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4장
1,100기압 · 도해

4장

챌린저 해연 바닥, 수심 10,914m
생명유지 잔여 87시간
약 11분

수첩은 손바닥만 했다. 물에 젖어도 글씨가 번지지 않는 종이였고, 연필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 태오는 그걸 15년 동안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대개는 잠수 시각과 수심과 고장 난 부품 이름을 적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무게를 적었다.

14시. 그는 새 쪽을 펴고 가운데에 세로줄을 그었다. 왼쪽 위에 ‘붙잡는 힘’, 오른쪽 위에 ‘띄우는 힘’.

오른손으로 썼다. 왼손 글씨로는 숫자를 믿을 수 없었다. ‘붙’의 받침이 두 번 그려졌다. ‘ㅈ’이 떨려서 ‘ㅊ’처럼 보였다. 그는 연필을 쥔 손에 힘을 더 줬다. 힘을 주면 떨림이 줄어드는 대신 손목이 아팠다. 글씨가 비뚤비뚤 내려갔다.

맞은편에서 니나가 그 글씨를 보고 있었다. 그는 수첩을 조금 돌렸다.

“진흙.” 그가 말했다. “물속 무게. 1세제곱미터.”

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오는 질문을 다시 하지 않고 기다렸다. 니나의 눈이 우현 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두 시간 사이에 우현 창의 흙탕물은 꽤 가라앉아 있었다. 창 위쪽 3분의 1쯤에 경계선이 생겼다. 그 아래는 갈색 진흙, 그 위는 아직 뿌연 물. 해연호가 진흙에 얼마나 잠겼는지 보여 주는 선이었다.

“갓 쌓인 거면 물이 반 넘게 들어 있어요.”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덩어리 밀도가 1.4쯤. 바닷물이 1.07이니까, 물속에서는… 1세제곱미터에 330킬로그램.”

“고마워요.”

태오는 해연호 윗면의 넓이를 알았다. 설계도에서 수백 번 본 숫자였다. 우현 창의 경계선 높이와 뱃머리 카메라가 아까 보여 준 갈색을 겹쳐 놓고, 위에 얹힌 진흙을 평균 50센티미터로 잡았다. 곱하고, 곱했다.

붙잡는 힘. 위에 덮인 진흙, 1.1톤.

그는 그 줄 밑에 한 줄을 비워 두었다. 밑에서 붙드는 힘은 그가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15시 30분에 그 숫자가 위에서 내려왔다.

부산 지반공학팀 추정. 흡착 이탈력 약 4.8톤. 범위 2~8. 근거: 전단강도 3kPa, 접촉 2.6m², 계수 6.

태오는 그 문자를 니나에게 영어로 옮겨 읽어 주었다. 숫자만. 니나는 ‘전단강도’에서 고개를 들었다.

“3킬로파스칼이면 연니치고 단단하게 잡은 거예요.” 니나가 말했다. “근데 우리가 깔린 건 위에서 쏟아진 진흙이 아니라 원래 바닥이니까. 몇천 년 눌린 거. 그럼 그 정도는 될 수도 있고…”

니나는 말끝을 흐렸다. 태오는 문장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끝은 오지 않았다. 대신 니나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그는 비워 둔 줄에 ‘흡입력 4.8?‘이라고 적었다. 물음표는 오른손이 그린 것치고 똑바로 섰다.

붙잡는 힘, 합계 5.9톤.

그는 오른쪽 칸으로 갔다. 이미 놓은 상승추, +250킬로그램. 이건 끝난 일이었다. 그 아래로 버릴 수 있는 것을 적었다. 그는 해연호에 매달린 물건 가운데 전자석이나 분리 볼트로 떼어 낼 수 있는 것을 다 알았다. 그 목록을 만든 사람이 그였다.

시료 바구니, +40. 배터리 포드 A, +180. 하부 추진기 2개, +60.

그리고 그 아래에 두 줄을 더 적고, 그 옆에 괄호를 쳤다.

(로봇팔, +90.) (배터리 포드 B, +180.)

괄호는 ‘아직’이라는 뜻이었다. 로봇팔은 해연호에 남은 유일한 손이었다. 진흙을 파든 무엇을 옮기든, 바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포드 B는 그 손과, 살아남은 조명 두 개와, 구 안의 난방과, 위와 이어진 음향 모뎀을 먹여 살렸다. 포드 B를 버리면 해연호는 가벼워지는 대신 눈과 귀와 손을 잃는다.

트림추 두 덩이는 장부에 적지 않았다. 그건 몸체의 것이 아니라 구의 것이었다. 몸체에 붙은 것을 다 쓰기 전에는 꺼내지 않을 마지막 장이었다.

