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16장
1,100기압 · 도해

16장

해연호, 수심 10,914m
약 12분

비행기는 회색이었고, 생각보다 낮게 날았다.

태오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언제 감았는지 몰랐다. 그는 해치 테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하체는 구 안에, 머리와 어깨는 밖에. 니나가 그 옆에서 반쯤 일어나 두 팔을 머리 위로 흔들고 있었다. 비행기가 그들 위를 지나 크게 돌아왔다. 날개를 한 번 기울였다. 보았다는 뜻이었다.

무언가가 비행기에서 떨어져 바다에 박혔다. 잠시 뒤 거기서 주황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람이 약해서 연기는 한동안 똑바로 섰다.

“몇 시…” 태오는 말하다가 멈췄다.

니나가 그를 내려다봤다. 얼굴이 소금 버짐으로 하얗게 얼룩져 있었다.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6시 12분이요.” 니나가 말했다. “처음 지나간 건 6시 4분. 물어봐도 돼요. 이제 다 기억하잖아요.”

그는 이마를 만져 봤다. 딱지가 앉아 있었다. 머리 한쪽이 둔하게 울렸다. 밤의 일은 조각으로만 남아 있었다. 바퀴의 감촉. 물기둥. 니나가 세는 소리. 5분마다 자기가 부른 숫자들. 숫자가 그 밤의 뼈대였고, 그 사이는 비어 있었다.

그는 가슴 주머니를 더듬었다. 수첩이 없었다. 니나가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맨 뒷장에 니나의 글씨가 이어져 있었다. 23:06 태오 머리. 00:47 해치 1. 30초. 3.0→1.1. 01:08 해치 2. 실패. 물 80. 메신저 죽음. 01:22 해치 3. 01:36 해치 4. 01:40 섬광 멈춤. 2% → 해치. 그 아래로도 몇 줄이 더 있었다. 해치 5, 6, 7, 8. 비. 물 반 병. 04:20 한 뼘 열어 둠. 05:40 날 밝음.

니나의 글씨도 떨려 있었다. 그의 글씨와 비슷하게.

태오는 연필을 들어 그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06:04 발견. 숫자 0이 또 동그라미가 되지 못했다. 그는 연필을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오른손이 떨렸다. 그는 그 손을 허벅지 밑에 넣지 않았다. 니나가 그 손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결호는 9시 반이 넘어서 수평선에 나타났다.

처음엔 하얀 점이었다. 그다음엔 선교의 창이 보였고, 그다음엔 고물에 선 A자 크레인이 보였다. 해연호가 처음 물에 들어간 날부터 태오는 그 크레인에 매달려 바다로 내려갔고, 그 크레인에 매달려 갑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그 크레인은 해연호를 건지러 오는 게 아니었다.

배가 다가오는 데 40분이 걸렸다. 너울을 비스듬히 받으며 천천히 왔다. 배는 속도를 줄이며 50미터 앞에 멈췄고, 고무보트 하나가 물에 내려졌다. 보트가 너울을 타고 다가왔다. 뱃머리에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태오는 그 얼굴을 알았다. 김도윤. 운항팀 정비 막내였다. 2년 전 신입 교육 때 태오에게 줄 매듭을 배운 아이였다.

보트가 10미터 앞에서 멈췄다. 도윤이 줄 끝을 허리에 감고 물에 뛰어들었다.

태오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오래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물에 들어간 사람이 있으면 위에서 줄을 잡는다. 줄을 잡을 사람이 없으면 내가 들어간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몸에 박힌 순서였다.

니나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세게 누르지 않았다. 손을 얹었을 뿐이었다.

태오는 다시 앉았다.

도윤이 부력 띠에 손을 걸고 올라왔다. 숨을 고르며 해치 쪽으로 기어 왔다. 꼭대기의 인양 고리를 찾아 크레인 줄의 갈고리를 걸었다. 걸고 나서 두 번 당겨 확인했다. 태오가 가르친 대로였다. 도윤이 고개를 들어 해치 안의 두 사람을 봤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냥 엄지를 들었다.

태오도 엄지를 들었다. 떨리는 손이었다.

내려간 사람은 내가 데리고 올라간다. 그는 그 규칙을 25년 동안 혼자 지켰다. 그 규칙에는 빈칸이 하나 있었다. 데리고 올라가는 사람은 누가 데리고 올라가는가. 그는 지금 그 빈칸에 앉아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


구가 물에서 떠오를 때 부력 띠에서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구는 크레인 끝에서 한 바퀴 반을 돌았다. 태오는 해치 테두리를 잡았다. 니나도 잡았다. 갑판이 아래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손이 부력 띠를 붙잡아 흔들림을 멈췄다. 받침대에 내려앉는 둔한 충격.

