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 20장 마지막 의뢰
대행 · 도해

20장 마지막 의뢰

서울, 하윤의 원룸, 2026년 12월 11일 금요일
약 10분

오전 10시 뉴스에 성근건설 사옥이 나왔다.

삼성동, 유리로 된 23층 건물. 정문 앞에 기자들이 반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검은 승용차가 서고 차민혁이 내렸다. 짙은 남색 코트, 가죽 장갑. 마이크가 한꺼번에 그의 얼굴로 몰렸다. 민혁은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렌즈를 하나씩 마주했다. 웃음기가 없었다. 웃지 않는 민혁은 아버지를 닮았다.

“성실히 조사받겠습니다.”

그 한 문장을 말하고 그는 다시 걸었다. 자막이 흘렀다. 평택 물류센터 붕괴 원가절감 지시 의혹, 성근건설 대표 오늘 검찰 출석. 화면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지나갔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 3명.

하윤은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3년 동안 이 회사 이름이 나오면 엄지가 먼저 움직였다. 기사는 제목까지만 읽었고, 뉴스는 앵커가 첫 문장을 끝내기 전에 껐다.

이번엔 끝까지 봤다. 민혁의 뒷모습이 회전문 안으로 사라지고, 앵커가 다음 소식으로 넘어갈 때까지. 그다음에 껐다.

방이 조용해졌다. 꺼진 화면에 하윤의 얼굴이 비쳤다.


12월 12일 토요일 오후, 유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부지 오늘 점심 안 드셨어요. 마 여사님이 그러는데 2시 10분에 진동 왔대요.’

마흔세 번째였다. 하윤은 그 숫자를 세고 있는 자기를 알아챘다. 회장의 버릇이 옮아 있었다.

저녁에는 어머니의 카톡이 왔다. ‘그 돈 또 왔다.’ 하윤은 답을 쓰다 지웠다. 무엇을 쓰든 어머니가 정할 일이었다.

12월 14일 월요일, 민혁이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 취하서를 냈다. 같은 날 경찰서에 고소 취하서도 냈다. 고지석 변호사가 유진을 거쳐 알려 왔다. 문장은 짧았다. 마침표까지 정확했다. 하윤은 왜냐고 묻지 않았다. 회장이 법정에 서서 자기 목소리로 말한 그날, 그 사람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없다는 말은 아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민혁은 숫자를 아는 사람이었다.

12월 15일 화요일. 심문기일은 열리지 않았다.

그날 아침 하윤은 벽에 걸린 달력 앞에 섰다. 10월 중순부터 매일 아침 그 날짜까지 남은 칸을 셌다. 59, 56, 50, 38. 오늘이 그 칸이었다. 하윤은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빈칸은 빈칸으로 두는 게 맞았다.

오후에 하윤은 지하철을 탔다.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고 탔는데, 혜화역에서 내렸다. 몸이 먼저 내렸다.

대학로는 평일 낮이라 한산했다. 연극 포스터가 담벼락마다 겹겹이 붙어 있었다. 위에 붙은 것이 아래 것을 반쯤 가렸고, 그 아래 것이 또 그 아래 것을 가렸다. 하윤은 골목 하나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5년 사이 그 소극장은 이름을 두 번 바꿨다고 했다. 계단 입구의 철문은 닫혀 있었다.

2021년 4월. 첫 주연. 첫날. 셋째 줄.

하윤은 계단을 내려가지 않았다. 철문 옆에 게시판이 있었다. 공연 포스터 사이에 A4 한 장이 압정 네 개로 꽂혀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 연합 신인 오디션. 2027년 1월 23일 토요일. 자유 독백 3분. 지정 대본 없음.

지정 대본 없음. 하윤은 그 여섯 글자를 오래 봤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공고를 찍지 않고, 압정 하나를 뽑았다. 게시판 옆에 같은 공고가 열 장쯤 더 쌓여 있었다. 하윤은 맨 위의 한 장을 접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계단 앞을 떠나면서 하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쓴 것도 아니었다.


12월 17일 목요일, 재활 병동 복도 끝에서 피아노 소리가 났다.