그는 오른쪽 칸을 더했다. 280. 이미 놓은 250을 더하면 530.

왼쪽 5.9톤. 오른쪽 0.53톤.

태오는 두 숫자 사이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차이를 적으면 그게 숫자가 된다. 그는 그 숫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4.8에 물음표가 붙어 있다는 것. 범위가 2에서 8까지라는 것. 2라면 530킬로그램으로도 모자란다. 하지만 2와 8 사이 어딘가에 진짜 숫자가 있고, 그걸 아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버려 보는 것.

그리고 버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게 이 장부의 진짜 결론이었다.


“태오.”

니나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진 이후 두 번째였다. 니나는 수첩의 오른쪽 칸 맨 위, 40이라는 숫자를 보고 있었다. 한글은 못 읽어도 그게 무엇의 무게인지는 아는 눈치였다.

“바구니 버리기 전에요.” 니나가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태오는 기다렸다.

“세 번째 코어요. 그 층 있던 거. 그거 하나만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어요? 바구니 말고. 구 쪽에. 부력 띠에 거치대 있잖아요, 비상 장비 거는 데. 거기 빈자리 하나 있는 거 봤어요. 훈련 때요.” 니나는 말을 멈췄다가 빠르게 이었다. “알아요,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라는 거. 전력도 쓰고 시간도 쓰고. 그리고 그 관 무게가 바구니에서 빠지면 그만큼 바구니를 버리는 의미도 줄고. 아니, 그건 아니다, 거치대도 해연호에 붙어 있으니까 마찬가지구나. 어쨌든요. 그냥, 그 층이 거기 있었잖아요. 이게 왜 일어났는지 말해 주는 게 그 관 하나예요. 그걸 진흙 속에 두고 가면…”

“가면.”

니나가 그를 봤다.

“두고 가면, 이라고 했어요.” 태오가 말했다. “올라간다는 말.”

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그렇게 말했다는 걸 그제야 들은 것 같았다.

태오는 로봇팔 조종간을 봤다. 그리고 거치대를 생각했다. 구 부력 띠의 우현 쪽, 비상위치표시기 바로 아래. 예비 응답기를 꽂는 자리 하나가 이번 잠수에서는 비어 있었다. 해연호를 설계할 때 그는 그 거치대에 로봇팔이 닿아야 한다고 우겼다. 팔이 닿는 데 거치대를 두면 바닥에서 비상 장비를 꺼내 쓸 수 있다고. 설계팀은 팔 관절 하나를 2센티미터 늘려야 한다며 투덜댔다. 결국 늘렸다.

그 2센티미터를 이런 데 쓸 줄은 몰랐다.

“30분.” 그가 말했다.


로봇팔은 뱃머리 우현에 있었다. 해연호가 좌현으로 기운 덕에 우현은 높은 쪽이었고, 팔은 어깨까지만 진흙에 묻혀 있었다. 태오는 팔을 깨웠다. 관절 여섯 개의 각도가 화면에 떴다. 다 살아 있었다. 손목에는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집게 옆에 유압 절단기가 하나 접혀 있었다. 덫 줄이 무언가에 걸렸을 때 끊으라고 단 날이었다. 굵기 22밀리미터까지. 오늘은 집게만 있으면 됐다.

시료 바구니는 팔 바로 아래였다. 철망 상자의 윗면 절반이 진흙 위로 나와 있었다. 코어 관 네 개가 꽂혀 있었고, 그 옆에 검은 나뭇가지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오전에 단각류 몇십 마리를 매단 채 건져 올린 나뭇가지. 단각류는 이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관은 왼쪽에서 두 번째였다. 투명한 아크릴 관 안에 하얀 진흙이 담겨 있고, 그 위로 물이 한 뼘 차 있었다. 위 마개가 비뚜름했다. 붕괴 때 무언가에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조종간은 손바닥만 한 손잡이였다. 손잡이를 기울이면 팔 끝이 그만큼 움직였다. 태오는 오른손으로 그걸 잡았다. 화면 속에서 집게가 떨었다. 그는 손을 뗐다. 왼손으로 바꿔 잡았다. 집게가 멈췄다. 왼손은 느렸지만 떨지 않았다.