해치 위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유진은 비옷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눈이 붉었다. 나흘 동안 거의 자지 못했을 것이다. 유진은 해치 안을 내려다보며 한 사람씩 봤다. 니나, 그리고 태오. 숫자를 세는 눈이었다.

“선배.” 유진이 말했다.

“어.”

태오는 손을 내밀었다. 두 손 다. 떨리고 있었다. 유진은 그 손을 봤다. 반년 동안 그가 숨긴 것을 유진은 갑판 위 대낮에 봤다.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의 두 손목을 잡았다. 꽉. 유진이 당겼고, 그가 올라왔다.

다리가 갑판에 닿자 무릎이 꺾였다. 나흘 동안 펴지 못한 다리였다. 유진이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어깨를 넣었다. 손목은 놓지 않았다.

“시각요, 선배.” 유진이 말했다.

태오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봤다. 유진의 손이 손목을 쥐고 있어서 시계가 조금 돌아가 있었다.

“10시 41분.”

유진은 비옷 주머니에서 젖은 일지를 꺼내 한 줄을 적었다. 태오는 그 줄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잠수의 마지막 줄이었다.


니나는 사람들 손에 이끌려 나오자마자 부력 띠 쪽으로 갔다.

누군가 니나에게 담요를 덮어 주려 했다. 니나는 담요를 어깨에 걸친 채 받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주황색 폼 아래쪽, 비상 장비 거치대. 태오는 갑판에 주저앉은 채 니나를 봤다.

고리가 두 개 있었다. 니나의 손가락이 첫 번째를 풀었다. 두 번째를 풀었다. 투명한 아크릴 관이 손에 들렸다. 관 아래쪽 3분의 2는 진흙이었다. 위쪽은 흐린 물이었다. 사흘 동안 구르고 흔들린 탓에 맨 위의 묽은 층은 물과 섞여 버렸다. 그러나 그 아래, 4센티미터쯤 내려간 곳에 아래는 거칠고 위는 고운 층이 그대로 있었다.

니나는 그 층을 오래 보지 않았다. 눈은 흐린 물 쪽에 있었다.

거기 하얀 것이 둘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새우를 닮은 것. 하나는 몸을 말고 관 벽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다리를 젓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멈췄다가, 다시.

니나가 무슨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니었다.

“얼음.” 니나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크게. “얼음물이요. 아무거나. 차가운 거.”

누군가 주방으로 뛰었다. 양동이가 왔다. 얼음이 반쯤 든 물이었다. 니나는 관을 그 안에 세웠다. 양동이가 기울었다. 배가 너울을 탔다. 태오가 손을 뻗어 양동이 손잡이를 잡았다. 오른손이었다. 손이 떨리자 얼음끼리 부딪쳐 달그락거렸다. 그는 그 소리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얘네는 압력이 빠져도 바로 안 죽어요.”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물고기랑 달라요. 몸에 공기 주머니가 없어서. 차갑게만 해 주면, 한동안은…”

니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말라얄람어가 나왔다. 짧은 말이 몇 번. 그리고 니나는 울었다. 소리 없이, 양동이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관 속의 가는 다리가 물을 젓는 걸 보면서.

태오는 양동이를 잡고 있었다. 할 일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 일을 했다.


오후에 태오는 의무실 침대에 앉아 있었다.

1항사가 이마를 일곱 바늘 꿰매고 나갔다. 나가기 전에 오늘 밤은 누가 두 시간마다 깨워서 몇 시인지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1항사는 왜 웃는지 몰랐다.

니나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왔다. 흰 아이스박스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주방에서 얻어 온 것이었다. 뚜껑을 열자 얼음물 속에 아크릴 관이 서 있었다. 니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아이스박스를 무릎 사이에 끼웠다. 배가 너울을 탈 때마다 무릎으로 박스를 붙들었다.

“아직 저어요.” 니나가 말했다. “아까보다 느려요. 근데 저어요.”

태오는 관을 들여다봤다. 흐린 물 속에서 하얀 것 하나가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관 벽에 붙은 채였다.

“바다가 식었대요.” 니나가 말했다. “유진 씨가 그러는데, 배 수온 센서가 25도까지 내려갔대요. 사흘 전엔 30도였는데. 태풍이 밑에서 찬물을 끌어올려서. 그래도 25도면 얘네한텐 끓는 물이에요. 둘 중 하나가 버틴 거예요. 운이 좋았어요.”

