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에 태오가 실내등을 껐다.
바깥 조명 두 개는 그보다 먼저 꺼졌다. 포드 B 하나로 버텨야 하는 밤이었다. 볼 것이 없는 데 빛을 쓸 이유가 없었다. 실내등 스위치가 딸깍 넘어가자 구 안에는 계기판의 불빛만 남았다. 초록색 숫자 몇 개, 주황색 표시등 몇 개, 그리고 수심계의 하얀 글자.
10,913.99.
니나 쿠마르는 그 숫자를 세 시간째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구는 더 작아졌다. 벽이 보이지 않으니 벽이 어디 있는지 몸이 대신 쟀다. 무릎 앞 한 뼘, 등 뒤 한 뼘, 머리 위 손바닥 두 개. 니나는 그걸 재지 않으려고 숫자를 봤다. 하얀 숫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숫자를 보는 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적어도 내려가지는 않았다.
맞은편에서 태오가 털모자를 귀까지 끌어내렸다. 계기판 불빛이 그의 얼굴 아래쪽만 비췄다. 턱, 입술, 콧방울. 눈은 그늘 속에 있었다. 오른손은 보이지 않았다. 니나는 그 손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저녁 내내 그는 그 손을 허벅지 밑에 깔고 앉아 있었다. 쓸 때만 꺼냈다가, 쓰고 나면 다시 넣었다. 니나는 그걸 봤고, 보지 않은 척했다.
세 시간 전에는 자기가 그 사람 앞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 손가락이 저리고 목이 조이고, 구 안의 공기가 전부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손목으로 니나의 무릎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톡. 넷. 톡.
부끄러움은 나중에 왔다. 숨이 돌아오고 나서. 이산화탄소 0.9퍼센트. 자기가 몇 분 동안 내쉰 숨이 그 숫자를 만들었다. 흡수제는 그 숫자를 다시 내리느라 일을 더 했을 것이다. 니나는 그게 몇 그램인지 계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계산의 끝에는 자기가 써 버린 몇 분이 있었다. 두 사람의 몇 분.
1센티미터.
니나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뒤집어 봤다. 해연호가 1센티미터 올라갔다가 멈췄다. 왜 멈췄는가는 다들 알았다. 530킬로그램이 5.9톤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궁금한 건 반대쪽이었다.
왜 1센티미터라도 움직였는가.
5.9톤이 정말 5.9톤이라면, 530킬로그램으로는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움직였다. 덜컥 하고. 그리고 멈췄다.
석사 시절 연구실이 떠올랐다. 벵골만 해저에서 퍼 올린 진흙을 원통에 담고 위에서 누르거나 당기던 실험. 그때 지도 교수가 칠판에 그려 준 그래프가 있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힘. 빨리 당기면 진흙은 단단하다. 천천히 당기면…
니나는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무릎이 태오의 무릎에 닿았다.
“태오.”
“네.”
“부산에서 온 숫자요. 4.8톤. 그거 계산할 때 쓴 공식, 아마 제가 아는 거예요. 전단강도에 면적에 계수 곱하는 거. 그건 빨리 뗄 때 숫자예요.”
어둠 속에서 털모자가 니나 쪽으로 돌았다.
“진흙 알갱이 사이에는 물이 있어요.” 니나가 말했다. “해연호 밑에도 있고요. 해연호가 위로 들리려고 하면 밑에 틈이 생기려고 해요. 아주 작은 틈. 그 틈을 채우려면 물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 진흙은 알갱이가 너무 고와서 물이 그 사이로 거의 못 다녀요. 그러니까 틈이 생기려는 자리에 물이 없어요. 물이 없으면 거기 압력이 주변보다 떨어져요. 그게 밑에서 잡아당기는 거예요. 진흙이 해연호를 붙잡는 게 아니라, 밑에 생기려는 빈자리가 해연호를 빨아들이는 거예요.”
니나는 숨을 골랐다. 이번에는 숨이 빨라지지 않았다.
“근데 물은 결국 들어와요. 느려도 들어와요. 우리가 계속 위로 당기고 있으면, 가장자리부터 물이 조금씩 스며들어요. 스며든 만큼 빈자리가 채워지고, 채워진 만큼 붙잡는 힘이 풀려요. 4.8톤은 지금 당장 떼어 낼 때 필요한 힘이에요. 천천히 떼어 내면 그것보다 훨씬 작은 힘으로도 돼요.”
