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시 00분. 영하 55.8도.
이리나가 문간에서 그 숫자를 읽는다. 기록부를 든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여덟은 생활 칸에 서서 그 숫자를 듣는다. 0.8도. 비행기가 내릴 수 있는 선에서 0.8도 아래.
“해가 올라오면 올라가요.” 이리나가 말한다. 기록부를 덮으며. “보통은.”
08시 00분. 영하 54.9도.
이리나가 칠판 귀퉁이에 적는다. ‘영하 55도’ 옆에.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다. 알료샤가 숨을 내쉰다. 아주 길게. 그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천천히 흩어진다.
08시 50분, 위성 전화가 울린다. 콩코르디아다.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 쥘리에트가 받는다. 몇 마디 듣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세게.
“이륙했대요. 8시 40분. 두 대 다. 560킬로미터. 두 시간.”
두 시간 동안 우리는 기지를 닫는다.
닫는 데도 순서가 있다. 미샤가 정했다. 그는 이 기지를 일곱 번 닫아 봤다. 물 배관부터 비운다. 남은 물이 얼어서 배관을 터뜨리지 않게. 눈 녹이는 장치의 물을 빼고, 냉각수 배관에 부동액이 충분한지 확인한다. 부엌의 냄비를 비우고, 식량 상자를 봉한다. 여름 팀이 오면 다시 열 것들이다.
발전기실 구석에는 드럼 두 개가 그대로 서 있다. 1982, 그리고 그 아래 2032. 끝내 따지 않았다. 미샤가 드럼 위에 종이 한 장을 테이프로 붙인다. 러시아어 몇 줄. 무엇이라고 썼는지 묻자 미샤가 어깨를 으쓱한다.
“400리터. 장부에 있음.”
나는 탱크 구역에 간다. A 탱크의 맨홀 손잡이에 체인이 감겨 있다. 4월 말에 이리나와 내가 건 그 체인. 나는 체인을 풀지 않는다. 대신 그 위에 비닐로 싼 서류철을 묶는다. 일곱 쪽. ‘보스토크 호수 기원 생물 취급 규정’. 그리고 그 위에 한 장을 더. 여름 팀에게. 이 탱크 안에 무엇이 있는지, 3월 8일부터 무엇을 먹였는지, 무엇을 넣었는지, 80도로 한 시간. 보일러는 이렇게 켠다. 맨 아래에 내 이름과 위성 전화번호.
B 탱크에도 같은 서류철을 묶는다.
쥘리에트가 그 상자를 연다. ‘6G 장비 — 손대지 말 것 — 시추팀’. 티타늄 원통을 꺼내 단열 운반 상자로 옮긴다. 병 둘을 그 옆에. 얼음물 팩 열두 개를 스펀지와 함께 사이사이에 채운다. 알료샤의 얼음 틀로 어젯밤 반쯤 얼린 팩. 상자 안 온도계가 영상 1도를 가리킨다. 쥘리에트가 뚜껑을 닫고 테이프로 감는다. 그 위에 내가 서명한다. 시료 상자를 봉인하는 방법. 4월에 뒷문에 테이프를 붙이던 그 방법이다. 이번에는 의심하려고 붙이는 게 아니다.
09시 30분. 우리는 눈 창고에 간다.
여덟 명이 도랑 앞에 선다. 판자 지붕 위에 서리가 두껍다. 그 앞 눈 위에 어젯밤 놓은 사과 반쪽 넷이 돌처럼 얼어 있다. 그 옆에 미샤의 등잔. 녹슨 양철 등잔. 미샤가 성냥을 꺼낸다. 장갑을 벗지 않고 성냥을 그으려다 세 번 실패한다. 네 번째에 붙는다. 등잔 심지에 불이 옮겨붙는다. 작고, 노랗고, 그을음이 많은 불. 고지대의 불.
“11월에 와.” 미샤가 말한다. 도랑을 향해. 러시아어로, 그리고 우리를 위해 다시 한 번 영어로. “여름 팀이 데리러 와. 비행기 큰 걸로. 조금만 더 기다려.”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쥘리에트가 운다. 소리 없이. 이리나가 쥘리에트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나는 민재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대신 수첩을 꺼내 마지막 장을 펴서 도랑 쪽으로 보여 준다. 다 썼다고. 6G 기록. 그리고 수첩을 다시 품에 넣는다. 이건 내가 가져간다. 가보니까.
10시. 다니엘이 마지막으로 모두의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끼운다. 2월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은 아침 일과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87.” 다니엘이 내 손가락에서 측정기를 빼며 말한다. “진짜 숫자예요.”
8월 이후로 다니엘은 숫자를 읽고 나면 꼭 그 말을 덧붙인다. 진짜 숫자예요. 처음엔 다들 웃었다. 지금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안다. 숫자가 좋아 보일 때, 그 숫자를 무엇으로 쟀는지 다시 본다. 내 노트의 규정 4번이다.
