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열 시 50분에 시작됐다.
처음엔 굵은 방울 몇 개가 뒷갑판 철판에 동전만 한 얼룩을 남겼다. 5분 뒤에는 얼룩과 얼룩 사이가 없어졌다. 빗줄기가 바람에 눕지 않고 똑바로 떨어졌다. 아직 바람은 15노트였다. 바다가 먼저 커져 있었다. 너울 높이 4미터, 주기 14초. 한결호는 그 너울을 옆구리로 받지 않으려고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두고 있었다. 노을이 오는 쪽이었다.
오유진은 구명조끼 위에 안전 줄을 걸고 A자 크레인 아래에 서 있었다. 갑판원 여섯이 노란 표지 부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름 1미터 남짓한 공 모양의 부이 꼭대기에 짧은 안테나 두 개가 솟아 있었다. 하나는 위성 송수신기, 하나는 섬광등. 부이 밑으로 굵은 케이블이 갑판 위에 뱀처럼 사려져 있었다. 1천 미터. 어젯밤 갑판장이 유압 절단기로 7킬로미터짜리 예인 케이블에서 잘라 낸 것이었다. 잘리는 순간 절단기가 ‘탕’ 하고 울렸다. 갑판장은 그 소리를 듣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이블 끝에는 회색 트랜스듀서가 있었다. 그 밑에 해연호의 예비 하강추 두 장을 볼트로 붙였다. 추가 케이블을 곧게 세운다. 그래야 트랜스듀서가 바닥을 향한다. 그리고 케이블 중간, 수심 100미터 자리에 접힌 주황색 천 뭉치가 묶여 있었다. 구명정에서 떼어 온 해묘였다. 물속에서 낙하산처럼 펼쳐져 물을 붙잡는다.
“팀장님, 위치요.” 무전기에서 서하은의 목소리가 났다.
“불러 줘요.”
“해연 기준 동북동 5.1킬로미터. 배 멈췄어요.”
여기서 띄우는 것이 유진의 계산이었다.
부이는 어딘가로 흘러간다.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1만 1천 미터 바다에 닻을 내릴 수는 없다. 어젯밤 유진은 해류 자료와 바람 예보를 펴 놓고, 해묘와 1천 미터 케이블이 물을 끄는 힘을 셈했다. 답은 시간당 400미터 안팎, 서남서. 해연호의 음향 모뎀은 비스듬히 15킬로미터까지 닿는다. 수심 11킬로미터를 빼고 나면 수평으로 10킬로미터 남짓. 해연 바로 위에 띄우면 부이는 스물다섯 시간 만에 그 원을 벗어난다. 그러면 4일 낮이다.
그래서 거꾸로 했다. 흘러갈 방향의 반대쪽, 동북동으로 5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와서 띄운다. 부이는 열두 시간쯤 걸려 해연호 머리 위를 지나고, 그 뒤로도 하루를 더 원 안에 머문다. 계산대로라면 5일 0시 무렵까지.
바람이 계산대로 분다면.
“내립니다!” 갑판장이 소리쳤다.
크레인이 부이를 들어 올렸다. 너울이 배를 기울이자 부이가 공중에서 그네처럼 크게 흔들렸다. 갑판원 둘이 유도 줄을 잡고 버텼다. 유진은 숨을 참았다. 배가 너울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순간 갑판장이 손을 내렸다. 크레인이 부이를 물에 놓았다. 노란 공이 한 번 잠겼다가 떠올랐다.
그다음은 케이블이었다. 사려 둔 케이블이 갑판 위를 미끄러져 선미 너머로 빠져나갔다. 추가 먼저, 트랜스듀서가 그다음, 해묘 뭉치가 그다음. 갑판원들이 케이블에서 두 걸음씩 물러섰다. 빠져나가는 케이블에 발목이 감기면 사람도 같이 1천 미터를 내려간다. 케이블 끝이 갑판을 떠나는 데 4분이 걸렸다. 마지막 몇 미터가 철판을 긁으며 사라졌다. 부이가 케이블 무게를 받아 어깨까지 잠겼다가 천천히 다시 떠올랐다.
