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하루 · 24장
늘어나는 하루 · 도해

24장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2031년 9월 3일
약 9분

배가가 오기로 되어 있던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한다. 일곱 시에는 아무도 없다. 커피를 내리고, 시계실 상태 화면을 확인하고, 국제지구자전국의 이번 주 회보를 연다. 2년 전 6월의 어느 월요일과 똑같은 순서다. 다른 건 내 다리다. 계단을 내려가는 게 아직 조금 무겁다. 달에서 2주, 오가는 길에 열흘. 근육은 그동안 지구가 얼마나 무거운지 잊었다. 재활 담당 의사는 한 달이면 돌아온다고 했다. 아난드는 화상 통화로 2주면 된다고 했다. 의사들은 숫자를 늘 다르게 말한다.

회보의 표를 본다. 하루 길이.

지난주 평균, 86,400.046초.

이상 현상이 없었을 때 이 계절의 하루보다 46밀리초 길다. 그리고 그 46밀리초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7월 28일 세계 표준시 새벽 3시 1분 이후로. 하루는 이제 원래대로 100년에 2.3밀리초씩만 길어진다. 바닷물이 혹을 끌고 도는 속도로. 파도 소리처럼, 아무도 모르게.

46밀리초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구가 그 46밀리초를 만드는 데 쓴 에너지는 2.3×10²³줄이다. 인류가 지금 1년에 쓰는 에너지의 380년치. 그 30분의 1은 달의 궤도로 갔다. 달은 지금 원래보다 78미터 멀리 있다. 한 달은 0.7초 길어졌다. 100만 분의 1은 치올코프스키 테두리 바깥의 비탈에서 열이 되어 하늘로 갔다. 나머지는 백조자리로 갔다. 1,240광년을 날아가는 중이다. 맨 처음 떠난 빛도 이제 겨우 2.7광년을 갔다. 태양계를 감싼 얼음 구름의 바깥 가장자리쯤. 1,240광년 가운데.


윤초는 여덟 번 들어갔다.

2030년 10월 31일, 12월 31일. 2031년 3월 31일. 그리고 4월부터 8월까지 달마다 말일. 지금 지구는 하루에 46밀리초씩 원자시계보다 늦는다. 21.7일마다 1초. 한 달에 하나로는 모자란다.

그래서 세계는 2035년에 하기로 했던 일을 4년 앞당겼다. 지난주 국제전기통신연합 긴급 총회가 결정했다. 9월 1일부터 윤초를 더 넣지 않는다. 원자의 시간은 이제 해를 따라가지 않는다.

지구는 1년에 17초씩 원자시계보다 늦어질 것이다. 100년이면 28분. 우리 증손주 세대는 정오 무렵의 해가 시계보다 반 시간쯤 늦게 남쪽 하늘 꼭대기에 오는 걸 보게 된다. 수백 년 뒤 누군가는 표준시를 한 시간 옮기자고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머타임을 두고 다투듯이.

나는 그 결정에 찬성했다. 의견서에 그렇게 썼다. 시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면 그건 시계가 아니다. 지구는 기다려도 된다. 지구는 원래 정확하지 않으니까. 원래 바람이 불면 느려지고, 바닷물이 쏠리면 빨라지고, 큰 지진이 나면 몇 마이크로초 튄다. 이제 하나가 더 생겼을 뿐이다. 누군가 초인종을 2년 반 동안 누른 자국.


열점은 8월 둘째 주에 사라졌다.

궤도선 두 대가 계속 지켜봤다. 7월 28일 이후 그 자리는 하루하루 식었다. 부채꼴 여섯 개가 차례로 주변 땅과 같은 온도가 됐다. 해가 다시 뜨기 전 마지막 밤인 8월 13일의 열 지도에서, 치올코프스키 테두리 바깥 비탈은 다시 평범한 달의 비탈이었다. 해가 지면 식고 해가 뜨면 데워지는, 1억 년 동안 그래 온 땅. 지름 40미터 구멍 하나만 빼고. 그 구멍 바닥은 지금도 41도일까.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다시 내려가지 않았다.

관통탄 계획은 8월 둘째 주에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위원회의 마지막 공문은 두 줄이었다. 장치의 활동 정지가 확인되었다. 원정대의 현장 판단을 사후 승인한다. 데이나 콜이 그 공문을 휴스턴의 격리 숙소로 직접 들고 와서 읽어 줬다. 그리고 공문에는 없는 한 줄을 덧붙였다. 잘 들렸습니다.

남은 데이터는 ‘시계 사람들’이 함께 읽고 있다. 두 시간 동안 1초에 100만 번 깜빡인 빛. 지금까지 3분의 1을 읽었다. 펄서 지도와 빔 장부와 성적표. 나머지 3분의 2에서 사람들은 매주 무언가를 찾았다고 말하고, 그다음 주에 아니었다고 말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것은 1억 년을 기다렸다. 우리도 조금 기다려도 된다.

