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체 압력부터 봤다.
강태오는 언제나 그 순서로 했다. 머리가 하얘지면 손이 순서를 기억한다. 그래서 순서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 넣어 두는 것이다. 선체 압력, 산소, 흡수제, 전력, 통신, 조명. 운항팀에 처음 들어온 해에 정한 여섯 개를 그는 15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구 안 기압계는 1,013헥토파스칼이었다. 해치를 닫을 때와 같은 숫자였다. 태오는 숨을 멈추고 들었다. 찾는 건 쉭 하는 소리였다. 이 깊이에서 새는 물은 흘러 들어오지 않는다. 쏘아 들어온다. 바늘구멍 하나로 들어온 물줄기가 사람 손가락을 자른다. 소리보다 하얀 안개가 먼저 낀다고 교관들은 말했다. 구 안에 안개는 없었다. 두 사람이 내쉬는 김뿐이었다.
선체 압력, 정상.
산소 20.9퍼센트. 산소통 두 개, 압력 정상. 조절 밸브가 몇 초마다 가늘게 숨을 뱉었다. 정상.
흡수제. 화면의 이산화탄소는 0.6퍼센트였다. 아까보다 올랐다. 지난 1분 동안 두 사람이 평소의 두 배로 숨을 쉬었으니 당연했다. 태오는 손바닥을 흡수제 통 배기구에 댔다. 바람이 나왔고, 그 바람이 미지근했다. 수산화리튬은 이산화탄소를 먹을 때 열을 낸다. 통이 따뜻하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
전력. 배터리 포드 A, B 둘 다 전압 정상. 구 안 비상 전지 만충. 그 아래 회로 목록에서 화면이 빨갰다. 좌현 쪽이었다. 조명, 좌현 추진기, 측면 소나. 빨간 줄이 그 아래로 몇 줄 더 이어졌다. 태오는 그 줄들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숨 쉬는 데 필요한 건 그 안에 없었다. 나중에 읽는다. 그렇게 정하자 그 일은 머릿속 다른 칸으로 옮겨 갔다.
통신. 음향 모뎀 화면에 문자가 와 있었다.
해연, 한결. 지진 감지. 상태.
유진이었다. 오유진은 급할수록 짧아진다. 그건 태오가 가르친 것이었다.
조명. 열두 개 중 두 개가 살아 있었다. 우현 옆구리에 하나, 그리고 뱃머리 우현에 달린 로봇팔 손목에 하나. 손목 조명은 손목 카메라와 한 몸이었다. 팔이 살아 있으면 눈도 하나 살아 있는 셈이었다.
여섯 개를 다 보는 데 1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그동안 그는 상승추 스위치를 한 번 더 눌렀다. 덮개는 이미 젖혀져 있었고 스위치는 이미 내려가 있었다. 한 번 더 누른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손이 갔다. 왼손이었다.
상승추 전자석 전류, 0.00암페어.
태오는 그 숫자를 오래 봤다. 0이면 놓은 것이다. 전자석은 전기가 흐르는 동안만 강철을 붙든다. 전류가 0이면 붙드는 힘도 0이다. 해연호에서 이것만큼 단순한 장치는 없었고, 그래서 그는 이 장치를 좋아했다. 고장 날 부품이 적은 장치. 전선이 끊겨도, 배터리가 죽어도, 조종사가 정신을 잃어도 추는 떨어진다.
추는 떨어졌다. 해연호는 그대로였다.
경사계는 14도를 가리켰다. 좌현으로, 그리고 선미 쪽으로. 태오가 앉은 쪽이 낮았다. 니나 쿠마르가 그쪽으로 미끄러져 와서 어깨를 그의 오른팔에 붙이고 있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좌현 창은 갈색이었다. 정확히는, 갈색이 창에 붙어 있었다. 진흙이 아크릴 바깥면에 눌려서 결이 보였다. 굵은 알갱이와 가는 알갱이가 섞인 결. 그 결은 움직이지 않았다. 창 너머 1센티미터도 물이 아니었다.
