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8개월 · 14장
겨울 8개월 · 도해

14장

남극 보스토크 기지, 2032년 7월 22일
연료 잔량 24,430리터 (메탄 환산 포함) · 첫 비행기까지 95일
약 9분

칠판 맨 윗줄 숫자에 괄호가 붙는다. 내가 붙인다.

오늘부터 우리는 메탄을 버리지 않는다. 탱크에서 나오는 기체를 모아서, 그 안의 메탄이 등유 몇 리터에 해당하는지 계산해 장부에 더한다. 메탄 1.5세제곱미터가 등유 1리터다. 칠판에는 이제 두 칸이 있다. 액체, 기체. 그리고 그 둘을 더한 칸.

미샤가 그 괄호를 보고 한참 웃는다.

“연료가 액체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나 봐?”

“없어요.” 내가 말한다. “찾아봤어요.”


첫날은 임시로 한다. 숨구멍에 호스를 다시 잇고, 그 끝을 바깥 대신 풍선 다섯 개에 물린다. 이음매마다 새서 절반쯤만 모인다. 그래도 절반이다. 제대로 된 포집 장치를 만드는 데는 열흘이 걸린다.

원리는 단순하다. 탱크의 숨구멍에서 나오는 기체를 바깥으로 버리지 않고 안에서 모은다. 단순한 일에도 함정은 많다.

첫 번째 함정은 물이다. 탱크에서 나오는 기체에는 수증기가 섞여 있다. 한파 때 호스 끝을 코르크 마개처럼 막아 버린 서리가 그 수증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스를 바깥으로 빼지 않는다. 모든 배관을 시추동 안, 영상의 공기 속에 둔다. 그 길목에 물을 반쯤 채운 드럼을 하나 놓고, 기체가 물속을 거품으로 지나가게 한다. 드럼 뒤에는 빈 통을 하나 더 놓는다. 첫날 그 통 바닥에 맑은 물이 한 컵쯤 고인다. 지난주에는 호스 끝에서 얼어붙던 물이 이제는 통 바닥에 얌전히 고인다.

“이게 왜 필요해요?” 알료샤가 묻는다.

“세 가지예요.” 내가 말한다. “물을 지나면서 기체가 식어서, 수증기가 여기서 떨어져요. 뒤쪽 배관에서 얼지 않게요. 그리고 탱크 쪽에서 압력이 갑자기 올라가면 물이 밀려 나가면서 알려 줘요. 마지막으로, 혹시 뒤쪽에서 불이 붙어도 물을 건너서 탱크까지는 못 와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 나는 알료샤를 보지 않는다. 그 드럼이 서 있는 곳이 연료 탱크 3미터 옆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두 번째 함정은 저장이다. 이리나의 풍선.

라디오존데 풍선은 고무 주머니다. 하늘 30킬로미터까지 올라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지름 8미터까지 부풀다가 터지게 만들었다. 이걸 지상에서 저장고로 쓰려면 아주 조금만 부풀려야 한다. 고무가 늘어나지 않은 채 겨우 팽팽해질 만큼. 그 정도면 하나에 6세제곱미터쯤 담긴다. 이리나가 하나씩 부풀려 보면서 그 선을 찾았다.

풍선 스물다섯 개를 6G 시추탑 안쪽에 매단다. 탑의 철골을 따라 위에서부터 차례로. 메탄이 섞인 기체는 공기보다 조금 가볍지만, 고무 무게를 들어 올릴 만큼은 아니다. 풍선은 제 무게로 처진다. 그래서 하나하나 철골에 걸어 매단다. 탑 꼭대기, 해치의 쐐기 틈 바로 아래까지. 혹시 하나가 터지거나 새도, 샌 기체는 위로 올라가 곧장 그 틈으로 빠져나간다.

풍선마다 고무관을 달아 하나의 주관에 잇는다. 주관은 드럼을 지나 탱크로, 반대쪽은 발전기실과 보일러로.

천위는 따로 규칙을 만든다. 4시간마다 천장, 중간, 바닥의 공기를 뽑아 크로마토그래프로 잰다. 메탄이 1퍼센트를 넘으면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 2퍼센트를 넘으면 해치를 연다. 7월 21일 회의에서 다니엘에게 한 약속이다. 천위가 그 규칙을 종이에 적어 시추탑 기둥에 붙인다. 맨 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천위 규정 1조.’

나는 그걸 보고 웃는다. 천위는 웃지 않는다. 진지하다.

다니엘이 그 종이 앞에 한참 서 있다. 그러고는 맨 아래에 볼펜으로 한 줄을 보탠다. ‘두통이 있으면 말할 것.’ 천위가 그 줄을 지우지 않는다. 지붕 해치의 틈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종이 끝이 가늘게 떨린다.


세 번째 함정은 엔진이다. 그건 미샤의 일이다.

미샤는 7월 23일부터 발전기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밥도 거기서 먹는다. 알료샤가 그릇을 가져다준다.

