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1장
1,100기압 · 도해

1장

챌린저 해연, 수심 9,140m
생명유지 잔여 92시간
약 12분

수심 9천 미터를 넘으면 바다는 더 어두워지지 않는다. 이미 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둡기 때문이다.

니나 쿠마르는 그 사실을 창에 이마를 댄 채 배웠다. 창이라고 해 봐야 안쪽 지름이 9센티미터, 짜이 한 잔 담기는 컵 입구만 했다. 바깥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원뿔 모양 아크릴 덩어리였고, 두께가 지름보다 두꺼웠다. 그 두꺼운 투명함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명은 배터리를 아끼려고 꺼 두었다. 아주 가끔 파란 불티 하나가 창을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누군가의 몸에서 나는 빛이었다. 니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목이 탔지만, 불티는 매번 이름을 알려 주기 전에 사라졌다.

“9,150.” 강태오가 말했다.

그는 니나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이라고 해도 무릎과 무릎 사이가 한 뼘이었다. 해연호의 승무원 구는 안지름이 1.5미터였다. 훈련 때 처음 들어와 앉았을 때 니나는 웃으면서 “목욕탕 욕조보다 작네요”라고 말했다. 태오는 웃지 않았다. 그는 그냥 해치를 닫았고, 니나는 그 순간 자기가 좁은 곳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물아홉 살에 처음 알았다.

지금 해치는 니나의 머리 위에 있었다. 볼트 스물네 개로 조인 티타늄 마개. 한가운데에는 잠금 바퀴도 하나 달려 있었다. 수면에서 빨리 여닫으라고 단 바퀴였고, 깊은 물에서 마개를 붙드는 건 볼트라고 훈련 때 들었다. 열 수 없다. 수면까지 1만 미터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열 수 없다. 니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꺼내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어릴 때 코치에 몬순이 오면 천둥이 집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번개가 치면 숫자를 세라고 했다. 셋까지 세기 전에 천둥이 오면 가까운 거고, 열까지 세도 안 오면 먼 거라고. 니나는 커서 그게 거리를 재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소리는 1초에 340미터를 가니까. 그런데 어머니가 그걸 알고 가르쳐 준 건지는 아직 묻지 못했다.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냥 딸이 숫자를 세는 동안에는 울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넷, 다섯.

“쿠마르 박사.”

“네.”

“숨.”

니나는 자기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쉬자 하얀 김이 구 안에 퍼졌다. 수온 2도의 바다가 네 시간 동안 티타늄을 식혔고, 구 안은 이제 11도였다. 천장 쪽 벽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이 내쉰 숨이 차가운 금속에 닿아 다시 물이 된 것이었다. 태오가 수건으로 그걸 한 번 훔쳤다. 그는 해군 시절 거라는 감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모자 아래 귀가 빨갰다.

“이산화탄소 0.4퍼센트.” 그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정상. 그래도 천천히.”

“천천히 할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계기판으로 돌아갔다. 강태오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영어가 짧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운항팀 사람들 말로는 한국어로도 똑같다고 했다. 해군 해난구조대 출신, 해연호를 조립 단계부터 손본 사람, 이 잠수정의 볼트 하나하나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 니나가 그에 대해 아는 건 그 정도였다. 그리고 하나 더. 그는 손이 빨랐다. 체크리스트를 읽는 속도보다 스위치를 넘기는 손이 먼저 갔다.


구가 울었다.

낮고 긴 소리였다. 어딘가 멀리서 큰 배의 닻줄이 끌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오래된 나무 집이 밤에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니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정상이에요.” 태오가 말했다. “구가 줄어드는 소리.”

“줄어든다고요?”

“바닥까지 가면 지름으로 5밀리.”

니나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려 보았다. 5밀리미터. 손톱 두께의 몇 배. 지름 1.68미터짜리 티타늄 공이 손톱 몇 개만큼 쪼그라든다. 그게 정상이라고 했다. 니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다른 수가 없었다.

훈련 때 들은 숫자들이 떠올랐다. 바닥의 수압은 1,100기압이다. 해수면에서 사람 몸을 누르는 공기의 1,100배. 엄지손톱만 한 1제곱센티미터에 1톤이 넘는 무게가 얹힌다는 뜻이다. 지금 이마를 대고 있는 창에는 그런 손톱이 예순 개쯤 들어간다. 바깥에서 예순 톤이 이 컵만 한 아크릴을 밀고 있다. 니나는 슬그머니 이마를 뗐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닥에는 물고기가 없다.

