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7장
1,100기압 · 도해

7장

한결호, 챌린저 해연 상공
생명유지 잔여 67시간
약 12분

예보도는 음향 통신 콘솔 옆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파딜라가 들고 온 그 종이였다. 오유진은 그 뒤 다섯 시간 동안 앞을 지날 때마다 연필로 뭔가를 적어 넣었다. 이제 종이에는 그 연필 글씨가 열한 군데 있었다.

한가운데 붉은 태풍 기호가 있었다. 거기서 선 하나가 서쪽으로 뻗어 나왔고, 선 위에는 열두 시간마다 점이 찍혀 있었다. 선 양옆으로 회색 띠가 깔때기처럼 벌어졌다. 태풍 기호 근처에서는 손가락 한 마디 폭이던 회색이 사흘 뒤의 점에 이르면 손바닥만 해졌다. 그 손바닥 안에 유진이 그린 작은 엑스 표시가 있었다. 해연호가 있는 자리였다.

배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 선부터 봤다. 선은 엑스 표시 북쪽 40킬로미터를 지나갔다. 아침 식당에서 누군가 그 선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래도 위로 비켜 가네” 하고 말했다. 유진은 그냥 나왔다. 컨테이너로 돌아와 선 옆에 숫자 하나를 적었다.

사흘짜리 태풍 진로 예보가 빗나가는 거리의 평균이었다. 회색 깔때기는 태풍의 몸집이 아니었다. 태풍의 중심이 있을 수 있는 자리였다.

유진은 깔때기 가장자리를 따라 연필로 선을 하나 더 그었다. 다시 300킬로미터 바깥으로. 초속 17미터, 34노트가 넘는 바람이 부는 반지름이었다. 두 번째 선은 종이 끝을 넘어 탁자까지 갔다. 엑스 표시는 그 안 깊숙이 있었다.

“선배님. 열 시 보고요.”

김도윤이 헤드폰을 한쪽 벗으며 모니터를 돌려 주었다. 유진은 서른 시간째 자지 않았다.

한결, 해연. 10:00. 선체 정상. O2 20.6. CO2 0.8. 흡수제 정상. 포드B 68. 구 내 10. 수심 10914.4.

태오는 늘 같은 순서로 보냈다. 선체, 산소, 이산화탄소, 흡수제, 전력. 입사 첫해에 유진이 낸 첫 보고서는 수심부터 시작했다. 태오는 아무 말 없이 빨간 펜으로 수심에 줄을 긋고 맨 아래로 화살표를 그었다. 위치는 사람이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가 그걸 말로 한 적은 없었다.

새벽까지는 숫자 뒤에 한 줄이 더 붙었다. ‘쿠마르 박사 수면 1.5시간.’ ‘이탈 진행. 최근 1시간 6cm.’ 오늘은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유진은 자판에 손을 얹었다.

해연, 한결. 수신. 선배 상태?

전송을 누르고 손목시계를 봤다. 편도 7초. 아래에서 읽는 시간. 치는 시간. 다시 편도 7초. 어제 오전에는 답이 40초 안에 왔다.

1분이 지났다. 1분 30초. 콘솔 스피커에서 짧은 경보음이 난 건 2분 10초가 지나서였다.

괜찮다.

왕복 14초를 빼면 그는 세 글자를 치는 데 거의 2분을 썼다.

유진은 해연호 정비 일지를 처음부터 그와 같이 썼다. 기계가 정상일 때 태오는 일지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빈칸이 정상이었다. ‘괜찮다’는 그가 기계에 쓰는 말이 아니었다. 유진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건 4년 전 시험 잠항 때였다. 그는 갑판에서 철판 모서리에 손바닥을 길게 베었다. 피가 장갑 밖으로 배어 나오는데도 그는 “괜찮다” 하고 크레인 신호를 계속 줬다.

“이것도 일지에 옮겨 줘요.” 유진이 말했다. “‘괜찮다’까지.”


레예스 선장은 선교 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탁자에는 종이 해도가 펴져 있었다. 그는 전자 해도가 있어도 종이 해도를 꼭 폈다. 연필은 늘 오른쪽 귀에 꽂혀 있었다. 유진이 들어서자 그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벽에 걸린 기압계 유리를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다. 바늘이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1,006입니다. 어제 이 시각보다 4헥토파스칼 낮습니다.”

창밖 바다는 아직 멀쩡해 보였다. 높은 하늘에 새털 같은 흰 구름이 동쪽에서부터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배가 느리게, 길게 오르내렸다. 유진은 버릇처럼 그 사이를 셌다. 13초. 근처 바람이 만든 파도는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900킬로미터 밖에서 노을이 일으킨 너울이 바람보다 먼저 와 있었다.