11시 9분.
부이 꼭대기에서 섬광등이 처음 깜빡였다. 빗속에서 노란 공이 너울 마루에 올라갔다가 골로 사라지고, 다시 마루에 나타났다.
“위성 송신 들어왔어요.” 하은이 말했다. “첫 위치 보고. 정상. 10분마다 들어올 거예요.”
유진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안전 줄을 풀고 컨테이너 쪽으로 걸었다. 빗물이 목덜미로 들어왔다. 장화 속까지 젖어 있었다.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컨테이너 문을 여는 순간 김도윤이 돌아봤다. 그의 얼굴을 보고 유진은 걸음을 멈췄다.
“해연에서 왔어요.” 도윤이 말했다. “한결호 쪽 회선으로요. 11시 2분.”
유진은 젖은 손을 바지에 닦고 화면 앞에 섰다.
한결, 해연. 10:38 선수 이탈 후 재고착. 좌현 썰매·프레임 바위 밑. 바위 지름 1.5 이상. 몸체 부상 불가.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11시 6분.
구 분리 검토.
유진은 첫 줄을 다시 읽었다. 선수 이탈. 떴다는 뜻이었다. 해연호의 앞쪽이 진흙에서 빠져나왔다. 그 두 단어가 저 아래에서 어떤 소리를 냈을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뒤의 두 글자가 그 소리를 지웠다. 재고착.
바위 지름 1.5. 유진은 머릿속으로 무게를 셈하다가 그만두었다. 셀 필요가 없었다. 해연호에 남은 어떤 것을 버려도 그걸 들 수는 없었다.
구 분리.
그 단어는 유진의 머릿속 한 칸에 오래 들어 있었다. 9년 전, 부산 본원 3층 회의실. 해연호 상세 설계 검토 회의. 유진은 운항팀에 들어온 지 1년 된 막내였고, 회의록을 맡았다.
분리 장치는 마지막 안건이었다. 구와 부력 띠를 몸체에 묶는 폭발 볼트 네 개. 몸체가 무엇에 걸려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 볼트를 터뜨려 사람이 탄 구만 띄운다. 볼트 하나하나는 압력 시험 장치 안에서 1,300기압까지 터뜨려 봤다. 수심 500미터 바다에서 모형으로 분리 순서도 시험했다.
외부 심사 위원 하나가 물었다. 실제 수심에서, 실제 잠수정으로 분리를 시험할 계획은 없느냐고.
회의실이 잠깐 조용했다. 그 질문의 답은 모두가 알았다. 그 시험을 하려면 1만 1천 미터 바닥에 해연호의 몸체를 버려야 한다. 몸체는 다시 가져올 수 없다. 시험 한 번에 잠수정 한 대.
그때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태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회의 세 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건 쓰는 날이 시험하는 날이에요.”
다들 웃었다. 위원도 웃었다. 안건은 그렇게 넘어갔다. 유진은 회의록에 그 문장을 그대로 적었다. 나중에 팀장이 그 줄을 지우라고 했다. 공식 문서에 들어갈 말이 아니라고. 유진은 지우는 대신 자기 수첩에 옮겨 적었다.
쓰는 날이 시험하는 날.
“선배님.” 도윤이 불렀다. “답 보내야 하지 않아요?”
유진은 자판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비 때문이었다.
해연, 한결. 수신. 분리 장치 점화 계통 점검 바람. 붕괴 시 좌현 손상 여부 확인. 부이 투하 완료 11:09. 중계 시험 곧.
선배는 그 점검을 이미 했을 것이다. 유진이 쓰지 않아도. 그래도 썼다. 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확인을 한 번 더 하는 것뿐이었다.
11시 30분에 레예스가 갑판 작업 종료를 선언했다. 갑판원들이 크레인을 묶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20노트를 넘었다. 빗줄기가 처음으로 눕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안에서 유진은 첫 중계 시험을 했다. 한결호의 콘솔에서 위성으로 문자를 보낸다. 위성이 부이로 내려보낸다. 부이가 그 문자를 소리로 바꿔 1천 미터 케이블 끝의 트랜스듀서로 내려보내고, 트랜스듀서가 바닥으로 쏜다. 답은 같은 길을 거꾸로 올라온다.