우현 창은 달랐다. 거기에는 우현 조명이 비추는 물이 있었다. 물이라기보다 우유를 조금 탄 보리차 같은 것. 그 안에서 알갱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바다 눈보다 훨씬 촘촘하게. 저게 다 가라앉으려면 몇 시간은 걸릴 터였다. 고운 것일수록 늦게 가라앉는다. 아까 니나가 코어를 보면서 한 말이었다.
뱃머리 카메라 화면도 갈색이었다. 태오는 카메라를 위로, 옆으로 틀었다. 갈색이 조금 옅어졌다가 다시 짙어졌다. 렌즈가 진흙 위로 나와 있는지 진흙 속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해연호를 뒤집어 배 밑을 봤다. 그 배 밑에 그는 수백 번 누워 있었다. 썰매 두 줄. 그 사이, 구 바로 아래 프레임에 상승추가 매달려 있던 자리. 추는 전자석에서 풀려났다. 풀려나서 진흙 속으로 몇 센티미터쯤 내려가다가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해연호의 배가 그 위를 덮고 있으니까.
추를 놓았는데, 추가 떨어질 데가 없었다.
태오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놓기만 하면 된다. 추가 어디에 박혀 있든 해연호에 매달려 있지만 않으면 그 무게는 이제 진흙이 진다. 해연호는 방금 250킬로그램 가벼워졌다. 250킬로그램이 위로 당기고 있는데 수심계가 꿈쩍하지 않는다면, 아래로 붙드는 게 그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었다.
위에 얹힌 것. 그리고 밑에서 붙드는 것.
그는 수직 추진기를 돌려 봤다. 좌현 것은 빨간 줄 안에 있었다. 우현과 하부 두 개에 전류를 넣었다. 전류계가 한순간에 치솟았고 차단기가 떨어졌다. 프로펠러가 돌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넣었다. 같았다. 세 번째는 넣지 않았다. 진흙을 문 모터는 타 버린다. 타 버린 모터는 그냥 쇳덩이다.
죽으면 뜨는 기계예요.
훈련 마지막 날 그는 니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니나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기가 그 말을 얼마나 믿었는지는 기억났다. 그는 그 문장을 설계 검토 회의에서도 썼고, 신입 운항팀원들 앞에서도 썼다.
해연호는 죽지 않았다. 전기는 들어와 있었고, 계기판은 켜져 있었고, 산소 밸브는 몇 초마다 숨을 뱉었다. 죽으면 뜨게 만든 기계가 죽지도 못한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해구 벽이 무너져 기계를 덮는 경우는 설계 기준서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안다고 덜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는 답장을 쳤다.
한결, 해연. 10914. 매몰. 상승추 투하, 무반응. 2명 이상 없음.
전송. 손목시계. 11시 57분 10초.
편도 7초. 위에서 읽고 답을 치는 데 몇 초. 다시 편도 7초. 모뎀이 글자를 소리로, 소리를 다시 글자로 바꾸는 데 드는 시간. 태오는 15년 동안 그 시간 안에 살았다. 그래도 지금은 그게 길었다.
31초 만에 답이 왔다.
수신. 상세.
그는 두 번째 문자를 쳤다. 숫자만 넣었다. 숫자는 겁을 먹지 않는다.
선체 정상. O2 20.9. CO2 0.6. 흡수제 정샹. 전력 A B 정상. 경사 좌현 선미 14. 조명 2/12. 좌현 창 매몰. 추진기 실속.
전송을 누르고 나서 그는 ‘정샹’을 봤다. 오른손 검지가 옆 글쇠로 미끄러진 자리였다. 고치려면 한 줄을 다시 보내야 했다. 30초. 유진이라면 제대로 읽을 터였다. 그는 고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검지가,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들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키보드 위에서 그 떨림은 글쇠 하나 너비만큼이었다.
니나가 아직 그의 오른팔에 기대 있었다.
“쿠마르 박사.”
대답이 없었다. 니나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우현 창에서 내려오는 알갱이들을 보고 있었다. 숫자를 세지도 않았다. 태오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하강하는 네 시간 동안 니나는 말을 거의 멈추지 않았다. 단각류를 처음 봤을 때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떠들었다.
해난구조대에서 그가 처음 배운 것 가운데 하나는 이거였다. 물속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은 걱정하지 마라. 조용한 사람을 봐라.