그게 니나가 여기 온 이유였다. 수심 8,200미터 아래로는 어떤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 압력이 단백질을 비틀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몸속에 단백질을 지키는 분자를 쌓아서 버티는데, 그걸 너무 많이 쌓으면 몸 안이 바닷물보다 짜져서 물을 빨아들이다 터진다. 8,200미터. 그게 물고기의 바닥이다. 그 아래, 어떤 척추동물도 내려가지 못한 3천 미터에 다른 것들이 산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단각류. 생긴 건 새우를 닮았고,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맨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내려온 나무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동물. 니나는 박사 과정 5년 동안 그 동물의 소화 효소를 연구했다. 실물은 한 번도 못 봤다. 남이 덫으로 건져 올린, 수면까지 오는 동안 반쯤 익어 버린 표본만 봤다.

오늘은 살아 있는 걸 볼 것이다.

“9,800.” 태오가 말했다.


수중 전화 스피커에서 짧은 경보음이 났다. 문자가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태오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해연, 한결. 수심 확인 바람. 노을 진로 북서 유지. 일정 변동 없음.

“노을이요?” 니나가 물었다.

“태풍.” 태오가 답장을 치면서 말했다. “괌 동쪽 1,400킬로. 북쪽으로 비켜 간대요.”

그는 숫자 다섯 자리를 치고 전송을 눌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봤다. 니나도 같이 봤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메시지는 소리가 되어 1만 미터 위로 올라간다. 바닷물 속에서 소리는 1초에 1,500미터를 조금 넘게 간다. 공기 속보다 네 배 넘게 빠르지만, 1만 미터는 1만 미터다. 편도 7초, 왕복 14초. 그리고 위에서 답을 치는 시간.

“7초.” 니나가 속으로 셌다. 어머니의 천둥보다 훨씬 먼 번개.

29초 만에 답이 왔다.

확인. 잘 가요 선배.

태오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위에서 통신을 맡은 오유진 팀장은 태오가 데려다 키운 후배라고 했다. 둘은 서로에게 한국어로 문자를 보냈고, 니나는 그 한글 모양이 좋았다. 동그라미와 막대기로 된 글자. 해연호의 계기판에 있는 표시등들처럼 생겼다.


10,850미터에서 태오가 하강추를 놓았다.

딸깍 소리가 두 번 났다. 발밑 어딘가에서 강철 판 몇 장이 전자석에서 떨어져 나가 어둠 속으로 먼저 가라앉았다. 해연호가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느려졌다. 니나는 그게 몸으로 느껴진다는 게 신기했다. 훈련 때 배운 대로라면 이랬다. 해연호는 추를 매달고 무겁게 내려간다. 바닥 근처에서 하강추를 놓아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무게를 맞춘다. 일이 끝나면 상승추를 놓아 가벼워져서 올라간다. 추는 전자석에 붙어 있다. 전기가 끊기면 저절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겨서 잠수정이 죽어 버려도, 그 죽음 때문에 위로 뜬다.

“죽으면 뜨는 기계예요.” 훈련 마지막 날 태오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게 그가 니나에게 한 말 중에 가장 긴 문장이었다.

“조명 켭니다.”

바깥 조명 열두 개가 한꺼번에 켜졌다.

니나는 처음에 눈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얀 점들이 조명 속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떠내려갔다. 바다 눈. 위쪽 바다에서 죽은 것들의 부스러기가 몇 주, 몇 달에 걸쳐 1만 미터를 가라앉아 내려오는 것. 이 바닥의 모든 생명은 저 눈을 먹고 산다. 그리고 그 눈 아래로, 조명이 닿는 끝에서 바닥이 떠올랐다.

밝은 베이지색이었다. 니나가 상상한 검은 진흙이 아니었다. 고운 밀가루를 체에 쳐서 평평하게 깔아 놓은 것 같았다. 규조와 방산충, 유리 껍데기를 가진 아주 작은 생물들의 무덤. 수천 년 동안 1년에 몇 밀리미터씩 쌓인 하얀 가루.

해연호의 썰매 같은 다리가 그 가루에 닿았다. 부드러운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조명 속에서 느리게 가라앉았다.

“착지.” 태오가 말했다. “10,912.”

그는 시각을 기록했다. 09시 43분.

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말라얄람어가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놀랄 때 쓰던 말, 신을 부르는 말이었다. 태오가 니나를 봤다. 그는 그 말을 몰랐지만 뜻은 알아들은 것 같았다.


