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8장
1,100기압 · 도해

8장

챌린저 해연 바닥, 수심 10,914m
생명유지 잔여 62시간
약 11분

흡수제 카트리지는 하나에 610그램이었다.

강태오는 빈 카트리지를 그물 자루에서 하나씩 꺼내 무릎 위에 세웠다. 손바닥만 한 원통. 안에 든 하얀 수산화리튬 알갱이가 사람이 내쉰 이산화탄소를 붙잡는다. 붙잡을 만큼 붙잡으면 알갱이는 단단하게 뭉쳐 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갈아 끼운다. 다 쓴 것은 버릴 데가 없어서 구 바닥의 자루에 모아 두었다.

아홉.

그는 한 번 더 셌다. 아홉. 흡수제 통에 꽂힌 열 번째는 방금 갈아 끼운 것이었다.

방수 수첩을 폈다. 어제 부력 장부를 적은 쪽 다음 장이었다. 해치를 닫은 게 1일 05시 10분. 지금은 2일 15시. 서른세 시간 50분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흡수제는 시간당 114그램씩 줄어야 했다. 서른네 시간이면 3.9킬로그램. 카트리지 여섯 개 반.

그는 아홉 개를 썼다.

연필 끝이 종이 위에서 떨렸다. 숫자가 비뚤게 적혔다. 그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왼손으로 다시 썼다. 왼손 글씨는 더 못생겼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5.5 − 3.9 = 1.6.

해연호에 흡수제를 처음 실을 때 이 계산을 한 사람이 그였다. 96시간에 11킬로그램. 생각하지 못한 일에 대비해 1킬로그램을 더 실어 12킬로그램. 생각하지 못한 일은 이미 일어났다. 1킬로그램 남짓한 여유를 다 먹고도 600그램 가까이가 더 나갔다. 시간당 114그램으로 나누면 다섯 시간.

계기판 왼쪽 위 생명유지 화면에는 초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잔여 62:08. 그 시계를 조립할 때도 그는 옆에 있었다. 그건 시계였다. 해치를 닫은 순간부터 96시간을 거꾸로 셀 뿐, 카트리지를 세지 않았다. 사람이 얼마나 거칠게 숨 쉬는지도 몰랐다.

5일 00시 10분.

그는 그 시각을 적고 네모를 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니나 쿠마르는 맞은편, 기울어진 구의 높은 쪽에서 손잡이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가 카트리지를 세는 걸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말해요.” 니나가 말했다. “아홉까지 세는 거 봤어요.”

“다섯 시간.” 태오가 말했다. “없어졌어요.”

그는 수첩을 돌려 니나에게 내밀었다. 숫자에는 영어가 필요 없었다. 니나는 비뚤어진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가다가 네모 친 시각에서 멈췄다.

“계기는 5일 다섯 시라고 하는데요.”

“계기는 시계. 카트리지 안 세요.”

니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무언가를 세는 것 같았다. 태오는 기다렸다. 이산화탄소 0.8퍼센트. 니나가 말을 많이 하기 시작하면 저 숫자가 오를 것이다.

“제 탓이죠.” 니나가 말했다. “어제 그 1센티미터 때. 그리고 새벽에 또 무너졌을 때. 제가 숨을…”

“나도 떨었어요.” 태오가 말했다. “밤새.”

그건 사실이었다. 새벽 지진 뒤로 그는 이를 맞부딪치며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떨면 근육이 일을 하고, 일을 하는 근육은 숨을 먹는다. 크게 떨 때 사람은 가만히 있을 때보다 두세 배 숨을 쉰다.

“공황이랑 같아요. 둘이 같이 썼어요.”

니나는 그를 봤다. 그는 그 시선을 받지 않고 수첩을 덮었다.

“이제부터 수칙.” 그가 말했다. “세 개.”


첫째, 말 줄이기. 둘째, 움직임 줄이기. 셋째, 난방 끄기.

“말을 줄이면 얼마나 아껴요?” 니나가 물었다. 그리고 바로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태오는 웃지 않았다. 다만 눈가가 아주 잠깐 풀렸다.

“질문은 돼요. 길게만 말고.”

니나가 손을 내렸다. “그럼 이건요. 이산화탄소를 좀 더 높게 두면요? 1퍼센트 말고 2퍼센트까지. 흡수제 통을 덜 돌리면 흡수제가 덜 들잖아요.”

