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10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10장

달 뒷면, 열점
다음 배가까지 43일
약 11분

이번에는 계산한다.

나는 네 시간을 잔다. 정확히는 세 시간 41분. 나머지는 침상에 누워 천장의 레몬을 본다. 레몬은 밤새 24초마다 남서쪽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아무도 세지 않는 박자를 나 혼자 센다. 그리고 세는 동안 계산한다.

로버의 기울기계는 중력이 가리키는 쪽을 아래라고 믿는다. 그 아래가 24초마다 2.2도씩 남서쪽으로 기운다. 기울기계는 그걸 로버가 기운 거라고 믿고, 안테나는 그 믿음을 따라 2.2도씩 엉뚱한 하늘을 본다. 중계위성은 그 하늘에 없다.

그러니까 기울기계가 보는 것은 두 가지가 섞인 값이다. 로버가 진짜로 기운 것, 그리고 땅속의 무엇이 24초마다 끌어당기는 것. 둘을 갈라내야 한다.

갈라내는 방법은 내가 안다. 착륙한 날부터 하던 일이다. 24.19초마다 잘라서 겹치면 무늬가 선다. 그 무늬가 24초짜리 끌림의 모양이다. 밤새 쌓인 기울기계 기록을 2천 번 넘게 겹치면, 그 모양을 아주 깨끗하게 뽑을 수 있다. 그 모양을 기록에서 빼면 남는 건 로버의 진짜 기울기다. 이 세상에서 24.19초로 흔들리는 건 하나뿐이다. 그것만 빼면 된다.

거기에 하나 더. 로버가 서 있을 때는 로버가 기울 이유가 없다. 그럴 때는 남은 기울기를 몇 분 동안 평균 내서 한 번 정하고, 안테나는 그 자세로 고정한 채 위성의 궤도표만 보고 겨냥하면 된다. 위성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미리 다 알고 있다.

계산은 새벽 네 시에 끝난다.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왕징의 좌석 옆에 쪼그려 앉는다. 왕징은 자고 있지 않다.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내가 다가가자 눈을 뜬다.

“기울기계 값에서 24초짜리를 빼야 해요.” 내가 말한다. “모양은 제가 뽑아 놨어요.”

왕징이 내 태블릿을 받아서 본다. 겹친 무늬 그래프 하나, 빼는 식 세 줄, 서 있을 때 안테나를 고정하는 조건 하나. 왕징은 그걸 1분 동안 본다. 그리고 묻지 않는다. 이유도, 확신도.

“코드는 제가 넣을게요. 열두 줄이면 돼요.”


리드 대장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 알람 없이. 그는 우리 둘의 얼굴과 태블릿을 차례로 본다.

“설명.”

나는 설명한다. 지난번보다 짧게. 그리고 마지막에 한 문장을 붙인다.

“어제 기울기계로 바꿀 때 제가 계산했어야 했어요. 그 화면을 보고 끄덕였어요.”

리드 대장이 나를 본다. 회색 눈.

“어제 일은 어제 보고서에 씁니다.” 그가 말한다. “지금은 이게 됩니까.”

“돼요.”

“승인.”

왕징이 코드를 올린다. 안테나 모터가 지붕 위에서 아주 작게 윙 소리를 낸다. 화면의 빨간 글씨가 깜빡이다가 노란색이 되고, 초록색이 된다.

RELAY LINK: ACQUIRED

14시간 만이다.

”…거면 지금 부르는 게 맞는 건지…”

아난드의 목소리다. 3초 늦게, 중계위성을 거쳐서. 14시간 전에 끊긴 바로 그 문장을 이어서 하고 있다.

“아난드. 들려요.”

3초. “하람! 들려요? 다들 살아 있어요? 의사로서 확인하는 거예요.”

“셋 다 살아 있어요.”

3초. 그리고 긴 숨소리. 38킬로미터 저쪽에서 한 사람이 14시간 동안 참던 숨을 내쉰다.


아난드는 혼자서 할 일을 다 했다.

방열판은 예정대로 두 번 옮겼다. 첫 번째는 2분 일찍, 두 번째는 정시에. 시계 온도는 절차서에 적은 한계 안에서 움직였다.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가 바뀐 건 해가 움직여서 그늘 모양이 바뀐 탓이었다. 매일 그 시간이면 그만큼 바뀐다. 나를 부를 일은 아니었다.

“부를까 말까 고민했어요.” 아난드가 말한다. “근데 부를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벽을 봤어요. 하람이 맨 아래 줄에 써 놨잖아요.”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 것.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의사한테는 그게 제일 어려운 거예요.” 그가 웃는다. “다음에는 절차서에 ‘아무것도 안 하는 동안 할 일’도 써 줘요.”

