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14장
1,100기압 · 도해

14장

태풍 노을의 눈벽
생명유지 잔여 1시간
약 14분

바람은 소리부터 바꿨다.

처음엔 낮고 고른 소리였다. 10분 뒤 그 소리에 높은 음이 섞였다. 구 꼭대기의 해치 테두리를 스치는 바람이 피리처럼 울었다. 그다음엔 소리가 아니었다. 구 전체가 하나의 종이 되어 쉬지 않고 맞았다.

구가 넘어갔다. 니나의 몸이 벽에서 떨어져 반대쪽 벽으로 날아갔다. 태오의 팔이 니나의 허리를 잡았다.

“발. 벽에.” 그가 말했다. “등 대고. 머리 숙이고.”

니나는 두 발을 맞은편 벽에 대고 등을 이쪽 벽에 붙였다. 지름 1.5미터. 처음 들어왔을 때 욕조보다 작다고 웃었던 그 좁음이 지금은 고마웠다. 몸을 버티는 데 손이 닿지 않는 벽이 없었다. 태오도 같은 자세를 했다. 두 사람의 다리가 엇갈려 구 한가운데에서 X자를 만들었다.

기울기 표시가 50도를 넘었다가 돌아왔다. 70도. 다시 돌아왔다. 트림추가 없는 구는 파도가 미는 대로 넘어갔다. 니나는 시료 봉지에 토했다. 태오가 봉지 입구를 묶어 발밑에 밀어 넣었다.


23시 4분에 메신저가 고리에서 풀렸다.

해치 아래 고리에 걸어 둔 것이었다. 줄 끝에 매달려 벽을 때리고 있었다. 쇳소리가 바람 소리를 뚫고 귀에 박혔다. 태오가 다리를 풀고 손을 뻗었다. 메신저를 잡아 다시 걸었다.

그때 구가 넘어갔다. 끝까지.

니나는 세상이 도는 걸 봤다. 계기판이 위로 가고, 해치가 옆으로 오고, 태오의 몸이 그 사이를 미끄러졌다. 둔한 소리가 났다. 구가 다시 일어섰을 때 태오는 해치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마가 잠금 바퀴에 부딪쳤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태오.”

대답이 없었다. 그의 눈은 떠 있었는데 니나를 보지 않았다.

니나는 그의 머리에서 털모자를 벗겼다. 감색 털실이 젖어 무거웠다. 모자를 접어 그의 이마에 대고 눌렀다. 털실이 피를 빨아들이는 게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다른 손으로는 그를 끌어당겨 원래 자리에 앉히고 그의 발을 벽에 대 주었다.

“몇 시예요?” 태오가 물었다.

“23시 6분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분 뒤에 다시 물었다.

“몇 시예요?”

“23시 8분이요.”

니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훈련 때 응급처치 과목에서 배웠다. 머리를 부딪친 사람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면, 그 머리는 지금 새 기억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토하면 더 나쁘다. 잠들게 두면 안 된다.

이 구 안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하나였다.

니나는 태오의 가슴 주머니에서 방수 수첩을 꺼냈다. 맨 뒷장에 자기가 쓴 식이 있었다. 그 아래 태오가 그은 줄과 떨리는 3,000. 니나는 그 아래에 시각을 적었다. 23:06 태오 머리. 바닥에서 그가 하던 대로였다. 적고 나니 손이 조금 덜 떨렸다. 지금부터 무엇을 하든 여기 적힐 것이다. 나중에 이걸 읽을 사람이 태오이기를, 니나는 바랐다.


니나는 화면을 봤다. 이산화탄소 0.9퍼센트. 흡수제 팬이 돌고 있었다. 통 안에는 숨이 새기 시작한 둘째 카트리지뿐이었다. 셋째는 젖은 채 비닐에 싸여 발밑 자루에 있었다. 태오의 수첩에는 1시라고 적혀 있었다. 3퍼센트가 되는 시각. 니나는 그 숫자 옆의 단서도 기억했다. 둘이 가만히 있으면.

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니나는 넘어갈 때마다 다리로 버텼고, 버틸 때마다 숨이 찼다. 태오는 피를 흘리면서 빠르고 얕게 숨을 쉬었다. 공황은 이산화탄소를 두 배 가까이 늘린다. 다쳐서 숨이 빠른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23시 40분. 1.4퍼센트.

니나는 흡수제 통 뚜껑을 열고 둘째 카트리지를 뽑았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원통이었다. 철망 마개를 비틀어 열자 하얀 알갱이가 보였다. 위쪽 알갱이들은 서로 들러붙어 딱딱했다. 다 쓴 것이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헤집자 그 아래에서 보슬보슬한 알갱이가 나왔다. 아직 쓰지 않은 것이었다.