좋은 질문이었다. 태오도 신입 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수첩 뒷장에 숫자 하나를 적어 보여 주었다.

27g.

“구 안 공기 1.4세제곱미터. 이산화탄소를 1퍼센트 올리면 공기에 쌓이는 게 27그램.” 그는 손가락으로 빈 카트리지를 톡 쳤다. “이거 하나가 400그램쯤 받아요. 공기는 창고가 아니에요. 내쉰 건 다 붙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아끼는 방법은 하나네요.”

“덜 내쉬기.”

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하얀 김이 입 앞에서 짧게 퍼졌다가 사라졌다.

난방은 포드 B에서 전기를 받았다. 히터는 구 안을 10도로 지키느라 평균 50와트쯤을 먹고 있었다. 포드 B는 60퍼센트. 로봇팔도, 살아남은 조명 두 개도, 음향 모뎀도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숨 쉬는 장치만은 구 안의 비상 전지가 따로 맡았다. 히터를 끄면 남은 시간 동안 포드 B의 10분의 1을 아낀다. 그만큼 팔을 더 돌릴 수 있었다.

태오가 히터 스위치를 내렸다. 송풍구의 낮은 바람 소리가 멎었다. 구 안이 갑자기 아주 조용해졌다. 흡수제 통의 팬 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얼마나 내려가요?” 니나가 물었다.

“9도.”

“어떻게 알아요?”

태오는 왼손 손가락을 꼽았다. “사람 둘, 가만히 있으면 200와트. 계기랑 팬이 60. 바깥이 2.5도. 그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랑 맞먹는 게 9도.” 그는 손을 폈다. “해연호 처음 시험할 때 쟀어요. 빈 구에 전구 켜 놓고 하룻밤. 유진이가 온도계 봤어요.”

“사람이 난로네요.”

“둘이면 9도.”

“하나면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나도 다시 묻지 않았다. 자기 질문을 듣고 나서야 그 뜻을 안 것 같았다.


한 시간 반 만에 구 안은 9.5도가 되었다.

추위는 발끝에서 먼저 왔다. 그다음 무릎, 엉덩이. 티타늄 벽에 등을 대고 있던 자리부터 얼었다. 태오는 니나의 어깨를 봤다. 팔짱을 끼고 있었고, 팔짱 낀 팔이 가늘게 떨렸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떨지 않을 만큼만 추워야 했다. 난방을 끄면 전기를 아끼고, 대신 숨을 쓴다. 숨이 전기보다 비쌌다.

은박 담요는 니나의 무릎 옆에 접혀 있었다. 어젯밤 니나가 잠든 사이 그가 덮어 준 것이었다. 물품함에 있던 다른 한 장은 비닐 안까지 젖어 있었다. 구가 기울어진 뒤로 천장의 이슬이 벽을 타고 낮은 쪽으로 흘러 물품함 귀퉁이에 고였던 것이다. 마른 건 한 장이었다.

그는 그것을 펼쳤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구 안을 채웠다. 은박이 계기판 불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번들거렸다.

“이리.” 그가 말했다.

니나가 그를 봤다.

“체온 나누기. 생존 절차.” 태오는 담요 끝을 니나 쪽으로 내밀었다. 목소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비 교범을 읽는 목소리였다. “교육 자료 12쪽. 훈련 때 봤어요.”

“12쪽.” 니나가 따라 했다.

니나는 손잡이를 놓고 기울어진 바닥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의 옆에 앉았다. 둘의 어깨가 닿았다. 태오는 담요로 두 사람의 등과 어깨를 한 번에 감쌌다. 담요 너머로도 그 몸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졌다. 떨림이 어깨를 타고 건너왔다. 그는 담요 끝을 니나의 무릎 밑에 접어 넣었다.

10분쯤 지나자 니나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태오는 이산화탄소 화면을 봤다. 0.8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훈련 자료에 진짜 있어요?” 니나가 작게 물었다. “12쪽.”

“있어요.”

“무슨 내용인데요?”

“이거.”

니나가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이었다.


다섯 시에 그는 로봇팔 전원을 넣었다.

