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바닥보다 시끄러웠다.
태오는 그걸 몸으로 먼저 알았다. 구가 들렸다가 떨어질 때마다 꼭대기에서 물이 갈라지고 합쳐지는 소리가 티타늄을 타고 내려왔다. 창은 잠겼다가 드러났다가 다시 잠겼다. 수심계는 0과 3 사이를 오갔다.
그는 머릿속 순서대로 짚었다. 선체 압력, 정상. 산소, 정상. 이산화탄소 2.2퍼센트. 구 배터리 61퍼센트. 21시 31분.
“하나 더 놔요.” 그가 말했다.
니나가 빨간 덮개 아래 두 번째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구가 한 번 크게 솟았다. 창이 물 밖으로 나와서 이번엔 다시 잠기지 않았다. 해치 쪽이 수면 위로 50센티미터 남짓. 그 대신 구는 이제 어느 쪽으로도 쉽게 넘어갔다. 무거운 것이 밑에 하나도 없었다.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21:33 트림 2.
바닥의 해연호에는 이제 추도 사람도 없었다. 포드 B가 다 닳으면 팔 끝의 조명도 꺼질 것이다. 태오는 그게 언제일지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하지 않는 숫자가 생긴 건 처음이었다.
흡수제 팬을 먼저 껐다. 해치를 여는 동안 돌릴 이유가 없었다. 아끼면 나중에 돌릴 수 있다.
그리고 렌치를 들었다. 해치 볼트 스물네 개. 바닥에선 바다가 해치를 눌러 주었다. 볼트는 그걸 거들 뿐이었다. 수면에서는 아무도 눌러 주지 않는다.
첫 번째 볼트는 왼손으로 풀었다. 느렸다. 두 번째에서 오른손을 보탰다. 렌치 끝이 볼트 머리에서 미끄러져 쇳소리를 냈다. 세 번째에서 또 미끄러졌다.
니나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태오는 렌치를 건넸다. 두 번째 렌치가 공구 주머니에 있었다. 그는 그걸 꺼내 왼손에 쥐었다.
둘은 해치 아래에 머리를 맞대고 섰다. 태오가 시계 방향으로 하나, 니나가 반대쪽에서 하나. 니나는 숨죽여 셌다. 넷, 다섯. 구가 기울 때마다 둘의 이마가 부딪쳤다. 열하나, 열둘. 니나가 맡은 열두 개가 태오의 것보다 먼저 끝났다. 렌치를 내리고 기다렸다. 태오가 마지막 하나를 풀 때까지.
압력 밸브를 열자 짧게 쉿 소리가 났다. 사흘 동안 같은 공기를 쉰 구 안과 바깥의 차이가 그만큼이었다.
태오는 해치 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무거웠다. 경첩이 돌았다.
공기가 들어왔다.
따뜻하고 축축했다. 소금과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번개가 공기를 태운 냄새였다. 그 공기가 구 안의 냄새, 사흘 묵은 숨과 땀과 수산화리튬 가루 냄새를 밀어냈다. 니나가 입을 벌리고 들이마셨다. 기침을 했다. 다시 들이마셨다.
태오는 해치 테두리를 잡고 일어섰다. 머리와 어깨가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거의 없었다.
그는 그게 가장 이상했다. 해난구조대 시절 그는 태풍 속 바다를 여러 번 봤다. 바다는 늘 바람과 한 덩어리였다. 지금 바다는 바람 없이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위를 봤다. 별이 있었다. 하늘 한가운데 둥글게 뚫린 자리에 별이 가득했다. 그 둥근 자리의 가장자리는 벽이었다. 사방에서 구름이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15킬로미터는 될 것이다. 그 벽 안쪽에서 번개가 쉬지 않고 쳤다. 칠 때마다 벽 전체가 안에서부터 하얗게 켜졌다가 꺼졌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 한가운데 혼자 떠 있는 것 같았다. 지름 30킬로미터의 경기장.
그 경기장이 통째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북서로 시속 18킬로미터. 태오는 계산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지름 30을 18로 나누면 100분. 앞쪽 벽이 21시에 이 자리를 지나갔다면, 뒤쪽 벽은 22시 40분에 온다. 그들은 그 100분 가운데 70분을 얻었다. 니나가 수첩 맨 뒷장에서 찾아낸 70분이었다.
그리고 바다.
너울이 사방에서 왔다. 한 방향이 아니었다. 눈벽을 빠져나온 파도들이 이 안에서 서로 부딪쳤다. 부딪친 자리에서 물이 피라미드처럼 뾰족하게 솟았다가 무너졌다. 어떤 것은 구보다 높았다. 구는 그 사이에서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해치 테두리 바로 아래까지 물마루가 핥고 지나갔다. 한 번은 넘어왔다. 따뜻한 바닷물 한 바가지가 태오의 가슴을 치고 구 안으로 쏟아졌다. 아래에서 니나가 비명 대신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물이 따뜻해서였다. 쏟아진 물은 기울어진 바닥을 따라 니나의 발치로 흘러가 고였다.