“앉으시겠습니까, 오 팀장.”

“서 있을게요.”

레예스가 해도 위에 투명한 자를 놓았다.

“노을은 지금 동쪽 900킬로미터에 있습니다. 서쪽으로 시속 18킬로미터 안팎. 어제 이 시각 최대풍속이 50노트였는데 지금은 85노트입니다.”

귀에서 연필이 내려와 해도 위에 원을 그렸다. “34노트 반경을 300킬로미터로 잡겠습니다. 예보대로라면 중심이 해연 상공을 지나는 건 4일 밤입니다. 반지름이 300킬로미터면 바람은 중심보다 열일곱 시간쯤 먼저 이 자리에 닿습니다. 4일 새벽 네 시. 예보 오차를 넣으면 4일 자정.”

“그 전에 남쪽으로 빠지면 되잖아요.”

“남서쪽으로 갑니다. 진행 방향 왼쪽, 안전 반원입니다. 같은 거리라도 오른쪽보다 바람이 약합니다.” 레예스는 자를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눕혔다. “그런데 이 너울을 안고 가면 저희 배는 10노트밖에 못 냅니다. 안전 반원 깊숙이 들어가는 데 열두 시간입니다. 괌은 안 됩니다. 괌은 진로 북쪽, 위험 반원에 걸립니다.”

그는 자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내일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하겠습니다.”

유진은 셈을 거꾸로 했다. 4일 0시에서 열두 시간을 빼면.

“정오예요. 3일 정오.”

“계산으로는 정오입니다. 여섯 시간은 제 여유입니다.”

“그 여섯 시간이면 교신이 여섯 번이에요. 저 아래 사람들은 지금 한 시간에 한 번씩 숫자를 보내요.”

“압니다.”

“해연호 생명유지는 5일 새벽까지예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혼자 올라온다고 쳐요. 태풍이 지나가면 바로 돌아오는 거죠?”

“돌아옵니다. 다만 바람이 40노트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는 이 배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 전에 떠오르면요? 위에 아무도 없으면…”

레예스가 탁자 끝의 클립보드를 유진 앞으로 밀었다. 승선 명부였다. 이름 스물세 개, 그 옆에 그의 손으로 그은 체크 표시 스물세 개. 오늘 아침 것이었다.

“스물셋입니다, 오 팀장.” 목소리는 조금도 커지지 않았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문 너머 선교에서 조타수가 침로를 복창하는 소리만 들렸다.

유진은 그 명단을 알았다. 맨 아래에서 세 번째 줄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갑판장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레예스는 태풍 속에서 배를 세 번 잃을 뻔했다고 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직접 한 적이 없었다. 기압계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대신하는 것 같았다.

“아래는 둘이에요.” 유진이 말했다.

“압니다.” 레예스는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해도를 내려다봤다. 연필 끝이 4일 자정에 찍어 둔 점 위에 오래 머물렀다.

“오늘 열한 시, 다섯 시, 밤 열한 시. 예보를 세 번 더 보겠습니다. 노을이 지금보다 빨라지지 않으면 정오에 출발합니다. 빨라지면 빨라진 만큼 당깁니다.” 그는 연필을 다시 귀에 꽂았다. “새벽 여섯 시는 제 숫자였습니다. 정오는 오 팀장 숫자입니다. 그 사이 여섯 시간은 제가 지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유진은 명부를 그의 쪽으로 돌려놓고 회의실을 나왔다.


열한 시 예보는 열한 시 7분에 들어왔다. 유진은 새 종이를 새벽 것 위에 겹쳐 불빛에 비춰 보았다. 선이 30킬로미터 남쪽으로 내려와 거의 엑스 표시를 밟고 지나갔다. 최대풍속 95노트. 200킬로미터 오차 앞에서 30킬로미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손바닥이 축축했다.

해연호에 알려야 했다.

절차서에는 ‘수면 상황 변동 시 즉시 잠수정에 통보’라고 적혀 있었다. 유진은 자판에 손을 얹고 한참 그대로 있었다. 처음 친 문장은 이랬다. ‘노을 진로 소폭 남하. 한결호 대응 검토 중.’ 지웠다. 소폭은 거짓말이었다. 대응은 얼버무림이었다. 태오는 얼버무린 문장을 받으면 그걸 숫자로 풀어서 최악을 읽어 낼 사람이었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최악을 보내는 게 나았다.

노을 급발달. 진로 남하. 한결호 철수 검토 시작.

