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15장
1,100기압 · 도해

15장

한결호, 챌린저 해연 남쪽 약 120km
생명유지 잔여 0시간
약 10분

0시 10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오유진은 그 시각을 일지에 적지 않았다. 적을 사건이 아니었다. 그건 선배가 바닥에서 계산해 보낸 숫자였고, 계산은 두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을 때를 전제로 했다. 선배는 해치를 여는 동안 흡수제 팬을 껐을 것이다. 유진은 그걸 알았다. 선배가 운항팀 신입들에게 맨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것이었다. 안 쓸 때는 끈다. 얼마나 아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적지 않았다.

한결호는 뱃머리를 바람에 대고 버티고 있었다. 엔진은 앞으로 가려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 있으려고 돌았다. 배가 파도 하나를 넘을 때마다 운항 통제실의 의자가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유진은 의자에 몸을 끈으로 묶고 있었다. 콘솔 옆에 멀미약 껍질이 세 장 쌓여 있었다.

화면에는 해도가 떠 있었다. 그 위에 노란 점이 줄지어 있었다. 괌 구조조정본부가 몇 분마다 넘겨주는 비상위치표시기의 위치였다. 21시 34분에 첫 점이 찍혔다. 점들은 처음 한 시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눈 안이었다. 22시 40분부터 점들이 북쪽으로 기울며 흘러가기 시작했다. 뒤쪽 눈벽이었다.

일지의 마지막 줄은 이랬다.

22:38 해치 닫음(수면). 강태오.

유진은 그 줄을 위성 메신저 문자에서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번 잠수의 쪽 맨 위에는 유진이 나흘 전 새벽에 쓴 첫 줄이 있었다. 05:10 해치 닫음. 해연호의 모든 잠수는 그 두 줄 사이에 있었다. 해치를 닫은 시각과 해치를 연 시각. 이번 잠수는 그 사이에 해치 연 시각이 한 번 끼어 있었고, 다시 닫은 시각이 있었고, 아직 마지막 줄이 없었다.


1시 40분에 점이 하나 찍혔다.

1시 45분에는 찍히지 않았다.

유진은 화면을 새로 고쳤다. 괌에서 넘어오는 데이터는 늦게 올 때가 있었다. 1시 50분. 유진은 위성 전화로 괌을 불렀다. 구조조정본부 당직 장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피곤했다.

“신호 없습니다. 마지막 수신 01시 40분. 위성 세 개 모두.”

유진은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지를 펴서 새 줄을 적었다.

01:40 비상위치표시기 신호 끊김.

그 아래에 번호를 매겼다. 유진은 늘 그랬다. 모르는 게 생기면 번호부터 매긴다.

  1. 안테나 손상.
  2. 장치 침수.
  3. 구 침몰.

유진은 세 줄을 오래 봤다. 어느 것도 지울 수 없었다. 3번을 지우고 싶었다. 지울 근거가 없었다. 구의 여유 부력은 수면에서 500킬로그램이 조금 못 됐다. 외우고 있는 숫자였다. 해치를 몇 번 열었는지, 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몰랐다.

3번 옆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1번과 2번 옆에 썼다. 표류.

구가 떠 있다면, 바람에 밀리고 있다.

유진은 위성 메신저 창을 열어 쳤다.

선배. 위치 보내요.

전송. 화면 아래에 작은 회색 글씨가 떴다. 보냄. 메신저가 받으면 그 글씨가 받음으로 바뀐다. 22시 38분까지는 늘 1분 안에 바뀌었다. 유진은 그 회색 글씨를 3분 동안 봤다. 바뀌지 않았다. 같은 문자를 한 번 더 보냈다. 보냄. 그리고 화면을 닫았다. 열어 두면 그 글씨만 볼 것 같았다.