태오는 관 속의 다리를 봤다. 첫날 손목 카메라 화면에서 본 다리였다.

“니나.”

“네.”

“첫날. 관 옮길 때.” 태오가 말했다. “봤어요. 둘 들어가는 거.”

니나가 고개를 들었다.

“마개 틈으로. 하나, 하나. 마개는 내가 닫았어요.”

“첫날요?”

“첫날.”

니나는 한참 그를 봤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왜 말 안 했어요?”

“말하면 보여 달라고 했을 거예요. 조명 돌려 달라고. 몇 분만 더.”

“했겠죠.”

“30분이 한 시간.”

”…했겠죠.” 니나가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그럼 그날 밤에도요? 내가 1센티 때문에 숨 못 쉴 때도?”

“알았어요.”

“그때 말해 줬으면…”

니나는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태오도 그 끝을 몰랐다. 그때 말했다면 니나는 숨을 찾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거치대 화면을 붙들고 전력을 반 시간 더 썼을 수도 있다. 그는 그걸 셈할 수 없었다. 셈할 수 없는 일은 머릿속 다른 칸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할 일의 칸.

“나중에. 올라가서.” 태오가 말했다. “그렇게 정했어요. 그 칸에 몇 개 있었어요.”

“몇 개요?”

태오는 왼손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좌현 빨간 줄. 첫날 전력 화면. 끝까지 안 읽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접었다. “이거.”

“빨간 줄은 늦었잖아요. 4번 볼트.”

“늦었어요.”

니나는 아이스박스 뚜껑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태오는 접은 두 손가락을 폈다. 칸은 비어 있었다. 그 칸이 빈 건 처음이었다.

“사흘 동안 얘네가 우리랑 같이 있었네요.” 니나가 말했다. “바닥에서도. 올라올 때도. 눈 안에서도.”

“같이.”

“그럼 넷이 올라온 거예요.” 니나가 말했다. 셈을 고친 것이었다.


문이 열렸다. 유진이었다. 한 손에 위성 전화, 다른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코치예요.” 유진이 위성 전화를 니나에게 내밀었다. “어머니. 아침엔 배 박사님이 짧게만 말씀드렸어요. 이번엔 길게 하셔도 돼요.”

니나는 전화를 받아 들고 잠깐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이스박스를 태오 쪽으로 밀었다.

“봐 줘요.”

태오는 아이스박스 손잡이를 잡았다. 오른손이었다.

니나는 복도로 나갔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말라얄람어가 들렸다. 처음엔 빠르게, 그다음엔 느리게.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웃음 비슷한 소리가 났다.

유진이 침대 끝에 걸터앉아 종이를 내밀었다. 영어로 된 짧은 전문이었다.

“분투자호요. 괌 북서쪽에서 태풍을 비켜 기다리고 있었대요. 아침에 소식 듣고 회항한대요.”

태오는 종이를 읽었다. 수석 조종사의 이름 아래에 세 줄이 있었다.

도착해서 할 일이 없습니다. 기쁩니다. 분리 장치를 실제 수심에서 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볼트 이야기는 다음 학회에서.

태오는 그 이름을 알았다. 학회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볼트 규격 이야기만 하고 헤어진 사람이었다. 말하기 전에 볼펜 뚜껑을 닫던 사람.

“답장 쓸래요?” 유진이 물었다.

태오는 손을 내밀었다. 유진이 볼펜과 종이를 건넸다. 그는 왼손으로 천천히 영어를 썼다. 한 줄이었다.

점화선은 두 갈래로. 한쪽이 끊겨도 다른 쪽으로.

유진은 그 줄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니나가 돌아왔다. 눈가가 붉었다. 니나는 의자에 앉아 아이스박스를 다시 무릎 사이에 끼웠다. 태오는 손잡이를 놓았다.

“물어봤어요.” 니나가 말했다.

태오는 기다렸다.

“천둥이요. 거리 재는 거 알고 가르쳐 준 거냐고.”

“뭐래요?”

“몰랐대요.” 니나가 웃었다. “그냥 세는 동안 내가 안 우니까 시켰대요. 거리 재는 법은 내가 일곱 살 때 학교에서 배워 와서 어머니한테 가르쳐 줬대요. 소리는 1초에 340미터. 나는 그걸 하나도 기억 못 하는데,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어요.”

니나는 아이스박스 속을 내려다봤다. 다리 하나가 물을 저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머니가 셌대요. 사흘 동안. 전화 걸 시각을 정해 놓고, 그 사이를.” 니나가 말했다. “멀었대요. 세다 보면 대부분 멀었대요.”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도. 배가 너울을 탔고, 아이스박스 속에서 얼음끼리 작게 부딪쳤다. 아무도 그 소리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오늘 밤엔 제가 깨울게요.” 유진이 일어서며 말했다. “두 시간마다. 몇 시냐고 물어볼 거예요.”