진짜 피아노가 아니었다. 휴대폰 스피커에서 나는 납작한 소리였다. 하윤은 병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이 한 뼘 열려 있었다.

「엘리제를 위하여」.

정숙은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붕대는 풀었고, 짧게 깎은 머리 위로 흉터 자리에 거즈 한 장. 무릎 위 쟁반에 휴대폰을 눕혀 놓았다. 화면에 건반 앱이 떠 있었다. 정숙의 손가락이 그 유리 위를 눌렀다. 느렸다. 한 음씩 확인하듯이. 수술 전의 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음은 맞았다.

침대 옆 의자에 유진이 앉아 있었다. 귤 껍질을 무릎에 늘어뜨린 채. 한 줄로.

하윤은 마디를 셌다. 몸이 먼저 셌다. 두 달 동안 정숙에게 배운 곡이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왼손.

정숙은 틀리지 않았다.

음이 제자리에 놓였다. 그다음 마디로 그냥 넘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진이 웃었다. 귤 껍질이 무릎에서 흔들렸다.

“엄마, 거기서 틀려야 아부지가 손뼉 치는데.”

정숙은 대답하지 않고 다음 마디를 눌렀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하윤이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두 달 동안 성북동에서 본 건 피아노 뚜껑을 닫는 손과 여는 손뿐이었다.

하윤은 들어가지 않았다. 손에 든 귤 봉지를 문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문손잡이에 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거우면 문이 열릴 것 같았다. 하윤은 돌아섰다.

복도 중간쯤에서 등 뒤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윤 씨.”

유진이었다. 귤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사람 놀래키지 말고, 들어와요. 아니면 여기라도 앉아요.”

복도 창가에 보호자용 긴 의자가 하나 있었다. 둘은 거기 나란히 앉았다. 유진이 봉지에서 귤 두 개를 꺼내 하나를 하윤에게 주었다.

유진은 왼손으로 꼭지부터 깠다. 엄지손톱을 껍질 밑에 넣고, 돌리면서. 껍질이 끊기지 않고 한 줄로 길게 늘어졌다. 두 달 동안 하윤이 흉내 낸 손이었다. 진짜는 조금 더 빨랐고, 조금 더 무심했다. 흉내는 늘 진짜보다 정성스러웠다.

하윤은 두 엄지를 꼭지에 세웠다. 반으로 쪼갰다.

유진이 그걸 보고 웃었다.

“그게 하윤 씨 거구나.”

“네.”

“아부지가 그러더라고요. 토요일에. 그 아가씨는 귤을 반으로 쪼갠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말 안 하고.”

둘은 한동안 귤을 먹었다. 복도 끝에서 휴대폰 피아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정숙은 같은 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편지요.” 유진이 말했다.

하윤은 귤 한 쪽을 입에 넣은 채 기다렸다.

“아부지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썼어요.” 유진은 껍질을 손가락에 감았다. “오빠를 미워하지 말라고 썼어요. 한 장에 그거 하나요. 글씨가 너무 반듯해서 몇 번을 다시 쓴 줄 알겠더라고요.” 유진이 껍질을 풀었다. “그게 아부지예요.”

하윤은 귤 한 쪽을 더 떼어 입에 넣었다. 그 편지는 하윤의 것이 아니었다.

“아부지, 낮에 걸어요.” 유진이 말했다. “정원에서. 마 여사님이 옆에서 같이. 밤에는 이제 안 나가요. 담배도 끊었대요. 하윤 씨가 끊으라고 했다면서요.”

“새벽 2시에는 끊으라고 했죠.”

유진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에서 입보다 눈이 먼저 움직였다. 정숙이 9월에 보여 준 사진 속 얼굴이었다.


12월 19일 토요일, 평택 추모공원

봉안당은 언덕 위에 있었다. 하윤과 어머니는 주차장에서부터 걸어 올라갔다. 바람이 찼다. 어머니는 하윤보다 반 걸음 앞서 걸었다. 이 길을 아는 걸음이었다.

“몇 번 왔어요?”

“한 달에 한 번.” 어머니가 말했다. “12일 지나고 첫 토요일에.”