표류 예측은 원래 괌의 일이었다. 해안경비대에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물체의 종류를 고르면 바람과 해류 예보를 넣어 탐색 상자를 그려 준다. 구명뗏목, 전복된 소형선, 사람. 잠수정 구는 목록에 없었다. 괌은 그중 가장 비슷한 것으로 ‘반쯤 잠긴 컨테이너’를 골랐다. 1시 58분에 그 상자가 넘어왔다. 마지막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길쭉한, 가로 20킬로미터에 세로 12킬로미터짜리 상자.

유진은 그 상자를 봤다. 그리고 다른 화면을 열었다.

음향 중계 부이. 사흘째 정오에 유진이 해연 상공에 남기고 온 노란 부이였다. 수중 음향 장치는 해연호와 끊긴 뒤로 할 일이 없었지만, 부이 꼭대기의 위성 송신기는 10분마다 제 위치를 보내고 있었다. 해묘를 끌며 천천히 흐르는 부이. 그 부이가 지난 다섯 시간 동안 그린 선이 화면 위에 있었다.

부이는 구에서 서남서로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은 눈을 지났다. 같은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그 바람에 실제로 밀렸다. 예보가 아니라, 실제로.

유진은 연필을 들었다. 종이 해도 위에 부이의 선을 옮겨 그렸다. 눈벽을 지나는 세 시간 동안 부이는 북북서로 시속 2.4킬로미터. 바람이 잦아든 뒤로는 서북서로 1킬로미터 남짓.

그 선을 그대로 구에 옮길 수는 없었다. 부이는 혼자 떠 있지 않았다. 1천 미터 케이블 끝, 수심 100미터에 해묘가 매달려 있었다. 물속의 낙하산. 바람이 부이를 끌면 해묘가 100미터 아래의 느린 물을 붙들고 버틴다. 그래서 부이의 선은 바람보다 그 깊이의 물을 더 닮았다.

구에는 붙드는 것이 없었다. 물 위로 나온 것은 해치 언저리 50센티미터. 바람이 직접 미는 몫은 부이보다 작아도, 바람에 끌려가는 맨 위층 물에는 통째로 실려 간다. 태풍 아래서 그 층은 100미터 아래보다 훨씬 빨리 흐른다. 그리고 북반구에서는 바람의 오른쪽으로 비껴 흐른다.

방향은 부이에게서 빌리고, 거리는 부이보다 길게. 유진은 해묘를 단 표류 부이와 달지 않은 부이를 나란히 띄운 시험 보고서를 기억해 냈다. 해묘 없는 쪽이 1.5배쯤 더 갔다. 유진은 부이의 선을 1.5배로 늘리고 오른쪽으로 조금 틀었다.

계산을 두 번 했다. 그리고 1시 40분의 노란 점에서 시작해 연필 선을 그었다. 그 선 끝에 상자를 그렸다. 괌의 상자보다 작았다. 가로 12에 세로 8. 그리고 괌의 상자보다 6킬로미터 북쪽에 있었다.

유진은 그 두 상자를 같은 해도에 겹쳐 놓고 봤다. 반쯤 겹쳤다. 나머지 반은 겹치지 않았다.

비상 절차서에는 이런 항목이 없었다. 남이 그린 상자를 고치라는 항목은. 유진은 사흘 동안 그 절차서를 여러 번 펼쳤고, 펼칠 때마다 그 책이 이 일의 크기에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해저 고착 두 쪽. 수면 표류 한 쪽. 태풍은 ‘출항을 연기한다’ 한 줄.

유진은 위성 전화를 다시 들었다.

“한결호의 오유진입니다. 탐색 상자 수정 요청이 있습니다. 근거를 보내겠습니다. 같은 바람을 맞은 표류 부이의 실측 궤적을 해묘 몫만큼 보정했습니다.”

당직 장교는 한참 말이 없었다. 위성 지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내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그쪽 상자를 1순위로 올리겠습니다. 근거가 맞으면.”

유진은 해도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연필 선이 배의 흔들림 때문에 두 번 꺾여 있었다. 그 꺾임은 지우지 않았다.