니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퇴적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물은 진흙 전체를 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 한 번 길이 난 곳으로만 다닌다. 이 통 안에도 공기가 다니는 길이 생겨 있었다. 그 길 둘레의 알갱이는 다 썼고, 길에서 먼 알갱이는 손도 대지 않았다. 추운 구 안에서 알갱이는 더 굼떴을 것이다. 숨이 새기 시작한 카트리지에도 아직 먹을 수 있는 알갱이가 남아 있었다.

니나는 수건을 펼쳤다. 사흘 전 태오가 천장의 이슬을 닦던 수건이었다. 원통 속 알갱이를 손으로 퍼서 수건 위에 얇게 폈다. 그리고 수건을 느슨하게 접어 팬 출구 앞에 댔다. 묶을 게 없었다. 니나는 자기 신발 끈을 풀었다. 왼쪽, 오른쪽. 두 줄로 수건을 팬 철망에 묶었다. 팬이 미는 공기가 이제 길 하나가 아니라 수건 전체를 지나갔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렸다. 수산화리튬은 알칼리였다. 니나는 손가락을 바지에 문질렀다.

“몇 시예요?”

“23시 51분이요.”


0시 10분이 지나갔다.

니나는 그 시각을 보고 있었다. 계기가 처음 알려 준 한계에서 다섯 시간을 뺀 숫자. 바닥에서 둘째 날 태오가 다시 계산해 그대로 말해 준 숫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숫자는 문이 아니었다. 이산화탄소 1.9퍼센트. 수건은 아직 일을 하고 있었다.

0시 30분. 2.6퍼센트.

수건 위의 알갱이가 딱딱해졌다. 두통이 관자놀이에서 정수리로 올라갔다. 숨이 짧아졌다. 니나는 그걸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태오의 숨은 더 빨랐다. 니나는 손을 그의 무릎에 얹었다. 그리고 손목으로 박자를 쳤다. 느리게. 사흘 전 태오가 자기에게 해 준 그 박자.

“숨.” 니나가 말했다.

태오의 눈이 처음으로 니나를 봤다. 무언가를 알아본 눈이었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거 내 거.” 그가 말했다.

“알아요.”

그의 숨이 조금 느려졌다. 니나의 숨도.


해치를 열면 공기가 들어온다. 해치를 열면 물도 들어온다.

니나는 숫자를 늘어놓았다. 트림추 둘을 다 놓은 구의 여유 부력. 태오의 장부에는 510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기둥 전체로 평균을 낸 숫자였다. 여기 물은 바닥 물보다 가볍다. 수면에서는 480 남짓. 물 480리터가 들어오면 구는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그다음은 없다.

지금 해치는 수면 위 50센티미터. 지름 50센티미터 구멍을 다 열어 둔 채 물마루가 덮으면 1초에 수백 리터가 들어온다. 두 번이면 끝이다. 한 뼘만 열면 틈은 4분의 1도 안 된다. 물마루가 지나가는 1, 2초 동안 수십 리터. 그건 견딘다. 문제는 언제 여느냐였다.

니나는 눈을 감았다.

구가 넘어갔다. 돌아왔다. 넘어갔다. 니나는 그 사이를 셌다. 하나, 둘, 셋. 열하나에서 다시 넘어갔다. 11초. 다음은 열둘. 그다음은 열하나. 큰 것이었다. 기울기가 60도를 넘는 것. 니나는 큰 것만 손가락으로 접었다. 하나, 둘, 셋. 일곱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그다음 것은 작았다. 구가 30도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다음도 작았다. 그다음도. 니나는 숫자를 놓치지 않았다. 마흔 남짓. 그리고 다시 큰 것이 왔다.

파도는 혼자 오지 않는다. 떼로 온다. 큰 놈이 몇 개 줄지어 오고, 그 뒤로 작은 놈들이 오고, 다시 큰 놈들이 온다. 석사 때 벵골만의 사이클론 파랑 기록에서 본 모양이었다. 해저 산사태를 일으킨 폭풍을 찾느라 몇 달을 들여다본, 종이 위의 구불구불한 선.

니나는 한 묶음을 더 셌다. 일곱, 그리고 작은 것들, 마흔 초. 또 한 묶음. 여덟. 작은 것들. 서른다섯 초.

번개가 치면 숫자를 세렴. 셋까지 세기 전에 천둥이 오면 가까운 거고. 어머니는 그게 거리를 재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을까. 니나는 이번에도 묻지 못한 질문을 접어서 넣었다. 지금 재는 건 거리가 아니라 틈이었다.