“박사.”
“네.” 목소리가 작았다.
“위쪽.” 태오는 우현 벽의 손잡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잡아요. 거기 앉아요.”
니나는 그제야 자기가 그에게 기대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기울어진 바닥의 높은 쪽으로 옮겨 앉아 손잡이를 잡았다. 옮겨 봐야 두 뼘이었다.
태오는 오른팔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오른손을 허벅지 밑에 넣고 그 위에 앉았다. 떨림이 허벅지 근육에 묻혔다.
위로하는 말 같은 건 그에게 없었다. 그 대신 그는 할 일을 알았다.
“저기.” 태오는 왼손으로 생명유지 화면 귀퉁이를 짚었다. 산소 농도가 작은 초록색 숫자로 떠 있었다. “산소. 10분마다 불러요.”
“왜요?”
“필요해요.”
그가 그 숫자를 자기보다 훨씬 쉽게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걸 니나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더 묻지 않았다.
“20.9.” 니나가 말했다.
“시각.”
니나가 자기 손목시계를 봤다. “12시… 12시 1분.”
태오는 방수 수첩을 꺼내 ‘12:01 O2 20.9’라고 적었다. 왼손으로. 글씨가 초등학생 같았다. 상관없었다.
털모자는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아까 벗어서 쥐고 있다가 놓친 모양이었다. 감색 털실이 이슬에 젖어 축축했다. 태오는 그걸 털어서 다시 썼다. 구 안은 11도였다.
모뎀에 세 번째 문자가 와 있었다.
수신. 정샹=정상 확인. 회의 중. 대기.
‘정샹=정상 확인.’ 유진은 오타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자기가 맞게 읽었는지 확인했다. 그가 그렇게 가르쳤다. 숫자 하나 잘못 읽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태오는 그 문자 앞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로 했다.
회의 중. 대기.
위에서는 지금쯤 사람들이 갑판 위 운항 통제실로 모이고 있을 것이다. 유진은 화이트보드에 시각을 적고, 그들은 지도를 펼 것이다. 이 깊이까지 내려올 수 있는 것들의 지도를. 그 지도에 무엇이 있는지 태오는 이미 알았다. 그래서 대기라는 말이 길었다.
“12시 11분.” 니나가 말했다. “20.9.”
시각부터 불렀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기다림은 숫자가 없는 시간이었다. 태오는 그 시간을 제일 싫어했다.
우현 창에서 알갱이들이 계속 내려왔다. 조명 빛 속에서 그것들은 하얗게 보였다가, 빛을 벗어나면 사라졌다. 좌현 창에는 진흙의 결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 그는 그런 창을 알았다.
스물여섯 살 겨울이었다.
수심 42미터. 훈련용으로 가라앉힌 침선의 안쪽. 손전등 불빛이 한 뼘도 못 가던 어둠.
태오는 그 겨울을 길게 떠올리지 않았다. 떠올리면 순서가 무너진다. 그래서 그는 그 겨울을 몇 개의 조각으로만 가지고 다녔다. 이름 하나. 민재. 두 살 아래. 마스크 너머로 보이던 눈. 그리고 손바닥에 남은 감각 하나. 수면에서 내려온 줄이 손안에서 네 번, 짧고 세게 당겨지던 것.
올라와라.
그는 올라왔다. 혼자서. 민재는 다음 날 올라왔다.
그 겨울에 대해 그가 누구에게 해 본 말은 그게 다였다. 그나마도 소리 내서 한 적은 없었다. 그 대신 그는 규칙 하나를 혼자 지켰다. 말할 필요가 없는 규칙이었다.
내려간 사람은 내가 데리고 올라간다.
그 규칙으로 그는 해군에서 10년을 더 버텼고, 잠수정 운항팀에서 15년을 버텼다. 그동안 데리고 내려간 사람이 백 명이 넘었다. 과학자, 기자, 겁 많은 사람, 겁이 없어서 더 위험한 사람. 그는 그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올라왔다.
허벅지 밑에서 오른손이 떨었다. 그는 몸무게를 조금 더 그쪽으로 실었다.
“12시 21분.” 니나가 말했다. “20.8.”