나는 태블릿에서 시계 숫자를 띄운다. 14시간 동안 땅속에서 혼자 돈 시계가, 그동안 쌓아 둔 기록을 한꺼번에 보내오고 있다. 10⁻¹⁷. 24초 출렁임이 숨 쉬듯 지나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계는 내가 없는 14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기다렸다. 그게 조금 서운하고, 많이 고맙다.

클레르는 5분 뒤에 들어온다.

“Merde. 너희 14시간 동안 없었어.” 3초. “여기 관제센터에서 누가 커피를 몇 잔 마셨는지 알아? 아니, 말 안 할게. 숫자 들으면 너 또 정정할 거잖아.”

“몇 잔인데.”

3초. “열한 잔. 나 혼자.”

“그건 정정할 게 없네.”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착륙한 날 시계 잔차에서 24.19초를 봤을 때, 나는 그 숫자를 처음 본 게 아니었다.

반년 전 대전에서, 나는 노트에 후보 목록을 하나 적었다. 지구에서 볼 수 있던 열점의 깜빡임 속에 숨어 있던 박자의 후보. 세 줄이었다. 그 첫 줄이 24.19초였다. 처음에는 60퍼센트였고, 남이 버린 자료를 겹쳐 본 뒤로는 99퍼센트가 됐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그런데 그날 선실에서 그 숫자가 화면에 떴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내 장비를 의심했다. 이온 펌프, 열 제어, 냉각 레이저, 환기 팬, 아난드의 혈압계까지. 이상하게 보일 거다. 기다리던 숫자가 나왔는데.

기다리던 숫자일수록 더 의심해야 한다. 구름에서 토끼를 보고 싶은 사람은 결국 토끼를 본다. 나는 2년 전 화상회의 창 마흔세 개 앞에서 그걸 배웠다. 그래서 그날 나는 내 장비 목록을 다 지우고 나서야 그 숫자를 믿었다. 중력과 시간도 같은 박자로 흔들릴 거라는 가설은 반년 전 워싱턴의 강당에서 이미 말했다. 그런데 그 흔들림이 40킬로미터 밖에 묻은 내 시계를 1경 분의 1로 흔들 만큼 크리라고는, 그때의 나는 감히 적지 못했다.


“더 가까이 갑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해는 높이 떠 있다. 내일이면 현지 정오다. 그림자가 짧아서 땅의 굴곡이 잘 안 보인다. 리드 대장은 속도를 시속 5킬로미터로 줄이고, 열점 한가운데를 향해 곧장 가지 않고 둘레를 크게 돈다. 나는 그 동안 열 카메라를 창밖에 겨누고 지도를 다시 그린다.

어제 2킬로미터 밖에서 본 열점은 하얀 원반 하나였다. 가운데가 가장 뜨겁고, 바깥으로 갈수록 식는, 흔한 모양. 그런데 1킬로미터 안쪽으로 들어오자 원반이 갈라진다.

처음에는 카메라 잡음인 줄 안다. 하얀 원반 위에 어두운 줄이 하나 지나간다.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곧게. 로버가 둘레를 따라 조금 더 돌자 두 번째 줄이 나온다. 세 번째. 나는 열 카메라 영상을 지도 위에 이어 붙인다. 두 시간 뒤 그림이 완성된다.

여섯 갈래다.

열점은 원반이 아니라 바퀴다. 여섯 개의 차가운 바퀴살이 한가운데로 모이고, 바퀴살 사이 부채꼴 땅이 뜨겁다. 부채꼴 땅은 300도에서 470도. 바퀴살은 폭이 30미터쯤이고, 온도는 100도 안팎이다. 햇빛을 받은 보통 달 땅과 같은 온도다. 그러니까 바퀴살은 차가운 게 아니다. 그냥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땅이다. 그 양옆이 뜨거울 뿐이다.

창밖을 본다. 눈으로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회색 비탈, 회색 바위, 검은 하늘. 바퀴살도 부채꼴도 보이지 않는다. 470도는 눈으로 보기엔 너무 차갑다. 쇠가 붉게 빛나려면 500도를 넘어야 한다.

“이건 뭡니까.” 리드 대장이 묻는다.

“길이에요.” 내가 말한다. “길이 나 있어요.”

“추측.”

“네. 추측이에요.” 나는 지도를 그의 쪽으로 돌린다. “그런데 저 갈래 하나가 우리 쪽을 향해 있어요. 북동쪽. 그리고 여섯 개니까, 어느 쪽에서 오든 30도 안에 하나가 있어요.”

