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기압 · 11장
1,100기압 · 도해

11장

챌린저 해연 바닥, 수심 10,914m
생명유지 잔여 18시간
약 12분

구 안은 8도였다.

강태오는 그 숫자를 숨으로 알았다. 내쉰 김이 입 앞에서 흩어지지 않고 잠깐 머물렀다. 천장의 이슬은 이제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고였다. 굵어진 방울이 벽을 타고 낮은 쪽으로 흘러 니나의 어깨 근처에 모였다. 피할 데가 없었다.

밤새 둘 다 거의 자지 못했다. 니나는 조종사 자리에서 담요 끝을 끌어안고 몇 번 졸았다. 태오는 높은 쪽 손잡이에 등을 기대고 자는 척을 했다.

새벽 다섯 시 반, 그는 수첩을 폈다. 왼손으로 쓴 숫자가 몇 쪽째 이어져 있었다. 부력 장부, 흡수제 장부, 포드 B. 그는 새 쪽 맨 위에 적었다.

분리.

어제 오전 바위를 본 순간부터 그 단어는 거기 있었다. 그는 밤새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돌렸다. 나사를 하나씩 빼 보듯이.

구와 부력 띠는 해연호 몸체에 볼트 네 개로 묶여 있다. 폭발 볼트. 전기를 넣으면 머리의 장약이 터지고, 볼트는 일부러 약하게 깎아 둔 홈에서 끊어진다. 몸체는 바닥에 남고 사람이 탄 공만 떠오른다.

그는 숫자를 적었다. 구와 사람과 장비, 3.6톤. 부력 띠의 폼, 3세제곱미터. 띠에 달린 것들. 다 더하고 빼니 바닥 물에서 위로 140킬로그램이 남았다.

그 숫자는 올라가는 동안 줄어든다. 바닥의 물은 1만 1천 미터의 무게에 눌려 무겁고, 위로 갈수록 가볍다. 가벼운 물은 구를 덜 띄운다. 폼이 부풀면서 그 일부를 되돌려 주지만, 수면 근처에서는 80이었다. 그는 물기둥 전체로 평균을 냈다. 110.

110킬로그램이면 지름 2미터짜리 공이 물을 밀어내며 1초에 0.81미터를 올라간다. 1만 914미터를 0.81로 나눈다. 1만 3천4백 초. 3시간 45분.

그 아래에 남는 것들을 적었다. 프레임. 로봇팔. 포드 B. 조명 둘. 카메라. 소나. 음향 모뎀. 썰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잇는 전선과 볼트 몇천 개.

올라가는 것도 적었다. 구. 부력 띠. 띠 아래 트림추, 200×2. 띠 우현 바깥의 비상위치표시기. 구 안의 위성 메신저. 사람 둘. 코어 관 하나.

종이 위에서 두 목록은 길이가 같지 않았다.

해연호는 그가 조립 공장에서부터 만진 기계였다. 공장 바닥에 프레임의 첫 가로대가 놓이던 날 그는 거기 있었다. 그 가로대의 볼트를 그가 조였다. 모든 볼트를 그가 조이지는 않았지만, 모든 볼트를 그가 확인했다. 볼트마다 이름을 붙였다. 좌현 3번 가로대 아래 둘째. 우현 썰매 앞 고정쇠 넷째.

죽으면 뜨는 기계예요.

그는 니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해연호는 끝내 죽지 못했다. 전기가 들어와 있었고, 추는 놓였고, 다만 떨어질 데가 없었다. 이제 그는 해연호를 죽일 것이다. 몸체를 바닥에 두고, 그 한가운데 있던 공 하나만 올려 보낼 것이다.

그는 수첩을 덮지 않았다. 한참 ‘분리’라는 두 글자를 보고 있었다. 글씨가 떨리지 않았다. 왼손이었다.


여섯 시 정시 보고를 보냈다. 선체 정상. O2 20.1. CO2 1.1. 흡수제 정상. 포드B 14. 구 내 8.

답이 오는 데 3분 40초가 걸렸다.

