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8개월 · 8장
겨울 8개월 · 도해

8장

남극 보스토크 기지, 2032년 5월 25일
연료 잔량 42,170리터 · 첫 비행기까지 153일
약 9분

비닐봉지는 30초 만에 부푼다.

아침 8시, 나는 A 탱크에 사다리를 걸고 올라가 숨구멍 끝에 투명한 비닐봉지를 씌운다. 30리터짜리 시료 봉투. 입구를 테이프로 감아 관에 단단히 붙이고, 사다리에서 내려와 손목시계를 본다.

숨구멍 끝에는 작은 금속 뚜껑이 달려 있다. 탱크 안 압력이 조금 오르면 열리고 내려가면 닫힌다. 시추할 때 뜨거운 물에서 나온 김을 빼던 장치다. 봉투를 씌우자 그 뚜껑 소리가 들린다. 탁, 쉬이이, 탁. 몇 초 간격으로.

봉투가 부풀기 시작한다. 주름이 펴지고, 둥글어지고, 팽팽해진다. 30초 만에 30리터.

1분에 60리터. 하루면 8만 6천 리터, 86세제곱미터. 작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기체다.

사다리 아래에서 봉투를 올려다보며 계산을 두 번 한다. 세 번째는 하지 않는다. 숫자가 바뀌지 않을 걸 아니까.

탱크가 무언가를 내뱉고 있다. 매일, 우리가 사는 건물 안으로.


이리나가 봉투를 본다. 천위가 봉투 입구에 이산화탄소 측정기를 대고 밸브를 연다. 화면의 숫자가 치솟는다. 2,000, 5,000, 9,000. 그리고 숫자 대신 글자가 뜬다.

OVER.

“1퍼센트까지만 재요.” 천위가 말한다. “그 위는 몰라요. 1퍼센트보다 훨씬 많아요.”

“이산화탄소예요?” 이리나가 묻는다.

“일부는요. 나머지는 몰라요.”

다들 봉투에 코를 대 본다. 냄새가 없다. 등유 냄새도, 썩는 냄새도, 아무것도. 투명하고 차갑고 냄새 없는 기체가 탱크에서 날마다 86세제곱미터씩 나오고 있다.

“태워 보면 알아요.” 에릭이 말한다. “불붙는지.”

“안 돼요.” 이리나가 곧바로 말한다. “탱크 구역에서 불은 안 돼요. 연료 옆에서. 절대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2월 17일 이후 이 기지에서 불이라는 말은 다르게 들린다. 미샤조차 고개를 끄덕인다.

천위가 벽 쪽의 회색 상자를 본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프. 천위의 눈길이 거기 머문다.

“운반 기체가 있으면 잴 수 있어요.” 천위가 말한다. “헬륨이 없으면 수소도 돼요. 이리나, 풍선 띄우는 수소요.”

이리나가 고개를 젓는다.

“전기분해 장치는 기상동에 있어요. 2월에 기상동 난방이 끊겼을 때 전해액이 얼어서 전지가 터졌어요. 확인했어요.”

천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노트북을 본다.


그날 오후 나는 칠판 앞에 선다. 이번에는 이리나에게 묻지 않고 그냥 쓴다.

A 탱크 기체 배출: 약 60L/분 = 86m³/일 (봉투 측정) A 탱크 연료 손실: 약 48L/일 (계량) 48L × 0.78kg/L = 약 37kg/일

“탄화수소 37킬로그램이 날마다 A 탱크에서 사라져요.” 내가 말한다. “B까지 합치면 50킬로그램이 넘어요. 액체로 새는 데는 없어요. 증발은 거의 없어요. 남는 건 하나예요. 기체가 되어 나가요.”

“세균이 연료를 먹어서 기체로 바꾼다는 거예요?” 에릭이 묻는다.

“숫자는 그렇게 말해요.”

미샤가 팔짱을 낀다.

“디젤 버그는 그렇게 못 해. 몇 숟갈이라니까.”

“지표에 사는 디젤 버그는요.” 쥘리에트가 말한다.

모두가 쥘리에트를 본다. 쥘리에트는 일어서지 않고, 앉은 채로 무릎 위에 노트를 펴 놓고 말한다.

“보통 디젤 버그는 산소로 숨을 쉬어요. 탱크 위쪽에 남은 공기에서요. 산소가 있어야 연료를 이산화탄소로 태울 수 있어요. 그런데 탱크에는 산소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조금밖에 못 먹어요.” 쥘리에트가 노트를 넘긴다. “소이 숫자대로 하루 50킬로그램을 이산화탄소로 바꾸려면 산소가 170킬로그램 넘게 필요해요. 매일요. 탱크 안에 그런 산소는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는데요?”