다니엘이 수첩을 덮는다. 2월부터 여덟 명의 매일 아침이 적힌 수첩. 그가 그 표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린다.
10시 10분. 영하 53.4도.
이리나가 마지막으로 칠판 앞에 선다. 2월 17일 정오, 내 시추 기록을 지우고 숫자 셋을 적었던 그 자리.
8 68,400 251
7월 21일에 내가 지웠던 그 숫자들. 이리나가 그걸 기억해서 다시 쓴다. 그리고 그 옆에 새로 쓴다.
8 1,200 0
이리나가 분필을 내려놓는다. 그 숫자들을 오래 본다. 그러고는 첫 줄의 8에 동그라미를 친다. 2월에 251에 동그라미를 쳤던 것처럼.
“이 숫자는 안 바뀌었어요.” 이리나가 말한다.
10시 15분. 미샤가 발전기실에 들어간다.
우리는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문간에 선다. 미샤가 엔진 옆에 선다. 2월 17일부터 251일 동안 두 번을 빼고는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엔진. 5월 20일에 11분, 7월 14일에 38분.
미샤가 가스 볼 밸브를 잠근다. 엔진 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조속기가 알아서 등유를 늘린다. 그리고 미샤가 정지 버튼에 손을 올린다. 그가 엔진의 덮개를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두 번.
“고마워, 녀석아.” 미샤가 말한다. “잘했어.”
그가 버튼을 누른다.
엔진이 멈춘다.
조용하다.
251일 동안 그 소리는 벽을 타고 발바닥으로 올라왔다. 나는 그 소리를 심장 소리라고 생각하기로 했었다. 일정하면 살아 있는 거라고. 그 소리가 사라지자 시추동이 갑자기 아주 넓어진다. 아주 춥다. 철골이 딱 하고 운다. 바깥의 침묵이 안으로 들어온다. 보스토크의 침묵. 바람도 없고, 새도 없고, 물소리도 없는, 지구에서 가장 조용한 곳의 소리.
그 침묵 속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하나 들린다.
탁. 쉬이이.
A 탱크의 숨구멍. 아직 남은 것을 먹고 있다. 시추동이 얼 때까지, 몇 시간은 더 그럴 거다. 그다음엔 탱크 바닥의 물이 언다. 얼면 기다린다. 호수 바닥의 영하 3도 물속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을 추위 속에서. 쥘리에트 말대로라면, 죽지 않고.
10시 41분, 소리가 들린다.
북동쪽 하늘에서. 콩코르디아 쪽에서. 처음에는 아주 멀고 낮다. 7월의 수송기와는 다른 소리다. 더 가볍고, 더 높다. 프로펠러 소리.
우리는 옛 활주로로 나간다. 깡통 스무 개가 다시 두 줄로 서 있다. 어제 미샤와 에릭이 눈 속 연료를 마지막으로 퍼 담아 놓은 것. 에릭이 활주로를 따라 걸으며 불을 붙인다. 이번에는 뛰지 않는다. 걷는다. 검은 손톱의 오른손으로 성냥을 긋는다.
깡통에서 불이 솟는다. 붉고 탁한 불. 2월 17일 새벽의 그 불. 7월 8일 별밤의 그 불. 2월에 우리의 겨울을 빼앗아 간 그 연료가, 오늘 마지막으로 길을 밝힌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타난다.
빨간 비행기 두 대. 작다. 날개 위에 엔진 두 개씩, 바퀴 대신 스키를 단 프로펠러기. 트윈 오터. 2001년 4월, 남극점에 영하 69도에서 내렸던 그 비행기의 동생들. 낮은 해를 등지고, 하나가 앞서고 하나가 뒤따라. 활주로 위를 한 번 낮게 지나간다. 확인 비행. 깡통 불꽃이 바람에 눕는다.
알료샤가 운다. 7월처럼. 이번에는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들 운다. 미샤까지. 미샤는 우는 걸 들킬까 봐 새벽에 눈 창고에 다니던 사람이다. 지금은 숨기지 않는다.
첫 번째 비행기가 돌아와서 내린다. 스키가 눈에 닿는다. 하얀 눈가루가 날개 높이까지 솟는다. 비행기가 미끄러지며 속도를 줄인다. 우리 앞에서 멈춘다. 두 번째가 뒤따라 내린다.
8개월 만에 처음 보는 바깥사람들.
조종석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내린다. 빨간 방한복. 고글을 이마로 올리자 수염에 성에가 붙은 얼굴이 나온다. 캐나다 사람이다. 그가 우리를 본다. 여덟 명. 그을리고, 마르고, 일곱 겹의 옷을 입은 사람들.
“보스토크?” 그가 묻는다. 확인하듯이.
이리나가 앞으로 나가 손을 내민다. 조종사가 그 손을 잡는다.