어제 정오에 한결호가 떠난 뒤로 모든 문자는 부이를 거쳤다. 1만 미터를 올라간 소리가 케이블 끝의 귀에 닿으면, 부이가 그걸 위성으로 쏘아 남서쪽 어딘가의 한결호로 보낸다. 유진은 그 끝에 있었다.

부이는 밤사이 해연호 머리 위를 지나갔다. 유진이 계산한 대로였다. 자정 무렵에는 문자가 1분 20초 만에 왔다. 이제 부이는 서남서로 멀어지고 있었다. 모뎀 화면 구석의 수신 막대가 다섯 칸에서 세 칸으로 줄어 있었다. 이제는 두 번, 세 번 보내야 한 번 닿는 문자도 있었다.

수신. 노을 현재 해연 동쪽 285. 서북서 18. 계속 강해짐. 08시 예보 후 상세.

태오는 그 줄을 영어로 옮겨 니나에게 말했다. 니나는 숫자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이 움직였다. 285를 18로 나누는 것 같았다.

“열다섯 시간 50분.” 니나가 말했다. “밤 아홉 시 50분. 그건 중심이 오는 시각이고요.”

“바람은 훨씬 먼저.”

“그럼 분리는요?”

태오는 수첩을 내밀었다. 니나는 그 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110. 0.81. 3시간 45분. 그리고 남는 것의 목록. 한글은 읽지 못해도 숫자만으로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이거 다요?”

“다.”

니나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다 한 줄에서 멈췄다. 200×2. 부력 장부 어디에도 없던 숫자였다.

“이건요?”

“트림추. 부력 띠 밑에 달린 강철 두 덩이.” 태오가 말했다. “장부에 일부러 안 적었어요.”

“왜요?”

“구의 것이라서. 마지막 장.” 그는 수첩 맨 뒷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몸체 버릴 때 쓰는 거 아니에요. 구가 올라간 다음에. 수면에서.”

니나는 그 숫자를 입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그리고 다른 쪽을 넘겼다. 흡수제 장부. 네모를 친 시각. 5일 00시 10분.

“그럼 늦어도,” 니나가 말했다. “3시간 45분을 빼면 밤 여덟 시 25분. 그게 마지막이에요. 여유를 두면 여덟 시에는 떠나야 해요. 그보다 늦으면 올라가는 도중에 흡수제가 끝나요.”

“여덟 시.”

“그런데 여덟 시에 떠나면 열한 시 45분에 수면이에요. 그때 위는…”

니나는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둘 다 끝을 알았다. 중심이 지나가고 두 시간. 자정 무렵 해연 상공은 슈퍼태풍의 가장 센 바람 속이다.


여덟 시 40분, 유진의 문자가 왔다. 길어서 두 번에 나뉘어 왔다.

08시 예보. 노을 눈 지름 약 30km. 서북서 18km/h. 앞 눈벽 해연 통과 21:00 전후. 눈 안 21:00~22:40. 뒤 눈벽 22:40 전후. 이후 약 3시간 최강풍.

눈 안 풍속 10노트 이하 예상. 너울은 큼. 선배 판단.

태오는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선배 판단. 위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는 영어로 옮겼다. 숫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30. 18. 21:00. 22:40.

니나는 그가 짚은 숫자를 따라 읽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종간 옆 빈 화면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썼다. 김 서린 유리에 숫자가 남았다.

21:00 − 3:45 = 17:15.

“눈 안으로 떠오르면 돼요.” 니나가 말했다.

태오는 니나를 봤다.

“바람이 없는 데는 거기밖에 없어요. 지름 30킬로미터. 한 시간 40분. 여기서 17시 15분에서 18시 55분 사이에 떠나면 그 안에 떠요. 너무 일찍 떠나면 앞 눈벽에 뜨고, 너무 늦으면 뒤 눈벽에 뜨니까, 앞쪽에 조금 여유를 두고 17시 30분. 그럼 21시 15분에 수면이에요. 눈이 지나가기까지 한 시간 25분.”

“안 돼요.”

니나가 입을 다물었다.