집게가 관을 물었다. 들어 올렸다. 관이 홀더에서 빠져나오며 진흙이 조금 흘러내렸다. 태오는 팔을 뒤로 접었다. 팔꿈치, 손목, 다시 팔꿈치. 화면이 뱃머리 카메라에서 팔 손목 카메라로 바뀌었다. 손목 카메라 화면은 그의 무릎 앞 작은 모니터에만 떴다. 니나는 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관 끝이 부력 띠의 주황색 폼을 스쳤다. 거치대의 빈 고리가 보였다. 태오는 숨을 멈췄다. 왼손 엄지로 손잡이를 아주 조금 밀었다. 거치대의 고리는 두 개였다. 관 위쪽을 위 고리에 걸었다. 집게를 반쯤 풀어 관을 미끄러뜨려 아래쪽을 아래 고리에 걸었다. 위 고리를 조이고, 아래 고리를 조였다. 관이 띠에 붙어 섰다.

그때 봤다.

비뚜름한 마개 틈으로 하얀 것 둘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것. 다리가 많은 것. 진흙 위 물속으로, 하나 그리고 하나. 관을 옮기는 동안 거치대 근처에 붙어 있었는지, 진흙 냄새를 맡고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오는 집게로 마개를 눌렀다. 딸깍, 하고 마개가 제자리에 앉는 느낌이 손잡이를 타고 왔다.

그는 니나를 봤다. 니나는 큰 화면 속 바구니를, 관이 빠져나간 자리를 보고 있었다. 말하면 손목 카메라 화면을 보여 달라고 할 것이다. 관 속을 비춰 달라고, 조명을 그쪽으로 돌려 달라고, 몇 분만, 몇 분만 더. 그러면 30분이 한 시간이 된다.

나중에. 올라가서.

그는 그렇게 정했다. 정한 일은 머릿속 다른 칸으로 옮겨 갔다. 그 칸에는 ‘올라가서’ 해야 할 일들이 이미 몇 개 들어 있었다.

“됐어요.” 그가 말했다.

니나가 그를 돌아봤다. “고마워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16시 52분. 22분 걸렸다.


18시 30분에 태오는 장부를 위로 보냈다. 바구니, 포드 A, 하부 추진기 둘. 킬로그램과 더하기. 왼쪽 칸 5.9톤도 같이 보냈다. 유진은 그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볼 것이다. 그래도 보냈다. 숨기는 숫자는 없다. 그게 바닥과 위 사이의 규칙이었다.

수신. 순서 동의. 행운을.

‘행운을’은 유진이 쓰는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 옆에서 넣으라고 했을 것이다. 아마 배 박사가.

18시 50분. 투하를 시작했다.

“바구니.” 태오가 말했다.

니나는 우현 창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이마가 아니라 뺨이었다. 창으로는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쪽을 봤다.

태오는 덮개를 젖히고 스위치를 내렸다. 딸깍. 큰 화면 속에서 바구니가 아주 조금 기울었다. 그게 다였다. 떨어질 데가 없으니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 해연호의 것이 아니었다. 바구니에 걸린 검은 나뭇가지도, 남은 코어 관 세 개도, 오전에 놓았다가 지진 때 버려 둔 덫의 줄 끝도.

“저 나무요.” 니나가 말했다. 창에 뺨을 댄 채였다.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요. 껍질 보고 알아내려고 했는데.”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나도 대답을 바란 것 같지 않았다. 창에서 얼굴을 떼고 바구니 쪽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추진기.”

하부 추진기 두 개를 묶은 분리 볼트가 터졌다. 발밑에서 둔하게 ‘퍽’, ‘퍽’. 구가 그 소리를 받아 울렸다. 수심계는 10,914.00이었다.

“포드 전환.”

태오는 부하를 포드 B로 넘겼다. 조명 두 개가 한순간 깜박였다가 다시 켜졌다. 난방 팬이 멈칫했다가 다시 돌았다. 포드 B, 86퍼센트. 지금부터 해연호가 가진 전기는 이게 전부였다.

“포드 A.”

그는 손가락을 스위치 위에 올렸다. 오른손이었다. 그는 그걸 내려다봤다. 떨고 있었다. 스위치를 내리는 데 떨림은 상관없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내렸다.

퍽.

해연호 꼬리 쪽 어딘가에서 180킬로그램짜리 배터리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소리가 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해연호가 움직였다.

덜컥. 아주 짧게.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직전 한 번 더 내려앉는 것 같은, 그 반대 방향의 느낌. 엉덩이 밑이 아주 조금 들렸다가 멈췄다. 진흙이 선체를 긁는 소리가 나다가 끊겼다.

니나가 숨을 들이켰다. 태오는 수심계를 봤다.

10,913.99.


“움직였어요.” 니나가 말했다. “움직였어요. 봤어요? 태오, 봤죠? 소수점 바뀐 거.”

“봤어요.”

수심계는 정밀 압력계였다. 절대값은 1미터 단위로도 믿기 어렵지만, 변화는 1센티미터까지 읽었다. 1센티미터. 해연호가 진흙 속에서 1센티미터 위로 올라갔다.

