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50분에 오유진은 바닥에서 마지막으로 온 문자를 다시 읽고 있었다.
한결, 해연. 남쪽 벽 방향 이동. 벽까지 200 지점에서 정지 예정.
50분쯤 전에 온 문자였다. 위치 추적 화면에서 해연호를 뜻하는 노란 점은 그 문자대로 남쪽으로 조금씩 옮겨 가다가 멈춰 있었다. 수심 10,912. 벽까지 200미터. 유진은 화이트보드의 ‘10:58 이동 시작’ 아래에 ‘11:20 정지’를 적어 둔 참이었다.
잠수 일지에도 같은 시각을 옮겨 적었다. 일지 첫 줄에는 오늘도 ‘05:10 해치 닫음’이 있었다. 첫 줄은 해치를 닫은 시각, 마지막 줄은 해치를 연 시각. 운항팀에 들어온 첫해에 태오가 가르친 규칙이었다. 그 아래 9시 19분 칸에는 ‘잘 가요 선배’ 송신이 적혀 있었다. 해연호가 처음 9천 미터를 넘던 날부터 잠수 때마다 보낸 말이었고, 그날부터 태오는 답 없이 확인만 눌렀다. 오늘도 그랬다.
운항 통제실은 한결호 뒷갑판에 실은 컨테이너 한 칸이었다. 모니터 여섯 대, 음향 통신 콘솔 하나, 의자 세 개. 정비 막내 김도윤은 점심을 받으러 식당에 가 있었고, 추적 담당 서하은은 헤드폰을 한쪽만 걸친 채 노란 점을 보고 있었다.
유진은 200미터라는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획서의 벽 쪽 한계는 300미터였다. 하지만 바닥에 있는 사람이 정한 숫자는 위에서 바꾸지 않는다. 태오에게 배운 첫 번째 규칙이었다.
11시 52분.
배가 바닥을 쳤다.
적어도 몸은 그렇게 느꼈다. 수심 1만 미터 바다 한가운데에서, 한결호의 강철 선체 전체가 암초를 들이받은 것처럼 ‘쿵’ 울렸다. 콘솔 위 종이컵의 커피가 한 뼘 튀어 올랐다. 뒷갑판에서 A자 크레인의 사슬이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하은이 헤드폰을 벗어 던졌다.
“뭐야, 뭐야!”
유진은 헤드폰을 벗지 않았다. 그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음향 통신용 수중 마이크가 주워 올린 소리였다. 낮고, 넓고, 끝나지 않는 소리. 멀리서 무언가 아주 크고 무거운 것이 미끄러지는 소리. 음량 표시기가 끝까지 올라가 빨갛게 붙어 있었다.
해저 지진이었다. 땅의 떨림이 물로 넘어와 배 밑바닥을 그대로 때리면, 배 위의 사람은 배가 바닥에 닿은 줄 안다. 유진은 그걸 교과서에서만 읽었다.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도 알았다. 마이크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유진은 화이트보드에 ‘11:52 충격’이라고 적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해연, 한결. 지진 감지. 상태.
전송. 11시 53분 40초.
“하은 씨. 위치.”
“잡고 있어요. 수심…” 하은이 화면에 얼굴을 붙였다. “10,914. 2미터 깊어졌어요. 수평으로 40미터쯤 북쪽으로 튀었고요.”
“상승은?”
“없어요.”
유진은 손목시계를 봤다. 상승추를 놓으면 해연호는 1초에 0.7미터 남짓으로 떠오른다. 추적 장비는 소리가 바닥까지 갔다 오는 14초마다 위치를 새로 받는다. 한 번만 받아도 10미터 가까이 바뀌어야 했다. 노란 점은 10,914에 붙어 있었다.
“계속 불러 줘요. 바뀌는 대로.”
“네.”
노란 점은 바뀌지 않았다.
11시 57분 24초에 첫 문자가 왔다.
한결, 해연. 10914. 매몰. 상승추 투하, 무반응. 2명 이상 없음.
유진은 그 문자를 두 번 읽었다. 두 번째는 단어가 아니라 순서를 읽었다.
수심이 맨 앞이었다. 그다음 매몰. 그다음 상승추. 사람은 맨 끝이었다. 태오는 언제나 그렇게 보냈다. 급한 것부터. 사람이 무사하다는 건 지금 가장 급하지 않은 정보였다. 그가 가장 급하다고 여기는 건 ‘매몰’이었다.
유진은 ‘수신. 상세.‘를 보냈다. 31초 뒤에 두 번째가 왔다.