“눈 안은 바람이 없어요. 바다가 없는 게 아니에요.” 태오는 손바닥을 펴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원 안에서 손바닥을 사방에서 안쪽으로 밀었다. “눈벽에서 파도가 들어와요. 사방에서. 부딪혀요. 위로 솟아요. 피라미드. 이 구는 그 안에서 공이에요.”

“그럼 다른 시각은요?”

태오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지금 떠나면요?” 니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빨라지지 않았다. 김 서린 화면에 손가락으로 또 썼다. “아홉 시에 떠나면 열두 시 45분에 수면. 이미 강풍 속이고, 계속 세져요. 눈이 올 때까지 여덟 시간을 해치 닫고 굴러야 돼요. 구르면 숨을 몇 배로 쉬어요. 흡수제가 눈보다 먼저 끝날 수도 있어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버텨서 여덟 시 25분에 떠나면 0시 10분에 수면. 뒤 눈벽 한가운데요. 제일 센 바람. 그리고 그 시각이 흡수제 끝나는 시각이에요. 해치를 못 여는데 공기가 끝나요.”

니나는 숫자 셋을 나란히 썼다. 12:45. 21:15. 00:10.

“해치를 열 수 있는 시간은 이 하나밖에 없어요.” 니나는 가운데 숫자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눈 안. 너울이 사방에서 와도, 바람이 없으면 해치를 열 수 있어요. 공기를 바꿀 수 있어요. 위성 메신저로 위치를 보낼 수 있어요. 다른 시각에는 그게 다 안 돼요. 눈은 위험한 게 맞아요. 다른 건 다 더 나빠요.”

태오는 그 숫자들을 봤다. 김 서린 유리 위의 숫자는 벌써 가장자리부터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같은 셈을 했다. 니나보다 느렸다. 다 하고 나니 같은 답이 나왔다. 그가 반대한 건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눈 안의 너울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정하지 않은 시각에 사람을 수면으로 올려 보낸 적이 없었다. 운항팀 15년 동안 한 번도.

“예보는 틀려요.” 그가 말했다. 마지막 반대였다.

“알아요. 근데 지금은 사흘 예보가 아니라 열두 시간 예보예요. 그리고 눈은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가요. 지나가는 걸 볼 수는 없지만, 시계는 맞출 수 있어요.” 니나는 그를 똑바로 봤다. “우리가 맞출 수 있는 건 시계뿐이에요.”

구가 낮게 울었다. 둘 다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17시 30분.” 태오가 말했다.

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끄덕였다. 자기에게 하듯이.

“니나가 정했어요.” 태오가 말했다. 사실을 적는 말투였다. “나는 따라가요.”

“둘이 정한 거예요.”

태오는 수첩을 받아 새 줄에 적었다. 17:30 분리. 21:15 수면 예정.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두 글자를 덧붙였다. 니나는 읽지 못했다. 둘이.


열 시에 그는 유진에게 보냈다.

한결, 해연(중계). 17:30 구 분리. 21:15 수면 예정. 눈 안. 수면 후 위성 메신저.

답은 4분 10초 뒤에 왔다. 첫 번째 전송은 닿지 않았고, 두 번째가 닿았다.

수신. 17:30. 21:15. 눈 안. 앞 눈벽 갱신 시 즉시 보냄. 위에서 받을게요.

위에서 받을게요.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진은 남서쪽 어딘가에서 너울을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썼다. 태오는 그 말을 고치지 않았다.

그 뒤 일곱 시간은 할 일로 채웠다. 태오는 할 일을 만드는 데 능했다.

분리 순간 구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물건을 하나씩 고정했다. 빈 카트리지 자루는 바닥 고리에 묶었다. 공구 주머니는 허리에 찼다. 수첩은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해치 한가운데의 잠금 바퀴를 손으로 돌려 봤다. 돌리면 안쪽 고리 여섯 개가 테두리를 무는 바퀴. 1만 미터의 물이 해치를 눌러 주는 동안에는 쓸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뻑뻑했지만 돌았다. 세 바퀴에 고리가 끝까지 나갔다. 그는 세 바퀴를 도로 풀어 두었다.