“얼마나 천천히.”
“몰라요.” 니나는 말하고 나서 그게 그의 말이라는 걸 알았다. 어둠 속에서 그가 숨을 짧게 내쉬는 소리가 났다. 웃음일 수도 있었다. “몇 시간. 진흙이 얼마나 고운지, 해연호 밑이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하루 넘게 걸릴 수도 있어요. 아까 1센티미터는 진흙이 고무처럼 조금 늘어난 거예요. 늘어날 만큼 늘어나고 멈춘 거고. 그다음부터는 물이 일을 해야 해요.”
“우리는.”
“우리는 기다리면 돼요. 그리고 계속 당기고 있으면 돼요. 530킬로그램이 쉬지 않고 당기고 있잖아요. 그거면 돼요. 그게 물을 불러들여요.”
태오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니나는 그가 생각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이 잠수정의 볼트 하나하나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잠수정 바깥의 진흙에 대해서는 니나에게 묻고 있었다.
“할머니 논이요.” 니나가 말했다. 왜 그 말이 나왔는지 자기도 몰랐다. “쿠타나드라고, 케랄라에 바다보다 낮은 논이 있어요. 할머니가 거기서 벼농사를 지었어요. 어릴 때 방학이면 갔는데, 논에 들어가면 발이 빠져요. 무릎까지. 처음에 저는 발을 확 잡아 뺐어요. 그러면 발은 안 나오고 엉덩방아만 찧어요. 할머니가 웃으면서 가르쳐 줬어요. 천천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그러면 발 밑으로 물이 들어간다고. 할머니는 물이 들어간다는 말은 안 했어요. 그냥 진흙이 놓아준다고 했어요.”
“놓아준다.”
“네.”
태오가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계기판 불빛 속으로 그의 왼손이 들어왔다. 손가락 사이에 연필이 있었다. 그는 수첩을 무릎에 펴고, 장부가 있는 쪽 왼쪽 칸의 ‘4.8?’ 옆에 무언가를 적었다. 니나는 그 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한글이었다. 그래도 그게 짧다는 건 알았다.
“뭐라고 썼어요?”
“빨리 뗄 때.”
니나는 그 세 마디를 오래 곱씹었다. 그 사람의 수첩에 자기가 한 말이 적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큰 의미일까 봐.
“얼마나 걸려요.” 태오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뜻이었다.
니나는 생명유지 화면을 봤다. 산소 수치 위의 시간. 78:41.
시간이 풀어 준다. 그런데 시간은 공기다.
“모르겠어요.” 니나가 말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23시 40분에 숫자가 바뀌었다.
니나는 처음에 자기가 잘못 본 줄 알았다. 10,913.99가 10,913.98이 되었다가, 다시 99로 돌아갔다가, 98이 됐다. 그리고 98에 머물렀다.
숨을 참고 있었다. 알아차리고 다시 내쉬었다. 넷.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면 숫자가 돌아갈 것 같았다.
자정이 지나고 97이 됐다. 0시 40분에 95.
“밀물이요.” 니나가 갑자기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조석. 바닷물이 들어오면 수심이 깊어지고 나가면 얕아지잖아요. 이 정도 정밀한 압력계면 그것도 잡혀요. 이거 혹시 썰물이라서…”
“빼요.” 태오가 말했다.
“네?”
“조석표. 계기가 빼요. 이 해역 표로. 30년 치.”
니나는 그를 봤다. 어둠 속에서 털모자의 윤곽만 보였다. 그는 이 계기를 직접 맞춘 사람이었다. 첫 잠수의 두려움 속에서 니나가 매달리는 이 하얀 숫자가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한 숫자인지 그는 다 알았다.
“그럼 이건,” 니나가 말했다. “진짜예요.”
“진짜예요.”
1시 10분에 10,913.9.
니나는 그 숫자 앞에서 웃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어깨만 떨렸다. 태오는 니나를 보지 않고 수첩을 펴서 무언가를 적었다. 시각과 숫자일 것이다. 이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적는지 알았다.