“우리,” 니나가 말했다. 산소를 부르고 나서 한참 뒤였다. “진흙 속에 있는 거죠.”
니나가 숫자 말고 다른 말을 한 건 지진 뒤로 처음이었다. 태오는 고개를 돌렸다.
“네.”
“얼마나 깊이요?”
“몰라요.”
“위에 얼마나 얹혀 있어요?”
“몰라요.”
“수심계가 10,912에서 10,914가 됐잖아요. 2미터. 우리가 2미터 파묻혔다는 거예요, 아니면 밀려간 자리가 원래 2미터 더 깊었다는 거예요?”
좋은 질문이었다.
“몰라요.”
니나가 그를 봤다. “모른다는 말을 세 번 했어요.”
“네 번.”
니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무릎을 감싼 팔이 조금 풀렸다.
“해구 축 쪽으로 밀렸으면 더 깊은 게 맞아요.” 니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흐름이 벽에서 왔으니까. 근데 그럼 묻힌 깊이는 2미터보다 얕을 수도 있고…”
니나는 말을 멈췄다.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시 들어 보는 것 같았다.
“계속해요.” 태오가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머리가 뭘 하고 싶어 해서요.”
“그럼 하게 둬요.”
니나는 다시 창을 봤다. 이번에는 알갱이가 내려오는 걸 보는 눈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재는 눈이었다. 세 번째 코어를 창 앞에 세우라고 했을 때의 눈.
“12시 31분.” 니나가 말했다. “20.8.”
12시 40분.
모뎀이 짧게 울었다. 니나가 몸을 돌렸다. 태오는 이미 화면을 보고 있었다.
유진의 문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길었다. 줄이고 줄인 끝에 더는 줄일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전해 수심 유인잠수정 분투자호(중국, 싼야) 출항 협의 중. 최단 도착 6일 반. 다른 수단 없음.
태오는 그걸 한 번 읽었다. 두 번 읽을 필요는 없었다.
분투자호. 태오도 아는 잠수정이었다. 학회에서 한 번 그 조종사와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둘은 볼트 규격 이야기만 하고 헤어졌다. 지금은 남중국해의 싼야 항구에 있을 것이다. 모선에 싣고, 사람을 모으고, 이 바다를 가로질러 오는 데 6일 반.
다른 수단 없음.
그건 유진이 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검토 중’이라고 썼을 것이다. 태오는 유진이 그 말을 치기 전에 누구와 다퉜을지 생각했다.
“뭐래요?” 니나가 물었다.
태오는 화면을 니나 쪽으로 기울였다. 니나는 한글을 읽지 못했다. 그는 왼손 검지로 숫자만 짚었다. 6, 그리고 반.
“일이요?”
“일.”
“뭐가요?”
“구조 잠수정. 중국. 출발부터.”
니나의 눈이 생명유지 화면으로 갔다. 40분 동안 10분마다 들여다본 산소 수치 바로 위에, 해치를 닫은 순간부터 줄어 온 시간이 떠 있었다. 훈련 첫날 태오가 가장 먼저 보여 준 숫자였다.
생명유지 잔여 88:29.
여든아홉 시간이 채 안 됐다.
태오는 니나가 두 숫자를 같은 단위로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을 셀 수 있었다. 3초. 쿠마르 박사는 계산이 빨랐다. 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다. 손잡이를 잡은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태오는 그 표를 봤다. 해연호를 만들 때 그 숫자를 정한 회의가 있었다. 96시간. 누군가 그걸로 충분하냐고 물었고, 누군가 이 깊이에서 사흘 넘게 버텨야 할 상황이면 그 사흘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답했다. 다들 웃었다. 태오도 웃었다. 그 숫자는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혼자 올라올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태오는 수첩을 펴서 ‘12:40 분투자 6.5일. 타 수단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줄을 하나 긋고, 그 밑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아직 적을 게 없었다.
“산소.” 그가 말했다.
니나가 그를 봤다. 태오는 생명유지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니나는 한참 그 숫자를 보다가, 거기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목시계를 봤다.
“12시 41분.”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20.8.”
태오는 그걸 적었다. 왼손으로, 떨리지 않는 글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