그리고 위성 메신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검은 상자. 화면 하나, 단추 넷, 짧은 안테나. 주황색 끈이 달려 있었다. 다만 9센티미터 티타늄은 위성 전파를 통과시키지 않는다. 해치를 열고 안테나가 하늘을 봐야 했다.

“수면에서.” 태오가 니나에게 메신저를 보여 주었다. “해치 열고, 이거 밖으로. 위치 보내기는 이 단추. 문자는 이거.”

“그리고 바깥에 하나 더.” 태오는 손가락으로 구 벽을 짚었다. 부력 띠 우현 쪽이었다. “비상위치표시기. 띠에 붙어 있어요. 코어 관 거치대 바로 위. 수심 10미터 위로 올라가면 저절로 켜져요. 위성으로 위치를 쏴요. 3초마다 섬광.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것도 안 해도.” 니나가 따라 했다.

“해치 못 열어도.”

니나는 메신저를 주황색 끈째 손목에 감았다. 그리고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코어 관은 같이 올라가죠?”

“띠 거치대에 있어요. 같이.”

니나는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태오도 더 말하지 않았다. 첫날 그 관을 거치대로 옮길 때, 그는 손목 카메라 화면에서 무엇이 관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지 봤다. 나중에. 올라가서. 그때 그렇게 정했다.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한 시에 그는 마지막 흡수제 카트리지 셋을 꺼내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8도의 알갱이는 10도의 알갱이보다 굼떴다. 어젯밤부터 카트리지 하나가 다섯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세 시간 반 만에 숨을 흘렸다. 그 대신 이틀 동안 말과 움직임을 줄여 아낀 몫이 있었다. 둘을 맞대 보니 네모 친 시각은 그대로였다. 오후 두 시, 여섯 시 무렵, 그리고 수면에서 갈 것. 셋을 다 쓰면 0시 10분. 계산대로라면 거기까지였다. 그는 그 셋을 니나가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놓았다.

세 시에 니나가 잠들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조종사 자리에 기대 고개를 떨군 채, 손목에 감긴 메신저 끈을 다른 손으로 쥐고. 태오는 깨우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1.3.

그는 구 벽에 손바닥을 댔다. 아래쪽, 구가 몸체 프레임에 앉는 자리에 가까운 곳이었다. 티타늄은 8도의 공기보다 차가웠다. 그 너머에 프레임이 있었다. 그가 첫날 조인 가로대가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 이름을 불렀다. 소리 내지 않고. 좌현 3번 가로대 아래 둘째. 우현 썰매 앞 고정쇠 넷째. 1번 분리 볼트. 2번. 3번. 4번.

오늘 그 볼트들을 그가 터뜨린다.


17시 20분, 니나를 깨웠다.

니나는 한 번에 깼다. 손목의 메신저를 확인하고, 그다음 시계를 봤다. 그리고 그를 봤다.

“10분.”

“10분.”

둘은 담요를 개어 니나의 무릎 밑에 끼웠다. 태오는 높은 쪽 손잡이를 잡고 자리를 잡았다. 니나는 조종사 자리에서 오른손으로 천장의 손잡이 끈을 쥐었다.

태오는 고개를 들어 해치 옆을 봤다. 노란색과 검은색 빗금이 칠해진 손바닥만 한 덮개. 해연호가 처음 물에 들어간 날부터 정비 때 말고는 열어 본 적이 없는 덮개였다.

그는 덮개로 손을 뻗었다. 왼손이었다. 그리고 손을 멈췄다.

“니나.”

“네.”

“열어요.”

니나가 그를 봤다. 그는 손을 거둬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 옆에. 두 손이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떨렸고, 하나는 떨리지 않았다.

니나는 천장의 끈을 놓고 손을 뻗었다. 걸쇠가 뻑뻑했다. 세 번째에 덮개가 열렸다. 안에 빨간 레버 하나와, 그 옆에 투명한 덮개를 쓴 단추 하나가 있었다. 레버 위에 영어와 한국어로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분리 준비.

“레버.” 태오가 말했다.