연구원 정문 앞에는 이제 기자가 오지 않는다. 대신 가끔 학생들이 온다. 시계실을 보고 싶다고. 센터장님은 한 달에 두 번만 받는다. 한 아이가 지난주에 물었다. 하루가 길어져서 뭐가 달라졌냐고. 나는 46밀리초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그게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여 보라고 했다. 그 절반도 안 된다고.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8월 14일 새벽, 달의 시계가 깼다.

나는 그때 휴스턴 근처의 격리 숙소에 있었다. 지구 시각으로 새벽 다섯 시 반. 치올코프스키 북동쪽 평원에 해가 뜨는 시각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하강단 송신기의 신호가 들어왔다. 태양전지판 전압이 올라가고, 배터리가 깨어나고, 15미터 밖 땅속 1미터 아래로 전기가 흘러 들어갔다.

1단계: 진공. 통과. 달은 원래 진공이다.

2단계: 냉각 레이저. 여섯 대 가운데 다섯 대 초록불. 통과.

3단계: 시계 레이저.

CLOCK LASER: LOCK FAILED

나는 숨을 멈췄다. 아무도 나사를 돌려 주지 않는다. 보름 동안 전원 없이 땅속 영하 20도에서 식은 상자다. 24.6도에서 45도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커플러가 틀어졌을 거다.

시동 순서는 실패하면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게 걸어 두었다. 10분 뒤. 상자가 해 따라 조금 더 데워진 뒤.

CLOCK LASER: LOCK FAILED

또 10분.

CLOCK LASER: LOCKED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격리 숙소 책상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옆방에서 자던 아난드가 그 소리에 깼다. 문을 열고 들어와 내 화면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았다. 왕징은 다음 날 아침 그 이야기를 듣고 ‘잘했어요’라고 했다. 시계한테.

시계는 닷새 동안 깨어 있었다. 대전의 시계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해가 높아지자 방열판이 그늘에서 비켜났고, 8월 19일 오후 상자 온도가 한계를 넘었다. 시계는 시동 순서를 거꾸로 밟으며 스스로 잠들었다.

그 닷새치 잔차를 나는 수십 번 봤다. 평균을 빼고 남은 찌꺼기.

아무 무늬도 없다. 24초짜리 출렁임도, 어떤 박자도. 텔레비전 화면의 지지직처럼. 깨끗한 시계라면 잔차는 그래야 한다. 착륙한 날 나는 그 지지직이 아닌 것을 보고 무서웠다. 지금은 그 지지직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조금 쓸쓸하다.

다음 해돋이는 9월 13일이다. 열흘 뒤. 나는 그날 아침에도 화면 앞에 앉아 있을 거다.


아홉 시, 센터장실 문을 두드린다.

“들어와.”

그는 창가에 서 있다. 스포이트를 들고. 창가의 화분은 열세 개다. 열세 번째 화분은 맨 오른쪽 끝에 있다. 작은 다육식물 하나. 통통한 잎이 별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이름표가 아직 붙어 있다. 볼펜으로 쓴 글씨.

박하람 (달)

“7월 10일부터 한 방울 적게.” 그가 말한다. “하루도 안 거르고.”

“알아요.”

그가 나를 본다. 그리고 스포이트를 내민다. 손으로. 이제 2미터 규칙은 없다.

나는 비닐 지퍼 봉지를 꺼낸다. 4그램. 달까지 갔다가 돌아온 스포이트. 리드 대장의 개인 소지품 목록에는 그 옆에 두 줄이 적혀 있다. 용도: 없음. 그리고 그 아래, 줄을 긋지 않고 덧붙인 줄. 용도 수정: 광학 수리.

나는 내 스포이트로 열세 번째 화분의 물그릇에서 물을 아주 조금 빨아들인다. 그리고 흙 위에 한 방울 떨어뜨린다.

센터장님은 그걸 본다. 오래. 그리고 말한다.

“한 방울 적게.”

“이미 적게 줬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침묵. 나는 재지 않는다. 처음으로 재지 않는다. 그 침묵이 몇 초인지는 그 사람만 알면 된다.

“그 선배가 귤 한 상자 보냈어.” 한참 뒤에 그가 말한다. “제주도에서. 너 주래.”


점심때 선우진이 시계실로 온다. 세종에서. 김밥 두 줄을 들고.

“사 놓는다고 했잖아.”

우리는 시계실 앞 복도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시계실 안에서는 먹으면 안 된다. 1년 내내 0.1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방이니까. 사람 둘이 김밥을 먹으면 0.01도쯤 오를 거다. 선우진은 그 계산을 듣고 웃는다.

“너 달 갔다 와서 하나도 안 변했다.”

“변했어.”

“어디가.”

나는 생각한다. 김밥을 씹는다. 오래 씹는다.

“확실하지 않아도 말해.” 내가 말한다. “가끔.”

선우진이 김밥을 내려놓는다. 그 사람이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는 걸 나는 이번 여름에 두 번 봤다.

“그거 내 충고 반대잖아.”

