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켜지도 끄지도 마세요.”
새벽 3시 20분. 나는 생활 칸 한가운데에 서서 그렇게 말한다. 목소리를 낮춰서. 소리가 무언가를 터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이리나, 미샤, 다니엘이 깼다. 나머지는 아직 잔다. 천위가 내 옆에서 이산화탄소 측정기를 들고 있다.
“모르는 기체가 닷새 동안 건물 안에 쌓였어요. 하루 100세제곱미터 넘게. 이 건물 공기가 6천 세제곱미터쯤이에요. 우리가 환기구를 다 막았어요.” 나는 숨을 고른다. “그게 뭔지 몰라요. 이산화탄소가 섞인 건 알아요. 나머지는 몰라요. 불이 붙는 기체면…….”
뒷말은 하지 않는다. 다들 2월 17일을 안다.
“스위치 하나에서도 불꽃이 튀어요.” 내가 말한다. “조명, 송풍구, 히터. 켜져 있는 건 그대로 두고, 꺼져 있는 건 그대로 두세요. 발전기실 문 닫으세요.”
미샤가 발전기실 문을 닫는다. 천천히. 쇠문이 문틀에 닿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다.
천위가 측정기를 들고 6G 시추탑 사다리를 오른다. 시추공 머리 위에 서 있는 철골 탑. 시추동 천장까지 닿는다. 원래 케이블 도르래를 걸던 곳이다. 천위는 사다리를 천천히 오른다. 한 칸에 한 번씩 숨을 쉰다. 10미터 위에서 측정기를 든다.
“이산화탄소 0.6퍼센트.” 천위의 목소리가 위에서 내려온다. “바닥은 0.3.”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괜찮아요. 숨 쉬는 데는요.”
“나머지는요?” 이리나가 묻는다.
천위가 사다리를 내려온다. 땅에 발을 딛고 숨을 몰아쉰다. 그러고는 벽 쪽의 회색 상자를 본다. 다섯 달 동안 그 자리에 놓여 있던 가스 크로마토그래프.
“수소만 있으면요.” 천위가 말한다.
미샤가 생각해 낸다.
“5G.” 미샤가 말한다. 천천히, 무언가를 떠올리는 얼굴로. “내 드럼 옆에. 나무 상자 있었어. 소련 때 거. 키릴 문자로 ‘수소’라고 쓰여 있었어.”
이리나의 눈이 커진다.
“화학식 수소 발생기.” 이리나가 말한다. “1980년대 거예요. 전기분해 장치 들어오기 전에 풍선 띄우던 거. 규소철 가루에 가성소다 용액을 부으면 수소가 나와요. 다 버린 줄 알았어요.”
“안 버렸더라.” 미샤가 일어선다. 파카를 집는다.
미샤와 나는 새벽 4시에 5G 시추동으로 간다. 영하 72도. 별이 너무 많다. 헤드램프 빛 속에서 미샤의 드럼 두 개가 보인다. ‘1982’. 그 옆에 방수포를 걷는다. 나무 상자 셋. 키릴 문자. 하나를 연다. 쇠 깡통들이 짚 속에 들어 있다. 깡통마다 녹이 슬었지만 뚜껑은 납땜으로 봉해져 있다.
“50년 된 수소야.” 미샤가 깡통 하나를 들어 올린다. “아버지 시절 거.”
우리는 상자 하나를 썰매에 싣는다.
수소를 만드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린다.
이리나가 맡는다. 첫 월동 때 배운 방법이라고 한다. 2003년, 다른 기지에서. 쇠 반응통에 규소철 가루를 넣고, 가성소다를 녹인 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다. 통이 뜨거워진다. 반응열이다. 통에 연결한 호스로 수소가 나와 기상 풍선 안으로 들어간다. 반응은 시추동 바깥, 문 앞 눈 위에서 한다. 수소도 불이 붙는 기체니까.