2시 40분에 풍속계가 38노트를 가리켰다.

유진은 그 숫자를 30분 동안 기다렸다. 40노트. 둘째 날 회의실에서 레예스 선장이 종이 해도 앞에서 말한 숫자였다. 40노트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는 이 배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할 때 유진의 눈을 보았다. 그다음에 승선 명부를 탁자 위로 밀었다. 스물셋입니다, 오 팀장.

유진은 의자의 끈을 풀었다. 선교로 올라가 말할 생각이었다. 무슨 말부터 할지 계단에서 정리할 생각이었다. 40노트 아래입니다, 북으로 가 주십시오. 근거는 이렇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배가 기울었다.

파도 때문이 아니었다. 기울기가 길고 고르게 이어졌다. 콘솔 위의 나침반 숫자가 흘러갔다. 190. 220. 270. 배가 돌고 있었다. 330. 360. 010.

유진은 계단을 올라갔다. 선교는 어두웠다. 계기판 불빛과 레이더 화면의 초록빛뿐이었다. 레예스는 조타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쌍안경을 들고 있지 않았다. 볼 게 없었다. 창밖은 아직 비와 물보라였다.

“선장님.”

레예스가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 초록빛이 비쳤다. 그도 밤새 눈을 붙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유진은 그가 언제부터 풍속계 앞에 서 있었는지 몰랐다.

“38노트입니다.” 레예스가 말했다. “북으로 갑니다. 120킬로미터, 이 바다에서는 일곱 시간입니다. 파도가 줄면 줄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압니다.” 그는 다시 창을 봤다. “괌에서 상자를 받았습니다. 오 팀장 상자도 받았습니다. 어느 쪽으로 먼저 갈지 말씀해 주십시오.”

유진은 대답했다. 레예스는 조타수에게 침로를 불렀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유진이 선교를 나가려 할 때 말했다.

“스물다섯입니다, 오 팀장.”

유진은 돌아봤다. 레예스는 여전히 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셈을 고친 것이었다. 그가 데리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의 수를. 사흘 동안 승선 명부 밖에 두었던 두 사람을, 이제 그 숫자에 넣었다.

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 계단을 내려왔다.


3시가 넘자 배는 파도를 앞에서 받으며 달렸다. 뱃머리가 들렸다가 떨어질 때마다 통제실 천장에서 무언가가 덜컹거렸다. 유진은 다시 의자에 몸을 묶었다.

유진은 나흘 전 아침의 문자를 생각했다. 잘 가요 선배. 해연호가 처음 9천 미터를 넘던 날부터 보낸 말이었다. 그 말은 이번에도 일지에 남아 있었다. 유진은 그걸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 유진이 보낸 문자는 다른 말이었다. 선배는 그때 처음으로 답을 했다. 한 단어로.

4시 조금 전에 배정민 박사가 통제실 문을 열었다. 그도 밤새 선교와 통제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손에 위성 전화 통화 기록지를 들고 있었다.

“코치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 쿠마르 박사 어머니.” 배 박사가 말했다. “본원을 거쳐서. 이번이 여섯 번째예요.”

“뭐라고 하셨어요?”

“새 소식이 있느냐고만. 통역 말로는 목소리가 차분하대요. 끊을 때마다 몇 시에 다시 걸겠다고 시각을 말한대요. 그리고 꼭 그 시각에 건대요.”

유진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시각을 정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 유진은 그런 사람을 알았다. 그 사람은 지금 바다 어딘가에서 해치를 열고 닫는 시각을 세고 있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찾으면 제일 먼저 그분께 알려 주세요.” 유진이 말했다. “본원 말고, 직접.”

“그럴게요.” 배 박사가 문을 닫으려다 말고 덧붙였다. “다음 전화는 여기 시각으로 다섯 시 반이래요.”

4시 30분에 괌에서 연락이 왔다. 초계기가 5시 10분에 이륙한다. 괌의 바람이 이륙 한계 아래로 떨어지는 대로. 탐색 순서는 한결호 상자 먼저.