하윤은 걸음을 멈출 뻔했다. 멈추지 않았다.

실내는 조용했다. 벽면 가득 작은 유리 칸들. 이름과 생년과 몰년. 꽃, 사진, 묵주, 장난감 자동차. 어머니가 한 칸 앞에 섰다.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칸이었다.

서기철. 1966–2023.

유리 안에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웃는 남자. 하윤이 기억하는 얼굴보다 훨씬 늙었고, 하윤이 기억하는 얼굴보다 웃음이 컸다. 하윤은 이 사람이 웃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열 살까지의 기억에서 아버지는 대개 피곤하거나 화가 나 있었다.

사진 옆에 짧은 쇠막대 하나가 눕혀져 있었다. 한 뼘 길이. 녹이 조금 슬었다. 표면에 마디가 있었다.

“철근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같이 일하던 반장님이 넣었다. 니 아빠는 이게 있어야 잠을 잘 거라고.”

하윤은 유리 앞에 섰다.

할 말을 생각해 오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문숙자가 외워 가지 말라고 했다. 막히면 막힌 데서 다시 하라고. 유리에 비친 하윤의 얼굴이 그 너머 아버지의 얼굴과 겹쳤다.

한참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법정에서처럼, 그냥 옆에 있었다.

하윤은 셌다가, 세는 걸 그만두었다.

“아빠.”

목이 막혔다. 막힌 데서 다시 했다.

“그날 나 대사 까먹은 거, 아빠 때문 아니야.”

그게 다였다. 대사가 아니었다. 다음 줄이 없었다. 하윤은 그 한 문장이 유리에 닿아 되돌아오는 걸 들었다. 울음이 짧게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하윤은 손등으로 코를 한 번 훔쳤다.

어머니의 손이 올라왔다. 하윤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그리고 왼쪽 눈썹 위, 작은 흉터를 엄지로 한 번 쓸었다. 정숙이 9월에 화장으로 가려 주던 자리였다. 유진에게는 없는 자리.

“이것도 철근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니가 일곱 살 때. 니 아빠가 현장에 데려갔다가. 그날 밤에 니 아빠가 울었다. 나는 그 사람 우는 걸 그때 한 번 봤다.”

하윤의 눈이 유리 안의 철근 토막에 머물렀다가 아버지의 얼굴로 올라갔다. 웃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평택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12일에 온 거, 돌려보냈다.”

“이번에요?”

“법정에서 그 사람 얼굴을 보고 나니까 못 받겠더라.” 어머니가 무릎 위에서 장갑을 벗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건 내 마음 편하자고 한 거더라. 그 사람은 또 보낼 거다. 다음 달에도. 재판이 어떻게 되든.”

“그럼 다음 달엔요?”

“안 돌려보낸다.” 어머니가 장갑을 접었다. “그 사람이 보내는 건 그 사람 일이고, 받는 건 내 일이다. 받아서 뭘 할지도 내가 정한다.”

창밖, 포승읍 쪽 하늘에 크레인 하나가 서 있었다. 멈춰 있었다. 그 아래 어딘가에 가림막이 있을 것이었다. 하윤은 이번엔 눈을 돌리지 않았다.

회장의 다음 공판 기일은 1월 말로 잡혔다고 고지석이 알려 왔다. 차민혁은 피의자로 두 번째 소환을 앞두고 있었다. 오규식의 휴대폰은 검찰에 있었다. 판결이 언제 날지, 무엇이 날지 아무도 몰랐다. 하윤은 더 묻지 않았다.


12월 26일 토요일, 망원동 패밀리 사무실

떡집 앞에 아직 크리스마스 장식이 남아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참기름 냄새와 헤어스프레이 냄새가 섞였다. 두 달 전과 같은 냄새였다.

하윤은 문을 열었다.

의상실 행거에 산타 옷 세 벌이 걸려 있었다. 성탄 이브 대행의 흔적이었다. 화이트보드에 다음 주 일정이 빼곡했다. 화요일 하객 넷, 목요일 송년회 동행. 그 맨 왼쪽 세로 칸, 직원 이름 줄에 ‘하윤’이 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누가 그 위에 매직으로 한 번 더 덧써 둔 자국이 있었다.