선체 정상. O2 20.9. CO2 0.6. 흡수제 정샹. 전력 A B 정상. 경사 좌현 선미 14. 조명 2/12. 좌현 창 매몰. 추진기 실속.
정샹.
유진은 그 두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0년 동안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강태오가 오타를 낸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다 쓰고 손으로 옮겨 적기만 했다. 그런데 ‘ㅏ’를 치려던 손가락이 ‘ㅑ’로 미끄러졌다.
추워서일 것이다. 아니면 몸 어딘가를 다쳤는데 숫자에 넣지 않았거나.
이산화탄소 0.6. 하강 중에는 0.4였다. 두 사람이 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경사 14도. 조명 열둘 중 둘. 좌현 창 매몰. 창 하나가 덮였다는 건 구의 창 높이까지 진흙이 차올랐다는 뜻이었다.
추진기 실속. 그건 그가 이미 추진기로 빠져나오려고 해 봤고, 그게 안 됐다는 뜻이었다.
유진은 답을 쳤다. ‘수신. 회의 중. 대기.’ 그리고 ‘수신’ 뒤에 한 줄을 끼워 넣었다. ‘정샹=정상 확인.’
받은 숫자는 되읽어 확인한다. 그건 절차였다. 하지만 유진이 그 한 줄로 보내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선배, 내가 다 읽고 있어요. 오타 하나까지.
12시 5분에 운항 통제실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에드윈 레예스 선장은 문간에 섰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틀에 한 손을 짚은 채 화이트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남이 써 놓은 숫자를 먼저 읽고 나서 입을 여는 사람이었다.
“수면은 이상 없습니다.” 레예스가 말했다. “선체 점검 끝났습니다. 해일 경보는 없습니다. 규모 5.8, 진앙은 해연 남쪽 사면입니다.” 그는 화이트보드의 ‘10914’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숫자는 움직였습니까?”
“아니요.” 유진이 말했다.
“한결호는 이 자리를 지킵니다. 필요한 것을 말씀하십시오, 오 팀장.”
탐사 책임자 배정민 박사가 그 뒤에서 들어왔다. 쉰여덟, 니나 쿠마르를 이 잠수에 태운 사람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주저앉았다.
“본원에 연락했어요.” 배 박사가 말했다. “부산 상황실. 거기서 지금 세계에 전화를 돌리고 있어요.”
“뭘 찾으라고 했어요?” 유진이 물었다.
“전부.”
유진은 화이트보드 오른쪽을 지우고 그 위에 ‘11,000m 도달 가능’이라고 적었다. 필요한 건 ‘전부’가 아니었다. 그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는 것만이 목록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12시 30분에 부산에서 위성전화가 왔다. 첫 줄이 채워졌다.
분투자호. 중국. 싼야. 전해 수심 유인잠수정. 모선과 함께 대기 중.
“얼마나 걸린대요?” 배 박사가 물었다.
유진은 해도 위에 자를 댔다. 싼야는 남중국해 하이난섬 끝에 있었다. 거기서 필리핀 북쪽을 돌아 이 바다까지 3,600킬로미터. 모선이 13.5노트로 쉬지 않고 달리면 꼬박 엿새. 잠수정을 싣고 사람을 모으고 연료를 채우는 데 반나절.
“6일 반.” 유진이 말했다. “출항 협의가 오늘 끝난다는 조건으로요.”
아무도 생명유지 시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화이트보드 맨 위에 이미 적혀 있었다. 96에서 시작해 지금 88을 지나는 숫자.
“보내야 해요.” 유진이 말했다.
“뭐라고?” 배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오 팀장, 아직 다른 쪽 답이 다 안 왔어요. 일본도, 미국도. 지금 6일 반이라고 보내면 저 밑에서는…”
“저 밑에서는 그 숫자로 계산을 할 거예요.”
“희망을 좀…”
“박사님.” 유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강태오 선배는 희망을 받으면 그걸 어디에 쓰는지 몰라요. 숫자를 주면 그걸로 일을 해요.”
배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유진이 아니라 레예스를 봤다. 레예스는 문틀에 손을 짚은 채 그대로였다.
“숫자로 보내십시오.” 레예스가 말했다. “저라면 그걸 원하겠습니다.”
유진은 썼다. 지웠다. ‘검토 중’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현재’를 지웠다. ‘가능성’을 지웠다. 줄이고 줄였는데 마지막 네 글자는 줄일 수가 없었다. 줄이면 거짓말이 됐다.
전해 수심 유인잠수정 분투자호(중국, 싼야) 출항 협의 중. 최단 도착 6일 반. 다른 수단 없음.
12시 40분. 전송.