풍선이 부푼다. 하얀 고무 풍선. 원래는 하늘 30킬로미터까지 올라가 터지게 만든 것. 이리나가 그걸 사람 키만 하게만 부풀리고 입구를 묶는다.
천위가 그 풍선을 크로마토그래프에 잇는다. 풍선을 판자 두 장 사이에 끼우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는다. 책 무게로 풍선을 누르면 수소가 일정한 압력으로 밀려 나온다. 압력계도 조절기도 없다. 책이 조절기다. 천위가 책을 한 권씩 올리고 내리며 기계의 압력 눈금을 맞춘다. 다니엘의 의학 사전, 에릭의 스릴러 소설, 내 시추 기술 편람.
“운반 기체 흐름 안정.” 천위가 말한다. 기계 화면을 보며. “검출기 예열 중.”
다섯 달 만에 그 회색 상자에 불이 들어온다.
천위는 먼저 표준 기체를 넣는다. 성분을 정확히 아는 기체가 든 작은 실린더. 크로마토그래프 가방 안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실험동과 함께 타지 않았다. 화면에 봉우리 네 개가 뜬다. 산소, 질소, 메탄, 이산화탄소. 각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높이로. 천위가 그 숫자들을 노트에 적는다. 이제 기계가 무엇을 얼마나 보는지 안다.
그리고 천위가 주사기를 든다.
첫 번째 시료는 숨구멍에서 바로 뽑는다.
나는 A 탱크 위의 사다리에 서서 숨구멍 뚜껑 바로 앞에 주사기 바늘을 댄다. 뚜껑이 탁 열리고 기체가 뿜어 나올 때 피스톤을 당긴다. 50밀리리터. 바늘 끝을 고무마개에 꽂아 봉한다. 사다리를 내려와 천위에게 건넨다.
천위가 주사기를 크로마토그래프 입구에 꽂는다. 피스톤을 누른다.
우리는 화면을 본다. 이리나, 미샤, 다니엘, 나. 그사이에 깬 에릭과 알료샤와 쥘리에트까지. 여덟 명이 노트북 화면 하나 앞에 몰려 있다.
화면 위에 선이 그어진다. 평평한 선. 그러다 작은 봉우리 하나. 질소. 아주 작다. 산소는 거의 없다.
그리고 큰 봉우리가 솟는다. 화면 꼭대기까지. 천위가 노트를 본다. 표준 기체에서 그 봉우리가 나왔던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또 하나, 조금 작은 봉우리. 이산화탄소.
천위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러고는 아주 조용히 말한다.
“메탄 71퍼센트. 이산화탄소 27퍼센트.”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메탄. 천연가스. 가스레인지에서 파랗게 타는 그 기체. 보일러를 돌리고, 발전소를 돌리는 그 기체.
냄새가 없는 건 당연하다. 도시가스에서 나는 냄새는 새는 걸 알아채라고 일부러 섞은 냄새다. 메탄 자체는 아무 냄새도 없다.
천위가 노트를 앞으로 넘긴다. 4월 칸.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탱크 쪽 1,900ppm. 생활 칸 1,500.’
“그때 이산화탄소만 쟀어요.” 천위가 말한다. “바로 옆에 이게 있었어요.”
“두 번째.” 내가 말한다. 목소리가 갈라진다. “천장.”
천위가 다시 사다리를 오른다. 이번에는 주사기를 들고. 10미터 위, 철골 사이 어둠 속에서 공기를 뽑는다. 중간 높이 5미터에서 하나 더. 바닥에서 하나 더.
화면에 숫자가 뜬다.
바닥: 메탄 0.3% 5미터: 메탄 1.2% 천장: 메탄 3.9%
숫자를 읽은 천위의 얼굴이 처음으로 변한다. 천위가 나를 본다.
나도 그 숫자를 안다. 시추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메탄은 공기와 섞여 5퍼센트에서 15퍼센트 사이가 되면 터진다. 폭발 하한, 5퍼센트.