“산소 없이 탄화수소를 분해하는 미생물도 있어요. 깊은 땅속에, 유전에. 혼자서는 못 하고 여러 종이 같이 해요. 한 녀석이 쪼개면 다른 녀석이 그 찌꺼기를 먹고.” 쥘리에트가 숨을 고른다. “그런데 뭘 내놓는지는 그 무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요. 저는 몰라요. 기체를 재 봐야 알아요.”

천위가 다시 회색 상자를 본다. 아무도 그 눈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다니엘만 다른 걸 묻는다.

“이게 석 달 동안 날마다 이 건물 안으로 나왔다는 거죠.” 다니엘이 숨구멍을 올려다본다. “이산화탄소만이면 괜찮아요. 우리가 내뱉는 거니까. 그런데 나머지를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두통 호소가 늘었어요. 고지대 탓인 줄 알았는데.”

“이 건물은 숨을 잘 쉬어요.” 내가 말한다. “벽 틈으로 공기가 하루에도 몇십 번 바뀌어요. 천위가 재 보면 생활 칸 이산화탄소는 늘 정상이었어요.”

“지금까지는요.” 다니엘은 그 말만 하고 진료 칸으로 돌아간다.

나는 노트에 적는다. ‘모르는 기체 — 사람 칸으로 나오지 않게 할 것.’ 방법은 아직 적지 못한다.


그다음 열흘 동안 쥘리에트와 나는 실험을 한다. 쥘리에트가 묻고, 내가 숫자를 맞춘다.

질문은 하나다. 이게 어디서 왔나.

지표에서 온 디젤 버그라면 따뜻한 걸 좋아할 거다. 쇄빙선 탱크, 주유소 탱크, 사람 사는 곳의 미생물은 대부분 25도에서 30도 사이에서 가장 잘 자란다. 호수에서 왔다면 다르다. 보스토크 호수는 영하 3도다. 1,500만 년 동안 영하 3도.

그러니 온도를 달리해서 길러 보면 된다. A 탱크 바닥에서 뽑은 점액을 작은 병 열두 개에 같은 양씩 나누고, 병마다 맑은 등유와 끓여 식힌 물을 넣는다. 그리고 네 온도에 세 병씩 둔다. 영상 1도, 3도, 15도, 25도.

1도가 가장 까다롭다. 호수는 압력 때문에 영하 3도에서도 물이지만, 병 속의 물은 0도 밑으로 내려가면 언다. 얼음 속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얼기 직전인 영상 1도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호수 같은 온도다. 그런데 시추동에는 그 온도를 열흘 동안 붙잡아 둘 자리가 없다.

상자는 미샤가 만든다. 쥘리에트가 부탁한 것도 아니다. 쥘리에트가 내게 네 온도를 설명하는 걸 발전기실 문간에서 듣고 있다가 말없이 창고로 갔다. 한 시간 뒤 그는 아이스박스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뚜껑에 구멍을 뚫어 바깥 공기를 끌어들이는 관을 달고, 안쪽에 작은 히터와 온도 조절기를 붙였다. 차가운 바깥 공기로 식히고, 너무 식으면 히터가 켜진다.

“영상 1도.” 미샤가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0.5도까지 흔들려. 그 이상은 안 돼.”

쥘리에트가 상자를 보고, 미샤를 본다.

“고마워요.”

“벌레 집이야.” 미샤가 어깨를 으쓱한다. “벌레도 집은 있어야지. 우리 연료를 먹더라도.”

미샤가 다시 발전기실로 들어간다. 그는 아직 거기서 잔다. 쥘리에트가 그 등을 한참 본다.

25도 자리도 미샤가 엔진 옆에 판을 하나 대서 만들어 준다. 손을 대면 따뜻한 철판이다. 15도는 생활 칸 선반, 3도는 탱크 옆 선반. 네 온도, 네 장소. 나는 장소마다 온도계를 하나씩 놓고 하루 네 번 읽는다. 온도가 흔들리면 실험이 흔들린다. 그건 쥘리에트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시추공 온수 온도를 0.1도까지 맞추던 사람이니까.

쥘리에트는 날마다 병에서 한 방울씩 떠서 세포를 센다. 현미경 아래 격자 한 칸에 몇 개. 나는 그 숫자로 표를 만들고 그래프를 그린다.

열흘 뒤, 그래프는 분명하다.

영상 3도: 가장 빠름. 열흘 만에 열여섯 배 영상 1도: 느리지만 자람. 네 배 영상 15도: 거의 그대로. 두 배가 안 됨 영상 25도: 줄어듦. 열흘째 거의 없음

쥘리에트가 그래프를 오래 본다. 그 얼굴에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르겠다.

“25도에서 죽어요.” 쥘리에트가 말한다. “사람 체온에서는 살지도 못해요. 지표의 디젤 버그는 이렇지 않아요. 이건 추운 데서 온 거예요. 아주 추운 데서, 아주 오래.”

“영상 1도보다 3도에서 더 빨라요.” 내가 숫자를 짚으며 말한다. “호수 물보다 조금 따뜻한 데를 더 좋아해요.”