투하하고 여섯 시간 동안 10센티미터. 니나는 셈했다. 처음 네 시간 반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 한 시간 반 동안 9센티미터. 빨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논에서 발이 빠져나올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다가, 어느 순간 진흙이 한숨처럼 놓아주었다.
“코치는 지금 비 와요?”
태오가 물었다. 1시 반쯤이었다. 니나는 그가 먼저 무언가를 묻는 걸 처음 들었다. 체크리스트나 산소 수치가 아닌 것을.
“지금은 끝물이에요. 9월이니까.” 니나가 말했다. “6월에 와요. 몬순이. 진짜로 하루 만에 와요. 어제까지 하늘이 하얗게 뜨겁다가, 다음 날 아침에 바다 쪽에서 검은 구름이 벽처럼 와요. 그러면 냄새가 먼저 와요. 흙냄새. 비가 땅에 닿기 전에 냄새가 먼저 와요. 그걸 맡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빨래를 걷으러 뛰어요.”
“냄새.”
“네. 그리고 석 달 동안 안 그쳐요. 집 안 벽에 곰팡이가 피고, 책이 휘고, 신발에 이끼가 껴요. 어머니는 매년 그걸 닦으면서 욕했어요. 말라얄람어로. 근데 비가 그치면 제일 먼저 서운해하는 것도 어머니였어요.”
니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구 안은 10도였다. 숨을 쉴 때마다 김이 계기판 불빛 속으로 올라갔다.
“아까 숫자 세는 거요.” 태오가 말했다. “하강할 때. 들렸어요.”
니나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들렸을 줄은 몰랐다.
“몬순 때 천둥이 집을 흔들면요.” 니나가 말했다. “어머니가 번개 치면 세라고 했어요. 셋 세기 전에 천둥이 오면 가까운 거고, 열까지 세도 안 오면 먼 거라고. 그래서 저는 번개만 치면 셌어요. 세는 동안은 안 울었어요. 어머니는 그걸 알았던 것 같아요.”
“멀었어요?”
“네?”
“열까지.”
니나는 웃었다. 소리 없이. “대부분은요. 세다 보면 대부분 멀었어요.”
태오는 그 말을 곱씹는 것처럼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더 묻지는 않았다. 니나는 그게 고마웠다. 더 말하면 어머니 얼굴이 따라 나올 것이다. 지금쯤 코치의 집 전화기 앞에 앉아 있을 얼굴이.
“한국은요?” 니나가 물었다. “태오는 어디 살아요?”
“부산.”
“바다 보여요?”
“아니요.”
“왜요?”
“바다는 일할 때 봐요.”
니나는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작게. 그게 그 사람의 농담인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2시가 조금 넘어 태오가 말했다.
“자요.”
“못 자요.”
“자요. 내가 봐요.”
“태오도 자야죠.”
“나중에.”
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이라 그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눈 감으면 그 소리가 들려요. 위에서 오는 소리. 그리고 숫자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태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얼굴부터.”
“네?”
“군대에서 배운 거. 얼굴. 이마 풀고. 눈 풀고. 턱. 혀.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으면 떼요.”
니나는 자기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혀를 내려놓았다.
“어깨. 내려요. 더. 팔. 오른팔부터. 손가락까지.”
그의 목소리는 체크리스트를 읽을 때와 똑같았다. 짧고, 고르고, 서두르지 않았다. 니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어깨를 내렸다. 자기가 어깨를 그렇게 높이 들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숨. 내쉬어요. 길게. 가슴 풀어요.”
니나는 내쉬었다.
“다리. 허벅지. 종아리. 발.”
허벅지까지는 따라갔다.
“그다음엔 생각 하나만 해요. 검은 방. 아무것도 없는 방. 다른 생각이 오면 ‘아니’라고 해요. 속으로. 10초.”
검은 방이라면 지금 여기가 그랬다. 니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에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종아리를 풀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 니나는 자기가 잠들었었다는 것도 몰랐다.
계기판 불빛은 그대로였다. 털모자도 그대로였다. 태오는 같은 자세로 앉아 수심계를 보고 있었다. 어깨에 무언가가 덮여 있었다. 은박 담요였다. 바스락거렸다.
“몇 시예요?”
“3시 50분.”
한 시간 반을 잤다. 니나는 수심계를 봤다.
10,913.80.
