다. 열은 땅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온다. 몇 시간이 걸릴 거다.
“클레르.” 내가 말한다. “끈 게 아닌 것 같아.”
3초. “무슨 소리야.”
“끈 거면, 끈 사람이 알아야 하잖아. 나는 아무것도 안 눌렀어. 빛을 비췄을 뿐이야.” 나는 천장의 레몬을 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가만히 있다. 숨을 참는 사람처럼. “멈춘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 같아.”
3초. 6초. 9초.
“뭘 기다리는데.” 클레르가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모르니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만은 모른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창밖, 40미터 앞에서 땅이 끝난다. 해가 닿지 않는 우물. 그 바닥에 내 광검출기가 바닥을 향해 깜깜한 눈을 뜨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1킬로미터에서, 산 하나만 한 무엇이 숨을 참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것은 세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시계를 들여다보듯이, 아주 정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