왕징이 지도를 본다. 고개를 조금 돌린다. 옆얼굴만.

“길이면 누가 걸으라고 낸 거네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로버의 팬 소리만 들린다. 천장의 레몬이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이제는 2.2도보다 크다. 한가운데에서 1킬로미터 안쪽, 700미터쯤이 ‘아래’가 가장 많이 기우는 거리다. 계산으로는 4.8도. 레몬이 실 끝에서 크게 그네를 탄다. 그리고 그만큼 크게 돌아온다.


열을 잰다. 이게 오늘 내 일이다.

열 카메라로 본 땅의 온도를 넓이에 맞춰 다 더하면 이 자리가 우주로 내보내는 열이 나온다. 바퀴살을 빼고, 부채꼴 여섯 개를 한 조각씩. 햇빛을 받아 데워진 몫은 빼야 한다. 그건 주변 땅의 온도를 보면 안다.

19.9기가와트.

대전의 내 책상에서 계산했던 숫자가 맞는다. 외삽표대로라면 오늘 이 자리는 20기가와트 남짓을 내야 했다. 오늘 지구는 1만 9,900테라와트의 자전 에너지를 잃고 있다. 그 100만 분의 1이 지금 내 창밖에서 열이 되어 하늘로 간다. 원자력 발전소 스무 기가 내는 열. 눈에는 하나도 안 보이는.

그리고 나머지 99만 9,999는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 비탈에서도.

나는 숫자를 클레르에게 보내고, 열 카메라 영상을 다시 돌린다. 이번에는 넓이가 아니라 시간을 본다. 1초에 30장. 부채꼴 하나의 밝기를 장마다 더해서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는다.

선이 평평하지 않다.

아주 작게, 규칙적으로, 숨 쉬듯이. 0.4퍼센트. 궤도선이 띄엄띄엄 본 것과 같은 크기다. 마루와 마루 사이를 잰다.

24.19초.

열이 박자를 탄다. 땅속의 무엇이 24초마다 움직일 때마다, 그 움직임이 땅 위의 열을 아주 조금씩 밀어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지구에서 반년 전 내가 띄엄띄엄 찍힌 사진을 수만 장 겹쳐서야 겨우 본 깜빡임이, 지금은 열 카메라 한 대로 1분이면 보인다. 겹칠 필요도 없다.

“열도 박자를 타요.” 내가 말한다.

“쉽게 말하면요?” 왕징이 묻는다.

“시계도, 중력계도, 열 카메라도 다 같은 걸 봐요. 같은 박자로.”

“그럼 진짜네요.”

왕징은 그 말을 아주 담담하게 한다. 진짜. 나는 그 단어를 1년 넘게 아껴 썼다. 왕징은 그냥 쓴다.


클레르는 바퀴살 지도를 받고 6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왕복 3초를 두 번. 그러니까 내 말이 닿고 나서도 3초를 더 참은 거다. 클레르치고는 긴 침묵이다.

“여섯 개.” 클레르가 말한다. “여기 관제센터에서 누가 방금 ‘활주로 유도등’이라고 했어. 다른 사람은 ‘꽃’이라고 했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할 말이 없어서.”

“클레르가 할 말이 없다니.”

3초. “기록해 둬.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클레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하람. 위원회가 매일 회의해. 이쪽 사람들은 그걸 ‘높은 데’라고만 불러. 오늘 회의 주제가 뭐였는지 알아? 너희가 보낸 숫자로 그게 얼마나 단단한지 계산하는 거였어.”

“단단한지?”

3초. “부술 수 있는지.”

나는 창밖을 본다. 회색 비탈. 눈에는 아무것도 없다. 열 카메라 화면 속에서만 여섯 갈래의 길이 한가운데로 모인다.

“아직 뭔지도 모르는데.”

3초. “그러니까. 모르니까 무서운 거야. 무서우면 사람들은 단단한지부터 물어.” 클레르가 숨을 쉰다. “나는 다른 걸 물어보고 싶어. 길이 나 있으면, 누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거잖아.”

“그건 추측이야.”

3초. “너 지금 리드 대장 말투 옮았어.”

리드 대장이 운전대를 잡은 채로 아주 조금 고개를 든다. 듣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동의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사람의 침묵은 아직 읽는 법을 다 못 배웠다.


점심은 로버 안에서 먹는다. 데운 비빔밥 파우치. 우주 식량 가운데 한국 음식이 들어간 건 내 요청이었다. 왕징은 처음 사흘 동안 그 파우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말없이 하나를 가져간다. 다 먹고 나서 빈 파우치를 접으며 한마디 한다.

“고추장이 모자라요.”