“호수 바닥 퇴적층이 물보다 조금 따뜻할 수 있어요. 땅속 열 때문에. 아니면 그냥, 호수가 이 녀석들한테 최적은 아니었던 거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을 뿐.” 쥘리에트가 웃는다. 이번엔 분명히 웃음이다. “그리고 우리가 최적을 만들어 줬어요. 영상 3도, 물, 연료, 어둠.”

나는 A 탱크를 본다. 영상 3도의 어둠. 연료 구역 온도를 영상 3도로 정한 건 나다. 사람 칸은 따뜻하게, 연료 칸은 얼지 않을 만큼만. 아끼려고.


실험에는 덤이 하나 있었다.

쥘리에트가 병 세 개에 섬프 바닥의 하얀 침전물, 소화 분말을 조금씩 넣어 봤다. 그 병들은 같은 온도의 다른 병보다 두 배 빨리 자랐다.

“인산암모늄이에요.” 쥘리에트가 분말 통의 라벨을 읽는다. “ABC 소화기 분말. 질소랑 인이에요. 비료예요. 등유에는 탄소랑 수소밖에 없어요. 세포를 만들려면 질소랑 인이 필요한데, 연료에는 없어요. 그런데 섬프에는 그게 잔뜩 있었어요.”

2월 17일 새벽을 떠올린다. 소화기가 빌 때까지 뿌려 댄 하얀 가루. 불을 끄려고 뿌린 그 가루가 섬프로 흘러들어, 깨진 6번 용기에서 나온 세포들에게 첫 끼니를 차려 줬다.

불을 끄려던 손이 이걸 키웠다.


6월 5일 저녁, 다들 칠판 앞에 모인다. 쥘리에트가 발표한다. 그래프, 사진, 소화 분말. 그리고 이야기 하나를 더 꺼낸다. 2012년 이야기.

“러시아 팀이 처음 호수에 닿았을 때, 시추액에서 세균이 나왔어요. 등유를 분해하는 세균들이요. 사람들이 흥분했어요. 호수의 생명이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대부분 지표에서 온 거였어요. 시추액에, 장비에, 사람 손에 묻어 들어간 거. 오염이었어요.” 쥘리에트가 나를 본다. “소이는 그 일을 알죠. 그래서 6G를 그렇게 만든 거죠. 47쪽.”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그때랑 달라요.” 쥘리에트가 말한다. “증명은 못 해요. 유전자를 못 보니까요. 하지만 이 녀석은 25도에서 죽고, 영상 3도에서 제일 잘 살고, 베르나르가 호수 물에서 본 것과 똑같이 생겼어요. 그리고 1월부터 이 기지에 들어온 것 가운데 추위를 좋아하는 생물이 나올 데는 하나뿐이에요.”

쥘리에트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린다.

“우리는 1,500만 년 된 생명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채로 보고 있는 거예요.”

모두가 조용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내 입이 열리려 한다. 1,500만 년 된 생명이 아니에요. 세포는 며칠마다 나뉘어요. 저 녀석들은 하나하나가 이번 주에 생긴 거예요. 1,500만 년은 호수가 갇힌 기간이고…….

모두가 나를 본다. 에릭은 벌써 천장을 보고 있다. 미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다들 안다.

나는 말한다.

“1,500만 년 동안 갇혀 있던 혈통이죠.”

쥘리에트가 나를 보고 웃는다. 눈이 젖은 채로.

“네.” 쥘리에트가 말한다. “그거요. 정확해요.”

에릭이 천장에서 눈을 내린다. 미샤가 짧게 웃는다. 나도 웃는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그날 밤 회의가 끝날 무렵, 이리나가 칠판 앞으로 간다.

분필을 들고 6번 앞에 선다. 4월부터 거기 있던 줄. 이리나의 작고 각진 글씨.

  1. 누가 가져간다

이리나가 그 위에 천천히, 끝까지 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새로 쓴다.

  1. 무엇이 먹는다

이리나가 분필을 내려놓고 미샤를 본다. 그 일 이후 처음으로 똑바로. 미샤도 이리나를 본다. 둘 사이에 말은 오가지 않는다. 이리나가 먼저 눈을 돌린다.

“얼마나 남았어요?” 이리나가 내게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직 계산하지 않았다. 아니, 머릿속에서는 이미 반쯤 끝났다. 끝까지 하기가 무섭다.

“며칠만 주세요.” 내가 말한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A 탱크 앞에서 무섭다고 느낀다. 사람이 훔쳐 갔다면 자물쇠로 막을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말을 걸 수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건 말을 듣지 않는다. 열쇠도 필요 없다. 2주마다 두 배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준 영상 3도의 어둠 속에서 우리의 겨울을 기체로 바꿔 숨구멍으로 내뱉는다.

탁, 쉬이이, 탁.

이제 나는 그 소리를 송풍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