미끼통에는 고등어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태오가 로봇팔로 통을 바닥에 내려놓자, 니나는 스톱워치를 눌렀다.

1분 40초 만에 첫 번째가 왔다.

조명 속에서 작은 하얀 점 하나가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쳐 왔다. 그리고 둘, 다섯, 스물. 4분이 지나자 미끼통은 보이지 않았다. 하얗고 반투명한 몸들이 겹겹이 엉겨 통을 덮었다. 다리를 부지런히 젓는 수백 마리의 단각류. Hirondellea gigas. 니나가 5년 동안 냉동고에서 꺼내 해부한 동물이, 살아서, 1,100기압 속에서, 고등어를 먹고 있었다.

“저거 봐요.”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거 봐요, 저거. 잠깐, 잠깐만요. 쟤 좀 봐요, 혼자 큰 거. 저건 암컷이에요. 알을 품고 있어요. 배 밑에 주머니 보여요? 아, 신이시여. 냄새를 어떻게 맡은 거지? 물이 거의 안 움직이는데. 해류가 초속 몇 센티미터도 안 되는데. 이건 냄새가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부터 근처에 퍼져 있다가…”

“쿠마르 박사.”

“네?”

“숨.”

니나는 숨을 내쉬었다. 화면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0.5퍼센트를 가리켰다. 태오는 그 숫자를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니나는 입을 다물고 창에 다시 이마를 붙였다. 이번에는 떼지 않았다.


그 뒤 한 시간 남짓은 니나의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덫을 놓았다. 진흙을 떠 담는 관, 코어러를 바닥에 꽂았다. 투명한 아크릴 관이 하얀 가루를 파고들 때마다 니나는 그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은 예상대로였다. 위쪽 몇 센티미터는 물을 머금은 묽은 베이지색, 그 아래로 갈수록 단단하고 진한 색. 수천 년이 한 뼘에 눌려 있었다.

세 번째 코어에서 니나는 이상한 걸 봤다.

“멈춰요. 그거, 잠깐만 창 앞으로.”

태오가 로봇팔을 돌려 관을 창 앞에 세웠다. 맨 위에서 4센티미터쯤 내려간 곳에 다른 층이 끼어 있었다. 아래쪽은 거칠고 어두웠다가 위로 갈수록 점점 고와지고 밝아지는 층. 마치 누가 흙탕물 한 바가지를 붓고 가라앉기를 기다린 것처럼.

“이거 위에서 내려온 거예요.” 니나가 말했다. “한 번에. 사면에서 뭔가 무너져서 흙탕물이 흘러 내려오면 무거운 알갱이가 먼저 가라앉고 가벼운 게 나중에 가라앉아요. 그래서 아래가 거칠고 위가 고와요. 석사 때 벵골만에서 이런 걸 질리도록 봤어요. 근데 이건 엄청 위에 있어요. 4센티미터면…” 니나는 머릿속으로 셈했다. 이 바닥에는 1년에 1밀리미터도 쌓이지 않는다. “길게 잡아도 백 년 안쪽이에요. 어쩌면 훨씬 최근일 수도 있고.”

태오는 관을 봤다. 그리고 해연호의 소나 화면을 봤다. 남쪽으로 8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닥이 갑자기 솟아올랐다. 해구의 남쪽 벽이었다. 벽은 바닥에서부터 몇 킬로미터를 거의 절벽처럼 솟아 있었다.

“저 벽에서 내려온 거예요?”

“아마도요.” 니나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했다. 나중에 몇 번이고 되감아 듣게 될 말을. “그러니까 벽 쪽으로 더 가 봐야 해요. 벽 아래쪽에 위에서 내려온 나무랑 유기물이 쌓이거든요. 단각류는 거기 훨씬 많을 거예요. 개체군 밀도를 벽에서부터 거리별로 재면, 그게 논문 하나예요. 아니, 논문 두 개.”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남은 배터리를 봤다. 시계를 봤다. 바닥에서 쓰기로 한 시간은 아직 두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200미터.” 그가 말했다. “벽에서 200미터까지만.”


벽 쪽으로 가는 데 20분이 걸렸다. 해연호는 바닥 위 2미터를 걸어가는 사람보다 느리게 미끄러졌다. 조명 끝에서 바닥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하얀 가루 위에 검은 얼룩들이 보였다. 니나는 그게 뭔지 알아봤다. 나무였다. 물에 불어 검게 변한 나뭇가지. 어딘가의 섬에서, 어느 태풍에 쓸려 와서, 몇 년에 걸쳐 1만 미터를 가라앉은 나무. 그 위에 단각류가 붙어 있었다. 몇십 마리씩.