1분 넘게 답이 없었다. 태오는 수신 확인을 빼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그 숫자를 손에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을 터였다. 이윽고 한 줄이 올라왔다. ‘수신.’
14시에 회의를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식당이었다. 컨테이너에는 하은과 도윤만 남겨 두고, 유진은 무전기를 허리에 찼다.
회의 전에 유진은 바닥에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뱃머리 카메라의 정지 화면 한 장. 해연호의 음향 모뎀은 이 거리에서 1초에 300비트 남짓을 보낸다. 물속 잡음 때문에 오류를 고치는 데 그 절반을 쓴다. 가로 160, 세로 120 점짜리 흑백 사진 한 장을 압축하면 4킬로바이트. 그걸 받는 데 4분이 걸렸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한 줄씩 그려졌다. 갈색. 갈색. 조금 옅은 갈색.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하얀 얼룩 하나. 조명이었다. 마지막 줄까지 다 그려졌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연호 뱃머리에서 바라본 세상이 통째로 갈색이었다.
도윤이 그 화면을 오래 봤다. 스물여덟, 2년 동안 태오 밑에서 해연호의 볼트를 조인 막내였다.
“선배님, 두 번째 사진을…”
“안 돼. 그거 하나에 4분이야. 그 4분 동안 선배는 아무 문자도 못 받아.”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유진은 그 사진을 인쇄해서 식당으로 들고 갔다.
식당 탁자에 해도를 펴고 그 위에 사진을 놓았다. 그리고 부산과 도쿄와 워싱턴이 보낸 답을 정리한 목록을 읽었다.
첫째, 분투자호. 6일 반.
둘째, 전해 수심 무인잠수정. 지금 세상에서 그 깊이에 닿는 무인잠수정은 손에 꼽았다. 하나는 대서양에서 정비 중이었다. 하나는 남극해 탐사선 위에 있었다. 어느 것도 2주 안에는 올 수 없었다. 이 근처 바다에는 6천 미터까지 내려가는 장비가 몇 대 있었다. 6천 미터는 해연호가 있는 곳의 반을 조금 넘었다.
셋째, 줄. 한결호에 실린 가장 긴 케이블은 심해 예인용 7킬로미터짜리였다. 바닥까지 11킬로미터. 4킬로미터가 모자랐다. 그리고 모자라지 않더라도, 줄 끝을 진흙 속 해연호에 걸어 줄 손이 바닥에 없었다.
“미 해군은요?” 누군가 물었다. 기관장이었다.
“괌에서 해연까지 330킬로미터예요. 초계기는 뜰 수 있어요. 헬기는 작전 반경 밖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들도 6천 미터 아래로 내려갈 건 없어요.”
식당에 냉장고 소리만 남았다.
“그러니까,” 배 박사가 말했다. 그는 해도 위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갈색 사진. “그러니까 결론은…”
그는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유진이 끝냈다.
“바닥에서 스스로 올라와야 해요.”
레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한 번. “그렇다면 이 배가 할 일은 그 두 사람이 올라올 때 여기 있는 것입니다.”
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서는데 2항사 조엘 파딜라가 노트북을 덮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선장과 같은 필리핀 사람이고, 이 배의 기상 담당이었다.
“아, 그리고 노을이요. 오늘 아침 예보 그대로예요. 1,400킬로 동쪽, 북서진. 우리 쪽으론 안 와요. 마리아나 북쪽으로 빠질 거예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도 그 숫자를 화이트보드에 옮겨 적지 않았다. 나중에 그 일을 오래 곱씹었다.
비상 절차서는 컨테이너 선반 맨 위 칸에 있었다. 빨간 표지의 바인더. 유진은 저녁을 거르고 그걸 펼쳤다.
7.4항, 해저 고착. 두 쪽이었다.
- 상승추 투하.
- 추진기를 이용한 이탈 시도.
- 투하 가능 장비의 순차 투하: 시료 바구니, 배터리 포드, 추진기, 매니퓰레이터.
- 지원선은 부록 C의 구조 자원에 지원을 요청한다.
- 구조 도착 시까지 생명유지 절약 수칙(7.6항)을 시행한다.
1번과 2번은 이미 끝났다. 3번은 바닥에서 할 일이었다. 위에 남은 건 4번과 5번이었다.
부록 C는 국가별, 기관별 구조 자원 표였다. 맨 오른쪽 칸 ‘최대 작업 수심’을 위에서부터 따라 내려갔다. 6,000. 6,000. 4,500. 7,000. 6,500. 맨 아래 한 줄만 11,000이었다. 분투자호. 오늘 오후 부산이 연락처 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받은 사람은 그 부서가 3년 전에 없어졌다고 했다. 5번은 ‘구조 도착 시까지’로 시작했다. 그 말이 전제하는 구조가 이 바다에는 없었다.