해치 옆, 부력 띠 위에서 하얀 섬광이 깜빡였다. 비상위치표시기였다. 수심 10미터 위로 올라오면 저절로 켜지게 되어 있었다. 짧은 안테나 대 끝에서 3초에 한 번씩. 태오는 그 박자를 세 번 확인했다.
그는 몸을 내밀어 부력 띠를 훑었다. 주황색 폼 위쪽에 긴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분리될 때 프레임에 쓸린 자리였다. 꼭대기의 인양 고리는 멀쩡했다. 크레인 갈고리가 걸릴 자리였다. 그는 손을 뻗어 그 고리를 한 번 쥐어 봤다. 쇠가 따뜻했다. 사흘 만에 만지는 따뜻한 쇠였다.
뭔가 그의 머리 위를 스쳤다. 새였다. 갈색에 날개가 긴 바닷새가 구 둘레를 낮게 돌았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열, 스물. 번개가 칠 때마다 날개들이 하얗게 드러났다. 한 마리가 부력 띠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젖은 깃이 헝클어져 있었다.
“갇힌 거예요.” 아래에서 니나가 말했다. “눈벽을 못 넘어서. 눈을 따라 같이 가요. 며칠씩.”
태오는 내려앉은 새를 봤다. 새도 그를 봤다.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니나가 손목의 주황색 끈을 풀어 위성 메신저를 건넸다. 메신저는 손바닥만 했다. 하늘이 보여야 위성을 잡는다. 태오는 그것을 해치 밖으로 들어 올렸다. 화면에 위성 막대가 하나, 둘 찼다.
그는 왼손 엄지로 쳤다.
수면. 눈 안. 둘. 이상 없음. 구만.
위치는 저절로 붙었다. 전송.
니나가 아래에서 그의 다리를 툭 쳤다. 그는 몸을 낮춰 자리를 내줬다. 해치는 한 사람이 겨우 나갈 구멍이었다. 니나가 그의 팔 아래로 머리를 내밀었다. 둘은 해치 테두리에 어깨를 끼운 채 나란히 섰다.
니나는 먼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입이 벌어졌다. 말라얄람어가 짧게 흘러나왔다. 태오는 뜻은 몰라도 그 소리를 기억했다. 사흘 전 바닥에 내려앉을 때 들은 말이었다. 그때는 바닥을 보고 했고, 지금은 하늘을 보고 했다.
번개가 쳤다. 니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나, 둘, 셋. 태오는 그 입술을 봤다. 열, 열하나. 파도 하나가 부력 띠를 때렸다. 스물. 서른. 천둥은 오지 않았다.
“안 와요.” 니나가 말했다. “멀어요.”
니나는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다고 했다. 열까지 세도 안 오면 먼 거라고.
메신저가 떨렸다.
보여요. 좌표 받음. 한결 남쪽 120. 괌에 알림. 바람 죽으면 바로 감.
조금 뒤 한 줄이 더 왔다.
선배 해치 닫을 때 알려 줘요.
태오는 그 줄을 오래 봤다. 유진이 처음 운항팀에 왔을 때 그가 가르친 것이었다. 첫 줄은 해치 닫은 시각, 마지막 줄은 해치 연 시각. 유진은 그 뒤로 10년 동안 한 번도 그 두 줄을 빼먹지 않았다. 지금 유진은 그 규칙을 그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니나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첫 번째 줄만 옮겨 주었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0.1퍼센트로 떨어졌다. 두통이 빠져나갔다. 머리가 맑아지자 태오는 그동안 자기 머리가 맑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구 안으로 손을 뻗어 물병을 꺼냈다. 마지막 병이었다. 반쯤 남아 있었다. 그는 뚜껑을 열어 니나에게 줬다. 니나는 세 모금을 마시고 돌려줬다. 그는 두 모금을 마시고 뚜껑을 닫았다. 남은 건 손가락 두 마디 높이였다. 둘 다 그 높이를 봤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태오.” 니나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 “왜 마지막이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나도 재촉하지 않았다. 새가 날개를 한 번 폈다 접었다.
“스물여섯 살 때.” 그가 말했다.
니나가 그를 봤다.
“겨울. 훈련. 가라앉은 배 안에 들어가는 훈련. 수심 42.” 그는 한 문장씩 끊었다. 영어로 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어로도 이렇게밖에 안 나올 것이었다. “짝이 있었어요. 잠수는 둘이 해요. 민재. 나보다 두 살 어렸어요.”
번개가 쳤다.
“통로에서 철판이 내려앉았어요. 민재 공기 호스가 거기 끼었어요. 내 공기를 나눠 줬어요. 둘이 하나로 쉬면 빨리 줄어요.” 그는 오른손을 해치 테두리 위에 올렸다. 손이 떨렸다. 그는 그걸 내리지 않았다. “위에서 줄을 네 번 당겼어요. 올라오라는 신호.”
“올라왔어요?”
“올라왔어요.”
파도가 해치 아래를 핥고 지나갔다.
“다음 날 크레인이 철판을 들었어요. 그때 민재가 올라왔어요. 내가 데리고 온 게 아니었어요.”
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오는 그게 고마웠다.
