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이 먼저 말한다. 투표 전에 몸 상태를 보고하겠다고 했다.
“평균 체중 4.2킬로그램 감소. 2월 대비.” 다니엘이 수첩을 읽는다. 천천히, 정중하게. 그 목소리가 지금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가장 많이 빠진 사람 7.8킬로그램. 이름은 말하지 않을게요. 아침 산소포화도 평균 84. 수면 시간 평균 5시간 10분. 여섯 명이 두통을 호소해요. 고지대, 추위, 그리고,” 다니엘이 잠시 멈춘다. “스트레스. 의학적으로는 아직 괜찮아요. 의학적으로는요.”
다니엘이 수첩을 덮는다.
“한 가지만 말할게요. 의사로서요. 무엇을 정하든 오늘 정해요. 정하지 않은 채로 2주를 더 보내는 게 지금 우리 몸에 제일 나빠요.”
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칠판에 두 줄을 쓴다.
- 살균: 사흘. 미생물 죽음.
- 냉각: 5주. 그동안 약 2,500리터 손실. 미생물 멈춤.
그 아래에 숫자 하나를 더 쓴다.
하루 100리터.
어제 아침에 잰 숫자다. 내 예측대로 곡선은 눕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다 눕지는 않았다.
“손 들어요.” 이리나가 말한다. “1번.”
이리나가 먼저 든다. 그다음 에릭. 미샤가 팔짱을 풀고 손을 든다. 다니엘이 든다. 알료샤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든다. 반쯤만.
그리고 나.
나는 손을 들면서 입속으로 말한다. 규정 14조 6항. 소리가 나오지 않게. 아니, 조금 나왔는지도 모른다. 쥘리에트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
“2번.”
쥘리에트 혼자 든다. 손을 높이 든다. 팔꿈치가 펴질 때까지.
천위는 들지 않는다.
이리나가 천위를 본다.
“천위?”
“기권할게요.” 천위가 말한다.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작다. “저 기체가 뭔지 몰라요. 재지 못했어요. 모르는 걸로 결정하고 싶지 않아요.”
“모르는 게 기체만은 아니에요.” 이리나가 말한다.
“알아요.” 천위가 말한다. “그래도요.”
이리나가 칠판에 숫자를 적는다. 6, 1, 기권 1. 그리고 1번에 동그라미를 친다.
“6월 30일에 넣어요. 투하 전에 끝내요. 투하 받은 깨끗한 연료랑 섞이기 전에.”
쥘리에트가 회의 끝에 하나를 부탁한다.
“표본 하나만 남겨 주세요. 작은 병 하나. 밀봉해서, 탱크랑 멀리 떨어뜨려서. 제가 책임질게요.”
이리나가 고개를 젓는다.
“안 돼요. 하나라도 남으면 다시 퍼질 수 있어요. 병이 깨지면, 누가 실수로 열면. 3월에 6번 용기 하나가 어떻게 됐는지 봤잖아요.”
“그건 불이 났으니까…….”
“여기는 불이 또 날 수 있는 곳이에요.”
쥘리에트가 나를 본다. 도와 달라는 눈이다.
나는 규정을 떠올린다. 오염원이 확인되면 제거한다. 일부를 남기는 것에 관한 조항은 없다. 예외를 두는 절차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대답이니까.
쥘리에트가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는 나를 보지 않는다. 그날 저녁 내내.
그날 밤 천위가 내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생활 칸 식탁. 다들 자러 갔고, 우리 둘만 남았다. 천위는 노트북을 펴지 않는다. 그게 이상하다.
“기권해서 미안해요.” 천위가 말한다.
“미안할 거 없어요.”
“소이는 손 들었잖아요. 모르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천위가 탁자 위 자기 손을 본다.
“우리 할아버지가 광산 기사였어요. 산시성 탄광.” 천위가 말한다. 천위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다. 월동 넉 달 만에. “갱도 공기를 재는 사람이었어요. 메탄, 일산화탄소. 1960년대에는 기계가 없었어요. 새를 들고 들어갔대요. 새가 쓰러지면 나왔대요. 할아버지는 그게 싫었대요. 새가 쓰러질 때까지 모른다는 게. 그래서 평생 기계를 만들었어요. 사람이 쓰러지기 전에 아는 기계.”
천위가 벽 쪽의 회색 상자를 본다. 운반 기체가 없어서 넉 달 넘게 꺼져 있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프.
“할아버지가 늘 그랬어요. 모르는 공기 속에서는 아무것도 정하지 마라. 먼저 재라.” 천위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잴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권했어요. 손을 들면 할아버지 말을 어기는 거 같아서.”
“재게 되면요?”
“그럼 손 들 거예요.” 천위가 일어선다. “어느 쪽이든.”
살균제를 넣기 전날 밤, 6월 29일.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내 당번이다. 짝은 알료샤다.