“봐요.” 니나가 속삭였다. 이번에는 숨을 참지 않으려고 애썼다.

태오가 해연호를 멈췄다. 그는 로봇팔 조종간을 잡았다. 니나가 가리킨 나뭇가지를 통째로 시료 바구니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때 니나는 그의 손을 봤다.

오른손이었다. 조종간 손잡이를 감싼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아주 가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로봇팔의 집게가 화면 속에서 그 떨림을 그대로 받아 흔들렸다. 나뭇가지를 두 번 놓쳤다. 하얀 가루가 피어올랐다.

태오는 조종간에서 손을 뗐다.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잡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조종간을 다시 잡았다. 세 번째에 집게가 나뭇가지를 물었다.

“추워서.” 그가 말했다. 니나가 묻지도 않았는데.

“네.” 니나가 말했다.

구 안은 11도였다. 춥긴 했다. 니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믿기로 하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다는 건 니나도 알았다.


11시 52분이었다.

니나는 나중에 그 시각을 정확히 기억했다. 덫 하나를 더 놓으려고 시계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구가 종처럼 울렸다.

조금 전의 그 길고 낮은 소리가 아니었다. 짧고 둔하고 거대한 소리. 누가 해연호를 커다란 망치로 한 번 내리친 것 같았다. 진동이 엉덩이 밑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와 이빨을 부딪치게 했다. 바깥에서 바닥의 하얀 가루가 한꺼번에 들썩였다. 단각류들이 흩어졌다.

“지진.” 태오가 말했다.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손이 계기판으로 가다가 멈추고, 왼손이 대신 갔다. “상승 준비. 덫 버려요.”

“시료는요?”

“버려요.”

두 번째 진동이 왔다. 첫 번째보다 길었다. 바닥이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옆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니나는 손을 뻗어 아무거나 붙잡았다. 태오의 무릎이었다. 그는 뿌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니나는 나중에도 그 소리를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낮아서 귀가 아니라 배로 들었다. 멀리서, 위에서, 무언가 아주 크고 아주 무거운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 천둥과 비슷했지만 끝나지 않았다. 계속 커졌다.

니나는 저도 모르게 숫자를 셌다.

하나.

남쪽 창밖, 조명이 닿는 끝에서 바닥이 사라졌다. 아니, 바닥 위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갈색의 벽이었다. 조명을 받아 누렇게 빛나는 구름. 하얀 가루가 아니라 더 어둡고 더 무거운 것. 아래쪽은 거칠고 위로 갈수록 고운, 아까 그 코어 속의 층이 지금 살아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둘.

“상승추.” 태오가 말했다. 그의 왼손이 덮개를 젖히고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셋을 세기 전에 그것이 닿았다.

창이 갈색이 됐다가 검어졌다. 해연호가 옆으로 떠밀렸다. 니나의 어깨가 구 벽에 부딪쳤다. 금속에 맺혀 있던 이슬이 한꺼번에 얼굴로 쏟아졌다. 무언가가 선체를 긁는 소리, 수천 개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가, 점점 둔해졌다. 무언가 두꺼운 것이 소리를 덮고 있었다.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계기판의 경보등이 빨갛게 깜빡였다. 그리고 해연호가 기울어진 채로 멈췄다.

조용해졌다.

니나는 자기 숨소리만 들었다. 빠르고 얕은 숨. 어둠 속에서 계기판 불빛만 태오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추고 있었다. 그는 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수심계였다.

니나도 그 숫자를 봤다.

10,914.

그들은 상승추를 놓았다. 딸깍 소리를 둘 다 들었다. 추는 전자석에서 떨어졌다. 그러면 해연호는 이제 가벼워져야 했다. 가벼워져서, 떠올라야 했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5초가 지났다. 10초. 니나는 셌다. 어머니의 천둥을 셀 때처럼. 스물. 서른.

10,914.

“태오.” 니나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숫자를 보다가, 아주 천천히, 털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구 벽에 손바닥을 댔다. 바깥에서 무언가가 아주 느리게, 아주 무겁게 선체를 누르고 있었다. 니나도 손을 댔다. 금속은 차가웠고, 그 너머로 바다가 아닌 다른 것이 느껴졌다.

진흙이었다.

“숨 천천히.” 태오가 말했다. 그건 니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자기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