니나가 레버를 내렸다. 계기판 귀퉁이에 ‘점화 준비’ 글자가 켜졌다.

17시 29분.

“단추는 내가.” 태오가 말했다.

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거뒀다. 다시 천장의 끈을 쥐었다. 태오는 투명한 덮개를 왼손 엄지로 젖혔다. 단추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는 계기판의 시계를 봤다. 17시 29분 50초.

17시 30분.

태오가 눌렀다.

발밑에서 소리가 났다. 첫째. 둔하고 짧은 소리, 망치로 쇠기둥을 한 번 내리친 것 같은. 둘째. 셋째. 셋이 거의 한꺼번에 왔다. 옆에서 니나가 작게 세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구가 들썩였다. 위로 가려는 힘이 엉덩이 밑에서 느껴졌다. 140킬로그램이 처음으로 위를 향해 당기고 있었다.

넷째는 오지 않았다.

구가 기울었다. 위로 떠오르는 대신 한쪽으로 천천히 넘어갔다. 좌현 선미 쪽으로. 계기판 위의 연필이 굴러떨어졌다. 니나가 끈에 매달렸다. 태오의 등이 벽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경사계 숫자가 올라갔다. 20. 25. 31.

31에서 멈췄다.

몸체의 경사계는 14 그대로였다. 몸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구만 기울어 있었다. 세 귀퉁이는 풀렸고, 한 귀퉁이가 구를 붙잡고 있었다. 위로 가려는 힘 전부가 볼트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발밑 어딘가에서 쇠가 낮게 끙 소리를 냈다.


태오는 눈을 감았다.

회로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구 안의 점화 상자에서 선 네 가닥이 나가 몸체 프레임을 따라 볼트까지 간다. 1번은 우현 선수. 2번은 좌현 선수. 3번은 우현 선미. 4번은 좌현 선미. 4번 선은 좌현 프레임 가로대 밑을 따라 뒤로 간다.

좌현 프레임 가로대. 어제 그가 손목 카메라 화면에서 볼트를 하나씩 센 그 가로대. 바위 밑에 깔려 비스듬히 휜 그 가로대.

첫날 붕괴 때 이미 끊겼다. 그는 그걸 본 적이 있었다. 지진 직후 전력 화면에서 좌현 회로 몇 줄이 빨갛게 떠 있었다. 조명, 좌현 추진기, 측면 소나, 그리고 그 아래 몇 줄 더. 숨 쉬는 데 필요한 건 그 안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읽지 않았다. 나중에 읽는다고 정했다. 사흘 동안 나중은 오지 않았다.

4번 점화선은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눈을 떴다.

“4번.” 그가 말했다. 니나가 끈에 매달린 채 그를 봤다.

그리고 그는 다른 것을 기억해 냈다. 음향 모뎀의 송수신기는 몸체에 달려 있었다. 뱃머리, 소나 옆. 구가 몸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해연호가 세상과 이어진 마지막 선이 끊긴다. 그 뒤로는 수면까지 3시간 45분 동안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해치를 열 때까지.

지금은 아직 이어져 있었다. 4번 볼트 하나가 그걸 붙들고 있었다.

태오는 모뎀 화면으로 손을 뻗었다. 기울어진 구에서 그 화면은 이제 머리 위쪽에 있었다. 그는 왼손 검지 하나로 쳤다. 한 글자씩.

한결, 해연(중계). 17:30 분리 시도. 볼트 3/4. 4번 불발. 지연. 눈 정보 갱신 바람. 분리 시 음향 끝. 다음은 위성.

전송.

화면 아래에 작은 글씨가 떴다. 송신 중. 그리고 송신 완료.

이 문자가 1만 미터를 올라가 서남서로 7킬로미터 흘러간 노란 공에 닿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닿으면 유진은 3분이나 4분 뒤에 답할 것이다. 그 3분이 지나기 전에 구가 떨어져 나가면 답은 아무도 받지 못한다.

태오는 화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니나를 봤다.

니나의 오른손은 이미 천장 끈에서 내려와 있었다. 로봇팔 조종간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