알료샤는 30분 만에 의자에서 잠이 든다.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리고, 고개를 벽에 기댄 채. 나는 깨우지 않는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여덟 명의 아침을 만든다.
1시 40분, 생활 칸 쪽에서 사람이 온다. 헤드램프를 끄고, 발소리를 죽여서.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탱크 구역의 하나뿐인 조명은 A 쪽을 비추고, 나는 B의 그림자 안에 있다.
쥘리에트다.
품에 안고 온 것을 나는 바로 알아본다. 길이 1미터, 지름 12센티미터의 티타늄 원통. 6G 시료 채취기. 2월 16일, 3,769미터 아래에서 호수 물을 안고 올라온 그 압력 용기다. 화재 다음 날 실험동 바닥에 밸브가 열린 채 굴러다니던 것. 쥘리에트가 그걸 주워다 닦고 소독해서 자기 자리에 두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베르나르의 유품처럼.
쥘리에트가 A 탱크 바닥의 배수 밸브 앞에 무릎을 꿇는다. 밸브에는 체인이 감겨 있다. 하지만 체인은 맨홀과 이송 밸브에만 걸었다. 배수 밸브는 손잡이를 빼 두었을 뿐이다. 쥘리에트가 주머니에서 렌치를 꺼낸다. 밸브 축을 물고, 아주 조금 돌린다.
회색 물이 원통 입구로 흘러든다. 그다음 검은 덩어리. 쥘리에트가 밸브를 잠근다. 원통의 마개를 돌려 닫는다. 압력계가 달린 그 마개. 그리고 원통을 품에 안고 일어선다.
쥘리에트는 원통을 생활 칸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탱크 구역 구석으로 간다. 거기 6월 초 생장 실험 때 미샤가 만든 상자가 있다. 바깥 공기로 식히고 작은 히터로 영상 1도를 맞추던 상자. 얼기 직전의 온도. 실험이 끝나고 빈 채로 남은 상자. 쥘리에트가 원통을 그 안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뚜껑 위에 무언가를 붙인다. 종이 라벨이다.
그리고 돌아선다. 그 순간 쥘리에트가 나를 본다. B의 그림자 속에 앉아 있는 나를.
우리는 3초쯤 서로를 본다.
쥘리에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변명도, 부탁도. 그저 서 있다. 원통을 품었던 팔이 아직 그 모양 그대로 굽어 있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쥘리에트가 생활 칸으로 돌아간다. 헤드램프를 켜지 않은 채로.
나는 일어나서 그 상자 앞으로 간다. 뚜껑 위의 라벨을 읽는다. 쥘리에트의 글씨다.
‘6G 장비 — 손대지 말 것 — 시추팀’
시추팀. 내 팀.
나는 노트를 꺼낸다. 펜을 든다. 규정 14조 1항. 시료에 관한 모든 일은 기록한다. 날짜, 시각, 내용, 서명.
펜이 노트 위에서 멈춘다. 이번에는 잉크가 언 게 아니다.
나는 노트를 덮는다.
알료샤가 의자에서 몸을 뒤척이며 무어라 잠꼬대를 한다. 러시아어다. 수프 이야기 같다. 나는 그의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주고, 다시 B의 그림자 속 의자에 앉는다.
18년 동안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 오늘 처음 어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6월 30일 아침, 살균제를 넣는다.
이리나가 체인을 푼다. 내가 계량 막대로 세 번 잰다. A 탱크 8,900리터, B 탱크 6,400리터, 일일 탱크 2,550리터. 미샤가 노란 통을 기울여 계량 컵에 붓는다. 1만 리터에 1리터. 확실하게 하려고 두 배를 넣는다. A에 1.8리터, B에 1.3리터, 일일 탱크에 0.5리터.
냄새가 난다. 소독약 같은, 날카로운 냄새. 미샤가 탱크 맨홀로 살균제를 붓는 동안 나는 이송 펌프를 탱크 안으로 되돌리는 순환 모드로 돌린다. 펌프가 연료를 바닥에서 빨아 위로 뿜는다. 탱크 속이 섞인다. 바닥의 물까지, 물과 연료 사이의 막까지.
쥘리에트는 오지 않는다. 생활 칸 자기 자리에 앉아 현미경 상자를 닦고 있다.
살균제를 붓기 전에 나는 A 탱크의 맨홀 안으로 헤드램프를 비춘다. 3월에 바닥의 물을 확인하려고 머리를 넣었던 그 맨홀이다.
석 달 사이에 탱크 안이 달라졌다. 연료 표면은 그대로 맑다. 하지만 탱크 벽을 따라, 연료가 닿는 선 아래로 회색 막이 자라 있다. 커튼처럼. 헤드램프 빛이 닿자 그 막이 연료 속에서 아주 천천히 흔들린다. 연료 깊은 곳, 빛이 겨우 닿는 바닥 쪽에는 더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다. 물과 연료가 만나는 곳. 쉼표 사슬들의 도시.
