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기.” 태오가 말했다. 질문인지 대답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니나의 오른손은 이미 로봇팔 조종간 위에 있었다. 언제 거기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구는 31도로 기운 채 낮게 끙 소리를 냈다. 세 귀퉁이가 풀린 자리에서 남은 하나가 구를 붙들고 있었다. 4번. 좌현 선미. 점화선이 첫날 붕괴 때 끊긴 볼트.
포드 B 잔량 11퍼센트. 음향 모뎀 화면 맨 아래에는 태오가 방금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답은 아직 없었다. 구가 몸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저 화면은 꺼진다. 모뎀은 몸체에 달려 있었다.
팔 끝에는 집게 말고 유압 가위가 하나 더 있었다. 엉킨 줄을 끊으려고 단 날이었다. 22밀리미터까지 문다. 어제 아침 조종간을 처음 잡을 때 니나는 관절 스위치 여섯 개를 차례로 짚어 보았다. 절단기는 마지막 스위치였다.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볼트는 36밀리.” 태오가 말했다. 니나가 입을 열기 전에 그가 이었다. “폭발 볼트는 일부러 약한 데가 있어요. 홈. 거기서 끊어지게. 홈은 18밀리. 머리에서 4센티 아래.”
그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4센티미터는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해연호를 조립할 때 그 볼트 네 개도 그의 손을 거쳤을 터였다.
17시 34분. 팔 손목의 카메라 한 대와 조명 하나가 켜졌다. 해연호에 남은 눈은 그게 전부였다. 화면 속은 구가 기울며 일으킨 흙탕물로 갈색이었다. 기다리면 가라앉을 것이다. 기다리면 그들이 떠오를 곳은 태풍의 눈이 아니게 된다.
팔은 뱃머리 우현에 있었고, 4번 볼트는 좌현 고물 쪽 아래에 있었다. 팔이 구의 배 밑을 돌아 반대쪽 끝까지 가야 했다.
“왼쪽. 더. 멈춰요. 아래.”
화면에 노란 부력재가 지나갔다. 검은 프레임. 다시 갈색. 니나는 집게 끝으로 진흙을 밀었다. 어제 아침 내내 배운 대로였다. 위쪽 묽은 층은 퍼내지 말고 옆으로 민다. 아래쪽 단단한 층은 끝으로 긁는다. 여덟 번째에 쇠가 쇠에 닿는 감각이 조종간을 타고 손바닥에 왔다.
조명 속에 육각 머리가 보였다. 진흙이 반쯤 메운 숫자 4. 그 아래 몸통은 팽팽했다. 기타 줄처럼.
17시 52분에 모뎀이 짧게 울었다. 태오가 읽고 영어로 옮겼다.
수신. 앞 눈벽 21시 전후 통과. 지름 30. 서북서 18. 변동 없음. 기다림.
그는 답장할 시간이 없다는 듯 화면에서 손을 뗐다. “아래로. 1센티.”
니나는 날을 벌려 볼트에 대고 단추를 눌렀다. 유압계 바늘이 올라갔다. 100바. 140바. 날이 미끄러졌다. 볼트가 아니라 진흙을 문 것이었다. 헛물고 닫히는 반동이 몸체를 타고 구로 왔다. 32도. 끙 소리가 길어졌다.
니나는 조종간에서 손을 뗐다. 구 안은 8도인데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내가 흔들면 저게 휘어요. 휘면 날이 홈을 못 물고, 휘다가 혼자 끊어지면 그건 좋은 건데, 아니, 휘기만 하고 안 끊어지면…”
“니나.”
“네.”
“숨.”
이산화탄소 1.5퍼센트. 태오는 그 숫자를 두드리지 않았다. 왼손을 니나의 무릎에 얹고 손목으로 느리게 박자를 쳤다. 첫날 저녁, 니나가 숨을 놓쳤을 때 태오가 했던 것처럼.
“진흙 먼저. 몸통 닦고. 그다음에 홈.”