0시 47분. 이산화탄소 3.0퍼센트.

일곱 번째 큰 것이 지나갔다.


니나는 바퀴를 잡았다. 세 바퀴. 고리가 풀리는 감각이 손바닥으로 왔다. 어깨로 해치를 밀어 올렸다. 한 뼘.

소리가 들어왔다. 바람은 소리가 아니라 벽이었다. 짠물 안개가 틈으로 쏟아져 들어와 얼굴을 때렸다. 따뜻했다. 그 따뜻한 공기가 구 안의 묵은 공기를 휘저었다. 니나는 입을 벌리고 셌다. 하나, 둘. 구가 작게 기울었다. 열. 물이 테두리를 넘어 한 바가지 쏟아졌다. 스물. 스물다섯. 서른.

해치를 당겼다. 바퀴, 세 바퀴.

여덟 번째 큰 것은 오지 않았다. 다음 묶음의 첫 번째가 왔다. 구가 넘어갔다. 해치는 닫혀 있었다.

니나는 화면을 봤다. 이산화탄소 1.1퍼센트.

니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기침이 되었다. 수첩을 펴서 적었다. 00:47 해치 1. 30초. 3.0→1.1. 글씨가 태오의 것만큼 떨렸다.

“몇 시예요?” 태오가 물었다.

“0시 48분이요. 열었어요. 한 번.”

“뭘요?”

“해치요.”

태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털모자를 누르고 있는 니나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떨리는 손이었다.


두 번째는 1시 8분이었다.

니나는 일곱을 셌다. 일곱 번째 큰 것이 지나갔다. 바퀴를 돌렸다. 해치를 밀었다. 공기. 하나, 둘, 셋.

여덟 번째가 왔다.

작은 것들 사이에서 솟은 것이었다. 사방에서 온 너울이 하필 구 위에서 만났다. 니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소리로 들었다. 바람 소리 위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겹쳤다. 그리고 해치 틈으로 바다가 들어왔다.

물은 기둥이었다. 니나의 어깨를 때리고 구 바닥에 주저앉혔다. 입과 코로 짠물이 들어왔다. 계기판에 물이 튀었다. 고리에 걸린 메신저가 물줄기에 맞아 벽에 부딪쳤다. 팬 앞에 묶은 수건이 흠뻑 젖었다.

니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물이 아직 들어오고 있었다. 해치를 닫으려면 그 물기둥을 거슬러 손을 뻗어야 했다.

손 하나가 먼저 바퀴에 닿았다.

태오의 손이었다. 오른손. 떨리는 손이 바퀴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반쯤 일어선 채 해치 뚜껑에 어깨를 대고 있었다. 이마에서 피가 다시 흘렀다. 니나는 일어나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둘이 같이 당겼다. 해치가 테두리에 앉았다. 둘이 같이 돌렸다. 한 바퀴. 떨림이 바퀴를 타고 니나의 손으로 왔다. 바퀴를 돌리는 데 그 떨림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두 바퀴. 세 바퀴.

구 바닥에 물이 발목까지 찼다. 80리터쯤. 니나는 계산했다. 480에서 80을 빼면 400. 아직 괜찮다. 이런 실패라면 네 번은 더 견딘다. 다섯 번째는 아니다.

손이 탔다. 젖은 수건의 수산화리튬이 바닷물에 녹아 손등과 팔뚝을 핥고 있었다. 눈도 따가웠다. 니나는 물병을 찾았다. 마지막 병.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남은 물. 그걸 눈에 붓고, 남은 것으로 손등을 씻었다. 병이 비었다.

메신저 화면은 꺼져 있었다. 버튼을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니나는 수건을 풀어 비닐 봉지에 넣고 입구를 묶었다. 신발 끈은 다시 신발에 꿰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1.6퍼센트. 물이 들어오는 사이에도 공기는 조금 바뀌었다. 그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1시 22분이었다. 니나는 일곱을 세고, 그다음 작은 것을 하나 더 셌다. 한 박자 늦게 열었다. 서른을 세고 닫았다. 물이 한 바가지. 1.3퍼센트.

네 번째는 1시 36분이었다. 이번 묶음은 큰 것이 여섯이었다. 니나는 일곱째를 기다렸다가, 그게 오지 않는다는 걸 숨 한 번 사이에 알아챘다. 열었다. 서른을 셌다. 닫았다. 1.0퍼센트.

“몇 시예요?” 태오가 물었다.

“1시 37분이요.”

“아까도 물었죠.”

니나는 그를 봤다. 태오의 눈이 이번엔 니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열네 번이요.” 니나가 말했다.