“여덟 명.” 이리나가 말한다. “모두 걸을 수 있어요.”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이리나 어깨 너머 기지를 본다. 불탄 발전동의 검은 뼈대, 펌프동의 휜 철골, 그리고 그 너머 눈밭의 누런 얼룩과 그 한가운데 파헤쳐진 구덩이.
“연료 필요 없다고 들었는데요.” 조종사가 말한다. “콩코르디아에서 넉넉히 넣고 왔어요. 혹시 모자라면…….”
“괜찮아요.” 이리나가 말한다. “우리 건 우리가 만들었어요.”
조종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이리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두 번째 비행기에서 내린 조종사가 쥘리에트에게 봉투 하나를 건넨다. 콩코르디아의 프랑스 대원들이 보낸 거라고 한다. 쥘리에트가 봉투를 연다. 카드 한 장. 쥘리에트가 읽다가 입을 막는다. 그리고 말없이 카드를 내게 내민다. 베르나르와 두 번 겨울을 같이 난 사람들의 서명이 빼곡하다. 그 맨 아래에 한 줄. ‘그가 꺼낸 것을 집으로 데려와 줘.’
쥘리에트가 그 단열 상자를 안고 비행기에 오른다. 두 팔로. 2월 16일, 그 원통에 손도 대지 못하고 서 있던 사람이.
조종사가 상자를 보고 묻는다. 그게 뭐냐고. 짐칸에 넣을까 하고.
쥘리에트가 대답하기 전에 나를 본다. 비행기 문간에 서 있는 나를. 그리고 웃는다.
“집에 가는 길이에요.” 쥘리에트가 조종사에게 말한다. 상자를 무릎 위에 올린다. “제 무릎에 둘게요.”
11시 20분. 이륙한다.
나는 창가에 앉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진다. 스키 밑의 눈이 덜컹거린다. 엔진 소리가 높아진다. 그리고 바닥이 떨어져 나간다.
비행기가 기지 위를 한 바퀴 돈다. 조종사가 그렇게 해 줬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래로 기지가 보인다. 작다. 생각보다 훨씬 작다. 하얀 평원 한가운데 점 몇 개. 시추동의 지붕. 그 지붕 한가운데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린 해치. 불탄 발전동과 펌프동의 검은 자리. 그 옆에 3번 탱크. 시추동 뒤 판자 지붕의 눈 창고. 그 앞에 아직 타고 있는 아주 작은 노란 점 하나. 미샤의 등잔. 그리고 눈밭 위의 누런 얼룩, 그 한가운데 우리가 일곱 주 동안 판 구덩이.
그 모든 것 아래, 3,769미터 아래에 호수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 4킬로미터의 얼음 밑, 영하 3도의 어둠. 1,500만 년 동안 그랬듯이. 그 바닥에서 지금도 무언가가 아주 조금씩, 아주 오래, 기름을 쪼개고 있을 거다. 우리가 꺼낸 2리터는 그 호수의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그 조각이 우리 여덟을 살렸다.
표트르는 여기서 적은 불 하나뿐이라고 했다. 반은 맞았다. 불은 넷을 데려갔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른 것은 그동안 자기 일을 했을 뿐이다. 1,500만 년 동안 해 온 일을.
비행기가 기수를 콩코르디아 쪽으로 돌린다. 기지가 날개 뒤로 사라진다.
나는 품에서 노트를 꺼낸다. 2월 17일 밤 시추동 구석에서 펜이 얼어 가며 적었던 그 노트. 첫 장을 편다. 네 사람의 이름, 그리고 그 아래 숫자 두 줄.
연료 68,400리터. 첫 비행기까지 251일.
그날 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숫자로 셀 수 있는 건 준비할 수 있다고. 그 숫자 아래에 쓴다. 비행기가 흔들려서 글씨가 삐뚤다. 하지만 펜은 얼지 않는다.
2032년 10월 25일. 여덟 명 귀환. 연료 1,200리터 남음. 나는 아직 숫자를 믿는다. 다만 이제는 그 숫자가 무엇을 지키려는지 먼저 적는다.
나는 노트를 덮는다. 창밖을 본다. 하얀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낮은 해가 그 위에 우리 비행기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옆자리에서 쥘리에트가 무릎 위의 상자를 두 팔로 감싸고 잠들어 있다. 2월 16일, 보온 상자를 썰매에 세 번 묶고도 300미터 내내 손을 떼지 못하던 나처럼. 팔로 감싼다고 상자 속 온도가 지켜지는 건 아니다. 그건 얼음물이 한다. 쥘리에트도 안다. 그래도 팔을 풀지 않는다.
상자 속 온도계는 0도를 조금 넘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을 거다. 호수보다 3도쯤 따뜻하고, 얼지 않을 만큼 차가운 온도. 압력 없이 지킬 수 있는 가장 호수에 가까운 온도. 지금 그 혈통에게는 그게 집이다.