니나는 집게로 몸통을 위에서 아래로 쓸었다. 은회색 쇠가 드러났다. 사흘을 묻혀 있었는데 녹 하나 없었다. 2도의 물에서 사흘은 쇠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니나의 머리는 늘 쓸모없는 것부터 움직였다.
머리에서 손가락 세 마디쯤 아래, 몸통이 한 바퀴 오목하게 파여 있었다. 조명이 비스듬히 닿자 거기 가는 그림자 고리가 생겼다. 누군가 언젠가 여기서 끊어지라고 일부러 약하게 깎아 둔 자리였다. 니나는 그걸 보는 순간 목이 메었다.
화면은 평면이라 거리를 알 수 없었다. 그림자의 길이로 짐작했다. 짧아지면 가깝다. 그림자가 날 끝에 닿으면 닿은 것이다.
닿았다.
“지금.” 태오가 말했고, 거의 동시에 니나가 눌렀다.
210바에서 바늘이 멈췄다. 날도 멈췄다. 한 번에 끊지 못했다. 놓고, 손목을 30도 돌리고, 다시 물었다. 매번 은회색 부스러기가 화면 속에서 반짝였고, 매번 구가 울었다. 니나는 그 소리를 이제 알아들었다. 볼트가 아니라 구가 내는 소리였다. 위로 가고 싶어서.
18시 06분, 다섯 번째에 태오가 말했다. “끈 잡아요.”
두 사람은 천장의 손잡이 끈을 잡았다. 태오는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 손이 떨리는 게 끈을 타고 니나에게까지 왔다.
여섯 번째에 날이 끝까지 닫혔다.
구가 위로 튀었다. 니나의 무릎이 계기판 아래를 쳤다. 구가 반대쪽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왔다. 31도에서 0도로, 반대쪽 8도로, 다시 0도로.
몸체와 이어진 화면이 한꺼번에 꺼졌다. 팔 카메라, 몸체 상태, 포드 B. 끊김 커넥터가 빠진 것이었다. 음향 모뎀은 꺼지기 직전에 한 줄을 띄웠다. 연결 끊김.
수심계가 움직였다. 10,913. 10,912. 10,910.
니나는 아래쪽 창에 얼굴을 붙였다. 아래에 빛이 있었다. 팔은 뻗은 채로, 끊어진 볼트가 있던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빛의 가장자리에 노란 부력재 모서리, 검은 프레임, 비스듬히 박힌 썰매, 그 위를 덮은 갈색 진흙. 사흘 동안 안에서만 본 해연호를 니나는 처음으로 바깥에서 봤다. 생각보다 작았다.
빛은 원이었다가 동전이 되었다가 점이 되었다. 착지하던 날 니나는 조명 열두 개가 한꺼번에 켜지는 걸 봤다. 지금은 마지막 하나가 아래로 멀어지고 있었다. 죽으면 뜨는 기계. 태오가 훈련 마지막 날 그렇게 말했을 때, 뜨는 건 기계 전체였다. 지금 뜨는 건 그 한가운데, 사람이 든 공 하나였다.
점이 꺼졌다.
몸을 돌렸을 때 태오는 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방수 수첩 맨 아래 줄에 적고 있었다. 18:10 분리. 0이 동그라미가 되지 못하고 끝이 벌어졌다. 그는 고치지 않고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흡수제 통 뚜껑을 열었다. 볼트와 씨름하는 동안 이산화탄소는 1.6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굳은 카트리지를 뽑아 바닥 자루에 넣고 새것을 꽂았다. 둘째. 셋째는 니나의 발치, 그물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수면에서 갈 것이었다. 팬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0.81이면요.” 니나가 말했다. 상승 속도 표시는 0.9 언저리에서 떨리고 있었다. 위로 갈수록 물이 가벼워져 조금씩 느려질 것이다. 태오의 수첩에 적힌 건 물기둥 전체의 평균이었다. “1만 914 나누기 0.81. 3시간 45분. 21시 55분에 수면이에요.”
“눈은 22시 40분까지.”