“응. 네 충고는 맞았어. 2년 동안 그걸로 살았어.” 나는 김밥 하나를 집는다. “그런데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문이 닫히는 때가 있더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김밥 봉지를 내 쪽으로 밀어 준다. 마지막 두 개.


오후에 세상이 차례로 들어온다.

클레르는 그라스에서 화상으로 들어온다. 관측소 주방. 오믈렛을 볶고 있다. 그라스는 아침이다. 오늘 밤 아폴로 15호 반사경을 쏠 거라고 한다. 지난달 쏜 결과도 보여 준다. 거리 잔차 그래프. 2029년 3월부터 휘어 올라가던 곡선이 7월 28일에서 꺾여 평평해져 있다. 그 평평한 선 아래쪽에 숫자 하나가 적혀 있다. 78미터.

“달이 그만큼 멀리 있어. 영원히.” 클레르가 프라이팬을 흔든다. “레이저가 갔다 오는 데 0.5마이크로초 더 걸려. 아무도 모를 거야. 우리만 알아.”

“우리만 알면 됐지.”

“그러니까.” 클레르가 빈 종이컵을 집어 들다가 멈춘다. 그리고 내려놓는다. “너 다음 달에 와. 같이 쏘자. 이번엔 브레너 교수도 기차로 오래. 아홉 시간 운전은 이제 그만하래.”

브레너 교수에게서는 메일이 와 있다. 짧다. 세 줄.

박 박사. 공동 논문 초안을 보냅니다. ‘달 뒷면 장치의 시간 신호와 응답’. 이번에는 제 이름을 넣어 주십시오. 이번에는 처음부터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저자는 박 박사여야 합니다. 그 점은 협상하지 않겠습니다.

왕징은 사진 한 장을 보낸다. 베이징의 병원 복도. 오른팔에 흰 깁스. 왕징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서. 표정은 없다. 그런데 그 사진에 글자가 하나 붙어 있다. 한글로, 받침 있는 글자로. 아주 삐뚤게.

람

아난드는 요리법을 보낸다. 렌틸콩 수프. 어머니의 것. 재료 목록 맨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초록 고추 일곱 개. 진짜로. 그 아래에 사진 한 장. 그의 집 부엌 창문에 플라스틱 레몬 하나와 고추 일곱 개가 실에 꿰여 매달려 있다. 지구의 중력이 가리키는 아래를 똑바로.

리드 대장의 메일은 저녁에 온다. 한 줄.

하람. 넷 다 잘 있습니다. — T. 리드

나는 그 메일에 답장하지 않는다. 그가 답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안다. 대신 그 메일을 프린트해서 노트 맨 앞장에 붙인다. 그의 탑승 반대 문서 세 장을 접어 끼워 둔 바로 그 쪽에. 반대 문서 맨 아래의 ‘4.0g 30초, 의식 유지’와 이 한 줄이 나란히 놓인다. 둘 다 그의 문장이다. 짧고 반듯한.


밤 아홉 시. 나는 지하로 내려간다.

두꺼운 문을 두 번 연다. 수소 메이저 여섯 대가 웅웅거린다. 1초에 14억 2천만 번. 정확히는 1,420,405,751.768번. 우주 어디서나 똑같은 박자. 대전의 이 지하실에서도, 1억 년 전 백조자리 어딘가에서도, 달 뒷면 1킬로미터 아래 어떤 심장에서도.

나는 시계실 바닥에 앉는다. 15개월 전 보고서를 공개한 밤처럼. 그때는 질문 하나를 들고 앉았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이제는 안다. 장부가 맞았다.

그 대신 다른 질문들이 남았다. 데이터의 3분의 2는 아직 아무도 못 읽었다. 그것이 쏜 빔이 무엇으로 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만든 누군가가 아직 거기 있는지 모른다. 1,240년 뒤 그들이 우리 노크를 들을지, 듣고 무엇을 할지 모른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확실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다는 걸 이번 여름에 배웠다.

웅웅 소리가 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착륙 다음 날 침낭 속 꿈에서 들었던 소리. 24초마다 조금 높아지던 소리. 지금은 높아지지 않는다. 고르다. 낮게, 한결같이.

오늘 하루는 86,400.046초였다.

나는 그 0.046초를 생각한다. 46밀리초.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의 절반도 안 된다. 아무도 느끼지 못할 시간이다. 원자시계를 가진 사람 빼고는. 그 46밀리초 안에 2년 반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대전과 세종과 그라스와 뮌헨. 휴스턴의 원심분리기, 플로리다의 바닷가, 달 뒷면의 여섯 갈래 길. 138미터의 우물, 41도의 바닥, 산 하나만 한 심장. 레몬 하나와 고추 일곱 개. 4그램짜리 스포이트. 0.09틱.

그리고 아직 아무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

지구는 오늘도 돈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느리게. 내일도 딱 그만큼만 느려질 것이다. 파도가 끄는 만큼만.

인류는 이제 조금 더 긴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