미샤에게 필요한 건 혼합기다. 엔진이 빨아들이는 공기에 메탄을 정해진 비율로 섞어 주는 장치. 디젤 엔진에는 그런 게 없다. 공기만 빨아들이고, 연료는 실린더 안에 직접 뿜으니까. 휘발유 엔진에는 있다. 기화기.

기지 창고에는 부란이 한 대 있다. 러시아제 설상 오토바이. 휘발유 엔진. 한겨울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미샤가 그 부란에서 기화기를 떼어 온다. 기화기 안의 좁아진 목, 벤투리. 공기가 그 좁은 목을 빠르게 지나가면 압력이 떨어지고, 옆구리의 작은 구멍에서 연료를 빨아들인다. 미샤는 그 작은 구멍에 휘발유 대신 메탄 관을 잇는다. 그리고 그 기화기를 발전기 흡기구 앞에 붙인다. 메탄 관 중간에 볼 밸브 하나. 그게 손잡이다.

“이 녀석이 숨 쉴 때마다 가스도 같이 마셔.” 미샤가 기화기를 두드린다. “얼마나 마실지는 이 손잡이로.”

7월 30일, 첫 시험.

미샤가 볼 밸브를 아주 조금 연다. 우리는 발전기실 문간에 서서 유량계를 본다. 엔진 소리가 아주 조금 높아진다. 메탄이 들어가서 힘이 더 났다는 뜻이다. 그러자 엔진의 조속기가 알아서 움직인다. 회전을 일정하게 지키려고, 연료 분사를 줄인다. 유량계의 숫자가 내려간다. 11.6리터, 11.0, 10.4.

“됐다.” 미샤가 중얼거린다. 밸브를 조금 더 연다.

9.2, 8.0, 7.1.

그리고 소리가 바뀐다. 엔진 속에서 무언가가 딱딱 두드리는 소리. 금속성의, 불규칙한.

“노킹.” 미샤가 바로 밸브를 잠근다. 소리가 사라진다. “너무 많아. 가스가 너무 많으면 저 혼자 먼저 터져.”

미샤가 다시 연다. 조금씩. 노킹 직전에서 멈춘다. 유량계는 6.2리터를 가리킨다. 원래의 절반이 조금 넘는다.

“반.” 미샤가 말한다. “처음엔 반이야. 나중에 더.”


7월 31일 오후, 이리나가 발전기실에 들어간다.

나는 문밖에서 계량 막대를 닦고 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발전기실 문은 열려 있고, 엔진은 가스 밸브를 잠근 채 등유로만 낮게 돌고 있다. 미샤가 기화기를 떼어 놓고 흡기구 쪽을 손보는 중이다. 문간 가까이에서는 엔진 소리 사이로 말소리가 들린다.

미샤는 엔진 옆 바닥에 쪼그려 앉아 흡기 배관의 이음매를 다시 조이고 있다. 이리나가 공구 상자 옆에 쪼그려 앉는다. 미샤가 손을 뻗는다. 이리나가 렌치를 쥐여 준다. 맞는 크기를. 미샤가 아무 말 없이 받는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다. 렌치가 볼트를 조이는 소리만 난다.

“4월에.” 이리나가 말한다. “숫자만 봤어요.”

미샤의 손이 멈추지 않는다.

“소이가 가져온 숫자가 한 사람을 가리켰어요. 나는 그 숫자를 믿었어요. 미샤가 왜 새벽에 나가는지는 묻지 않았어요. 물어봤자 대답 안 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고 정했어요.” 이리나가 숨을 쉰다. “대장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표트르가 없으니까, 내가 표트르처럼 해야 한다고.”

미샤가 렌치를 내려놓는다. 고개를 돌려 이리나를 본다.

“표트르도 그랬을 거야.” 미샤가 말한다. “숫자가 그렇게 나오면. 그 사람도 날 발전기실로 보냈을 거야.”

“그래요?”

“그래. 그리고 사과도 했겠지.” 미샤가 다시 배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목소리가 엔진 소리에 반쯤 묻힌다. “너처럼. 늦게.”

이리나가 웃는다. 짧게. 나는 이리나가 웃는 소리를 처음 듣는다.

“미안해요, 미샤.”

“14밀리.” 미샤가 손을 뻗는다.

이리나가 14밀리 렌치를 쥐여 준다.


8월 1일 저녁, 보일러에 불을 붙인다.

6G 온수 시추 장치의 보일러. 원래는 등유 버너로 물을 데워 얼음을 녹이던 것이다. 미샤와 나는 그 버너의 분사 노즐을 빼고, 그 자리에 구리관을 둥글게 말아 구멍을 스물네 개 뚫은 고리를 넣었다. 가스 버너다. 가정용 가스레인지의 불꽃 고리와 같은 원리. 버너에 원래 달려 있던 광센서는 그대로 둔다. 불꽃이 꺼지면 빛이 사라지고, 센서가 그걸 보고 가스 밸브를 닫는다. 그 밸브는 시추용 물 배관에서 떼어 온 전자 밸브다. 불이 꺼진 채로 가스만 새는 일은 없다. 그것까지 확인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여덟 명이 보일러 앞에 모인다. 천위가 크로마토그래프 화면을 보며 말한다. “천장 0.2퍼센트. 괜찮아요.”