나는 그걸 오래 본다. 3,769미터 아래 호수 바닥도 이렇게 생겼을까. 아무도 본 적 없는 어둠 속에서, 이런 막이 1,500만 년 동안 아주 느리게 자라고 있었을까.
“소이.” 미샤가 노란 통을 들고 기다린다.
나는 고개를 뺀다. 미샤가 통을 기울인다. 살균제가 연료 위로 떨어져 퍼진다. 소독약 냄새가 맨홀 밖으로 올라온다. 날카롭고, 깨끗한 냄새. 병원 냄새. 회색 막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흔들린다.
순환을 여섯 시간 돌린다. 저녁에 체인을 다시 채운다.
7월 1일, 손실 하루 71리터.
7월 2일, 44리터.
7월 3일 아침, 35리터.
나는 칠판에 숫자를 쓴다. 손이 가볍다. 지난 석 달 동안 이 칠판에서 숫자가 내려가는 걸 처음 본다.
“됐다.” 에릭이 칠판을 보고 말한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친다. 세게. 꿰맨 눈썹이 웃음에 일그러진다. “보스, 됐어요!”
미샤가 짧게 웃는다. 노란 통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쇄빙선에서 배운 거야.”
알료샤가 점심에 케이크를 굽는다. 냉동 블루베리를 아껴 둔 거라고 한다. 케이크 위에 슈가파우더로 숫자를 쓴다. 35. 다들 웃는다. 다니엘까지.
쥘리에트는 케이크를 먹지 않는다. 한 조각을 받아서 접시에 놓고, 그대로 둔다. 알료샤가 그걸 보고 슬그머니 그 조각을 랩으로 싸서 쥘리에트 자리 옆에 둔다. 나중에 먹으라는 듯이. 쥘리에트가 그걸 본다. 고맙다는 말 대신 알료샤의 팔을 한 번 잡았다 놓는다. 그리고 현미경 상자를 들고 탱크 구역으로 간다. 오늘 아침 뽑은 A 바닥 시료를 보러.
나는 쥘리에트를 따라간다. 케이크 접시를 든 채로.
쥘리에트가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휴대폰을 접안렌즈에 대고. 나는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본다.
쉼표 모양의 사슬들. 대부분 움직이지 않는다. 조각나 있다. 흐릿하다. 죽은 세포들.
그런데 화면 한쪽, 점액이 두껍게 뭉친 곳. 거기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점액 안쪽까지는 약이 잘 안 들어가요.” 쥘리에트가 말한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바깥쪽은 죽었어요. 안쪽은 몰라요.”
“그래도 손실이 3분의 1로 줄었어요.”
“줄었죠.” 쥘리에트가 휴대폰을 내린다. “줄었어요.”
그게 대답의 전부다.
그날 오후 3시, 발전기가 기침을 한다.
엔진 소리가 한 번 꺾였다가 돌아온다. 조명이 깜빡인다. 그리고 다시 꺾인다. 미샤가 발전기실로 뛰어간다. 넉 달 동안 이 기지에서 뛰는 미샤를 본 적이 없다.
엔진이 멈추기 직전에 미샤가 예비 필터 쪽으로 연료 라인을 돌린다. 발전기에는 필터가 두 개 나란히 달려 있다. 하나가 막히면 밸브를 돌려 다른 쪽으로 넘길 수 있다. 엔진이 다시 고르게 돈다.
미샤가 막힌 필터를 뽑아낸다. 오늘 아침 9시에 갈아 끼운 필터다. 6월 중순부터는 하루에 하나씩 갈았다. 원래대로라면 내일 아침까지는 버텼어야 한다. 여섯 시간 만이다.
필터가 검다. 그런데 5월에 봤던 것과 다르다. 그때는 콧물 같은 점액이었다. 이번에는 더 거칠다. 검고 갈색인 부스러기가 주름마다 가득 끼어 있다. 젖은 커피 찌꺼기처럼.
“죽은 거야.” 미샤가 필터를 손가락으로 부스러뜨린다. “약 맞고 죽은 것들이 떨어져 나와서 연료에 떠다녀. 그게 다 여기로 와.”
저녁 6시, 두 번째 필터가 막힌다.
미샤가 예비 필터 상자를 연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센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같이 센다.
서른넷.
예비 필터 상자 안쪽 벽에 미샤의 글씨로 숫자가 적혀 있다. 120. 그 아래 줄을 긋고 60. 또 줄을 긋고 다음 숫자들. 미샤는 필터를 하나 꺼낼 때마다 그 숫자를 고쳐 적어 왔다. 나처럼.
미샤가 상자를 닫는다.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에 무엇이 있는지 이번에는 안다.
“죽은 것도 막아.” 미샤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