유진은 일지에 적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언제 탄 커피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갑판장이 통제실 문을 두드렸다. 비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A자 크레인을 점검하고 오는 길이었다.

“구만 건지는 건 처음입니다, 팀장님. 어디에 겁니까.”

유진은 부력 띠 도면을 꺼냈다. 해연호 몸체째 건질 때는 프레임의 인양 고리 넷에 줄 넷을 걸었다. 구만 남으면 고리는 하나다. 구 꼭대기, 해치 옆.

“하나. 갈고리 하나로 겁니다. 누가 물에 들어가서 걸어야 합니다.”

갑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들어갈지도 벌써 정해 둔 눈치였다. 유진은 그게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선배라면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이번에 선배는 건지는 쪽이 아니라 건져지는 쪽이었다.

5시 30분에 통제실 위성 전화가 울렸다. 배 박사가 받았다. 아직입니다. 네. 찾는 대로. 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시계를 봤다. 다음은 일곱 시라고 했다. 유진은 그 숫자를 일지 귀퉁이에 적었다. 일곱 시 전에 할 말이 생기기를 바랐다.


5시 40분에 창밖이 회색이 되었다.

밤이 끝난다기보다 어둠이 묽어지는 쪽이었다. 구름은 아직 낮았고 비는 가늘어졌다. 바다는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이제 파도에 모양이 있었다. 사방에서 무너지던 물이 한 방향으로 줄을 서서 오고 있었다. 태풍은 서북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콘솔 구석에서 선체 수온 센서가 25도를 가리켰다. 사흘 전 새벽 파딜라가 예보문을 짚으며 말한 숫자는 30도였다. 태풍이 바다를 휘저어 아래의 찬물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노을이 지나간 자리에는 식은 바다가 길게 남아 있었다.

5시 52분, 선교 무전기에서 영어가 나왔다. 초계기였다. 고도를 낮춰 상자 남동쪽 모서리부터 훑기 시작한다고 했다. 한결호와 직접 교신이 닿는 거리였다. 유진은 선교로 올라가 무전기 옆에 섰다. 레예스가 유진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초계기는 상자 안을 사다리처럼 오갔다. 한 줄 갈 때마다 짧게 보고했다. 남쪽 첫 줄, 접촉 없음. 둘째 줄, 접촉 없음. 레이더에 걸리는 것은 파도 마루뿐이라고 했다. 해치 50센티미터는 이 바다에서 레이더에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눈으로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셋째 줄, 접촉 없음.

유진은 손에 쥔 연필을 내려다봤다.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몰랐다. 상자를 생각했다. 6킬로미터. 괌의 상자보다 6킬로미터 북쪽. 그 6킬로미터가 틀렸다면 초계기는 지금 비어 있는 바다를 훑고 있다. 그 시간만큼 구 안의 공기는 줄고 있다.

넷째 줄.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바뀌었다. 조금 높아지고, 조금 빨라졌다.

“한결호, 초계기. 접촉. 상자 북쪽 3분의 1. 오렌지색 물체. 지름 2미터 내외. 선회해서 확인한다.”

유진은 숨을 쉬지 않았다. 레예스가 옆에 와서 섰다. 조타수도 고개를 돌렸다. 선교에 무전기의 잡음만 남았다.

40초.

“한결호, 초계기. 확인. 오렌지색 부력 띠. 해치 열림. 사람이 손을 흔든다.”

유진은 무전기 손잡이를 잡았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았다.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레예스가 유진 대신 송신 단추를 눌렀다. “초계기, 한결호. 몇 명입니까.”

잡음. 초계기가 한 바퀴 더 도는 동안의 잡음.

“두 명. 반복한다, 두 명 확인.”

유진은 일지를 펴지 않았다. 연필은 손에 있었다. 유진은 그걸 쥔 채 무전기 옆 창틀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창밖에서 회색 바다가 한 줄로 서서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