오늘 아침 니나가 카메라 화면으로 붕괴 단면을 읽고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진흙은 선수 우현 쪽이 가장 얇다. 거기부터 파 내려가 해연호 밑으로 물길을 내면 흡입력이 깨진다. 태오는 그 말을 믿었다. 믿기로 한 게 아니라 믿었다. 화면 속 층을 읽는 동안 니나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겁먹은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남은 조명 둘, 우현 옆구리 조명과 팔 손목 조명을 켰다. 뱃머리 카메라 화면에 갈색 진흙이 떠올랐다. 우현 앞쪽, 썰매 다리 끝이 조금 보였다. 그 위를 진흙이 둔덕처럼 덮고 있었다.

조종간은 그의 오른쪽에 있었다. 해연호를 설계한 사람들은 조종사가 오른손잡이라고 생각했다. 태오도 오른손잡이였다. 그는 몸을 비틀어 왼손으로 조종간을 잡았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니나는 담요를 혼자 두른 채 그의 등 뒤에서 화면을 봤다.

첫 삽은 쉬웠다. 집게를 벌려 둔덕 꼭대기를 떠냈다. 갈색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는 기다렸다. 바닥의 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구름은 흘러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천천히 내려앉는다. 6분. 화면이 다시 맑아졌을 때 그는 방금 판 자리를 봤다.

자리가 없었다.

둔덕은 거의 그대로였다. 떠낸 자리 둘레의 진흙이 천천히 흘러내려 구멍을 메운 것이다. 그는 다시 팠다. 다시 기다렸다. 다시 팠다. 매번 구름이 일었고, 매번 6분을 기다렸고, 매번 구멍은 반쯤 메워졌다.

“그 위층은…” 니나가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태오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요.”

“아니에요. 수칙 1번.”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삽을 떴다.

일곱 시가 넘자 왼손도 굳기 시작했다. 9도는 손가락이 느려지는 온도였다. 미세하게 조종간을 밀어야 할 때 손가락이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집게가 둔덕 옆구리를 긁었다. 흙탕물이 화면을 덮었다. 갈색, 그리고 더 짙은 갈색.

그는 그런 갈색을 알았다. 오래전, 손을 뻗으면 철판만 만져지던 갈색. 그때도 손이 먼저 느려졌다. 그는 그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화면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6분 동안 숨을 셌다. 넷, 넷, 넷, 넷. 감압 정지 때 물속에서 세던 박자였다.

무릎 위의 오른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보지 않았다.

여덟 시 반에 그는 팔을 껐다. 선수 우현 앞에 고랑이 하나 생겨 있었다. 깊이 40센티미터. 해연호 밑까지 가려면 그 세 배는 더 파야 했다. 포드 B는 43퍼센트였다.

그는 수첩에 적었다. 20:30 고랑 40cm. 포드B 43. 그리고 정시 보고를 보냈다. 진척은 적지 않았다. 적을 게 없었다.


밤 열한 시 10분에 모뎀이 짧게 울었다.

둘은 다시 담요 하나 안에 있었다. 태오는 담요 밖으로 왼손만 내밀어 화면을 넘겼다.

해연, 한결. 한결호 철수 3일 12:00 확정. 출항 전 음향 중계 부이 설치. 배가 떠나도 교신 유지.

그는 그걸 한 번 읽었다. 철수. 유진이 이 단어를 치기 전에 몇 번이나 지웠을지 그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중계 부이. 그 단어는 처음 봤다. 해연호의 어떤 절차서에도 없는 말이었다. 유진이 만든 말이었다.

“뭐래요?” 니나가 물었다.

“배가 내일 정오에 떠나요.” 그는 숫자를 짚었다. 12:00. “태풍. 대신 부이를 남긴대요. 문자는 계속.”

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만 움직였다. 태오는 니나가 무엇을 세는지 알았다. 내일 정오부터 5일 0시 10분까지. 그 사이에 위에 아무도 없는 시간.

그는 왼손 검지로 답을 쳤다.

확인.

14초. 그리고 30초쯤. 모뎀이 다시 울었다.

선배 괜찮아요?

태오는 그 줄을 오래 봤다. 그리고 쳤다. 왼손 검지 하나로. ㄱ, ㅙ, ㄴ. 글쇠 하나를 찾을 때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오른손을 쓰면 더 빨랐다. 오른손을 쓰면 오타가 났다. 첫날 그는 ‘정상’을 ‘정샹’으로 보냈다. 유진은 그걸 그냥 넘기지 않았다.

괜찮다.

전송.

니나가 그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한글은 읽지 못해도 글자의 모양은 볼 수 있었다.