“미안.”

“괜찮아요. 세는 거 좋아해요.”

니나는 털모자를 그의 이마에서 조금 떼어 봤다. 피가 엉겨 멈춰 있었다. 털실은 감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바람 소리가 내려가고 있었다.

니나는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귀가 먹먹해서 그렇게 들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치 테두리의 피리 소리가 한 음 낮아졌다. 그리고 또 한 음. 구가 넘어가는 각도가 60도에서 40도로 줄었다. 1시 40분.

창이 하얗게 깜빡였다.

니나는 그 빛을 한 시간 내내 보고 있었다. 부력 띠 위의 비상위치표시기. 3초마다 한 번. 섬광이 물보라에 번져 창 전체를 하얗게 칠했다가 꺼졌다. 니나는 파도를 세는 동안에도 그 빛을 같이 셌다. 그 빛이 있는 동안에는 누군가 이 점을 지도 위에서 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깜빡.

하나, 둘.

딱.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바람 소리 속에서도 또렷했다. 그 직후 무언가가 구 벽을 한 번 때리고 멀어졌다.

니나는 창을 봤다.

하나, 둘, 셋.

창은 어두웠다.

넷, 다섯.

니나는 계속 셌다.


스물에서 그만두었다.

섬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니나는 수첩을 펴서 적었다. 01:40 섬광 멈춤. 그 아래에 무엇을 더 적어야 할지 몰라 연필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메신저가 죽었다. 섬광도 죽었다. 이제 이 구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건 구 안의 두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둘 가운데 하나는 지금이 몇 시인지도 붙잡지 못했다.

바닥에서는 달랐다. 바닥에서는 1만 미터 위에 늘 누군가 있었다. 7초 늦게, 14초 늦게, 마지막에는 4분 늦게라도. 니나는 그 늦음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7초가 그리웠다.

이산화탄소 1.2퍼센트. 수건은 비닐 봉지 안에 있었다. 둘째 카트리지에서 퍼낼 알갱이는 바닥이 났다. 이제 남은 건 태오가 수첩에 적어 둔 다른 숫자였다. 아무것도 없으면 2.7.

니나는 셈을 했다. 1.2에서 3까지 40분. 5까지는 한 시간 25분. 두 숫자 사이에 해치가 있었다. 2퍼센트가 되면 연다. 20분에 한 번꼴이다. 큰 것 일곱이 지나간 뒤에.

니나는 수첩 맨 아래에 적었다. 2% → 해치.


다섯 번째는 2시 2분이었다.

바람이 약해진 만큼 묶음 사이의 틈이 길어졌다. 마흔 초, 마흔다섯 초. 큰 것은 여전히 컸다. 그래도 이제는 사방에서 오지 않았다. 한쪽에서 와서 한쪽으로 갔다. 니나는 일곱을 세고 열었다. 이번에는 마흔을 셌다. 물이 한 바가지. 2.1에서 0.9.

닫기 전에 니나는 시료 봉지 하나를 구 바닥의 물에 담갔다. 물을 반쯤 떠서 해치 틈으로 내던졌다. 한 봉지. 두 봉지. 바다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다섯 봉지째에 큰 것이 왔고, 니나는 해치를 당겼다.

여섯 번째는 2시 25분이었다. 닫자마자 태오가 물었다.

“몇 시예요?”

“2시 26분이요.”

태오는 잠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열다섯 번.”

니나는 그를 봤다.

“아까 열네 번이라고 했잖아요.”

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숫자는 49분 전에 니나가 한 번 말해 준 것이었다. 그가 그걸 붙잡고 있었다. 하나 더해서.

“기억나요?”

“조금.” 태오는 손을 내밀었다. “수첩.”

니나는 수첩을 건넸다. 태오는 맨 뒷장을 폈다. 왼손 검지가 니나의 글씨를 한 줄씩 따라 내려갔다. 23:06 태오 머리. 00:47 해치 1. 01:08 해치 2. 실패. 물 80. 손가락은 다시 계산하지 않았다. 따라 읽기만 했다. 여덟 시간 전, 상승하는 구 안에서 그는 니나의 식을 그렇게 읽었다. 끝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2% → 해치.

“물은요?”

“퍼내고 있어요. 봉지로.”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첩을 덮어 니나에게 돌려주었다. 자기 가슴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니나가 해요.” 그가 말했다. “나는 시계.”

“그럼 이산화탄소 불러 줘요.” 니나가 말했다. “5분마다.”

태오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산소 아니고.”

“산소는 많아요.”