“달에서 고추장 양 정한 사람한테 따질게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저요.”

왕징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는다. 짧게. 코웃음과 웃음의 비율이 오늘은 웃음 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오후 세 시, 리드 대장이 북동쪽 갈래로 차를 돌린다.

바퀴살 입구는 바깥쪽 끝, 열점 한가운데에서 600미터쯤이다. 폭 30미터. 로버는 폭이 3미터가 안 된다. 그러니까 양옆으로 13미터씩 여유가 있다. 숫자로는 넉넉하다. 그런데 바퀴살 양옆의 땅이 400도라는 걸 알고 나면 13미터가 아주 좁아진다.

“선실 온도 계속 불러 주십시오.”

“24도.” 왕징이 말한다. 1분 뒤. “25도.”

로버의 왼쪽 옆면과 오른쪽 옆면이 양옆의 뜨거운 땅을 본다. 땅이 내는 적외선이 옆면을 데운다. 로버 지붕의 방열판은 위를 보니까 괜찮다. 문제는 옆면이다. 옆면은 원래 햇빛만 상대하도록 만들었다.

“26도.”

리드 대장은 속도를 올리지도 줄이지도 않는다. 바퀴살 한가운데 선을 따라, 시속 4킬로미터로, 곧게.

나는 다른 걸 느낀다. 좌석 아래에서.

몸이 24초마다 무거워진다. 아주 잠깐. 엘리베이터가 위로 출발할 때처럼 엉덩이가 좌석에 눌렸다가 풀린다. 한가운데에 가까워질수록 ‘아래’는 덜 기울고, 대신 더 세게 아래를 당긴다. 바로 위에 서면 기울기는 0이고, 무게만 22퍼센트 늘었다 돌아온다. 한라산보다 큰 무엇이 1킬로미터 아래에서 24초마다 내 몸을 끌어당긴다.

레몬은 이제 거의 안 기운다. 대신 실이 24초마다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진다. 플라스틱 레몬이 아주 조금 아래로 내려왔다가 올라간다.

“27도.”

“여기서 멈춥니다.” 리드 대장이 차를 세운다.


창밖, 40미터 앞에서 땅이 끝난다.

갈래길이 끝나는 자리, 여섯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 한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지름 40미터. 테두리는 칼로 자른 것처럼 날카롭다. 운석이 판 크레이터는 저렇게 생기지 않는다. 크레이터는 테두리가 둥글게 솟고, 안쪽이 그릇처럼 패여 있다. 이건 그릇이 아니다. 우물이다. 테두리에서 곧장 아래로 떨어진다.

해는 높다. 거의 70도. 그런데 로버 창 높이에서는 구멍 안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 벽 맨 위 몇 미터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보일 뿐, 그 아래는 가까운 쪽 가장자리에 가려진다. 나는 열 카메라를 지붕 기둥 끝까지 올려 비스듬히 내려다본다. 맞은편 벽에 초승달 모양의 햇빛이 100미터 가까이 내려가 있고, 그 아래가 끊긴 듯 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계산을 해 본다. 이 위도에서 해는 아무리 높이 떠도 72도를 넘지 않는다. 그 각도로 지름 40미터 구멍에 햇빛을 넣으면 123미터 깊이까지만 닿는다. 저 아래가 그보다 깊다면, 저 바닥에는 해가 한 번도 닿은 적이 없다. 이 구멍이 생긴 뒤로 한 번도.

“고도.” 리드 대장이 말한다.

왕징이 지도를 연다. “착륙 지점보다 900미터 높아요. 40킬로미터 오는 동안 계속 오르막이었어요.”

900미터. 나는 그 숫자를 노트에 적는다. 연필로. 시계를 하는 사람에게 높이는 시간이다. 900미터 높은 곳의 시계는 착륙선 옆 땅속의 시계보다 하루에 1.4나노초 빨리 간다. 지금은 쓸 데가 없는 숫자다. 그래도 적는다. 중요한 숫자는 그 자리에서 적어야 나중에 나를 노려본다.

선실 온도 27.5도. 레몬의 실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진다.

나는 창에 이마를 댈 듯이 다가가서 그 우물을 내려다본다. 한낮의 달 위에서, 해가 닿지 않는 유일한 자리. 그 아래 1킬로미터에서 무언가가 숨을 쉬고 있고, 그 숨이 지금 내 무게를 24초마다 바꾸고 있다.

이 구멍은 그 무엇에게 가는 문이다. 아니면 그 무엇의 입이거나, 귀거나.

“내일 내려갑니다.” 리드 대장이 말한다. 질문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이 사람이 나를 저 아래로 데려갈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