천장은 3.9퍼센트다. 메탄은 공기보다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 고인다.
닷새 동안 우리는 생활 칸 벽의 스위치를 아무 생각 없이 수십 번 눌렀다. 스위치가 있는 높이의 공기는 0.3퍼센트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메탄이 위에 있어서였다. 하지만 천장에는 철골에 매달린 LED 등이 여섯 개 있고, 그중 둘이 지금도 켜져 있다. 등마다 전원 장치가 달려 있다. 그 등들은 3.9퍼센트 속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숨구멍은 지금도 하루 100세제곱미터 넘게 내놓는다. 닷새 만에 0에서 3.9가 됐다.
“1.1퍼센트 남았어요.” 천위가 말한다. “하루 반이요.”
천위가 한 말 중에 가장 무서운 말이다.
천장의 메탄을 빼야 한다. 그런데 송풍기를 켤 수 없다. 모터에서 불꽃이 튈 수 있다.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가벼운 기체는 천장에 머문다. 아래로 뚫린 문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위로 빼야 한다.
6G 시추탑 꼭대기, 시추동 지붕에는 해치가 하나 있다. 사방 1미터의 철문. 시추 파이프를 세워 넣고 뺄 때 열던 문이다. 시추가 끝난 뒤로는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바깥에서 눈과 얼음이 그 위를 덮었을 거다.
“제가 갈게요.” 내가 말한다.
이리나가 나를 본다. “왜 소이예요?”
“제 탑이에요. 해치 잠금장치를 제가 설계했어요. 어디를 쳐야 열리는지 알아요.”
이리나가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미샤가 공구 상자에서 나무망치를 꺼내 내게 준다. 쇠망치는 안 된다. 쇠와 쇠가 부딪히면 불꽃이 튄다. 나무망치. 손잡이가 얼어서 장갑 너머로도 차갑다.
나는 사다리를 오른다. 10미터. 해발 3,488미터에서 사다리 10미터는 산 하나다. 다섯 칸마다 멈춰서 숨을 쉰다. 헤드램프 불빛 속에서 내 숨이 하얗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하얗다. 공기가 다르다. 나는 그 공기 속에 메탄이 3.9퍼센트 섞여 있다는 걸 안다. 냄새는 없다. 아무 느낌도 없다. 그게 더 무섭다.
꼭대기. 해치의 손잡이를 잡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얼어붙었다. 나무망치로 잠금쇠의 가장자리를 친다. 한 번. 두 번. 손목이 울린다. 열 번. 잠금쇠가 조금 움직인다. 스무 번. 숨이 차서 손이 떨린다. 다시.
잠금쇠가 빠진다.
나는 어깨로 해치를 밀어 올린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 해치가 열린다. 그리고 하늘이 보인다.
별. 수천, 수만 개의 별. 은하수가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 별빛 아래로, 영하 72도의 공기가 쏟아져 내려온다. 차가운 공기가 무겁게, 폭포처럼. 내 얼굴을 지나 아래로.
동시에 내 얼굴 옆으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치 가장자리에서 공기가 일렁이는 게 보인다. 별빛이 흔들린다.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섞이며 별이 아지랑이 속에서처럼 일그러진다.
닷새치의 메탄이 해치를 통해 남극의 하늘로 나간다.
아래에서 이리나가 정문을 연다. 그리고 목에 건 열쇠로 뒷문의 체인을 푼다. 4월 말에 채운 뒤 처음이다. 다니엘이 뒷문을 연다. 시추동 안으로 바깥 공기가 들이친다. 아래로는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고, 위로는 데워진 공기가 빠져나간다. 건물 전체가 숨을 쉰다. 다섯 달 만에 가장 깊게.
생활 칸 온도계가 떨어진다. 영상 9도, 영상 2도, 영하 8도. 다들 파카를 입고 침낭을 뒤집어쓴다. 알료샤가 물통들을 발전기실로 옮긴다. 발전기실은 문을 닫아 두었으니 아직 따뜻하다.