“45분이에요. 해치 열고 위치 보내면 끝이에요. 예보가 20분만 틀려도 뒤쪽 눈벽에 떠요.”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미 계산했을 것이다. 계산한 다음에 할 말이 없어서 먼저 말하지 않았을 뿐. 볼트 하나에 쓴 40분이 수면에서 그만큼 빠져나갔다.
“트림추.” 니나가 말했다.
니나는 태오의 무릎에서 수첩을 집었다. 그는 막지 않았다. 부력 띠 아래에 달린 200킬로그램짜리 강철 덩어리 둘. 하나를 놓으면 순부력 310, 속도 1.36.
“지금 놓으면 2시간 14분. 20시 24분 수면. 앞 눈벽 한가운데예요. 그러니까 중간에 놔요.”
맨 뒷장에 식을 썼다. 놓는 깊이를 x라 하고, x 아래는 0.81로, x 위는 1.36으로. 21시 30분에 닿으려면 합이 1만 2천 초. 손이 곱아 연필이 자꾸 미끄러졌다. 두통이 눈 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950. 그러니까 3,000. 21시 30분에 수면이고, 뒤 눈벽까지 70분이에요.”
태오는 수첩을 받지 않고 들여다봤다. 왼손 검지가 식을 한 줄씩 따라 내려갔다. 다시 계산하지 않고 따라 읽기만 했다. 끝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트림추는 배 밑바닥이에요. 용골.” 그는 손바닥을 펴서 아래로 눌렀다. “하나 놓으면 기울어요. 둘 다 놓으면 잘 굴러요. 수면에서.”
“얼마나요?”
“몰라요. 시험 안 해 봤어요.”
분리 장치도 실제 수심에서 시험한 적이 없었다. 이 잠수정의 마지막 수단은 모두 시험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마지막 수단이라는 게 원래 그랬다.
“구르는 건 공기가 있으면 견뎌요. 눈 끝에서 뜨면 해치를 못 열어요.”
태오는 니나의 숫자 아래에 줄을 긋고 썼다. 3,000.
“니나가 놔요.”
수심 9천을 지나자 구가 울기 시작했다. 길고 낮은, 오래된 나무 집이 밤에 내는 소리. 사흘 전 내려올 때 니나는 그 소리에 무릎을 끌어안았다. 지금은 구 벽에 손바닥을 댔다.
“정상이에요.” 태오가 말했다. “구가 커지는 소리.”
니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내려올 때 빼앗긴 5밀리미터를 구가 돌려받고 있었다.
그다음에 비가 왔다. 사흘 동안 두 사람의 숨이 천장에 맺혀 쌓인 물이었다. 금속이 미세하게 떨리자 한꺼번에 떨어졌다. 목덜미로, 털모자 위로, 계기판 위로. 태오가 수건으로 계기판을 덮었고, 니나는 은박 담요를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담요에 물방울 듣는 소리가 양철 지붕의 빗소리 같았다. 코치의 6월.
구 안은 7도로 내려갔다. 둘은 담요 하나를 나눠 덮었다. 태오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지 않았다. 왼손 검지가 무릎 위에서 작게 움직였다.
“뭐 세요?”
“볼트. 해치.”
“스물넷.”
“스물넷.” 그는 검지를 멈추고 오른손을 담요 밖으로 꺼내 잠깐 봤다가 다시 넣었다. 그 손이 스물네 개를 다 풀 수 있는지, 둘 다 말하지 않았다.
19시 6분, 수심계가 8,200을 지났다. 니나는 창에 이마를 댔다. 구에는 바깥 조명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물고기가 살아요.”
저 어둠 어딘가에 젤리 같은 꼼치가 있을 터였다. 물고기 가운데 가장 깊이 내려와서,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경계에서 멈춘 것. 그 경계 2,700미터 아래에 해연호가 있었다. 거기서 600미터 북쪽에는 니나의 미끼통이 있었다. 고등어 두 마리는 지금쯤 뼈만 남았을 것이다.
“코어는 괜찮을까요?”