“누나!”

정빈이 회전의자에서 튕겨 일어났다. 문숙자는 장부에서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하윤을 봤다. 그리고 다시 장부로 눈을 내렸다. 입꼬리만 움직였다.

“커피 타 놨다. 식었어.”

“언제 타셨는데요.”

“너 그만둔 날.”

유리문 안쪽 두 평짜리 방에 도석이 있었다. 하윤이 들어가자 도석은 일어섰다가, 앉을지 말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책상 위에 검은 몰스킨 다섯 권이 쌓여 있었다. 10월 27일 밤 하윤이 놓고 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였다. 맨 위 노트의 표지에 먼지가 없었다. 누가 닦았다.

도석은 라이터를 꺼내지 않았다. 손이 갈 데가 없어서 책상 모서리를 쥐었다.

“하윤아.”

“네.”

도석은 한참 말을 골랐다. 형사 시절에도 그는 말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질문으로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질문이 없었다.

“미안하다.”

짧았다. 서툴렀다. 그다음 말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대본은 네가 써라.”

역할 밖으로 나가지 마라. 2년 넘게 하루에 한 번씩 들은 말이었다.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의 노트 다섯 권을 집어 품에 안았다. 무거웠다. 두 달 동안 들고 다니지 않은 무게였다.

“사장님.”

“왜.”

“강릉 버스표는 이제 안 끊으셔도 되겠네요.”

도석의 눈이 책상 서랍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10월에 하윤이 열어 본 서랍이었다.

“그래서, 내 서랍은 언제 또 열 건데?”

“필요하면요.”

도석의 입가가 움직였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하윤은 그 얼굴을 노트에 적지 않았다. 이번에는 적지 않아도 기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여섯 번째 노트를 꺼냈다. 어제 문구점에서 산 것이었다. 검은 표지는 같았다. 속지는 달랐다. 줄이 없었다.

하윤은 의상실로 나가 코트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열하루 동안 주머니에 있던 종이였다.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하윤은 그걸 펴서 화이트보드 오른쪽 아래 구석에 붙였다. 대학로 소극장 연합 오디션 공고. 1월 23일 토요일. 자유 독백 3분.

창턱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군자란. 정빈이 10월에 우태호 할아버지의 빌라에서 들고 온 것이었다. 두꺼운 잎 사이로 꽃대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정빈이 하윤의 눈길을 따라가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할아버지가 수요일마다 물 줬대. 그래서 나도 수요일에만 줘. 아들이니까.”

정빈이 매직을 들고 와서 그 옆에 하트를 그렸다. 크게. 문숙자가 “유치하게” 하고 말하더니 하트 안에 작은 글씨로 ‘3분 = 180초’라고 적었다. 하윤은 웃었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문숙자가 받았다. “네, 패밀리입니다.” 손님용 해요체였다. 수화기 너머의 말을 듣는 동안 문숙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볼펜을 쥔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문숙자는 아무것도 받아 적지 않았다. 대신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하윤을 봤다.

“너 받아.”

하윤이 수화기를 받았다. 여자 목소리였다. 마흔쯤. 낮고, 조금 빨랐다.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첫 문장을 시작한 목소리였다.

“남편 역할을 해 줄 사람을 찾는데요. 남편이 죽은 걸, 경찰이 아직 몰라서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정빈이 매직 뚜껑을 닫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하윤이 고개를 돌렸다. 유리문 안쪽에서 도석이 하윤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도석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고개도 젓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의 볼펜 한 자루를 집어 유리문 밖으로 나왔다. 하윤 앞에 섰다. 볼펜을 새 노트 위에 내려놓았다.

하윤은 노트를 펼쳤다. 첫 장. 줄 없는 하얀 면.

“말씀하세요.” 하윤이 말했다. 자기 목소리였다. “들을게요.”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하윤은 볼펜 뚜껑을 이로 물어 열었다. 그리고 첫 줄을 적었다.

의뢰인. 여성, 마흔 무렵. 첫 문장을 외워 오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