해연, 한결(중계). 중계 시험. 수신 시 회신 바람.
전송. 11시 33분.
하은이 노트북에 부이의 상태 화면을 띄웠다. 위성 송신, 배터리 전압, 트랜스듀서 수신 신호. 세 칸이 다 초록이었다.
평소에는 30초면 왔다. 이번에는 1분이 지나도 아무것도 없었다. 2분. 도윤이 의자 등받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진은 그를 보지 않고 손을 뻗어 그 손가락을 눌렀다. 도윤이 멈췄다.
2분 40초.
한결, 해연. 중계 수신 양호.
노트북 상태 화면 아래에 작은 글씨가 떴다. 중계: 해연 → 부이 → 위성 → 한결. 유진은 그 화살표 세 개를 오래 봤다. 한결호가 그 화살표에서 빠져도 앞의 두 개는 남는다.
“됐어요.” 하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젖어 있었다.
“됐네요.” 유진이 말했다.
배정민 박사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었다. 비옷에서 물이 떨어졌다.
“본원에서 물어요. 태풍 지나가면 괌에 수색 본부를 꾸리는데, 오 팀장이 거기 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결호는 노을 지나고 괌 들어가는 길에 오 팀장 내려 주고.”
“부이 신호는 이 배로 와요.” 유진이 말했다. “이 콘솔로요. 괌에선 못 받아요.”
“받게 만들면 되지.”
“그 사이에 선배가 문자를 보내면요.”
배 박사는 한참 유진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팀장은 배에 남는다고 할게요.” 그는 문을 닫으려다 말고 덧붙였다. “나도 남아요. 원래 그랬지만.”
11시 50분, 레예스가 선교에서 내려왔다.
그는 컨테이너 문간에 섰다. 첫날처럼 들어오지 않고 문틀에 한 손을 짚었다. 비옷 어깨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화이트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맨 위 ‘생명유지 한계 5일 00:10’. 그 아래 ‘11:09 부이 투하’. 그 아래 ‘11:35 중계 양호’.
“10분 남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알아요.”
“정오에 배를 돌립니다. 남서쪽. 침로 225.”
“네.”
레예스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문틀에 손을 짚은 채 거기 서 있었다. 그가 선교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유진은 알았다. 이 10분 동안 이 사람은 여기 있을 것이다.
유진은 자판 앞에 앉았다.
해연호가 처음 바다에 들어간 해부터 유진은 잠수 때마다 같은 문자를 보냈다. 수심 9천 미터를 넘으면, 잘 가요 선배. 처음에는 막내의 장난이었고, 두 번째에는 버릇이 되었고, 열 번째부터는 규칙이 되었다. 태오는 한 번도 답하지 않았다. 수신 확인 단추만 눌렀다. 모뎀이 짧은 신호를 자동으로 올려 보내면 유진의 화면에 ‘확인’ 두 글자가 떴다. 그게 그의 답이었다. 유진은 그 답이 좋았다. 그 사람다웠다. 그저께 아침에도 그랬다.
이번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지워도 남을 말은 하나였다.
해연, 한결. 정오 출항. 이후 교신 전부 부이 중계. 유진은 배에 있음.
그리고 한 줄.
올라와요 선배.
전송. 11시 54분 20초.
유진은 손목시계를 봤다. 편도 7초. 아래에서 읽는 시간. 그리고 아무것도 치지 않는 시간. 그는 확인 단추를 누를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그 ‘확인’ 두 글자를 보고 나서 의자를 돌려 레예스에게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었다.
30초. 자동 확인 신호라면 벌써 왔어야 했다.
1분.
도윤이 숨을 참고 있었다. 하은은 헤드폰을 벗고 있었다. 문간의 레예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1분 50초. 콘솔 스피커에서 짧은 경보음이 울렸다.
갈게.