태오는 그 숫자를 보며 기다렸다. 10,913.99. 10초. 20초. 수심계는 1초에 열 번 숫자를 새로 그렸다. 매번 같은 숫자였다.

“이제 시작이에요.” 니나가 말했다. “그렇죠? 진흙은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금방이에요. 밑으로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흡입이 깨지니까. 1센티미터 들렸으면 그 틈으로 물이… 물이 들어가고 있을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1분.

10,913.99.

“조금만.” 니나가 말했다. 눈을 깜박이지 않고 수심계를 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원래 이래요, 처음에 한 번 덜컥하고 멈췄다가, 그다음에 쭉. 이건 그냥, 그냥 걸린 거예요. 어디 한 군데. 걸린 데가 풀리면.”

3분.

10,913.99.

니나의 숨이 빨라졌다. 태오는 그걸 소리로 들었다. 짧고 얕은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내쉬는 소리보다 컸다.

“왜 안 움직여요.” 니나가 말했다. 이번에는 묻는 말이 아니었다. “다 버렸잖아요. 바구니도 버리고, 배터리도 버리고, 나무도 버렸잖아요. 그런데 왜, 1센티미터가, 1센티미터밖에… 그럼 이제 뭘 버려요? 뭘 더… 우리, 우리 다 버렸는데, 다 버렸는데…”

니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또 들이마셨다. 내쉬지 못했다. 손이 목으로 갔다. 손가락이 저린 듯 떨렸다.

생명유지 화면의 이산화탄소가 0.6에서 0.7로 바뀌었다.

태오는 말을 찾았다. 찾지 못했다. 영어에도 한국어에도 지금 니나에게 줄 수 있는 문장이 없었다. ‘괜찮아요’는 거짓말이었다. ‘진정해요’는 명령이었고, 명령은 이 상태의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 그는 그걸 물속에서 배웠다. 공황에 빠진 잠수사는 말을 듣지 못한다. 몸을 듣는다.

그는 왼손을 뻗어 손목을 니나의 무릎에 댔다.

톡.

그리고 네 박자를 셌다. 속으로. 톡. 네 박자. 톡.

해난구조대에서 감압 정지를 할 때, 물속에서 몇십 분씩 매달려 기다릴 때 그는 그렇게 숨을 셌다. 넷 들이쉬고, 넷 참고, 넷 내쉬고, 넷 참고. 그 박자를 손목으로 니나의 무릎에 두드렸다. 아프지 않을 만큼, 그러나 모를 수는 없을 만큼. 말은 귀를 거쳐야 하지만 이건 뼈로 바로 간다.

톡.

니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수심계를 보고 있었다. 숨이 빨랐다. 이산화탄소 0.8.

톡.

태오는 박자를 바꾸지 않았다. 빨라지지도, 느려지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숨을 그 박자에 맞췄다. 일부러 소리가 나게 내쉬었다. 길게. 넷.

톡.

니나의 눈이 수심계에서 자기 무릎 위의 손목으로 내려왔다.

이산화탄소 0.9.

톡.

니나의 숨이 한 번 걸렸다. 그리고 그 박자에 한 번, 아주 서툴게, 맞았다. 들이쉬고. 참고. 입술이 떨렸다. 내쉬고.

톡.

또 한 번. 이번에는 조금 덜 서툴렀다.

태오는 두드렸다. 손목뼈가 무릎뼈에 닿을 때마다 오른손이 허벅지 밑에서 같이 떨렸다. 그건 상관없었다. 왼손은 떨지 않았다. 그는 몇 분 동안 그렇게 했는지 세지 않았다. 박자만 셌다.

이산화탄소가 0.9에서 멈췄다. 한참 그대로였다. 그리고 0.8로 내려왔다.

니나의 손이 목에서 떨어져 무릎 위, 그의 손목 옆에 내려왔다. 숨은 아직 떨렸지만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들이쉬고, 참고, 내쉬고, 참고.

“미안해요.”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태오는 손목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 더 두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멈추고 손을 거둬들였다. 니나의 숨은 그 박자를 혼자 이어 갔다.

“산소.” 그가 말했다.

니나가 화면을 봤다. “20.6.” 그리고 손목시계를 봤다. “19시 41분.”

태오는 수첩을 폈다. 장부가 있는 쪽이었다. 오른쪽 칸 맨 아래, 530 밑에 그는 한 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었다. 왼손으로, 비뚤비뚤하게.

‘19:12 투하 완료. 10,913.99.’

그는 그 숫자를 오래 봤다. 니나도 봤다. 수심계는 여전히 같은 숫자를 1초에 열 번씩 그리고 있었다.

다 버렸는데, 1센티미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