미샤가 점화 버튼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나를 본다.

“네가 눌러.”

“왜요?”

“네 장부잖아.”

나는 버튼을 누른다.

딸깍. 점화 전극이 불꽃을 튀긴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보일러의 작은 유리창 너머에서 불이 핀다.

파랗다.

구리 고리의 구멍 스물네 개에서 파란 불꽃이 하나씩 솟는다. 고지대라서 불꽃이 조금 길고 느리다. 산소가 모자라 끝이 살짝 들떠 있다. 그래도 파랗다. 2월의 불과 다르다. 그을음도 연기도 없다. 조용하고, 맑고, 일정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알료샤가 손을 모은다. 기도하는 것 같다. 쥘리에트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댄다. 파란 빛이 눈동자에 비친다. 에릭이 붕대 감은 손으로 미샤의 어깨를 짚는다.

나는 그 불꽃을 본다. 스물네 개의 작은 파란 혀. 1,500만 년 동안 호수 바닥에서 아주 조금씩 기름을 쪼개던 생명이, 우리 탱크 속에서 우리 연료를 쪼개서 내놓은 기체. 그게 지금 타고 있다. 우리를 데우려고.

“여기서 적은 불 하나뿐입니다.”

내가 그 말을 소리 내어 했는지 모르겠다. 이리나가 나를 돌아본다.

“표트르.” 내가 말한다. 유리창 너머 파란 불꽃을 보며. “이건 우리 편 불이에요.”

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미샤가 고개를 숙인다. 한참 동안 들지 않는다.


8월 2일 아침, 발전기를 혼소로 돌린다.

미샤가 볼 밸브를 노킹 직전까지 연다. 유량계의 숫자가 내려간다. 11.6에서 6.2로. 보일러가 생활 칸을 데우니 한파 때 다시 켰던 보조 난로를 끈다. 발전기 폐열과 가스 보일러. 생활 칸 온도계가 영상 14도를 가리킨다. 7월 이후 가장 높다.

나는 칠판에 새 숫자를 쓴다.

오늘 액체 연료 사용: 158리터 (어제까지 278) 메탄 사용: 약 120㎥ = 등유 80리터 상당 새는 메탄: 생산량의 약 8% (이음매, 해치 틈) 합계: 등유 238리터 상당 (어제까지 278)

전체가 40리터 줄었다. 전기 히터 몫을 보일러가 직접 데우기 때문이다. 연료를 전기로 바꿨다가 다시 열로 바꾸면 3분의 2를 잃는다. 불로 바로 데우면 거의 다 열이 된다.

에릭이 칠판 앞에서 휘파람을 분다. 붕대 감은 손으로 박수를 치려다 아파서 그만둔다.

“보스, 우리 이긴 거예요?”

나는 숫자를 본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하나를 더 쓴다. 쓰고 싶지 않지만 써야 하는 숫자.

메탄 생산: 하루 약 120㎥ 메탄 수요(지금 설정): 하루 약 120㎥ → 오늘은 맞음 미샤 목표(70~80% 대체): 하루 약 280㎥ 필요

“오늘은 비겼어요.” 내가 말한다. “저것들이 만드는 만큼 우리가 다 써요. 남는 게 없어요. 그리고 깨끗한 연료는 여전히 하루 158리터씩 줄어요.” 나는 계산한다. “14,000리터에서 이미 1,600리터 넘게 썼어요. 남은 12,400을 하루 158로 나누면 10월 19일이에요. 엿새 모자라요.”

에릭의 휘파람이 멈춘다.

“저것들이 더 많이 만들어야 해요.” 내가 말한다. “두 배쯤.”


그날 밤 풍선 스물다섯 개 중 열아홉 개가 쪼그라들어 있다. 낮 동안 발전기와 보일러가 모아 둔 걸 다 썼다. 밤사이에 탱크가 다시 채운다. 아침이면 다시 부풀어 있을 거다. 그리고 낮에 다시 쪼그라들 거다.

알료샤가 잠자는 칸에서 이불을 여미며 말한다.

“여기도 가스로 데우면 안 돼요? 발전기 전기 아끼게요. 작은 난로 하나만요. 밤에 너무 추워요.”

생활 칸은 보일러 덕분에 따뜻해졌지만, 잠자는 칸은 방수포 두 겹 너머라서 밤이면 여전히 영상 5도까지 떨어진다. 그 칸의 전기 히터가 하루 10킬로와트시를 먹는다. 등유로 치면 하루 3리터쯤.

미샤가 나를 본다. 나는 계산한다. 하루 3리터. 70일이면 200리터. 엿새 모자란 장부에서 하루가 안 되는 양.

“만들 수 있어?” 내가 미샤에게 묻는다.

“캠핑 버너 있어. 창고에. 가스 관만 이으면 돼.”

나는 망설인다. 잠자는 칸은 좁다. 여덟 명이 거기서 잔다.

“환기구 옆에 놔요.” 내가 말한다. “그리고 천위가 4시간마다 재는 데 그 칸도 넣어요.”

천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다음 날, 미샤와 내가 그 난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