그 숫자를 두 번 읽었다. 20센티미터. 자는 동안 해연호는 10센티미터를 더 올라갔다.
“마지막 한 시간에 6센티.” 태오가 말했다. “빨라져요.”
니나는 머릿속으로 해연호의 밑바닥을 그렸다. 진흙에 박힌 썰매 두 줄, 그 사이의 넓은 배. 그 가장자리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1밀리미터씩, 2밀리미터씩. 빈자리가 채워지고, 채워진 만큼 진흙이 손을 풀고. 20센티미터 올라왔다면 썰매의 일부는 이미 진흙에서 빠져나왔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물이 들어오는 길이 더 넓어진다. 그러면 더 빨라진다.
“아침이면,” 니나가 말했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말했다. “아침이면 떨어질 수도 있어요. 확. 할머니 논에서처럼.”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펴서, 니나가 자는 동안 자기가 적은 숫자들을 돌려 보여 주었다. 시각과 수심이 한 줄씩. 0시, 1시, 2시, 3시. 숫자는 한 줄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더 작아졌다. 왼손 글씨였다. 삐뚤빼뚤했지만 읽을 수 있었다.
니나는 그 줄들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맨 아래 빈 줄에서 멈췄다.
“4시는 제가 적을게요.”
태오는 연필을 건넸다.
4시 10분.
니나는 연필을 쥔 채 수심계가 4시를 지나 10분이 흐르는 걸 보고 있었다. 10,913.79. 10,913.78.
그리고 구가 울렸다.
어제의 그 소리였다. 짧고 둔하고 거대한, 망치로 내리친 소리. 그러나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닥 전체가 옆으로 미끄러졌다가 돌아왔다. 다시 미끄러졌다. 계기판의 숫자들이 흔들려 번져 보였다. 연필이 손에서 튀어 나가 어둠 속 어딘가에 부딪쳤다. 니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태오의 손이 니나의 손목을 잡았다. 왼손이었다.
진동은 길었다. 어제보다 길었다. 니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더 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왔다.
위에서. 멀리서. 배로 듣는 소리. 끝나지 않고 커지는 소리. 니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이제 알았다. 벽이 다시 무너지고 있었다. 어제 무너지고 남은 것이, 어제 무너진 자리 위로.
태오가 우현 조명을 켰다. 창밖이 하얗게 밝아졌다. 밤새 맑아진 물이었다. 바다 눈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 눈이 갑자기 옆으로 쏠렸다. 모든 알갱이가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그리고 갈색이 왔다.
이번에는 벽이 아니었다. 구름이었다. 위에서부터 내려와 창을 덮었다. 조명 빛이 그 안에서 뭉개졌다. 선체를 긁는 소리가 사방에서 났다가 둔해졌다. 무언가 두껍고 무거운 것이 해연호 위에 얹히고 있었다. 천천히. 한 겹, 또 한 겹. 니나는 그 무게를 엉덩이로 느꼈다. 아래로. 아래로.
모뎀이 울렸다. 위에서 온 문자였다. 태오는 그걸 읽지도 않고 답을 쳤다. 니나는 그가 무엇을 쳤는지 몰랐다. 짧았다. 전송.
진동이 멈췄다. 소리가 멀어졌다. 선체를 누르던 소리가 하나씩 끊기고, 마지막으로 무언가 조용히 미끄러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산소 밸브가 몇 초마다 숨을 뱉는 소리만 남았다.
니나는 수심계를 봤다.
10,913.92.
10,914.05.
숫자가 커지고 있었다. 니나가 보는 앞에서. 밤새 1센티미터씩 줄어든 숫자가, 1초에 열 번씩 새로 그려지며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다.
10,914.21.
10,914.33.
태오의 손이 아직 니나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니나는 그것도 느끼지 못한 채 숫자만 봤다.
10,914.38.
10,914.40.
숫자가 멈췄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깜박였다. 4가 1초에 열 번씩 다시 그려졌다.
10,914.4.
니나는 수첩을 내려다봤다. 0시, 1시, 2시, 3시. 그 아래 빈 줄. 자기가 적겠다고 한 줄. 연필은 어둠 속 어딘가에 있었다.
밤새 번 20센티미터를 다 잃고, 거기서 40센티미터를 더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