유진은 ‘철수’라는 두 글자를 오래 봤다. 니나 쿠마르는 한글을 못 읽는다. 태오는 언제나처럼 숫자만 짚어서 옮겨 줄 것이다. 이 문장에는 짚을 숫자가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첫 예보를 받고도 보내지 못한 문자였다. 11시 49분에 전송을 눌렀다.

답은 1분 40초 뒤에 왔다.

확인.

그게 다였다.


오후 한 시, 유진은 위성 전화로 괌을 불렀다.

미 해안경비대 괌 수색구조 조정센터의 당직 장교는 유진이 묻기 전에 먼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 중에 1만 미터를 내려갈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해군도 없습니다. 그리고 노을이 지나가기 전에는 저희 배도 못 나갑니다. 경비함들은 지금 항구에서 태풍 대비 중입니다.” 위성 전화 특유의 반 박자 늦은 침묵이 끼어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해군 P-8 초계기가 괌에 있습니다. 바다 위에 뭔가 떠 있으면 찾습니다.”

“떠 있으면요.”

“네. 떠 있으면.”

유진은 수첩에 적고 밑줄을 그었다. 떠 있으면.

두 시 반에는 화상 회의였다. 하이난섬 싼야의 분투자호 운항팀, 그쪽 통역, 한결호의 유진과 배정민 박사. 분투자호 수석 조종사는 마흔 중반의 여자였고, 말을 하기 전에 늘 볼펜 뚜껑을 닫았다. 중국어가 통역을 거쳐 영어가 되고, 위성을 타고 반 박자 늦게 한결호에 닿았다. 한 마디가 오가는 데 30초가 걸렸다. 해연호와 문자 한 줄을 주고받는 시간과 거의 같았다. 1만 미터 아래 사람과 3천 킬로미터 옆 사람이 똑같이 멀었다.

분투자호의 답은 정직했다. 모선 출항 준비는 밤사이에 끝난다. 거기서 해연까지 엿새. 그런데 그 항로 한가운데 노을이 있었다. 돌아가거나 기다려야 했다.

“빨라도 잠수 9일 차입니다.” 통역이 옮겼다.

메모지에는 5일 05:10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도 그 사이의 나흘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조종사가 볼펜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통역을 거치지 않고 영어로 직접 물었다. 발음은 딱딱했지만 또렷했다.

“해연호에는 구 분리 장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수심에서 써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화면이 멈췄다가 움직였다.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없습니다.” 조종사가 말했다. “그래도 출항하겠습니다. 도착했을 때 우리가 할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화면이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회선이 끊긴 것이었다. 유진은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깐 봤다.


세 시 40분에 해연호에서 문자가 왔다. 정시 보고가 아니었다.

한결, 해연. 흡수제 재계산. 계획 대비 초과 사용 1.6kg. 여유분 소진. 한계 5일 00:10. 난방 끔.

유진은 그 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맨 위에 파란 마커로 ‘생명유지 한계 5일 05:10’이라고 써 둔 줄이 있었다. 05:10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우고 00:10이라고 썼다. 다섯 시간이 손가락 하나로 지워졌다.

유진은 자리로 돌아와 철수 대비 점검표를 폈다. 손이 할 일을 찾고 있었다. 목록 열네 번째 줄에 ‘해연호 예비품 고박 확인’이 있었다. 갑판원들은 A자 크레인과 윈치를 묶느라 바빴다. 유진은 점검표를 들고 아래층 예비품 창고로 내려갔다.

창고는 배 밑바닥 가까이에 있어서 13초마다 바닥이 가라앉았다가 올라왔다. 유진은 상자에 붙은 목록과 점검표를 하나씩 맞춰 나갔다. 사실 이 상자들은 다 외우고 있었다. 신입 때 태오가 맨 처음 시킨 일이 예비품 목록을 외우는 것이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바다에선 상자가 사람 살려.”

맨 아래 칸에 길쭉한 회색 상자가 있었다. 스텐실 글씨. 음향 트랜스듀서, 예비 1. 한결호 선체 바닥에서 해연호와 문자를 주고받는 바로 그 부품이었다. 그 옆에 작은 상자 둘. 해연호 수면 비콘용 위성 송수신기 예비품. 그리고 벽에 기대어 세워 둔, 지름 1미터 남짓한 노란 표지 부이 하나.

유진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해연호와 세상을 잇는 건 한결호가 아니었다. 물속의 소리를 듣고 내는 트랜스듀서, 그 소리를 하늘로 올리는 위성 송수신기. 한결호는 그 둘을 들고 있는 손일 뿐이었다. 손은 떠나도 된다. 귀와 입만 남으면.