그 뒤로 5분마다 숫자가 왔다. 1.2. 1.4. 1.7.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바닥에서 첫날 니나가 10분마다 산소를 부를 때, 그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니나는 숫자를 들으며 파도를 셌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셌고, 그게 한 박자로 맞았다.

일곱 번째는 2시 49분. 여덟 번째는 3시 13분.

세 시 반쯤 바깥 소리가 바뀌었다. 바람보다 낮고 촘촘한 소리가 구 꼭대기를 두드렸다. 니나는 아홉 번째에 해치를 밀어 올리다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비였다. 틈으로 들어온 물방울이 입술에 닿았다. 짜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짰다.

니나는 빈 물병을 집었다. 뚜껑을 열어 병 입구를 하늘 쪽으로 틈 밖에 내밀었다. 손목에 빗방울이 따갑게 박혔다. 큰 것이 오기 전까지 서른다섯을 셌다. 병을 거둬들였다. 바닥에 손가락 한 마디.

그다음 해치를 열 때마다 니나는 병을 내밀었다. 네 시가 조금 넘자 병에는 반쯤 물이 찼다. 빗물에 물보라가 섞여 혀끝이 조금 짰다. 마실 수 있었다.

니나는 병을 태오에게 내밀었다.

태오는 병을 받아 들고 니나를 봤다. 바닥의 마지막 병을 나눌 때 그는 니나에게 먼저 줬다. 니나는 세 모금, 그는 두 모금.

“세 모금.” 니나가 말했다.

태오는 세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병을 돌려줬다. 니나는 두 모금을 마시고 뚜껑을 닫았다. 남은 물이 병 바닥에서 출렁였다. 둘 다 그 높이를 봤고, 이번에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4시 20분에 니나는 해치를 한 뼘 연 채로 두었다.

묶음 사이의 틈이 1분을 넘었다. 큰 것도 이제 해치 테두리까지 오지 않았다. 구가 들렸다 내려앉는 각도는 20도 안쪽이었다. 니나는 해치 바로 아래에 쪼그려 앉아 바퀴 손잡이를 쥔 채 바깥을 들었다. 큰 것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당겼고, 지나가면 다시 밀었다.

“1.0.” 태오가 말했다. 5분 뒤. “0.9.” 또 5분 뒤. “0.9.”

숫자가 멈췄다. 니나는 그 숫자가 멈춘 걸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검지 않았다. 아주 짙은 회색이었다. 구름이 낮게, 빠르게 서쪽으로 흘러갔다. 태풍이 떠나는 방향이었다.

코치는 여기보다 네 시간 반 늦다. 여기가 새벽 네 시 반이면 거기는 자정. 연구소가 어머니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니나는 코치의 집 전화기를 생각했다. 거실 벽, 곰팡이를 닦아 낸 자리 옆에 붙은 검은 전화기. 어머니는 그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지 니나는 알 것 같았다.

번개가 치면 숫자를 세렴.

니나는 접어 둔 질문을 꺼냈다. 이번에는 다시 접지 않았다. 올라가면 물을 것이다. 알고 가르쳐 준 거냐고.


5시 20분에 해치를 끝까지 열었다.

바다는 아직 높았다. 그러나 이제 줄을 서서 왔다. 한쪽에서 와서 구를 들어 올리고, 한쪽으로 내려놓고 갔다. 바람은 얼굴에 닿는 정도였다. 비는 가늘어져 있었다.

니나는 태오의 겨드랑이 밑으로 어깨를 넣었다. 그를 해치 아래로 끌어 올렸다. 그는 해치 테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하체는 구 안에, 머리와 어깨는 밖에. 태오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봤다. 별은 없었다.

“몇 시예요?” 니나가 물었다.

태오가 니나를 봤다. 그리고 자기 손목시계를 봤다.

“5시 26분.”

“아까 몇 번 물어봤어요?”

“열다섯 번.” 그는 잠깐 생각했다. “니나는 한 번.”

“됐어요.” 니나가 말했다. “자도 돼요.”

태오는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니나는 그 옆에 해치 테두리를 붙잡고 섰다. 동쪽 수평선이 묽어지고 있었다. 검은색이 회색이 되고, 회색 아래로 아주 얇은 은색이 한 줄 생겼다. 니나는 수첩을 펴서 적었다. 05:40 날 밝음.

그리고 그의 숨을 셌다.

넷 들이쉬고. 넷 참고. 넷 내쉬고. 넷 참고.

바닥에서 첫날 그가 니나의 무릎에 두드려 준 박자였다. 그가 자면서도 그 박자로 숨을 쉬고 있었다. 니나는 손목을 그의 무릎에 대지 않았다. 대지 않아도 그 박자는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