“어.” 태오가 말했다.


이듬해 3월, 부산은 바람이 찼다.

태오는 12월에 운항팀을 그만뒀다. 병원은 그의 손에 이름을 하나 붙여 주었다. 그는 그 이름을 외우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떨림이 조금 줄었다. 그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구는 연구소 격납고의 받침대 위에 있었다. 부력 띠는 벗겨졌고, 티타늄 표면에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새 몸체의 설계 회의가 2월에 시작됐다. 유진이 그 회의를 이끌었다. 유진은 조종사 교육도 받고 있었다. 태오는 회의에 한 번 갔다. 볼트 이야기만 하고 나왔다. 분리 볼트 점화선은 두 갈래로 내야 한다. 한쪽이 끊겨도 다른 쪽으로 가게.

니나는 화요일에 왔다. 가방에 논문 초고가 있었다. 단각류 논문이 아니었다. 세 번째 코어의 4센티미터짜리 층, 그 층을 납 동위원소로 재어 보니 예순 해 남짓 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위에 지난가을 두 겹이 더 쌓였다는 것. 해구 남쪽 벽이 언제 무너지고 언제 다시 무너지는지에 대한 논문이었다.

단각류는 배의 냉장 수조에서 나흘을 살았다. 니나는 그 나흘 동안 아침마다 수조 앞에 쪼그려 앉아 다리 젓는 횟수를 셌다. 닷새째 아침에는 셀 것이 없었다. 그 숫자들도 논문 귀퉁이 어딘가에 들어갔다고 했다.

니나는 가방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태오에게 내밀었다. 안에 감색 털모자가 있었다. 빨아서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피는 다 빠지지 않았다. 이마가 닿던 자리에 갈색 얼룩이 엷게 남아 있었다.

태오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가져요.” 그가 말했다.

니나는 봉투를 잠깐 들고 있다가, 모자를 꺼내 썼다. 니나에게는 컸다. 귀까지 덮였다.


영상은 연구소의 작은 회의실에서 봤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유진이 노트북을 화면에 연결했다.

2월에 다른 나라의 연구선이 해연 남쪽 벽 아래에 무인 착저기를 떨어뜨렸다. 미끼와 카메라와 조명을 단 강철 틀. 사람이 타지 않으니 묻혀도 잃을 게 장비뿐이었다. 니나가 그 연구선의 계획서에 한 줄을 보탰다. 남쪽 벽에서 200미터. 좌표는 한결호의 음향 위치 기록에 남아 있던 해연호의 마지막 위치였다.

화면이 검었다가 밝아졌다. 수심 10,914미터.

베이지색 바닥이었다. 밀가루를 체에 쳐서 깔아 놓은 것 같은. 착저기의 미끼통 둘레로 하얀 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1분 40초 만에 첫 번째, 4분 만에 수백. 니나는 그 숫자를 화면에 대고 소리 없이 셌다. 태오는 그 입술을 봤다.

“오른쪽.” 유진이 말했다.

조명이 닿는 끝,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다른 색이 있었다. 갈색 진흙의 언덕. 그 언덕 위로 노란 모서리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 그 옆에 검은 쇠기둥. 그리고 거기서 화면 쪽으로 뻗은 가느다란 팔.

태오는 그 팔을 알았다. 어깨 관절이 왼쪽으로 끝까지 돌아가 있었다. 팔꿈치가 접혀 있었다. 손목은 아래로. 니나가 그날 저녁 40분 걸려 만든 자세였다. 손목의 조명은 꺼져 있었다. 포드 B가 언제 바닥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이었을 수도, 다음 날이었을 수도.

니나의 미끼통은 이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600미터 북쪽, 착지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고등어 두 마리는 첫 주가 가기 전에 뼈가 됐을 것이고, 그 뼈도 지금은 하얀 가루 아래에 있을 것이다.

착저기의 카메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명이 오른쪽으로 쓸려 갔다. 진흙 언덕이 가까워졌다. 노란 부력재 표면에 단각류 몇 마리가 붙어 있다가 빛을 피해 흩어졌다.

팔 끝이 화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절단기 날은 닫혀 있었다. 끝까지. 그 날이 물고 있던 볼트는 이제 없었다. 반쪽은 구와 함께 올라갔고, 반쪽은 그 아래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다문 날의 위쪽 면에, 몇 달 동안 위에서 내려온 하얀 가루가 얇게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