40분 뒤 천위가 다시 천장 공기를 뽑는다. 이번에는 내가 위에서 주사기를 건넨다.
천장: 메탄 0.4%
나는 해치를 반쯤 닫고 쐐기를 끼운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틈을 남긴다. 이제부터 이 틈은 닫지 않는다. 규정이 없으니 내가 만든다.
사다리를 내려오는 데 15분이 걸린다. 바닥에 발이 닿자 다리가 풀린다. 미샤가 내 팔을 잡는다.
오전 8시 반. 시추동 안은 영하 12도다. 우리 여덟은 탱크 구역에 모여 있다. 파카를 입고, 침낭을 두르고. 아무도 자러 가지 않는다.
“연료는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내가 말한다.
모두가 나를 본다.
“메탄이 됐어요. 저것들이 연료를 먹고 메탄을 내놔요. 그 메탄이 숨구멍으로 나와서, 3월부터 6월까지는 이 건물 틈으로 빠져나갔어요. 6월부터는 호스로 바깥에 버렸어요. 그리고 지난 닷새 동안은 우리 머리 위에 고였어요.”
나는 칠판 앞으로 간다. 분필이 영하 12도에서 잘 써지지 않는다. 손으로 데우며 쓴다.
메탄 = 천연가스 = 연료
“이건 우리가 태울 수 있는 거예요.”
조용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쥘리에트가 숨을 들이켠다. 크게,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F420.” 쥘리에트가 말한다.
“뭐요?”
“청록색 빛이요. 5월에 현미경에서. 염색 안 했는데 빛나던 세포들.” 쥘리에트가 일어선다. 침낭이 어깨에서 흘러내린다. “등유 형광이라고 했잖아요. 아니었어요. 메탄을 만드는 미생물은 몸속에 특별한 보조효소를 가지고 있어요. F420. 그게 파란 빛을 받으면 청록색으로 빛나요. 교과서에 나오는 거예요. 메탄 생성균을 찾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거예요.” 쥘리에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저는 그걸 봤어요. 두 달 전에. 그리고 의미 없다고 했어요.”
“등유도 빛나잖아요.” 내가 말한다. “쥘리에트가 틀린 게 아니에요. 둘 다 빛났던 거예요.”
쥘리에트가 손을 내리고 나를 본다. 무언가 말하려다 웃는다. 울면서.
천위가 노트를 넘기며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민재 씨 메모요. 수첩. 용기 2번에 작은 기포.”
나는 품에서 수첩을 꺼낸다. 탄 자국이 있는 표지. 마지막 장. 민재의 반듯한 글씨.
용기 2번에 작은 기포. 압력 뺄 때 녹아 있던 기체가 나오는 듯. 천위 씨한테 물어볼 것.
“호수 물에 메탄이 녹아 있었을 거예요.” 천위가 말한다. “저 녀석들이 호수 바닥에서 만든 메탄이요. 1,500만 년 동안. 압력을 빼니까 나왔어요.”
민재는 그걸 봤다. 2월 17일 새벽 2시 5분에. 그리고 천위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나는 수첩을 덮는다. 손이 떨린다. 추워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리나가 칠판 앞에 선다. 내 글씨 옆에. 입술이 조금씩 움직인다.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다.
“그럼.” 이리나가 말한다. “넉 달 동안 우리가 내다 버린 게…….”
“연료예요.” 내가 말한다. “기체로 된 연료.”
“얼마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직 계산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계산하기 전에 대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대답이 무섭지 않다.
나는 탱크 위를 올려다본다. 숨구멍. 호스는 아직 빠진 채다.
탁, 쉬이이, 탁.
그 소리가 이제 다르게 들린다. 탱크가 숨을 쉬는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를 내놓는 소리다. 우리가 넉 달 넘게 내다 버린 것을.
연료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체가 되어, 우리 머리 위를 떠다니다가, 남극의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