“그다음부터 혼자 정했어요. 내려간 사람은 내가 데리고 올라간다.” 그는 손을 봤다. “반년 전부터 이랬어요. 그럼 언젠가는 못 데려와요. 그 전에 그만두려고 했어요. 해연호는 내가 조립했어요. 처음 물에 들어간 날부터 같이 내려갔어요. 마지막도 해연호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말하면 안 태워 줘요.”
니나가 짧게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거뒀다.
“민재 씨는 몇 살이었어요?”
“스물넷.”
“나보다 다섯 살 어리네요.”
태오는 니나를 봤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숫자를 맞춰 본 것이었다. 니나는 늘 그랬다. 숫자를 대면 세상이 조금 덜 흔들리는 사람.
“이번엔요?” 니나가 물었다. “이번엔 데리고 올라왔잖아요.”
“아니요.” 태오가 말했다. “볼트 끊은 건 니나. 트림추도 니나.” 그는 잠깐 말을 골랐다. “니나가 데려왔어요.”
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부력 띠를 내려다봤다. 비상 장비 거치대는 물속에 있었다. 너울이 빠질 때 주황색 폼의 아래쪽이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잠겼다. 거치대도, 거기 고리 두 개로 묶인 아크릴 관도 보이지 않았다.
“저 밑에 있겠죠.” 니나가 말했다.
“있어요.”
22시 20분에 동쪽 별이 꺼지기 시작했다.
하나씩이 아니라 한 줄씩. 경기장 동쪽 벽이 하늘 쪽으로 기울어 오는 것 같았다. 번개가 그 벽을 비출 때마다 벽은 아까보다 가까웠다. 태오는 귀가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기압이 다시 오르고 있었다. 침을 삼키자 귀가 뚫렸다.
22시 30분. 동쪽 수평선에 하얀 줄이 생겼다. 처음엔 파도 마루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줄은 없어지지 않고 굵어졌다. 바람이 바다 껍질을 하얗게 벗기며 오고 있었다. 소리가 그 뒤에 왔다. 낮고 고른, 끊이지 않는 소리. 니나가 바닥에서 들었던 그 소리와 닮아 있었다. 무언가 아주 크고 무거운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
부력 띠 위의 새가 날아올랐다. 다른 새들도 서쪽으로, 아직 별이 있는 쪽으로 몰려갔다.
“들어가요.” 태오가 말했다.
니나가 먼저 내려갔다. 태오는 메신저를 들어 마지막으로 쳤다.
해치 닫음. 바람 지나고.
전송 막대가 끝까지 차는 걸 보고 그는 내려왔다. 메신저는 해치 아래 고리에 걸었다. 다시 열면 바로 하늘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해치를 당겨 닫았다. 무거운 뚜껑이 경첩을 돌아 테두리에 앉았다. 태오는 한가운데의 잠금 바퀴를 세 바퀴 돌렸다. 오늘 오후 바닥에서 손으로 돌려 본 그 바퀴였다. 안쪽 고리 여섯 개가 테두리를 무는 감각이 손바닥으로 왔다. 그리고 렌치는 들지 않았다.
“볼트는요?” 니나가 물었다.
“안 조여요.”
“왜요?”
태오는 대답 대신 니나의 발치로 손을 뻗었다. 그물 주머니. 셋째 카트리지. 그는 그걸 꺼내 계기판 불빛에 비춰 봤다. 원통 양 끝의 철망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아까 해치를 넘어온 바닷물이 고인 자리가 바로 그 주머니였다. 철망 너머 하얀 알갱이가 죽처럼 엉겨 있었다.
수산화리튬은 물을 만나면 녹아서 엉긴다. 엉긴 알갱이는 숨을 받지 못하고, 녹아 나온 물은 살갗을 태운다.
“못 써요.” 그가 말했다.
니나는 그 원통을 봤다. 그리고 흡수제 통을 봤다.
“그럼 지금 저 안에 있는 건요?”
“둘째. 여섯 시에 넣은 거. 아홉 시 넘어서부터 숨이 새요.”
태오는 젖은 카트리지를 비닐에 싸서 바닥 자루에 넣었다. 흡수제 팬을 켰다. 팬이 돌기 시작하는 소리가 바깥의 소리 아래로 깔렸다. 그는 수첩을 펴서 숫자를 적었다. 해치를 열어 둔 65분 동안 팬은 꺼져 있었다. 그 덕에 둘째에 조금이나마 몫이 남았다. 반쯤 일한다 치면 이산화탄소는 시간당 1.3퍼센트씩 오른다. 아무것도 없으면 2.7. 지금 0.1. 3퍼센트가 되는 건 1시 무렵. 둘이 가만히 있으면.
“다시 열어야 할지 몰라서.” 그가 말했다.
그는 니나의 손을 잡아 바퀴에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반대로 돌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고리가 풀리는 감각이 바퀴를 타고 왔다. 다시 세 바퀴를 감았다.
“세 바퀴.” 그가 말했다.
“세 바퀴.” 니나가 말했다.
첫 번째 바람이 구에 닿았다. 구가 옆으로 밀렸다. 오래, 천천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