유진은 점검표를 뒤집어 빈 면에 그림을 그렸다. 수면에 노란 부이. 부이 위에 위성 송수신기. 부이 밑으로 긴 줄. 줄 끝에 트랜스듀서. 태풍이 오면 수면 아래 몇십 미터는 거품과 파도 소리로 끓는다. 줄은 그 아래로 넉넉하게, 1천 미터.

1천 미터가 넘는 줄은 한결호에 하나밖에 없었다. 첫날 회의에서 바닥까지 4킬로미터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목록에서 지워 버린 7킬로미터짜리 심해 예인 케이블. 바닥까지는 모자랐다. 1천 미터를 잘라 내기에는 넘쳤다.

유진은 점검표를 들고 일어났다. 무릎이 저렸다.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갔다.


갑판장은 그림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7킬로를 6킬로로 만드시겠다는 겁니까. 저 케이블 하나 값이 이 배 한 달 운항비입니다.”

“알아요.”

갑판장은 유진을 한참 보다가 장갑을 다시 꼈다. “선장님이 된다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배 박사는 그림을 오래 봤고, 전력을 물었다. 위성 송수신기와 트랜스듀서를 같이 돌릴 배터리. 해연호 비상 비콘용 예비 배터리 팩을 넷 묶으면 닷새를 간다고 유진이 답했다. 그는 케이블 절단 승인서에 서명하고 나서 펜 뚜껑을 한참 닫지 못했다.

“본원에서 물으면,” 그가 말했다. “내가 하자고 했다고 해요.”

“제가 하자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하자고 했다고 해요.”

레예스는 회의실에서 그림을 받아 들고 한 번 훑어본 뒤 시계를 봤다.

“갑판 작업은 내일 열한 시 반까지입니다. 그 뒤로는 아무도 갑판에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그 전에 띄울게요.”

“태풍 속에서 그게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모르겠어요.” 유진이 말했다. “안 띄우면 0시간 버텨요.”

레예스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가 웃는 걸 유진은 이번 항해에서 처음 봤다. 그는 그림을 돌려주지 않고 해도 위, 승선 명부 옆에 놓았다.


다섯 시 예보에서 노을은 105노트였고, 진로는 더 내려오지 않았다. 저녁 정시 보고의 숫자들은 천천히 나빠졌다. 구 내 10. 구 내 9. 여덟 시 반에 포드B가 43으로 크게 떨어졌다. 파기를 시작한 것이다. 유진은 숫자 뒤의 빈칸을 읽었다. 팔을 세 시간 넘게 돌리고도 진척을 적지 않았다는 건, 적을 진척이 없다는 뜻이었다.

밤 열한 시 예보는 열한 시 4분에 들어왔다. 노을 최대풍속 120노트. 중심 기압 930헥토파스칼. 진로는 낮보다 더 움직이지 않았다. 해연 상공 통과 4일 21시 전후. 34노트 반경 320킬로미터.

유진이 종이를 벽에 붙이고 있을 때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레예스였다. 선장이 운항 통제실까지 내려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레예스는 새 예보도를 잠시 봤다. 유진이 아침에 그어 둔 두 번째 연필 선, 종이 끝을 넘어 탁자로 내려간 그 선에 손가락을 댔다가 뗐다.

“정오입니다.” 그가 말했다. “3일 12시. 그 시각에 배를 돌립니다. 더 당기지도, 늦추지도 않겠습니다.”

“네.”

“부이는 열한 시 반까지.”

“네.”

그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나갔다.

유진은 자판 앞에 앉았다.

해연, 한결. 한결호 철수 3일 12:00 확정. 출항 전 음향 중계 부이 설치. 배가 떠나도 교신 유지.

답은 1분 50초 뒤에 왔다.

확인.

유진은 한 줄을 더 쳤다.

선배 괜찮아요?

이번에는 2분 30초가 걸렸다.

괜찮다.

유진은 선반에서 빨간 바인더를 꺼냈다. 7.4항, 해저 고착, 두 쪽. 3년 전 겨울 자기가 체크 표시를 한 그 두 쪽 어디에도 태풍은 없었다. 배가 떠나는 경우도 없었다. 두 번째 쪽 아래 여백에 볼펜으로 한 줄을 적었다. 규정집에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뭔가를 써 넣는 건 처음이었다.

3일 12:00 철수. 부이 남김.

그 아래 한 줄을 더 쓰려다가, 볼펜 끝을 종이에 댄 채 오래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볼펜 끝이 머문 자리에 파란 점 하나가 번졌다.

벽시계는 11시 20분을 가리켰다. 철수까지 열세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