두 글자에 마침표 하나였다. 확인 단추가 아니었다. 그는 쳤다. 손가락으로, 아마 왼손 검지 하나로, 한 글자씩. 그게 1분 50초였다.
유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 글자를 읽고, 다시 읽었다. 여태 한 번도 오지 않은 답이었다.
울지는 않았다. 다만 오른손으로 왼손 손목을 꽉 쥐었다. 맥박이 손바닥을 쳤다.
그리고 의자를 돌렸다.
“선장님.”
레예스가 유진을 봤다. 화면이 보이지 않는 자리였고, 한글을 읽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는 뭔가를 읽어 낸 것 같았다.
“가셔도 돼요.” 유진이 말했다.
레예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문틀에서 손을 떼고 선교로 올라갔다. 그의 발소리가 철제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유진은 그 소리를 셌다. 열네 계단.
정오에 한결호가 돌았다.
컨테이너 바닥이 크게 기울었다. 너울을 옆구리로 받는 몇십 초 동안 선반의 바인더들이 미끄러지고 종이컵이 쓰러졌다. 배가 남서쪽으로 머리를 맞추자 흔들림의 결이 바뀌었다. 길게 들렸다가 길게 내려앉는 움직임. 엔진 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10노트.
유진은 콘솔 앞을 떠나지 않고 해연호의 잠수 일지를 폈다. 해연호가 처음 바다에 들어간 날부터 써 온 두꺼운 녹색 바인더였다. 이번 잠수의 쪽 첫 줄은 유진의 글씨였다.
1일 05:10 해치 닫음.
그 아래는 사흘 동안의 시각과 숫자로 빽빽했다. 유진의 글씨, 도윤의 글씨, 하은의 글씨. 11:52 충격. 12:40 분투자 6.5일. 04:10 2차 붕괴. 15:40 한계 00:10. 10:38 선수 이탈 후 재고착.
유진은 오늘 날짜 아래에 적었다. 11:09 중계 부이 투하. 11:54 갈게. 12:00 한결호 출항.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비워 두었다. 해치를 연 시각이 들어갈 자리였다. 그 줄이 쓰여야 잠수가 끝난다.
12시 15분, 유진은 선교 옆 날개에 나가 섰다.
비가 옆으로 왔다. 바람은 25노트. 우비 모자가 자꾸 뒤로 벗겨졌다. 배는 부이에서 4킬로미터 남짓 멀어져 있었다. 유진은 쌍안경을 눈에 대고 선미 쪽, 북동쪽 바다를 훑었다.
처음에는 회색 너울과 하얗게 부서지는 물마루와 비뿐이었다. 너울이 배를 들어 올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배가 마루에 올라서자 시야가 몇 초 넓어졌다.
거기 있었다. 노란 점 하나가 물마루와 물마루 사이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섬광등은 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만 회색 바다 위에서 바늘 끝처럼 선명했다.
배가 골로 내려가자 노란 점이 사라졌다. 다음 마루에서 다시 나타났다. 아까보다 작았다. 그다음 마루에서는 더 작았다.
1천 미터 아래에서는 트랜스듀서가 바닥을 향해 귀를 열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1만 미터 아래, 지름 1.5미터짜리 구 안에서는 두 사람이 9도의 공기를 나눠 쉬고 있을 것이다. 그 위에 노란 공 하나. 공과 하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가 또 한 번 마루에 올라섰다. 노란 점이 있던 자리에는 물마루와 골과 비뿐이었다. 유진은 쌍안경을 조금 옆으로, 다시 조금 옆으로 옮기며 다음 마루를 기다렸다. 그다음 마루도. 노란 점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이는 그 자리에서 10분마다 위치를 보내고 있을 터였다. 다만 이 배에서는 더 보이지 않았다.
등 뒤 선교 안에서 레예스가 침로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225. 그는 유진을 부르지 않았다.
유진은 쌍안경을 내렸다. 빗물이 렌즈에서 턱으로 흘렀다.
수평선 저쪽, 해연 위의 바다에는 이제 노란 공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1만 1천 미터 아래에서 올라오겠다고 한 사람이 둘. 그들이 올라왔을 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