“그 글자.” 니나가 말했다. “오늘 몇 번 봤어요. 매번 같은 모양. 세 글자. 가운데 글자 밑에 받침이 두 개 붙은 거. 무슨 뜻이에요?”

“괜찮다.”

니나는 한참 그 글자를 봤다. 그리고 그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 손도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요 안에서 니나의 어깨가 그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그러니 알았을 것이다. 담요 속 무릎 위의 오른손이 아까부터 그의 팔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걸.

“추워서 아니죠.” 니나가 말했다. “첫날도 추워서라고 했어요. 그때 구 안이 11도였어요. 지금보다 따뜻했어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화면 속 층을 읽을 때의 목소리였다.

흡수제 통의 팬이 돌았다. 이산화탄소 0.8. 구가 아주 낮게 울었다. 바깥의 진흙이 티타늄을 누르는 소리였다. 태오는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소리는 끝나지 않고 잦아들기만 했다.

“반년.” 그가 말했다.

니나는 기다렸다.

“반년 전부터. 아침에 심해요. 추우면 더.” 그는 담요 속에서 오른손을 꺼냈다. 담요 밖, 계기판 불빛 속에 손을 펴 보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숨기지 않으니 생각보다 많이 떨렸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유진이한테도.”

“병원은요?”

“안 갔어요.”

“왜요?”

“가면 이름이 붙어요.” 그는 손을 내려다봤다. “이름 붙으면 잠수 못 해요.”

“그래서 이번에…”

“이번이 마지막이었어요. 내가 정했어요. 혼자.” 그는 손을 다시 담요 속에 넣으려다 멈췄다. 그리고 그냥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담요 속, 니나가 볼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말하려고 했어요.”

니나의 손이 담요 속에서 움직였다. 그의 손 위에 얹지는 않았다. 손등 옆, 닿을 듯 말 듯한 자리에 그냥 두었다. 새끼손가락이 그의 새끼손가락에 닿았다. 떨림이 그쪽으로 건너갔다. 니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왜 마지막인데요?” 니나가 물었다. “손 때문만은 아니죠.”

대답이 있었다. 오래된 대답이었고, 길었다. 여기서 꺼내기에는 공기가 모자랐다.

“수칙 1번.” 태오가 말했다.

니나는 더 묻지 않았다. 담요를 끌어 올려 두 사람의 턱 밑까지 덮었다. 은박이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그친 뒤에도 니나의 새끼손가락은 그 자리에 있었다.


새벽 네 시, 태오는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자지 못했다. 니나는 두 시쯤 잠깐 잠들었다가 구가 우는 소리에 깼다. 그는 니나가 잠든 동안 수첩에 오늘 할 일을 적었다. 고랑을 해연호 밑까지. 물길. 그는 그 계획을 믿었다. 다만 그걸 할 손이 없었다.

아침에 심했다. 그가 니나에게 한 말 그대로였다. 왼손마저 밤새 굳어 조종간의 미세 조정이 듣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반쯤만 왔다. 집게가 고랑 벽을 스쳤다. 어제 세 시간 동안 판 고랑의 한쪽 벽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화면이 갈색으로 덮였다.

태오는 손을 뗐다.

6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색 구름이 가라앉았다. 고랑은 40센티미터에서 25센티미터가 되어 있었다. 포드 B 39퍼센트.

그는 자기 왼손을 봤다. 그리고 무릎 위의 오른손을 봤다. 해연호를 조립할 때부터 볼트를 조인 손이었다. 이 잠수정의 어떤 부품도 이 두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볼트 하나하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 이름을 지금도 다 기억했다. 기억하는 것과 조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니나를 봤다.

니나는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화면 속 무너진 고랑을 보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숫자를 세는 게 아니었다. 오른손 검지로 자기 무릎 위에 선을 긋고 있었다. 가로로 한 줄, 그 아래 한 줄. 위층과 아래층. 퇴적층을 그리는 손가락이었다. 무너진 고랑 벽의 단면을 읽고 있었다.

태오는 그 손가락을 오래 봤다. 떨리지 않는 손가락이었다.

“로봇팔.” 그가 말했다.

니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잠수정을 몬 15년 동안 한 번도 남에게 하지 않은 질문을 했다.

“해 봤어요?”

니나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시뮬레이터로요.” 니나가 말했다. “열두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