바인더를 덮으려는데 표지 안쪽의 개정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맨 아래 줄. ‘개정 3판. 7장 전면 개정. 검토: 오유진.’
3년 전 겨울, 유진은 다른 기관 절차서 세 개를 펴 놓고 문장과 번호를 맞추며 빠진 항목마다 체크 표시를 했다. 절차서에 틀린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이 깊이에서 쓸 수 있는 문장도 하나도 없었다.
저녁 무렵 바닥에서 긴 문자가 왔다. 바구니, 포드 A, 하부 추진기 둘. 킬로그램과 더하기. 유진은 그걸 3번 항목 옆 여백에 연필로 옮겨 적었다. 태오가 바닥에서 하고 있는 일은 유진이 체크 표시를 한 바로 그 줄이었다. 그 줄 옆에 위에서 보태 줄 말은 없었다.
배 박사가 밤 열 시에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손에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가족 연락 말이에요.” 그가 말했다. “쿠마르 박사 쪽은 연구소가 어머니께 연락했어요. 코치에. 강태오 씨 쪽은…” 그는 서류철을 넘겼다. “비상 연락처 칸에 한 사람밖에 없어요.”
“알아요.” 유진이 말했다. “저예요. 선배가 5년 전에 바꿨어요. 저한테 말도 안 하고. 서류 정리하다가 봤어요.”
배 박사는 한참 말이 없다가 유진의 어깨를 한 번 짚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야 유진은 숨을 내쉬었다.
자정 무렵 유진은 수중 전화를 열었다. 잡음이 심해서 문자만 쓰기로 정해 둔 음성 회선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들어야 했다.
“해연, 한결. 들려요?”
헤드폰 속에서 바다가 끓었다. 쉿쉿거리는 소리, 긁히는 소리. 14초가 지났다. 그리고 그 잡음 사이로, 물을 몇 겹 통과해 납작해진 목소리가 올라왔다.
”…들려.”
그게 다였다. 유진은 그 한 단어의 끝을 들었다. 숨이 섞여 있었다. 추운 사람의 숨이었다.
“선배. 잘 자요.”
14초.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유진은 회선을 닫았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잠을 잘 사람이었다. 그러면 됐다.
밤사이 배가 몇 번 더 울렸다. 낮의 충격보다는 작았다. 유진은 여진이라고 여겼다. 울릴 때마다 시각을 화이트보드에 적고 ‘해연, 한결. 상태?‘를 보냈고, 매번 ‘변동 없음’을 받았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어 온 것은 달랐다. 낮의 충격보다 컸다. 커피가 다시 튀었다. 바닥에서 온 답도 달랐다.
인원 이상 없음. 상세 추후.
새벽 5시 2분, 인쇄기가 돌았다.
합동태풍경보센터의 정기 예보였다. 밤 근무를 서던 파딜라가 출력해서 직접 들고 왔다. 그는 노크도 없이 들어와 종이를 유진의 콘솔 위에 놓았다.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사이의 바다를 그린 지도였다. 동쪽에서 태풍 기호가 하나 오고 있었다. 노을. 900킬로미터. 어제 아침 1,400킬로미터 밖에 있던 것이 하루 만에 500킬로미터를 왔다.
기호에서 예상 진로 선이 뻗어 나왔다. 어제의 선은 마리아나 북쪽으로 빠져나갔다. 오늘의 선은 서쪽으로 곧장 왔다. 그 선을 감싸고, 앞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회색 깔때기가 퍼져 있었다. 태풍의 중심이 그 안 어딘가를 지날 거라는 뜻이었다.
파딜라가 예보문의 첫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급발달. 앞으로 24시간 안에 중심 기압이 50헥토파스칼 넘게 떨어질 거래요. 해수면 온도가 30도예요. 저 녀석이 먹을 게 너무 많아요.”
유진은 펜을 집었다. 해도에서 챌린저 해연의 좌표를 찾아 예보 지도 위에 작은 엑스 표시를 했다. 북위 11도 22분, 동경 142도 35분.
엑스 표시는 회색 깔때기 안에 있었다. 가장자리도 아니었다. 깔때기의 남쪽 절반이 그 위를 넓게 덮고 있었다.
“사흘 뒤예요.” 파딜라가 말했다. “빠르면.”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엑스 표시 옆에 해연호의 생명유지 시간을 적고, 그 아래에 예보 지도의 날짜 눈금을 옮겨 적었다. 두 숫자가 같은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닥에서는 아직 숫자가 올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