부력 띠의 거치대는 창에서 보이지 않았다.
“고리 두 개로 묶었어요.” 태오가 말했다. “하나는 풀릴 수 있어서.”
니나는 그를 봤다. 그날 니나는 큰 화면 속 바구니만 보고 있었다. 그가 떨리는 오른손을 내려놓고 느린 왼손으로 팔을 잡았다는 것도, 하나로 묶어도 될 관을 고리 두 개로 묶었다는 것도 몰랐다. 30분 걸린다던 일이 22분 만에 끝났다는 것만 알았다.
20시 53분. 니나는 빨간 덮개를 열었다. 토글 스위치 두 개. 트림 1, 트림 2.
“3,030. 3,010.” 태오가 읽었다. “3,000.”
딸깍.
구의 한쪽이 들렸다. 니나가 태오 쪽으로 미끄러졌고, 그가 팔꿈치를 잡아 다시 앉혔다. 기울기 9도. 그가 말한 대로였다.
그리고 숫자가 뛰었다. 2,990. 2,960. 2,920. 사흘 내내 니나는 수심계 끝자리가 1센티미터 움직이기를 빌었다. 10,913.99에서 멈춘 숫자 때문에 숨을 놓쳤다. 지금은 1초에 130센티미터가 넘었다.
“2,800. 2,700.” 니나가 100미터마다 소리 내어 읽었다. 태오는 숨 아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시각과 수심을 수첩에 적었다. 글씨는 떨렸지만 줄은 곧았다.
수심 1,000에서 창이 빛났다. 파란 불티 하나, 셋, 그다음엔 셀 수 없이. 구가 밀고 올라가는 물속의 작은 것들이 부딪힐 때마다 빛을 냈다. 내려올 때 니나는 불티 하나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목이 탔다. 지금은 너무 많아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창 전체가 번쩍였다가 꺼지고, 다시 번쩍였다.
“내려올 땐 몰랐어요.” 태오가 창에 얼굴을 대고 말했다. 그의 뺨에 파란빛이 묻었다가 지워졌다.
“우리가 빨라서 그래요. 부딪혀서 나는 빛이에요.”
바깥 수온이 올라갔다. 4도, 15도, 26도. 구 벽은 아직 차가웠다. 3.2톤의 티타늄은 사흘 동안 품은 추위를 몇 분 만에 내놓지 않았다.
수심 100에서 구가 흔들렸다.
위장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 구 전체가 아주 크고 느린 그네에 앉은 것처럼 밀려갔다가 돌아왔다.
“너울.” 태오가 말했다.
니나는 셌다. 하나, 둘, 셋. 열넷에서 다시 밀렸다. 14초. 그런 파도는 마루에서 마루까지 300미터가 넘는다. 바다 위의 무언가가 그만큼 큰 손으로 100미터 깊이까지 물을 휘젓고 있었다.
“눈 안은 바람이 없다면서요.”
“바람은 없어요. 너울은 있어요. 사방에서.”
수심 60. 기울기가 20도를 넘었다. 이산화탄소 2.2퍼센트. 둘째 카트리지가 벌써 숨을 흘리고 있었다. 두통이 관자놀이까지 왔다. 태오가 젖은 수건을 니나 무릎에 놓았다. 니나는 침을 삼켰다.
수심 30. 창밖이 희뿌옇게 흐려졌다. 구가 골짜기에서 마루로 들려 올라갈 때 몸이 무거워졌다가, 다음 순간 가벼워졌다. 20. 10. 21시 29분.
구가 크게 들렸다. 무언가를 뚫고 나가는 감각. 물이 꼭대기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티타늄 벽을 타고 내려왔다. 수심계가 0을 가리켰다가 2로, 다시 0으로.
21시 30분.
창밖은 검었다. 사흘 내내 그랬다. 그런데 아크릴 위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이 검은색에는 끝이 있었다. 아주 멀리, 그 끝에서 무언가가 한 번 하얗게 번쩍였다. 바다 밑의 불티가 아니었다. 위에서 온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